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42화
‘나는 절대 신나서 이러는 게 아니다.’
때리고 싶은 게 아니다.
손맛 때문이 아니다.
차진혁은 히죽히죽 웃으며 전력을 다해 미리를 휘둘렀다.
웅이의 가죽은 아주 단단해서 방어력이 무척이나 뛰어났으니까.
차진혁은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투만 차분하게 말했다.
“신유리와 웅이 사이에는 아까부터 묘한 마력의 교류가 있었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군데군데 엉키고 꼬인 곳이 있었습니다. 그게 정상적인 교감과 교류를 막고 있었죠.”
그 말을 들은 흑표범은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김철수까지도 알고 있었어?’
테르서박은 그렇다 칠 수 있었다.
이 영역은 길잡이의 영역이라기보다는 테이밍의 영역에 좀 더 가까웠으니까.
근데 김철수는?
‘저 녀석은 스트리머인데…….’
그냥 느낀 게 끝이라면 이 정도의 자괴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김철수의 행보는 원인 파악에서 그치지 않았다.
‘해결책을 모색했다고? 그사이에?’
[스킬, 길들이기(물리)를 사용합니다.]
비록 겉모양새는 무척 폭력적이었으나 엉킨 실타래 같던 마력선들이 풀어지고 있었다.
분명히, 김철수는 조금씩 상황을 해결해 나가고 있었다.
흑표범은 멍하니 김철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여기 왜 있는 거지?’
한국맵 랭킹 1위 두더지맨에게 밀리는 건 오케이.
그러나 은퇴한 길잡이에게 밀리는 건 자존심이 조금 상하는 일이었고.
그 둘에게 경쟁상대 취급도 못받는 것은 자존심이 많이 상하는 일이었고.
테이머와 스트리머에게 밀린 것은 자존심이 무참히 파괴되는 일이었다.
한국맵의 플레이어들과 함께 플레이해 본 소감은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벽이다.’
미국맵에서 승승장구 해오던 흑표범은 처음으로 벽을 느꼈다.
넘고 싶다는 욕심조차 들지 않을 만큼 아득하게 높은 벽을.
* * *
한편, 테르서박은 괴로운 듯 비명을 질렀다.
“아악! 안 돼!”
차진혁의 무지막지한 망치가 웅이의 뒤통수에 닿을 때마다 테르서박은 괴로워했다.
“제발 그만!”
테르서박은 미리의 파괴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웅이와 어느 정도 교감하기 시작한 테르서박은 미리의 강맹한 공격을 간접적으로 체감하는 중이었다.
‘이건 잘못되었다!’
온화하고 따뜻한 테이밍을 지향하는 테르서박에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테르서박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1초라도 빨리 테이밍을 성공시켜야 한다!’
웅이가 폭력에 노출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정확하게. 조금 더 정교하게. 그의 능력을 모두 이끌어내어 테이밍을 진행해야만 했다.
그는 몹시 절실해졌다.
‘웅이가 괴롭지 않도록!’
본인이 직접 테이밍하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테이밍을 도와주는 새로운 경험.
이 경험으로 테르서박은 스스로 성장했음을 느꼈다.
결국 테이밍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폐하! 여왕 폐하! 곰! 돌!”
붉어졌던 웅이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신유리를 향해 곰! 돌! 경례를 한 뒤, 그녀를 껴안고 엉엉 울었다.
순하고 착한 곰돌이로 돌아왔다.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거봐. 이렇게 패니…… 아니, 길들이니까 교감이 더 잘 되지?”
“…….”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때리고 싶어서 때린 건 절대 아니다.”
“…….”
“……진짜다.”
테르서박은 멍하니 웅이를 바라보았다.
테이밍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테르서박은 방금 있었던 상황을 복기하고 또 떠올렸다.
손에 닿을 듯 말 듯, 어떠한 깨달음이 느껴질 듯 말 듯 했다.
‘폭력을 동반한 테이밍은 테이밍이 아닌데…….’
그런데 결과가 지나치게 완벽했다.
‘만약 아까 김철수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웅이의 정신은 무너졌을지도 몰라.’
그랬다면 신유리가 저렇게 웅이와 교감할 수 있었을까?
웅이가 저렇게 온순해질 수 있었을까?
이렇게까지 완벽한 테이밍이 가능했을까?
‘김철수의 방식은 틀렸는데.’
분명히 그런데. 그래야만 하는데.
‘틀린…… 건가?’
테르서박의 상식과 가치관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 * *
에건 폴은 망부석(신유리)에게 가까이 다가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망부석 님. 저는 꽤 흥미로운 광경을 발견했습니다.”
에건 폴은 제법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사실 ‘해운대 던전’의 주인공은 김철수였다.
‘김철수가 메인. 나는 서브.’
메인 스토리와 관련된 것들은 김철수의 영역.
대신 에건 폴은 김철수가 신경 쓰지 않는 사소한 영역들을 다루기로 했다.
“아까 웅이의 공격을 막아냈던 건 분명 방어신비, 아이언 돔이었죠. 맞습니까?”
“맞아요.”
“그런데 그것은 기계형 방어신비로 알고 있고 작은 미사일 형태의 힘이 위험한 공격들을 요격하는 신비 아닙니까?”
“네, 맞아요.”
“그 과정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건 당연하고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아이언 돔은 전 세계적으로 대략 10여 명 정도가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신비.
화력이 뛰어난 방어신비여서 발동하면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게 마련이었다.
에건 폴이 알아본 10여 명 모두가 그랬다.
“그런데 망부석 님의 방어신비는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웅이의 공격을 막아내기만 했죠. 마치 화약이 제거된 탄환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게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음…….”
신유리는 말하기 곤란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기밀에 속하는 것이라면 얘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기밀은 아닌데요.”
신유리는 멋쩍게 웃으며 차진혁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차진혁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으며, 곤란한 것이 있으면 차진혁에게 묻는 편이었다.
“다들…… 이 정도는 하지 않나요?”
신유리는 힐끗 차진혁 쪽을 바라보았다.
신유리의 기준 또한 차진혁이었다.
에건 폴은 황당함을 겨우 감췄다.
‘이 여자. 진심이다!’
누군가를 기만하려는 것도 아니었고 영업기밀을 숨기려는 것도 아니었다.
‘이들의 기준은…… 무섭다.’
한국맵의 기준이 너무 이상했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었지만 그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웅이를 길들여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죠?”
“그냥…… 했는데요.”
신유리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상황이 이쯤 되니 신유리도 자신의 말이 기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냥 저는 스승님이 오라고 해서 왔을 뿐이라서요.”
“……아.”
에건 폴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난데없이 갑자기 신유리를 불러들인 건 김철수였다!’
그럼 김철수는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설계했다는 것인가.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에건 폴은 김철수에게 다가가 이 모든 걸 어떻게 계획했느냐고 물었다.
‘그건 내가 회귀자라서 그래’라고 말할 수 없었던 차진혁은 뻔뻔해지기로 했다.
“다들…… 이 정도는 하지 않나?”
어벤저스 사단 플레이어들 사이에 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 * *
웅이가 신유리와 충성서약을 맺게 되면서 해운대 던전은 클리어되었다.
아쉽게도 올 클리어 판정은 받지 못했다.
해운대 던전 클리어 보상도 그다지 대단한 건 없었다.
신유리가 호위무사 웅이를 얻게 되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좀 아쉽긴 하네.’
차진혁의 개인적인 감상과는 별개로 이번 콘텐츠는 또다시 신기록을 세우기 시작했다.
왕유미는 무척 흡족해했다.
“실시간 인기 급상승 동영상 1위는 이제 뭐, 너무 당연해!”
영상만 올렸다 하면 실시간 1위는 무조건 차지한다.
“조회수 추이랑 조회수 대비 좋아요 숫자도 엄청 많고 댓글도 폭발적이야. 어벤저스 사단과 비교되면서 엄청 좋은 시너지가 났어!”
얼른 차진혁에게 연락해서 각종 피드백을 쏟아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조금만 참자. 3일만 휴식한다고 했으니까!’
양질의 피드백을 하기 위해서 자료를 취합하고 댓글들을 살펴보았다.
-어벤저슼ㅋㅋㅋㅋ 이름이 아깝다 ㅋㅋㅋ
-아니 그래도 미국대표급 아님? 아무것도 못 하는데?
-이 정도면 김철수 솔로잉급 아니냐?
어벤저스 사단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할 일이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어벤저스 사단이 못한 부분은 없었다.
어벤저스 사단의 플레이는 지극히 상식적이었고, 상식적으로 잘 플레이했다.
왕유미는 동글뱅이 안경을 고쳐 쓰며 흐흐 웃었다.
“보통 180㎝면 아주 큰 편에 속하지만, 190㎝ 옆에 있으면 작아 보이게 마련이죠. 이것이 바로 절대 상대성 법칙! 음하하하하핫!”
어벤저스는 잘했지만 하필이면 비교 대상이 K사단이었다.
하필이면 김철수 본인이 직접 포함된 K사단.
게다가 영상의 집중 포인트는 또 있었다.
-근데 웅이랑 김철수랑 전력으로 싸우면 누가 이김?
-장난하냐? 웅이는 신유리 방어신비도 못 뚫었음.
-김철수한테는 최강의 방어신비가 있다고.
김철수와 관한 얘기들은 늘 이슈였고 토론 거리가 되었다.
-솔직히 근데 그게 방어신비라 할 수 있음?
-그건 그래. 그건 아무리 봐도 공격용이지.
-방어신비를 그렇게 공격으로 쓸 수 있다는 건, 방어로 돌리면 더 강하다는 걸 모름?
-망부석도 신비 조정해서 쓸 수 있는데 김철수라고 못할까?
한마갤을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꽤 큰 논쟁이 벌어졌다.
김철수가 웅이랑 일대일로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 팽팽하게 의견이 갈렸다.
그러던 중 네임드인 백과사전이 등장했다.
[김철수의 이번 방송 컨셉은 ‘압도’가 틀림없다. 그것도 철저하게 계산된 압도. 초반부에는 무력적인 측면에서 압도했고, 중후반부 이르러서 군주로서 던전의 전체적인 상황을 조율하고 지휘하는 측면에서 압도하였다. 심지어 테이밍적인 부분에서도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 모든 것을 김철수가 철저히 계획하여 콘텐츠를 보여준 것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으며……(중략)…… 하여 김철수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의 플레이를 지향한다는 것을 이번 해운대 던전 클리어로 선포한 것……(하략)…….]
본문 내용이 너무 길어진 것을 의식했는지 백과사전은 한 줄 요약도 간략하게 남겼다.
[한 줄 요약: 김철수는 컨셉에 충실하기 위해서 웅이를 그냥 내버려 뒀다. 각 잡고 싸웠으면 가볍게 이겼을 듯하다.]
[-글 작성자: 백과사전]
차진혁과 함께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차진솔이 말했다.
“……그렇다는데?”
“그래?”
소파에서 낮잠을 자던 차진혁은 덥수룩한 머리를 살살 긁었다.
“……내가?”
내가 그렇게까지 위대했다고?
열심히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플레이했을 뿐인데 플레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사실 저렇게까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좋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방송에 열광한다는 의미였으니까.
“근데 오빠, 진짜로 웅이랑 싸우면 누가 이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