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46화
최갑수가 찔끔 놀랐다.
“우주급 시나리오? 그게 뭔가? 먹는 건감?”
“에이, 영감님.”
표정과 대답이 너무 어색해서 중계자의 통찰로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미셸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영감님은 예전부터 연기를 참 못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포커페이스를 못해서 사업은 어떻게 했었대?”
“웃기는군! 소싯적에는 나 배우 하라는 제안도 많이 받았어!”
“그거야 영감님이 대대로 호구, 아니, 부자였으니까 그렇죠.”
“부자인 거랑 배우 제안이랑 무슨 연관이 있나?”
“배우계약서에 분명 돈 내놓으라는 조항 있었을걸요?”
“그, 그건 다들 내는 연습 교육비랑 마케팅비용 같은…….”
“다른 배우들은 그런 거 안 내요.”
차진혁은 저들의 잡담을 잠자코 기다리다가 정곡을 찔렀다.
“미셸장. 지금 최대한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거 같은데요.”
“어머, 티 났나 보다.”
“두 분이 이 정도 반응을 보이는 거면 대단한 거긴 한가 봐요.”
“흐음.”
최갑수는 턱을 매만졌고 미셸장은 빙그레 웃었다.
“대단하다기보다는…….”
“우리 입장에서 달가운 건 아니죠. 우주급 시나리오는 우주의 질서를 재편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후폭풍을 불러오거든요. 알죠? 기득권은 너무 큰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최갑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미공개 영상, 진짜 먼저 보여줄 건가?”
“당연히 보여드리죠.”
차진혁은 미공개 영상 –어차피 며칠 뒤에 공개할- 을 먼저 보여주었다.
올 클리어를 달성했고 업적 효과로 인하여 절대결계의 능력이 대폭 강화되는 장면이었다.
최갑수는 껄껄 웃었다.
“이거지. 이 맛에 네 방송을 보지!”
차진혁이 강해지는 것을 보며 최갑수 본인이 대리만족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럼 이제 우주급 시나리오에 대해 말씀해 주셔야죠.”
* * *
집으로 돌아온 차진혁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거 진짜 초대형 콘텐츠 나오겠다.’
역사상 ‘우주급 시나리오’는 단 한 번 등장했다고 했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대격변의 시기.
‘가르비누가 우주급 시나리오를 진행했었다라.’
왕유미에게도 들은 적이 있었다.
“우주에서 가장 섹시한 마왕이라 알려진 가르비누, 마족으로서 유일하게 아르비스를 통치했었던 절대자! 그분의 특성이 바로 먼치킨이었다고 해요.”
가르비누가 활동했던 시기가 벌써 수백 년 전이라고 하니, 수백 년 만에 처음 등장하는 우주급 시나리오였다.
이런 초대형 콘텐츠의 물꼬를 텄다는 것은 스트리머로서 굉장히 설레는 일이었다.
‘너무 들뜨지는 말자.’
당분간은 공개도 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 정도 이 프로젝트(?)의 윤곽이 잡힌 이후에 공개하는 편이 훨씬 좋을 것 같았다.
“흐음, 아무튼 트리니티분들은 우주급 시나리오의 등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죵?”
“그런 것 같아.”
수백 년 전.
마족 출신의 소년이었던 가르비누가 전설을 써 내려갔다.
그 와중에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당시만 해도 아르비스의 위상은 지금 같지 않았다나 봐.”
아르비스는 전통적인 강자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초강대서버는 아니었다.
“가르비누가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아르비스가 되었다고 해. 그 초석이 우주급 시나리오였고.”
그 과정에 정말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보통의 열강이었던 아르비스가 최정상의 서버가 되기까지.
수많은 세력개편이 일어났다.
전통의 강자들은 무너지고 신흥세력이 득세했다.
“당시의 트리니티들도 많이 무너졌다더라.”
트리니티는 우주에 단 99명만 존재한다.
누군가가 빠지면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 채운다.
“그럼 그때 세대교체가 이루어졌겠네용?”
“그렇지. 살아남은 트리니티가 10명이 채 안 된대.”
99명 중 10명.
겨우 10프로를 제외하면 대부분 물갈이되었다.
“그럼 지금의 트리니티들은 우주급 시나리오를 반기지 않을 것 같기는 하네요. 당분간은 비밀로 하는 게 좋겠어용!”
왕유미는 동글뱅이 안경을 고쳐 쓰고서 잠시 고민했다.
“근데 최갑수 영감님과 미셸장 이사장님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거죠?”
“내가 우주급 시나리오를 받았다고 직접 얘기한 건 아닌데, 아마 눈치챘겠지?”
차진혁도 약간 고민이기는 했다.
기존의 트리니티들은 지나치게 큰 변화를 원하지는 않는다.
한 세대 전의 트리니티가 물갈이 되었듯, 이번에도 그럴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최갑수나 미셸장 입장에서는 우주급 시나리오를 탐탁지 않을 수도 있는 법이었다.
그들이 마음먹고 우주급 시나리오를 방해한다면 아무래도 여러 가지로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왕유미가 크흠, 헛기침을 했다.
“오히려 좋아요.”
“뭐가?”
“트리니티 99명 중에 딱 두 명만 알고 있는 거잖아요? 하필이면 김철수 방송에 미쳐 있는 두 사람이요.”
“……그렇게까지 미쳐 있나?”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은 늘 시청자의 눈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구독자가 아무리 늘어도, 약간의 불안감을 늘 지니고 있다.
저번에 갑자기 시청자 숫자가 확 줄어들었을 때는 가슴이 얼마나 철렁했는지 모른다.
“김철수 방송에 자신감을 가져도 돼요! 제가 아는 김철수 방송은 우주 최고니깐.”
“…….”
“이미 둘은 김철수 방송에 중독됐어요. 못 빠져나와. 마약하면 망한다는 건 알면서도 왜 사람들이 마약에 손을 뻗겠어요? 김철수 방송은 마약보다 더 심해요…… 라고 말해도 창작자는 늘 불안감에 시달리는 건 인정해요. 오히려 좋은 방송태도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왕유미는 다시 한번 안경을 고쳐 쓰며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나 같은 서포터가 있는 거죠. 잘만 하면, 트리니티 두 사람을 완전히 우리 편으로 포섭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주급 시나리오에 대한 내용은 당분간 미공개.
그러나 두 트리니티에게는 정보를 공개하고, 다가올 대변혁에 대비할 시간을 선물한다?
너무 차별적인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되나?’
“일종의 팬 서비스죠!”
“……아.”
그래도 되는 것 같았다.
* * *
“으하하하핫!”
“호호호!”
최갑수와 미셸장은 차진혁의 제안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확실히. 우주급 시나리오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다면 나도 내 나름대로 대비할 수 있겠어.”
“이러려고 후원한 건 아니었는데. 어쨌든 내게도 솔깃한 제안이네요.”
두 트리니티는 흡족하게 웃으며 차진혁에게 또다른 제안을 건넸다.
“김잘알 TV처럼, VIP제도 운영하는 게 어떻겠나? 자네 미공개 영상을 볼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거지.”
“그게 잡음 안 나오고 좋겠네요. 트리니티처럼 상위 2명에게만 채널을 여는 걸로 해요.”
누적 후원액 상위 2명.
그 2명만 볼 수 있는 채널을 하나 열라는 얘기였다.
“그러면 다른 트리니티도 들어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아니지, 아니지.”
최갑수가 기분 나쁘다는 듯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나 돈벼락이야.”
“난 돈쭐이고요.”
세상에는 많은 능력자가 있다.
그 능력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업적을 쌓아 트리니티의 반열에 오른다.
“돈은 내가 제일 많아.”
“아뇨, 돈은 내가 제일 많죠.”
돈벼락과 돈쭐.
돈으로는 우주에서 적수가 거의 없는 상대였다.
“걱정 말고 상위 2명 전용 채널이나 만들게. 총알은 두둑히 준비할 테니.”
“난 방금 100억 쐈어요.”
“나도 100억 쏘지.”
두 사람은 도합 200억을 후원했다.
안 그래도 두 사람이 1등과 2등이었는데, 3등과 격차를 더 벌려놓았다.
‘와…….’
돈의 액수도 분명 감격스럽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성취감이 차진혁의 가슴속에 밀려들었다.
가슴이 웅장해진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내가 이 정도 돈을 받아도 되는 스트리머인가 보다.’
이 정도면 시청자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 아니겠는가.
돈 자체보다도 그 사실이 더 즐거웠다.
* * *
에건 폴과 어벤저스 사단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김철수와 함께 동료들의 시신을 찾아온 그 서사가 미국인들의 감성을 제대로 건드렸다.
대중들의 평가는 굉장히 좋은 편이었지만 랭커들 사이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좋냐?”
미국서버 군주계열 랭킹 1위.
각성명 ‘엠페러’는 에건 폴에게 대놓고 불만을 쏟아냈다.
“네놈들의 쇼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미국 플레이어들의 역량을 과소평가하고 있잖아.”
한국서버가 이렇게 유명세를 떨치기 전까지 최강의 서버는 미국서버였다.
수많은 던전과 다양한 자원.
레벨업에 유리한 마물 군락지와 훌륭한 퀘스트들까지.
미국서버는 여러모로 축복받은 서버였다.
덕분에 미국서버 플레이어들의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창피한 줄 알아라, 광대들아.”
에건 폴은 엠페러의 말이 마냥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나는 쇼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쇼를 보여줬고, 그 쇼의 가치는 인정받았지.”
어벤저스 사단은 뛰어난 플레이어들의 모임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미국 최강’이라고 불리기에는 애매했다.
그들은 단순한 플레이어가 아니라 엔터테이너에 가까웠으니까.
그러니 엠페러처럼 하드코어 플레이어가 보기에는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 쇼 덕분에 우리까지 싸잡아서 얕잡아 보잖아.”
“그걸 내 탓하는 건가?”
“좋으나 싫으나, 미국서버 최고의 연합이라 하면 어벤저스를 떠올린다. 네놈들의 그 빌어먹을 마케팅 때문에.”
엠페러 기준에서 어벤저스 사단은 실력도 없으면서 마케팅만 잘해서 유명세를 얻은 사기꾼들이었다.
“미국서버를 대표한다고 까불고 있으면, 그에 걸맞은 플레이를 보였어야 할 거 아니냐? 하는 거라곤 그저 김철수 뒷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것뿐이더군.”
“…….”
에건 폴은 딱히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엠페러가 약간 딱할 정도였다.
‘네가 김철수를 경험해 보지 못해서 그래.’
보아하니 엠페러는 미국서버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겠다고 한바탕 난리를 피울 생각인 것 같았다.
“너를 위해서 말하는데, 혹시라도 한국서버를 상대로 [국지전]을 선포하지는 마라. 그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야.”
대군주 엠페러.
9성 직업을 가진 그에게는 서버를 상대로 ‘국지전’을 신청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에건 폴은 진심으로 엠페러를 위해 조언했지만 그건 오히려 엠페러의 자존심을 더욱 긁을 뿐이었다.
“너희 기준에서야 김철수와 K사단이 대단해 보이겠지.”
영상과 실제는 차이가 있다.
아무리 시스템의 영상기술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그래도 실제를 따라오지는 못한다.
영상으로 보는 김철수와 실제로 보는 김철수는 많이 달랐다.
“내가 보여주겠다. 김철수와 K사단이 얼마나 과대평가 되었는지. 네놈들이 얼마나 개같은 마케팅과 연출을 한 건지 말이야.”
“멍청한 짓이라니까.”
“멍청한 건 네놈들이고.”
다음 날.
대군주 엠페러는 정말로 한국서버를 상대로 ‘국지전’을 걸었다.
미국서버에서 자발적으로 5명, 한국서버에서 자발적으로 5명이 지원하여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여기에 옵저버(관람자)가 참여할 수 있는 구조.
‘국지전’ 참가자는 새로운 가상 필드로 이동하게 되어 5:5의 모의 전투를 벌인다.
당분간은 누구나 선착순으로 국지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설정했고 페널티도 따로 부여하지 않았다.
새로운 이벤트(?)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참여했다.
현재 스코어는 95:98.
한국이 미세하게 더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
약간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221:142.
299:162.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서버 플레이어들의 승률이 높아졌고, 결과는 점점 압도적으로 변해갔다.
이를 두고 많은 얘기가 오갔다.
-한국서버 코딱지만 해서 인재풀 끝난 듯ㅋㅋㅋㅋ
-나올 만한 애들 다 나온 듯한데.
-한국서버가 최강 서버라면서?
-생각보다 너무 약한데?
지구서버의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때다 싶어 조롱하기 시작했다.
-한국서버 과대평가 오졌었구나 ㅋㅋ
-사실상 김철수 빼면 아무것도 없는 곳.
337:180
393:193.
-이 정도면 김철수도 과대포장 아님?ㅋㅋㅋㅋ
-한국서버 수준 뽀록났네 ㅋㅋ 어휴 속이 시원-하다.
999:254
1,000:254
스코어가 너무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그때쯤, 백과사전이 등판했다.
[지구 유저들은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다. 내 분석자료를 보면 충격을 금치 못할 것이다.]
백과사전이 분석자료를 내놓자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실화냐?
-미친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