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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57화 (257/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57화

차진혁은 어, 어, 싶었다.

회귀 이후, 웅이와 뇌룡을 제외하고 이 정도 압박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대놓고 습격인가?’

순간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절대결계를 사용할 준비를 끝마친 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는데 릴링이 차진혁 앞에 딱 멈춰 섰다.

관성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과연, 지나가는 세 살배기도 타 서버 가면 랭커라는 아르비스 서버의 주민다웠다.

“저를 부르신 거죠?”

제복을 벗고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한층 더 발랄해져 있었다.

차진혁은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녹화를 해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처음이다 보니까…… 조금 곤란한…… 해서…… 한 거야.”

철수랜드에게는 반말을 하라는 왕유미의 조언을 기억한 차진혁은 일부러 반말을 해봤다.

그러자 릴링의 뿔이 더 분홍빛으로 변했다.

차진혁과 더 친밀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가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네가?”

내가 철수 님을 도울 수 있어!

그 생각에 한껏 들뜬 릴링은 화사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지나치게 예쁘다?’

그 순간, 차진혁은 릴링을 경계하기로 했다.

물론 지구인의 관점에서 코뿔소 수인족은 예쁘기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2m 50㎝가 넘어가는 거구들.

부리처럼 입이 길게 나와 있고 인중에는 기다란 뿔이 있었다.

‘예쁜 여자는 조심하라고 했다.’

외모가 예쁘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깊이 빠져 열렬히 사랑하는 그 모습 자체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타고난 완력과 육체적인 능력도 어마어마하니 조심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제 친한 친구가 SSP 1인 방송 관련 부서 공무원이거든요!”

늘 그렇듯 암살자는 친절하고 다정한 태도로 접근한다.

마음을 빼앗아 안심시킨 뒤, 한 번에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혹시 몰라 중계자의 통찰로 살펴보았다.

[#신남 #개신남 #계탐]

중계자의 통찰도 믿을 수 없었다.

* * *

차진혁은 여러모로 놀랐다.

강력한 보호장치들 때문에 허가받지 않은 스트리머들은 촬영조차 불가능했다.

과연 가장 진보된 서버이자 최강의 서버, 아르비스다웠다.

“민원처리 시간은 6시까지입니다. 내일 오세요.”

처음에는 그랬는데 릴링이 나서자 얘기가 달라졌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해준다고?’

굉장히 엄격한 것 같으면서도 또 의외인 부분에서 허술했다.

컴퓨터 앞에 앉은 공무원이 말했다.

“……하여, 30일간 녹화가 허용될 예정입니다. 적용은 모레 00시부터입니다만……. 그전에 한 가지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릴링의 증언에 의하면, 김철수 선생님, 당신은 역 각성자 사냥 콘텐츠를 위하여 아르비스를 방문한 것이겠지요?”

“네. 맞습니다.”

“역 각성자 사냥 콘텐츠의 대상자가 스웨딘, 매지크, 헬렌 제국의 제국민입니까?”

이건 한세린이 미리 확인해 줬다.

이번에 새로 생긴 ‘각성자 사냥꾼 협회’에 연락해서 물어봤다나 뭐라나.

아무튼 스웨딘, 매지크, 헬렌 제국의 시민은 아니었다.

“아닙니다. 늪지대 크루의 리더, 1번 늪지대입니다.”

공무원은 자판을 몇 번인가 두드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여기 임시 허가증입니다. 30일 동안 촬영 및 녹화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일 00시부터 적용될 예정입니다.”

“고맙습니다.”

차진혁은 허가증을 받아들었다.

공무원은 딱딱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단 스웨딘, 매지크, 헬렌 제국의 제국민에게 그 어떤 유무형의 위해도 가해서는 안 됩니다.”

“예 물론입니다.”

어쨌든 릴링 덕분에 잘 해결됐다.

* * *

“고마워, 릴링.”

“아니에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뻐요!”

릴링은 꽤 수다스러운 소녀였다.

말이 굉장히 빠르고 주제가 휙휙 바뀌었다.

“저는 마시멜로 방송보다 철수 님 방송이 훨씬 좋아요. 친구들한테도 영업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려는 건가?’

차진혁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늪지대 녀석들 진짜 짜증 나요. 눈앞에 걸리기만 해봐라. 콱 밟아줄 테다.”

“…….”

약간의 오한이 일 정도의 한기가 느껴졌다.

저 살기는 진짜였다.

마치 부모님의 원수를 대하는 듯한 살기에 차진혁은 또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아르비스 출신이라고 해도……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이 저런 살기를 내뿜을 수 있을까?’

아르비스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저 정도 살기를 내뿜는단 말인가.

“혹시 1번 늪지대의 위치를 알게 되면 제가 꼭 말씀드릴게요!”

“고마워.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보답이라니요!”

릴링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솥뚜껑 같은 손이 눈앞에서 휙휙 움직이자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철수 님이랑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한테는 꿈같은 일인걸요.”

그러고 보니 릴링은 코팅된 저 종이를 여전히 아주 소중하게 가슴팍에 품고 있었다.

차진혁은 저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릴링을 더욱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아름답다……!’

자신을 저토록 좋아해 주는 모습.

꾸밈없이 사랑해 주는 모습에 마음이 자꾸 풀어지고 있지 않은가.

‘보통 이 정도 호의를 베풀면 대가를 바라는 것이 당연한데.’

당연한 걸 하지 않으면 수상한 거다.

차진혁의 상식에서는 그랬다.

“그래도, 혹시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봐.”

“으음……!”

릴링의 뿔이 까맣게 변했다.

머릿속이 무척 복잡해졌다는 얘기였다.

‘혹시 철수랜드에 특별가입해 달라고 하면 안 될까?’

거기까지 생각한 릴링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지나친 특혜야!’

다른 팬들의 반발을 너무 심하게 살 수 있었다.

철수랜드 가입은 선착순으로 이루어지며, 아직 2기 정식모집을 하지도 않은 상태.

다른 것도 아니고, 철수랜드 가입에 있어서만큼은 비겁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

릴링의 얼굴이 붉어지고 뿔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상당히 오래 고민한 릴링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한 번만 안아주시면 안 돼요?”

드디어! 미인계를 사용하는 암살자들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너무 흔한 수법인데, 그만큼 잘 통하는 방법이기도 했고.

차진혁은 절대결계를 펼칠 준비를 끝냈다.

‘방심하지 말자!’

차진혁은 겉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팔을 뻗자 릴링은 무척 수줍어하며 차진혁과 포옹했다.

차진혁은 감각세포를 일깨우며 급습에 대비했다.

솔직히 약간 설레기도 했다.

아르비스 출신의 암살기법은 분명히 많이 진보되어 있을 테니까.

‘응?’

그러나 릴링은 공격하지 않았다.

김민지와 꽤 비슷한 모습으로 갑자기 부끄러워하며 뒷걸음질 쳤다.

“고, 고, 고맙습니다! 저 평생 샤워 안 할 거예요!”

그리고 도망쳐 버렸다.

쿵! 쾅! 쿵! 쾅!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았다.

차진혁은 약간 멍한 표정으로 릴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있나?’

묘한 기분이었다.

직접 만난 건 처음인데, 이렇게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저렇게까지 호의를 베풀 수 있나?

이렇게까지 나를 좋아해 줄 수 있는 건가?

‘진짜 끝까지 암습을 안 하네?’

원래대로라면 아쉬워야 하는데 이상하게 아쉽지 않았다.

저 신난 뒷모습이 왠지 싫지 않았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군.’

* * *

“너, 집에 안 가냐?”

“네 집이 내 집이고, 내 집이 내 집이지.”

백과사전은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시멜로의 집 소파 테이블 앞에 앉아 후루룩- 라면을 먹었다.

“그게 뭐냐?”

“라면. 지구 서버에서 많이 먹는 거다.”

“먹어볼 수 있냐?”

“너 같은 애송이에게는 너무 맵다.”

오기가 생긴 마시멜로는 젓가락을 빼앗아 라면을 먹었고 결국 지옥을 맛보았다.

“이, 이런 걸 돈 주고 먹는단 말이냐! 무, 무, 물!”

백과사전은 씨익 웃었다.

“근데 너 그거 알고 있냐?”

“뭐, 뭘?”

“김철수에게는 촬영 권한이 없다.”

“촬영 권한? 그게 뭔데?”

“하아, 스트리머가 그것도 모르냐? 아르비스 출신이 아니면 아르비스에서 마음대로 촬영 못 해. 실시간 방송은 물론이고 녹화도 못 한다.”

“……그러냐?”

“어휴 이래서 있는 집 놈하고는 대화가 안 통해.”

“지가 더 있는 집이면서. 야, 물 좀 줘봐. 매워 죽겠다.”

마시멜로는 별로 관심 없어 보였다.

아직도 매움이 가시지 않아서 찬물만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잘 생각해 봐. 김철수가 아르비스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어?”

“……응?”

“너밖에 없잖아. 김철수는 뼛속까지 스트리머이고 촬영이 안 되는 나날이 지옥 그 자체일 거다. 그러면 결국 너한테 연락을 취해올 거고, 네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겠냐?”

“……오!”

마시멜로는 찬물을 마시는 것도 잊었다.

머리 위에 [!] 표시가 떴다.

그랬다가 문득 표정을 굳혔다.

“그,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

“김철수가 너를 찾아올 수도 있다니까?”

“그니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김철수를 직관할 수 있는 건데?”

“나랑은 일절 상관이 없는 얘기다.”

“너 사실 김철수 실물 보고 싶잖아.”

“걔가 날 보고 싶어 하겠지!”

백과사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엄청 설레 하는 표정인데?”

“아니? 전혀?”

마시멜로는 어느새 매움을 완전히 잊고 거실을 서성거렸다.

본인 집 거실을 걷는 사람치고 상당히 초조해 보였고 걸음이 빨랐다.

‘왜…… 연락이 안 오지?’

마시멜로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안 되겠다. 좀 알아봐야겠어!’

* * *

릴링은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평생 샤워 안 해야지.’

아르비스 내에서 김철수가 아주 유명한 건 아니었다.

아르비스는 서버 자존심이 무척 강한 서버였고, 자서버 스트리머가 아니면 잘 보지 않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렇기에 릴링에게 있어서 김철수는 더욱 특별했다.

남들은 잘 모르는 자신만의 보석 같은 느낌이랄까.

“릴링 님.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로브를 쓴 남자였다.

누가 봐도 수상한 모양새였지만 릴링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안전한 서버에서 오래 살았고, 너무 강한 힘을 타고났다.

주변을 경계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제 이름은 죠셉. 김철수 님의 매니저 및 비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오, 죠셉! 알고 있어요!”

김철수에 관한 건 뭐든지 알고 있다 자부하는 릴링이었다.

약간 의심도 했다.

“덩치가 엄청 크다고 들었었는데…….”

릴링 입장에서는 별로 크지 않았다.

“지구 서버 기준으로는 큰 축에 속합니다. 아, 여기 명함부터 드릴게요.”

“네에. 무슨 일인가요?”

“철수랜드 명예회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서요. 혹시 집 안에서 얘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명예회원이요?!”

릴링은 너무 들뜬 나머지 진위 여부를 파악하지 못했다.

자신을 죠셉이라 밝힌 남자를 집 안으로 초대했다.

“명예회원 제도라니, 저는 처음 들어요.”

“네.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실 너무 대놓고 하면 기존 철수랜드 1기 팬분들이 항의할 수 있어서요.”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철수랜드 명예회원으로는…… 혹시 아실지 모르겠지만 트리니티 클럽의 돈쭐 님이 계십니다.”

“아! 미셸장!”

“네. 그분이 사실 명예회원 1호입니다. 만약 릴링 님이 명예회원을 받아들이면 2호가 되는 거죠.”

“2호……!”

릴링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일할 때와는 사뭇 다르게 생기가 넘치는 눈빛이었다.

죠셉은 릴링과 오랜 대화를 나누었고, 릴링은 녹아내린 솜사탕처럼 반응했다.

죠셉의 말을 완전히 믿어 버렸다.

자신을 죠셉이라 밝힌 남자, 그러니까 변장한 1번 늪지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쉽군.’

그는 몰래 C.B(조종 벌레)를 그녀의 음료수에 넣는 것에 성공했다.

“명예회원 2호가 되신 것을 축하드려요. 아마 내일쯤 철수 님이 직접 영상편지 보내줄 겁니다. 릴링 님 이름 부르면서요.”

“지, 진짜요?”

릴링의 뿔이 분홍빛으로 변했다.

“같이 짠 할까요”

“네, 좋아요!”

릴링은 의심 없이 C.B를 삼켰다.

초식동물계 수인족 맞춤으로 개발된, 특별한 C.B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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