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60화
경비대원 중 하나가 릴링에게 창을 찌르던 그 순간.
툭!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이성을 잃은 건 처음이었다.
“멈춰, 이 개새X야!”
방송을 생각하지 않고, 연출을 고려하지 않고 최단 거리로 움직였다.
[스킬, ‘도둑걸음’을 사용합니다.]
아르비스로 오면서 직접적인 전투보다는 기민한 움직임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을 내린 상태.
그래서 송하영의 스킬 중 하나인 도둑걸음을 모방하여 기억해놓았다.
차진혁의 몸이 스르르 움직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릴링 앞을 막아섰다.
까앙-!!!
경비대원의 창대와 미리가 맞부딪쳤다.
차진혁은 미리로 창대를 튕겨낸 이후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경비대원은 황급히 창을 회수한 뒤 재차 휘둘렀다.
후웅-!
그러나 그의 창은 애꿎은 허공만을 갈랐다.
경비대원이 눈을 부릅떴다.
‘이 새끼, 최근에 확인된 레벨이 205 정도라고 했는데?’
거기에 이상한 효과를 적용받아서 +20판정을 받는다나 뭐라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225.
그사이 레벨업을 했다고 가정하더라도 230을 넘기는 힘들었다.
그에 반해 경비대원의 레벨은 253.
레벨 250을 넘어가면서부터는 1차이가 굉장히 커진다.
250과 251이 다르고, 252와 253이 다르다.
그러니까 225와 253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존재해야 정상이었다.
이 정도 레벨 차이면 직업 차이, 스탯 차이, 기술 차이가 무의미해지는 수준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놈이 레벨을 속였다!”
차진혁은 곧장 경비대원에게 달려들었다.
단 한 번의 격돌로 깨달았다.
경비대원의 공격패턴은 아주 단순했다.
찌르기 아니면 횡으로 휘두르기.
이성을 잃은 차진혁이 본능으로 중얼거렸다.
“준비 동작이 눈에 훤히 보여서 경로가 쉽게 예측되고 있습니다.”
[스킬, ‘도둑걸음’을 사용합니다.]
도둑 걸음으로 몸을 가볍게 만들어 경비대원에게 접근한 뒤 몸을 숙였다.
후웅-!
창대가 차진혁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상태 그대로 차진혁은 도약했다.
차진혁의 정수리가 경비대원의 턱에 닿았다.
퍽!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차진혁은 여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턱을 부수는 데 성공한 것 같군요.”
경비대원은 어, 어억! 하더니 몸을 비틀대며 쓰러졌다.
경비대장 키디본이 인상을 찡그렸다.
‘저따위 품위 없는 공격이라니.’
미개한 서버 출신이라서 그런가.
공격에 기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병장기를 손에 들고 있으면서 박치기라니.
“놈은 서브 직업으로 사기꾼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놈은 레벨과 직업을 속였어.”
아까와는 달리 다들 조금 더 긴장했다.
이성을 잃은 차진혁은 더욱 세차게 미리를 휘둘렀다.
* * *
키디본.
과거, 자유기사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2등시민 출신이었다.
2등시민 출신이 1등시민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
키디본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그가 신분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르코엔 부인 덕분이었다.
-“네 피부의 재생력이 제법 쓸 만하구나.”
하르코엔 부인은 싱싱하고 재생력이 좋은 피부를 많이 필요로 한다고 했다.
-“내 수집품들은 예민해서 생채기가 잘 나거든.”
키디본은 하르코엔 부인에게 피부를 파는 대신 경비대장의 자리를 얻게 되었다.
이후 그는 해골 검사라는 이명을 얻게 되었고, 당당한 1등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봐줄 수는 없다.’
이번 일에는 하르코엔 부인이 엮여 있었다.
하르코엔 부인은 1등 시민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대귀족 중 한 명.
‘일이 틀어졌다가는…….’
또다시 2등 시민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었다.
1등 시민으로서 누리던 당연한 것들이 이제는 당연해지지 않을 것이었다.
“김철수의 레벨은 최소 260 이상이다. 모두 물러서.”
레벨 250이 넘어가는 고레벨 구간.
그 구간에서 10레벨 이상 차이가 나면 숫자는 의미 없어진다.
“내가 직접 상대한다.”
해골검사 키디본이 검을 뽑았다.
그의 날카로운 본 스워드가 차진혁을 노렸다.
차진혁은 키디본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머리를 깨주마.”
키디본은 차진혁의 목소리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여자의 목소리?’
정확히 말하자면 두 명의 목소리가 함께 들린 것 같았다.
키디본은 이것이 환청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무구의 의지와 주인의 의지가 정확히 합쳐졌을 때, 무구의 목소리가 합쳐져서 전달되는 경우가 있다.
보통 신검합일이라 부르는 그 경지가 극성에 도달했을 때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뭐가 이렇게 빨라?’
분명 둔기를 다루는 둔기술사임에 틀림없는데, 보법은 마치 도적 같았다.
‘검의 궤적은, 어디냐!’
미리의 몸에서 은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전격계열의 마력과 비슷해서, 미리 주변에 뇌전이 은빛 뇌전이 일렁거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약간의 착시효과를 일으켰다.
‘어지럽군.’
어디서 어떻게 공격이 날아들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일단 거리를 벌려서 피…….’
그러나 그는 피하지 못했다.
한 템포 빠르게 접근한 차진혁이 미리를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빠각!
“컥!”
짧은 비명성을 낸 해골검사 키디본은 뒤로 몇 발자국이나 물러섰다.
그는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가슴을 가리고 있던 은색 갑주에 금이 쩌적- 쩌적- 가기 시작했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갑주가 없었다면…….’
아마 갈비뼈가 박살 났으리라.
아무래도 전력을 잘못 파악한 것 같았다.
“놈의 레벨은…… 260대다.”
* * *
여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인 차진혁이 중얼거렸다.
“우리 작고 소중한 철수랜드를 건드리는 놈들은 가만 안 둔다.”
키디본의 두개골이 바스러졌다.
형광빛으로 빛나던 그의 안광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속지 마라. 놈의 레벨은…… 270대였다.”
결국 뒷통수가 깨진 해골 검사 키디본은 그 자리에서 즉사.
부하들 사이에서는 꽤 인망이 두터웠는지 부하들이 눈에 핏발을 세웠다.
“놈의 레벨은 270대다. 특수 병비대 지원대를 요청하고, 방어진을 펼쳐서 놈의 움직임만 막는다!”
이제 그들은 차진혁과 직접 싸우려 들지는 않았다.
마음먹고 방어만 한다면,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경비대원 중 하나가 뿔나팔을 크게 불었다.
뿌우우우-!
지원을 요청하는 뿔나팔이었다.
그쯤 되었을 때, 차진혁도 이성을 조금씩 되찾기 시작했다.
‘프로답지 못했다.’
그는 스트리머였다.
스트리머라면,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철저하게 방송을 생각해서 모든 상황을 연출해야 했다.
‘방금의 나는 스트리머가 아니었어!’
방송 멘트를 쉴 새 없이 던졌지만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잘못된 것 같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배에 검은 구멍이 난 채 여전히 쓰러져 있는 릴링을 보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비록 중소도시의 경비대장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1등 시민을 죽인 거다.’
아르비스는 자서버의 시민들을 보호하는데 무척이나 열심인 서버였고, 타서버의 플레이어의 잘못에 무자비한 곳이기도 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일단 여기서 도망치는 것도 생각해야겠어.’
처음에는 도망이 힘들 줄 알았다.
레벨 격차가 많이 났으니까.
그런데 막상 싸워보니 그렇지 않았다.
아무래도 평화에 찌든 서버라서 그런 것 같았다.
“생각보다 굉장한 물레벨들입니다. 이 정도 물레벨은 처음 보는군요.”
“저 미친놈이……!”
차진혁이 히죽 웃고서 말을 이었다.
“그냥 다 죽일까요?”
순간적인 살기를 읽어낸 경비대원들은 잔뜩 긴장했다.
“모두 조심해라!”
“과연 270레벨대의 살기!”
여기서 평온한 사람은 최저레벨 스트리머 차진혁뿐이었다.
“시청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투표 올려보겠.”
아, 지금 방송 중 아니지.
정식 방송 및 녹화는 00시부터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진혁은 어딘지 모르게 굉장히 허전했다.
‘아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방송에 미친놈이라면 방송만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방송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철수랜드인 릴링이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
릴링의 상태를 살펴야 했다.
“움직이지 마라!”
“멈춰!”
경비대원들이 잔뜩 긴장하며 창을 내지르는 그 순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마시멜로 모양의 머리가 보였다.
모자가 아니라 진짜 머리카락.
아르비스의 랭커이자, 전 우주적으로 유명한 마시멜로였다.
“야 이 자식들아! 너희는 스트리머 보호 조약도 모르냐!”
마시멜로는 잔뜩 흥분해서 뛰어왔다.
마치 푸딩이나 젤리처럼, 마시멜로 모양의 머리가 퐁퐁 솟으며 흔들렸다.
“레벨도 낮은 애를, 그것도 연약한 스트리머를 그렇게 여럿이서 둘러싸고 괴롭히면 되냐고!”
경비대원들은 어쩐지 많이 억울해졌다.
* * *
1번 늪지대는 눈을 부여잡고 으악! 비명을 질렀다.
‘김철수 이 미친놈이……!’
놈의 적응력은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C.B(조종벌레)라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곧바로 길들이기(물리)를 사용해서 C.B의 통제권을 빼앗으려고 했다.
급한 대로 미완성된 블랙홀을 완성시키려고 했지만 김철수의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3번 늪지대와 2번 늪지대의 희생을 통해 김철수에 대한 데이터를 많이 모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수였다.
‘놈은 힘을 숨기고 있었다!’
C.B와의 연결은 끊어졌고 이제 그는 방 안의 상황을 훔쳐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해골검사 키디본이라면 김철수를 충분히 사로잡을 수 있겠지!’
약속 장소로 가서 기다렸다.
힘줄을 모두 끊어서 데려올 테니 사냥하기는 무척 쉬울 터.
‘왜 이렇게 안 와?’
그러던 중,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가 유일하게 알람 설정을 해놓은 스트리머, ‘마시멜로’가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순간이었지만, 그는 방송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김철수 훈계.]
그는 황급히 핸드폰 화면을 살펴보았다.
화면 속에 김철수가 잡혔다.
‘이게 무슨……?’
마시멜로를 통해 김철수를 처음 알게 된 유저들이 상당히 많은 듯했다.
-뭐야? 저 신이 내린 잘생김은?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있었나요?
-저 사람을 모름? 김철수인데.
-지구라고, 신규서버에서 떠오르는 신성임.
-저게 뭐가 잘생김? 게이처럼 생겼는데 ㅉㅉ
-혹시 저분 엔스타 아이디 아시는 분?
화면 속, 김철수가 마시멜로를 향해 인상을 살짝 찡그리고 있었다.
마시멜로의 팬은 김철수가 불손하다며 욕하고 있었고, 또 몇몇은 그마저도 귀엽다며(?) 찬양하고 있었다.
마시멜로의 등장에, 차진혁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혹시 마시멜로가 꾸민 짓인가?’
애초에 아르비스로 올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도 마시멜로였다.
이렇게 큰 도움을 주었는데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은 마시멜로의 주 활동무대로부터 워프포탈 십여 개는 멀리 떨어진 촌구석(?)이었다.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혹시 미래의 경쟁자인 나를 제거하려고?’
“야. 야. 나 김잘알TV SVIP다.”
그 말에 차진혁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아.’
이쪽으로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세상에는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른바 철수랜드들.
‘마시멜로가 철수랜드였구나!’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기는 하지만, 마시멜로가 계략을 꾸몄다기보다는 철수랜드라고 보는 쪽이 훨씬 더 그럴듯했다.
‘하긴…….’
차진혁은 스스로에게 약간 실망한 상태였다.
아까는 프로답지 못했었으니까.
‘나 같은 초보를 무슨 경쟁자로 보기나 하겠어? 아직 멀었지.’
마시멜로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 근데, 이건 아무래도 네가 팬 것 같은데.”
그는 뛰어난 눈썰미로 상황을 읽어냈다.
“처음에는 네가 괴롭힘 당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네가 괴롭히고 있던 거네. 그 번쩍이는 망치로.”
“…….”
“너 스트리머 아니었냐?”
“맞다. 스트리머다.”
“……경비대원들 표정 보이지?”
경비대원들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가 스트리머일 리 없다. 너는 힘을 숨긴 둔기술사이자 사기꾼이지 않으냐!
그렇게 말하고 싶은 모양새였다.
마시멜로는 히죽 웃고 말았다.
“건방진 후배 혼을 좀 내려고 왔는데 아무래도 타이밍을 잘못 잡은 모양이군. 시체까지 있고.”
차진혁은 이곳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하며, 힐러를 불러 달라 요청했다.
다행히 마시멜로의 매니저가 힐러였고 헐레벌떡 뛰어와 릴링을 치료했다.
전문 힐러는 아니었으나 어쨌든, 마시멜로의 건강 관리 및 체력을 위해 틈틈이 익혔다.
그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며칠 지나면 깨어날 겁니다.”
경비대원들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곧 특수 경비대원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너는 1등 시민을 살해한 죄로 체포되겠지.”
그리고 그 말은 곧 사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