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48화
현재 전면전 스코어 3:0.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한국서버에 끼었던 거품이 꺼지는 것이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막상 당사자인 대군주 엠페러는 가슴이 조금씩 답답해졌다.
‘놈들은 실시간으로 강해지고 있다.’
물론 이쪽이 승을 쌓아갈수록 더 많은 보정과 버프가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서버 플레이어들이 전면전에 적응하는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
그리고 네 번째 전면전.
여기서 ‘김평범’이 등장했다.
김평범은 김철수와 무기까지 공유할 정도로 아주 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었다.
-“감히 내 친구를 따시켜?”
김철수를 전쟁에서 배제한 것에 잔뜩 화가 난 모양새였고, 그가 휘두르는 망치는 강력했다.
엠페러는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어떻게 생겨먹은 망치가 딜이 저 따위야!”
저건 마법사 여러 명이 힘을 합쳐 사용하는 광역마법 수준이었다.
한 방, 한 방의 파괴력이 비상식적으로 강했다.
망치질 한 번에 최소 한 명의 플레이어들이 사망했다.
그마저도 탱커계열 플레이어가 버티고 있을 때 얘기였고, 탱커가 없으면 두 세명씩 죽어나갔다.
문제는 그렇게 압도적인 힘을 경험하고 부활한 플레이어들의 전의가 싹 사라져 버린다는 것.
결국 김평범과 마주치는 플레이어들은 싸우기보다는 도망을 선택했다.
엠페러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김평범 하나만으로도 미치겠는데…….’
김평범만큼이나 거슬리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각성명 망부석.
김철수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신유리가 등장한 것이었다.
‘우리는 분명 철저한 대비를 했다.’
대규모 전면전에서 그녀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기에 망부석에 대한 대비에 소홀한 적이 없다.
맵의 지형을 조정하여 망부석이 은신할 수 있는 공간은 모두 없앴고, 지형자체를 굽이진 형태로 만들어 일직선의 함포공격이 닿지 않도록 최대한 대비했다.
뿐만 아니라 망부석 전용 저격수들을 배치하기도 했다.
‘우리의 저격은 완벽했어.’
저격에는 흠잡을 것이 없었다.
최선을 다했고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망부석을 죽일 수 없었다.
그건 해운대 던전 보스였다가 이제는 신유리를 지키는 웅이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지킨다, 곰! 돌!”
웅이는 신유리를 지킬 때 만큼은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의 힘을 보여주었다.
-“우리 여왕님, 절대 지켜, 곰! 돌!”
웅이의 비호를 받는 신유리는 그야말로 천하무적.
원거리에서 저격은 거의 불가능했는데, 그렇다고 근거리까지 접근하기는 더욱 힘들었다.
결국 네 번째 전쟁에서 미국 서버는 패배했다.
현재 스코어 3:1.
그러던 중, 한 사람이 엠페러를 찾아왔다.
“몹시 곤란한 모양이군. 나와 손 잡는다면 훨씬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각성자 사냥꾼 크루.
2번 늪지대였다.
* * *
한국서버 플레이어들과 싸워본 미국서버 플레이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놈들은…… 군대 같아.”
마치 모두가 훈련받은 정예병들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레벨은 내가 더 높았는데 말이야.”
그들은 이상한 경험을 했다.
레벨도 이쪽이 높고, 스킬이나 전체적인 능력도 이쪽이 더 뛰어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에서 패배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이었다.
“그놈들은 미친놈들이야. 눈이 희번덕했어.”
“그런 독종들은 처음 본다. 난 오늘 내가 네 번 죽인 놈한테 죽었어.”
네 번이나 죽일 수 있었을 정도면 실력차이가 꽤 난다는 의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패배했다.
“무섭더라.”
이건 단순히 능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 서버의 플레이어들의 눈에는 짙은 광기가 서려 있었다.
“뭐라더라…… 핵쟁이 타도? 그렇게 말하던데.”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몰라, 그 단어만 나오면 눈이 돌아버려.”
이어지는 두 번의 전면전에서 모두 한국이 승리했다.
현재 스코어 3:3.
미국 플레이어들은 의아해했다.
“우리쪽 포탑이 더 센 거 맞지? 뭔가 잘못된 거 아니냐?”
전쟁은 단순히 서로를 죽이는 게 끝이 아니다.
어차피 죽여도 되살아나니까.
전쟁의 승패는 상대 본진에 위치한 ‘서버 깃발’을 부수는 것으로 결정된다.
미국 것은 성조기 형상.
한국 것은 태극기 형상의 거대한 깃발이었다.
길목 길목에는 각 서버 진영의 포탑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그 포탑들을 부수거나 우회하여 본진에 침투해야만 하고.
국지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덕택에 미국 측 포탑은 한국 측 포탑보다 훨씬 견고하고 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대도 우리 쪽이 훨씬 높고.”
위에서 아래로 공격하는 것이, 아래에서 위로 공격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다.
엠페러가 미국서버에 유리하도록 지형을 다 손봐놨다.
“게다가 이쪽 본진은 절벽 쪽에 위치해 있어서 침투하기도 힘들잖아.”
여러모로 미국에 훨씬 유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속 세 번의 패배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근데 그걸 한국 애들은 핵이라고 하던데?”
“방장 사기맵? 그렇게 부르더라.”
* * *
미국에만 ‘대군주’ 직업이 있는 건 아니었다.
대군주는 9성급으로 분류되었고, 한 서버에 몇 명 정도는 존재했다.
한국 출신 대군주 신병엽은 미국에 국지전을 걸었다.
그리고 착실하게 승리를 쌓아가는 중이었다.
이건 이것 나름대로 꽤 이슈가 되었다.
-한국맵 코딱지만 해서 인재풀 고갈났다며?
-전면전 참여하느라 이제 병력 없다고 안 했음?
-지금 국지전 스코어 30:12. 한국이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음ㅋㅋㅋㅋ
그에 맞불을 놓는답시고 미국의 대군주 세 명이 추가로 한국에 국지전을 걸었다.
-이제 진짜 병력 없는 거아님?
-랭커들은 대부분 전면전 참여할 테고.
-솔직히 인구빨로 밀어붙이면 한국도 답 없을듯.
……라는 것이 중론이었으나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대부분 한국이 이기고 있는데?
-미친놈들이 전면전 뛴 다음에 곧바로 국지전 참여한다고 함. 한 국지전 끝나면 곧바로 다른 국지전 또 참여함.
-그게 가능함?
전면전이든 국지전이든 플레이하다보면 여러 번 죽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 정신력은 점차 고갈되고 번아웃이 찾아온다.
-야자에 비하면 별 거 아니라고 하더군.
-야자가 뭔데?
-걔네들. 아침 8시에 학교가서 밤 10시까지 책상에 앉아 있었대.
-미친 소리 좀 작작해라, 그건 인권 탄압이지.
신문명 시대에 진입하고서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바뀌지 않은 것도 있었다.
-한국 친구한테 물어보니 야근과 회식 맨날 하면 정신력이 강해진다더군.
많은 전문가들도 이 기현상에 대해 논평을 쏟아냈다.
정답을 찾을 수는 없었으나 한국서버 플레이어들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전면전 스코어는 이제 5:3.
국지전 스코어들도 대부분 한국이 이기는 중.
-근데 아무리 그래도 사람인 이상 한계는 있지 않겠음?
-결국 시간이 흐르면 인구빨 못 이김.
그리고 얼마 후, 엠페러는 ‘참전 제한’ 조건을 삭제했다.
그의 출사표는 거창했다.
“바야흐로 때가 무르익었다.”
끝판왕 격인 김철수도 이제 전쟁에 참여할 수 있게 허락하겠다고 공표했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다.”
* * *
차진혁은 히죽 웃었다.
TV속 엠페러의 모습이 보였다.
“쯔쯧, 진짜 멍청한 놈.”
수많은 기자들과 엘튜버들을 불러모아서 공식적인 회견을 가지는 중.
“내가 암살자 보냈으면 어쩌려고.”
이제 슬슬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법도 한데, 아직도 저렇게 평화에 찌들어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솔직히 어제도 검은가시 연합장 곽도형이 차진혁을 찾아왔었다.
-“내일 공식 기자회견 한다는데, 그때 암살할까요, 형님?”
차진혁은 곽도형의 제안에 잠깐 솔깃했다.
암살자가 암살하겠다는데 나쁠 건 없었으니까.
-“아니. 내버려 둬.”
그렇지만 이건 유희의 영역이었다.
김철수가 아닌 김평범으로, 서사나 연출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미리를 휘두를 수 있으니까.
암살하는 게 제일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취미 생활을 즐기는데 효율을 따지는 건 별로 의미 없는 일이었다.
-“죽이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형님! 암살에 대한 대비도 별로 안 되어 있는 거 같고요.”
-“안 돼. 내 친구 김평범이 플레이하고 있잖아. 친구 노는 판 깨서 되겠어?”
-“아…… 죄송합니다.”
그 말에 곽도형도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에휴. 근데 저런 정신머리로는 내가 안 죽여도 어차피 오래는 못 살겠다.”
어떻게 저렇게 암살하기 쉬운 장소에서 대놓고 연설을 하는건지 원.
생각해 보니 회귀 전, 엠페러는 미국 랭커 목록에 없었다.
아마 멀지않은 미래에 요절하겠지.
“전면전 초대장 또 언제 오지?”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전면전 초대장이 발송되었고 차진혁은 곧장 입장했다.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여러 갈래 길이 있었는데 차진혁은 가운데 길을 선택해서 걷기 시작했다.
몇 번 경험하다 보니 이쪽 길에 강한 녀석들이 많이 몰려오곤 했으니까.
‘응?’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아무도 없어?’
포탑을 지키는 최소한의 병력만 포착되었다.
‘은신 능력이 강해졌나?’
혹시 몰라 중계자의 통찰로 주변을 훑어보았지만 은신한 플레이어도 없었다.
말 그대로, 플레이어 자체가 별로 없었다.
한편 김평범이 없는 다른 갈래길에 플레이어들을 집중 배치한 엠페러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전투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김평범의 무력은 물론 상상을 초월한다.
김평범과 싸우기 위해서는 미국 최상위 랭커 최소 다섯 명 이상이 상대해야만 한다.
그것도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김평범의 발목을 잡는 수준.
그러나 김평범은 한 명이었다.
전쟁은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참여했고, 전쟁의 승패는 상대의 깃발을 먼저 부수는 것으로 판가름 난다.
‘김평범이 중앙 동굴에 진입했다.’
중앙 동굴은 맵의 맨 위로 연결되는 통로였다.
그래서 엠페러는 병력을 다시 분산시켜 배치했다.
차진혁은 계속 이상함을 느꼈다.
‘뭐냐?’
불과 10여 분 전까지 이 근방에 격렬한 전투가 있었던 것 같은데.
“김평범 님 아니십니까?”
“오, 김평범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격렬히 싸우던 미국 플레이어들이 갑자기 썰물처럼 빠져나갔단다.
“마치 김평범 님이 오시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미국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이 달라지긴 한 것 같았다.
“게릴라 부대도 따로 운용하는 것 같더라고요.”
“묘하게 상대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운이 나쁜 건지…… 저희 크루랑 비교해서 상성이 뛰어난 애들만 몰려왔습니다. 전투에서 지는 건 오랜만이네요.”
여기저기에서 미국 플레이어들이 크고 작은 승리를 거두는 중이었다.
‘뭔가 달라졌다.’
전쟁의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미국 서버의 반격이다…… 라는 의견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