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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59화 (259/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59화

하르코엔 부인의 지하실로 초대받은 1번 늪지대는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저 미치광이 여자가…….’

지하실 복도를 따라 마네킹이 일렬로 쭉 서 있었다.

문제는 저 마네킹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

정말 사람으로 만든 마네킹이었고, 이것은 저 여자의 수집품들이었다.

복도에는 방들이 여러 개 배치되어 있었는데 마치 호텔 복도 같은 구성이었다.

문에는 명패처럼 글자가 써 있었다.

[집사]

[수인]

[나체]

[미인]

그것은 방의 테마였다.

하르코엔 부인은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호호 웃었다.

“엄선하고 또 엄선한 애들만이 방에 전시될 수 있지.”

유명한 수집가답게, 자신의 수집품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1번 늪지대는 영업용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

“하르코엔 부인의 안목이야 워낙 유명하지 않습니까? 부인께서 선별한 수집품들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군요.”

하르코엔 부인은 1번 늪지대를 데리고 다니며 방을 구경시켜 주었다.

[집사]룸에는 집사처럼 꾸며진 마네킹들이 있었다.

[수인]룸에는 수인족 마네킹들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 나는 이 방에 어울릴만한 사람을 찾았어.”

[보물]

하르코엔 부인은 [보물]룸을 열었다.

문을 열자 고급스러운 간접 조명이 주변을 밝혔고,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방의 중앙에는 비어있는 유리관이 보였다.

“투명 크리스털을 깎아서 특별히 제작한 투명 상자지.”

그녀는 오랫동안 이 상자의 주인을 찾아왔고 결국 이번에 찾아낼 수 있었다.

이제 이 방의 이름은 ‘김철수’가 될 것이었다.

“안 그래도 도움을 좀 요청드릴 것이 있었습니다.”

“말만 해. 김철수를 얻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줄 수 있으니.”

“놈이 디온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제 사무실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곳에서 그놈을 잡을 생각입니다만……. 아무래도 경비대가 좀 신경 쓰입니다. 일이 일이다 보니 약간 소란이 있을 수도 있어서요.”

“소란? 무슨 소란?”

“1등 시민 한 명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괜찮으실지…….”

“수집품을 모으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지.”

하르코엔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디온 경비대장의 이름이?”

“아, 키디본입니다.”

하르코엔 부인은 어딘가로 전화를 건 뒤, 말해주었다.

“경비대장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구체적으로 뭘 해주면 되겠어?”

“합법적으로 김철수를 체포해 주시면 됩니다. 이후에 제가 중간에서 납치한 뒤, 실종 처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렵지 않네.”

“다만, 반드시 오늘 밤에 해야만 합니다. 오늘 자정까지 김철수는 방송을 진행할 수 없고 녹화 영상도 딸 수 없으니까요.”

* * *

공식적으로 아르비스의 노예제도는 폐지되었고, ‘0등’ 시민 등의 단어는 사라졌다.

그러나 그건 법적인 얘기였고 실제로는 여전히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사람들에게 0등 시민은 굉장히 익숙한 개념이었다.

여전히 2등 시민은 1등 시민들에 비해 가난했고 천대받았다.

2등 시민 욜린은 꽤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이렇게 작은 도시에 이런 꿀직장이 있다니!’

아르비스는 신분의 격상이 어려운 서버였다.

2등 시민이 부자가 된다거나 1등 시민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

그래서 그들은 돈보다는 워라밸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었다.

욜린은 디온이라는 중소도시의 작은 심부름센터에 취직했다.

그런데 이 심부름센터는 도무지 일을 하지 않는 곳이었다.

덕분에 욜린이 해야 할 일이라고는 아침에 와서 차 한잔 마시고 주변 정리 대충 하고 자유시간을 보내는 것밖에 없었다.

‘이래서야…… 망하지 않나 몰라.’

사장님을 보는 경우도 그리 흔치 않았다.

그래도 사장님을 보면 늘 깍듯하게 대했다.

이런 꿀직장을 선물해 준 고마운 사람이니까.

오늘도 편안한 하루를 보냈다.

이제 슬슬 퇴근해 볼까 했는데 드디어 손님이 찾아왔다.

처음이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

그런데 그 손님이 말했다.

“사장 죽이려고요. 말씀 전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한테 그 말을 전하라고요?”

욜린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혹시 사장님과 아주 친한 친구 사이인가요?”

“아뇨.”

“그, 그럼요?”

“굳이 따지자면 원수에 가깝죠?”

“…….”

욜린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노, 농담이겠지?’

진짜 친하니까 저런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1시간 뒤, 평소 얼굴 보기도 힘든 사장님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사장님. 제가 전달해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말하자면 첫 업무였다.

“왠지 좀 친해 보이는 사람이 찾아왔는데요. 이름이 김철수거든요?”

그 말에 1번 늪지대의 표정이 밝아졌다.

‘차라리 잘 됐군!’

마침 근처에 머물고 있을 테니 사냥하기도 무척 쉬워졌다.

“김철수가 뭐라고 했지?”

그 모습을 본 욜린은 조금 더 안도했다.

‘진짜 친한 사이인가보다!’

“사장님을 죽이겠다고 하더라구요! 꼭 전해달라고 했답니다.”

“…….”

“저…… 사장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친구분 소개 좀 시켜줄 수 있나요?”

욜린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제 이상형이셔서…….”

1번 늪지대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그 모습에 욜린은 조금 더 마음이 놓였다.

역시 친구 칭찬을 하면 기분이 나빠지는 게 진짜 친구지!

“아무리 미친 소리를 해도 미친 소리 같지 않게 느끼게 만드는 매력이 있더라구요! 그렇게 잘생긴 사람은 처음 봤어요.”

1번 늪지대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김철수를 죽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 * *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미행?’

미행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커다란 덩치를 가진 소녀(?)가 다가오고 있었다.

먼발치서 자꾸 숨어서 훔쳐보는데, 차진혁은 소녀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와, 여기까지 쫓아왔다고?’

릴링이었다.

저러다가 내일 출근 못 하는 거 아냐?

숙소 근처에 다 왔을 무렵, 차진혁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릴링. 여기까지 쫓아오면 어쩌자는 거야?”

“그, 그게…….”

릴링의 뿔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원피스와 비슷한 색깔이었다.

“철수 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요.”

“내일 출근은 어쩌려고?”

“연차 냈어요!”

차진혁은 허허 웃고 말았다.

“날 왜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거야?”

“그야…… 철수 님은 사랑이니까요. 진짜 너무너무 좋아해요.”

그 순간,

차진혁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고백이 굉장히 용감해졌네.’

김민지와 비슷한 타입인 줄 알았더니, 김민지보다 훨씬 용맹했다.

“호, 혹시 괜찮으시면 차 한 잔만 주시면 안 될까요?”

“뭐야 이거? 데이트 신청?”

“마, 맞아요, 데이트 신청! 헤헤.”

차진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왕유미가 예전에 가르쳐 줬다.

-진정한 철수랜드라면 절대 철수 님을 독점하려 들지 않아요. 상상연애는 하지만 진짜 연애를 꿈꾸지는 않아요. 그건 동료들을 배신하는 행위거든요. 데이트 신청? 그런 건 말도 안 되죠.

아까부터 묘하게 철수랜드와는 달랐다.

차진혁은 릴링의 분홍원피스의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가슴팍에는 커다란 주머니가 하나 달려 있었는데, 그 안에 코팅지가 반으로 접혀 있었다.

‘내 사인?’

아까까지는 정말 소중히 들고 있던 사인지가 구겨져 있었다.

* * *

차진혁은 릴링을 방으로 불러들였다.

릴링은 수줍어하면서도 차진혁의 방에 따라 들어왔다.

“다, 단둘이 호텔 방이라니……!”

릴링의 뿔은 아예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잘 익은 단감 같았다.

차진혁은 자리에 앉아 릴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릴링도 차진혁과 눈을 마주쳤다.

“릴링.”

“네.”

“너 되게 예쁘다?”

“저, 정말요?”

“한 번 안아줄까?”

“조, 조, 좋아요!!! 기뻐요!”

차진혁은 확신했다.

‘릴링이 아니다.’

눈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아까 만났던 릴링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었는데.

예쁘다는 칭찬에 도망가야 정상인데, 뿔만 조금 붉어질 뿐 그냥 기뻐하고 있었다.

“너 누구냐?”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차진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예상이 맞는다면,

“설마. 또 조종, 아니, CB냐?”

아무래도 1번 늪지대의 수작질 같았다.

수작질 자체는 환영이었다.

“근데…….”

철수랜드를 건드려?

내 팬을?

“늪지대 놈들은 선을 넘는 게 취미인가 봐.”

* * *

1번 늪지대는 안전한 곳에 숨은 채, 릴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눈치챈 거지?’

진짜 팬답게 잘 행동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눈치가 빠른 녀석이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제 곧 함정이 발동할 것이었다.

끽해야 몇십 초만 더 버티면 되었다.

그는 릴링을 컨트롤하여 입을 열었다.

“네놈이 감히 나를 역사냥하겠다고 했다지?”

1번 늪지대는 확신했다.

이렇게 말을 걸면, 김철수는 반드시 시간을 끌 것이다.

방송각을 재야 하니까.

방송에 미친놈이니 굳이 사무실을 찾아와 선전포고까지 한 것 아니겠는가.

“늪지대 크루를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네 놈과 나는 경험치 자체가 다르다.

‘곧이다!’

세상에 알리지 않은 늪지대 크루의 비기.

‘블랙홀’이 모습을 드러낼 때였다.

C.B의 숨겨진 능력이었다.

숙주를 일종의 블랙홀로 만들어 주변의 생명체들을 빨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숙주는 사망하지만 이것은 아주 확실한 트랩이었다.

‘어?’

그런데 약간 이상했다.

시간을 끌 거라고 생각했던 김철수가 곧바로 미리를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미친!’

저 방송에 미친놈이 왜 연출을 신경 쓰지 않는단 말인가.

척 봐도 전력으로 휘두르는 것이 틀림없었다.

‘안 돼!’

블랙홀이 완성되려면 몇 초 더 있어야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은 더 끌어야 했으니, 일단 크게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악!”

코뿔소 수인족 릴링이 크게 소리치자 숙소 전체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일대 소란이 일었고, 마침 숙소 1층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경비대가 곧장 움직였다.

경비대장 키디본이 직접 이끄는 경비대였다.

키디본은 곧장 비명이 들린 위치를 특정해 순식간에 뛰어올랐다.

“무슨 일이냐!”

검을 휘둘러 문을 박살 냈다.

그의 눈에 기이한 현상이 보였다.

‘저게 뭐지?’

그가 전달받은 내용은 이게 아니었다.

1등 시민이자 서버 입장 관리국의 직원이 배에 검은 구멍이 뚫린 채 사망했을 것이라는 내용.

현행범으로 김철수를 체포하라는 내용이었다.

‘안 죽었는데?’

배에 구멍이 난 게 아니라, 뒤통수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그가 알고 있던 내용과 미묘하게 달라지기는 했으나 어쨌든 1등 시민을 폭행한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이윽고 창을 든 경비대원들이 도착했다.

경비대원들의 평균 레벨은 270대.

“아르비스 1등 시민을 폭행 혐의로 긴급체포한다.”

경비대원들이 차진혁을 둘러쌌다.

차진혁은 약간 고민했다.

‘도망쳐야 하나?’

그러나 도망은 의미 없었다.

이곳은 최강의 서버 아르비스이고, 중소도시를 지키는 경비대원의 평균 레벨이 무려 250대였다.

심지어 경비대장의 레벨은 280.

차진혁은 일단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빨리 도착할 수 있나?’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이 쓰러진 여자가 아르비스의 시민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신분증을 조회해본 것도 아닌데 말이야.”

“…….”

경비대장 키디본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정식체포도 아니다.

‘이자와 말을 길게 섞을 필요도 없다.’

어차피 호송하는 과정에 납치당할 테니까 말이다.

“호송해.”

“대장님, 이 여자는 어떻게…… 할까요?”

원래대로면 죽어있어야 할 여자였다.

키디본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죽여.”

그 말에 차진혁이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자꾸 철수랜드를 건드려? 저렇게 작고 소중한 애를?

“너희는 진짜 안 되겠다.”

간만에 정말로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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