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58화 (258/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58화

한참 동안 거실을 서성이던 마시멜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안 되겠다!’

이대로 기다리기만 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직접 찾아내야지.’

김철수, 이놈은 아무래도 혼이 좀 나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초대장 덕분에 아르비스에 쉽게 입장했으면서 어떻게 인사 한 번을 안 올 수 있단 말인가.

직접 찾아와서 선배에게 인사도 하고 고맙다고 말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추적이다, 이놈아!’

아르비스 전역에 그의 취재원들이 퍼져 있었다.

어느 워프포탈을 타고 이동했는지도 알고 있으니 김철수의 소재를 파악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백과사전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흐흐 웃었다.

‘저 녀석, 결국 마음먹었네!’

아무래도 마시멜로의 인내심이 극에 달한 모양이었다.

이제 더 이상 자극하는 건 의미없으니까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난 그냥 구경만 해도 김철수 직관할 수 있겠다.’

직접 만나 묻고싶은 게 많았다.

신규서버 출신의 플레이어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시청자들을 단숨에 끌어 모았는지.

그리고 정말로 ‘먼치킨’을 지니고 있는지.

‘뭐 저 녀석이 나섰으니 곧 만날 수 있겠지.’

직접 찾기는 힘들고 번거로운데 마시멜로가 해준다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야, 백과사전. 나 열 받았다.”

그 모습은 마치 내가 화를 내도 되는 상황이냐? 묻는 듯 하여 답을 내려주었다.

“새파란 후배가 선배의 초대장을 받고도 감사 인사 한번 오지 않는 건 경우가 아니긴 하지?”

“역시 그렇지?”

“직접 찾아서 혼내줘야겠군.”

“그래, 맞아. 역시 넌 똑똑하다 백과사전.”

마시멜로는 차진혁의 위치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 * *

아르비스는 하나의 거대한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는 서버.

그 거대한 대륙을 3개의 제국이 나눠서 통치하고 있다.

검술제국 스웨딘.

마법제국 매지크.

신성제국 헬렌.

원래 이 세 제국은 오랜 시간 서로 반목하며 크고 작은 전쟁을 일삼아왔다.

대륙을 통일하여 진정한 1인 황제가 되겠다는 야망가는 늘 존재해 왔으니까.

그런데 마왕 가르비누의 등장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마족 출신인 마왕은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세 제국을 억지로 화합시켰다.

‘그리고…… 세 제국의 언어를 통일시키고 서로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변화시켰다라.’

이후 세 제국은 점점 서로에게 귀속되어갔고, 이제는 서로 싸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경제/정치/문화적으로 굉장히 긴밀하게 얽혀 있었고 세 제국은 사실상 하나의 제국처럼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각 국의 시민들은 아무런 제약없이 다른 제국으로 이동할 수 있었을 뿐더러 화폐와 언어까지도 같았다.

[현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시민들은 3개의 제국을 하나로 보는 경향이 짙어지게 되었으며,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국적을 바꾸는 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를테면 검술을 좋아하는 개인은 검술제국 스웨딘을, 마법에 흥미를 느끼는 개인은 마법제국 매지크를, 철학과 신앙에 관심을 있는 개인은 신성제국 헬렌을, 자유로이 선택하여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리고 만 것이다.]

차진혁은 침대에 누워 핸드폰 액정의 내용을 꽤 집중해서 읽어내렸다.

아르비스의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이제는 흥미가 좀 생겼다.

‘마왕이 그렇게 대단해?’

아무튼 현대의 아르비스를 정립하고 세운 사람이 바로 마왕 가르비누였다.

‘마왕 이전의 통치자는 베셀리티일 텐데, 베셀리티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네.’

이래서 잃어버린 여왕 혹은 잊혀진 역사라고 부르는 건가.

단순히 핸드폰으로 찾아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았다.

‘역사 공부는 이쯤하고. 1번 늪지대의 사무실은 어디더라.’

왕유미의 말대로 ‘각성자 사냥꾼 협회’ 사이트는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협회 소속의 ‘늪지대 크루’에 관한 정보도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헬렌 제국령 중소도시 디온이라.’

자세한 위치와 연락처까지 나와 있었다.

혹시 몰라 연락해 봤지만 밤이 깊어서 그런지 아무도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

* * *

다음 날 아침, 차진혁은 꽤 놀랐다.

‘길찾기 서비스가 이렇게 잘 되어 있다고?’

간단하게 선택 몇 번으로 어디서 어떤 워프포탈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지 쉽게 잘 나와 있었다.

그마저도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는 증강현실 네비게이션 서비스까지 제공되었다.

정말 진보된 세상이었다.

“길찾기 서비스를 이용해 보겠습니다.”

그러자 눈 앞에 홀로그램이 보였다.

화살표 모양의 홀로그램이었고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니 워프포탈에 정확히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정확하고 편리하군요.”

차진혁은 워프포탈에 올라섰다.

“요금은 1,200다이아밖에 안 합니다. 놀랍네요.”

무려 워프포탈을 이용하는데 서울의 시내버스 수준의 요금이 책정되어 있었다.

워프포탈을 타고 이동했다.

“멀미도 안 나고요.”

한국에 설치되어 있는 워프포탈은 아무래도 멀미가 많이 나는 편이었다.

멀미가 어찌나 심한지, 체질에 안 맞는 사람들은 워프포탈을 극도로 두려워할 정도였다.

“굉장히 부드럽게 가동됩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이런 신문물들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관심을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르비스 시민들은 나름대로 ‘아르비스 뽕’에 취할 수 있을 거고, 지구인들은 지구인들 나름대로 놀라울 테니까.

“게다가 환승까지 됩니다.”

차진혁은 마치 여행 엘튜버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타 서버의 문물에 감탄하며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콘텐츠가 되었다.

“30분 내에 워프포탈을 이용하면 무료입니다. 와 정말 선진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건 지구에도 도입하면 좋겠는데.’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고개를 저었다.

이것도 다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최강의 서버 아르비스니까 가능한 거지, 이런 거 따라 하려다가는 가랑이 다 찢어지기 마련이었다.

“어…… 여기는 곡창지대인 것 같습니다.”

중소도시 디온은 꽤 먼 곳이었다.

워프포탈을 세 번째 타고 이동하자,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는 황금빛 곡창지대가 보였다.

“여기서 다음 워프포탈까지 탈것을 타고 이동하면 5분. 걸어서 이동하면 20분가량 걸리는 것 같네요.”

차진혁은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잘 익은 벼들이 바람결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마치 파도처럼 물결치네요.”

중간중간, 농부들이 보였다.

[LV255]

[LV243]

[LV272]

차진혁은 약간 충격을 받았다.

‘그냥 평범한 농부들 아닌가?’

레벨 250 이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게다가 가끔 관리자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레벨 200대 후반에 달했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이래서 사람들이 여행을 다녀봐야 한다는 건가.

과거에는 명령을 받아 현장만 뛰느라 이런 곳을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아르비스가 대단하다 대단하다 말만 들었지, 직접 방문한 건 처음이었으니까.

“저 사람들이 랭커는 아니겠죠?”

지구에서 저 레벨이면 한 자릿수 랭커일 텐데.

차진혁은 논두렁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아르비스와 지구의 차이가 뭐지?’

지금이야 지구가 신규서버라 그렇다 치더라도.

과연 시간이 많이 흐른다고 해서 아르비스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저희 농부 플레이어들도 여기로 파견 와서 배울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요.”

문득, 여기로 오기 전 스칸노르비아에서 봤던 농부가 생각났다.

수목영양사 키마에프.

그 친구를 여기로 유학(?) 보낼 수 있다면 정말 쑥쑥 자랄 것 같은데.

“이대로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우니까 인터뷰 좀 진행해 보겠습니다.”

녹화영상이 많이 길어지기는 하겠지만 이건 강철(편집자)이 힘들어지는 것이지, 자신이 힘들어지는 건 아니었다.

최대한 분량을 확보해놓기로 했다.

“지구 출신의 스트리머 김철수라고 합니다.”

“지구? 김철수?”

인터뷰를 진행한 대다수의 농부들은 김철수는 커녕 지구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나이가 지긋한 몇 명은,

“아, 자네도 그러면 대 아르비스의 3등 시민인가?”

과거 아르비스는 수많은 서버를 식민지화하여 다스렸었고, 덕분에 아르비스는 해가 지지 않는 서버라고 불리기도 했다.

아르비스 일반 시민들이 1등시민, 아르비스 출신 노예들을 2등시민, 식민지 시민들을 3등시민이라 불렀다.

최근에 이런 것들은 다 사라졌지만 나이 많은 농부들은 과거가 더 익숙한 듯했다.

그들의 질문과 눈빛에 악의는 없었다.

“혹시 지구 서버 플레이어들도 아르비스의 진보된 농업기술을 배울 수 있습니까?”

“그러엄! 물론이지.”

노인은 고개를 끄덕인 뒤 제 할 말을 이었다.

“요즘 젊은 애들은 근성이 없어서 통 일을 안 하려 든단 말이야. 여기서 제일 젊은 애가 70이야.”

“…….”

노인은 차진혁이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수다스러웠다.

어제 수다스럽다고 생각했었던 릴링에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과거 이야기, 현재 이야기, 요즘 젊은 것들 이야기, 몇년 적 작황 이야기, 옆집 바둑이 이야기, 제국의 정치 이야기, 기타 등등.

나름 인터뷰에는 자신이 생긴 차진혁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쉽지 않군.’

과연 아르비스, 만만치 않았다.

“예전에는 말이야, 내가 황금 수호수도 키웠어.”

“…….”

“내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처럼 대단한 황금 수호수가 되지는 못했을걸?”

“황금 수호수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젊은이(?)와 대화를 나누게 된 노인은 무척 신이 난 것 같았다.

“오, 자네, 내 얘기가 듣고 싶나?”

* * *

한번 터진 노인의 입은 다물어질 생각을 하질 않았다.

쉴 새 없이 네 시간을 떠들었다.

대부분은 자기자랑이었고, 사실 영양가 있는 말은 별로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황금 수호수가 그냥 자라는 게 아니구나!’

알아서 쑥쑥 자라길래 그냥 시간만 지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린 묘목일 때는 괜찮아. 알아서 잘 자라거든.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 얘기가 달라지지!

황금 수호수는 아주 특별한 나무이고, 나이를 먹을수록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힘을 점점 잃고 메말라간다고 했다.

-내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평범한 나무로 전락했을걸? 아니! 말라 죽었겠지!

황금 수호수가 말라 죽는다?

괜스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황금 수호수를 키우는 비법 같은 것이 있습니까?”

“정성과 사랑으로 보살펴 줘야지.”

아마도 저 ‘정성과 사랑’ 안에 정말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노력들이 들어가있는 거겠지.

“어르신, 나중에 꼭 배우러 오겠습니다.”

우연히 진행한 인터뷰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다.

한껏 수다를 떤 노인은 상당히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꼭 오게. 내 모든 것을 전수해 줄 테니.”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음 워프포탈로 향했다.

1,200다이아를 추가로 지불하고서, 중소도시 디온으로 향하는 워프포탈에 몸을 맡겼다.

이윽고 차진혁은 디온의 중앙광장에 도착했다.

“이곳의 시골은…… 유럽의 도시 같군요.”

중심부는 SF영화에 등장할 법한 세상이었는데, 외곽으로 나갈수록 정겨운 모습이 많이 보였다.

지중해의 어느 날씨 좋은 마을 같은 느낌이었다.

“이곳에 늪지대 크루의 사무실이 있습니다. 한번 찾아가보겠습니다.”

평범한 급습과 암살을 콘텐츠로 하기는 싫었다.

이건 나름대로 처음 기획하는 ‘역 사냥’ 콘텐츠였고, 정석 루트를 밟아 빌드업하고 싶었다.

이미 제목과 구성도 생각해놨다.

[01-선전포고]

길찾기 시스템을 이용하여 늪지대 크루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빨간 벽돌로 만든 4층 건물의 꼭대기층이었다.

꼭대기층에 올라가 보니 젊은 여자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여기 늪지대 크루 사무실 맞나요?”

“네, 맞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사장님 계시나요?”

“지금은 부재중이십니다. 어쩐 일이시죠?”

“아.”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사장 죽이려고요. 말씀 전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한테 그 말을 전하라고요?”

여자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