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41화
“아뇨, 아뇨. 조금만 왼쪽으로요.”
강은우의 말에 웅이는 몸을 약간 왼쪽으로 움직였다.
강은우는 대포알 카메라를 들고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 와중에 웅이는 약간의 의문을 품었다.
‘내가 뭐 하는 짓이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차진혁이 말했다.
“여왕과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잖아. 사진이 남는 거야.”
여왕과의 추억이라니.
그걸 생각하면 너무 좋은 거 같기는 한데, 뭔가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다.
여왕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니까 약간 불경한 것 같기도 하고.
홈페이지 마스터라는 자는 자꾸 이상한 요구를 해왔다.
“웃으세요. 웃으면 귀여워요!”
난 귀엽지 않다, 곰돌!
그렇게 말을 하려고 했는데 말이 턱 막혔다.
웅이는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왜…… 쟤 말을 이렇게 듣고 있지?’
그 모습을 보며 차진혁은 히죽 웃었다.
‘세뇌계열에 엄청 약하네?’
차진혁으로서도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만약 강은우의 저 지시들이 완벽한 정신계공격이었더라면, 웅이는 본능적으로 방어해 냈을 것이었다.
애초에 레벨급이 많이 차이나니까 말이다.
‘근데 이게 사실 세뇌라고 보기에는 좀 애매한 수준이지?’
공격이라고 보기에는 좀 애매하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기에는 효과가 꽤 있는 수준.
게다가 ‘홈페이지 마스터’라는 직업 특성상 스킬에 딱히 살기나 적의 같은 것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A컷을 건지기 위한 순수한 열정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래서 웅이의 내면은 강은우의 세뇌 공격(?)에 저항하지 않았다.
‘엄청 잘 먹히네.’
강은우의 지시를 아주 잘 따랐다.
조금 정신을 차리는가 싶다가도 강은우가 찍은 사진을 몇 장 전송해서 보내주면 또 헤벌쭉하며 포즈를 취하곤 했다.
강은우도 더욱 불타올랐다.
“자, 그럼 이제 손가락을 볼에 대볼까요? 이렇게, 귀엽게.”
“나는 위엄이 있는 편이다, 곰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웅이의 오른손은 이미 볼에 닿았다.
“귀여워요. 아주 좋아요.”
‘내, 내가 이런 짓을, 곰돌?’
정신을 차려보았지만 이미 사진은 찍힌 뒤였다.
그때 즈음, 한세린과 두더지맨을 비롯한 다른 이들이 보스존에 진입했다.
차진혁은 씨익 웃었다.
‘좋은 타이밍에 잘 왔네.’
* * *
신유리는 4층에 올라오자마자 운명의 이끌림 같은 것을 느꼈다.
‘아……!’
저만치 멀리.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 형상의 석상에 눈이 갔다.
정확히 말하면, 그 석상의 머리 위에 놓인 티아라에 온통 시선을 빼앗겼다.
신유리는 티아라를 향해 걸어갔다.
마치 티아라가 자신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
“너희들은 무엇이냐, 곰돌!”
웅이가 신유리를 막아섰고 차진혁이 말했다.
“너 바보지?”
“아니다, 곰돌!”
“저 여자의 시선에 담긴 감정들을 읽을 수 없는 거냐?”
“곰돌?”
웅이의 머리 위에 [???] 표시가 떠올랐다.
독심술사도 아니고, 사실상 호위무사인 그가 남의 속마음이나 시선에 담긴 감정을 읽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왠지 인정하면 정말 바보가 되는 기분이라 그렇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시선에 담긴 감정은 바로 동경과 흠모야.”
“곰…… 돌?”
그때, 신유리가 여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기들이 숨 쉬는 것을 배우지 않아도 숨을 쉴 수 있는 것처럼, 신유리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걸 본 차진혁이 말을 이었다.
“저거 봐. 내 말이 맞지?”
“착한 녀석이군, 곰돌.”
신유리는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여왕의 얼굴을 한참 동안이나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마치 사랑에 빠진 여인 같은 모양새였다.
-정말 부러워요.
‘뭐가?’
-사랑에 빠진 저 얼굴. 운명의 아티팩트와 첫 만남에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 틀림없어요. 눈앞에서 불꽃이 튀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며 온 세상에 아티팩트와 나만이 남은 것만 같은 온전한 사랑의 감정 말이에요.
미리의 마음이 느껴졌다.
미리는 저 티아라를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있었다.
-저도 저런 사랑의 시선을 받아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더욱 주인님에게 어울리는 배필이 되어야겠지요.
더욱 어울리는 배필이 되자. 주인님이 나를 저렇게 쳐다보게 만들자.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되는 거야.
차진혁이 모르는 곳에서 미리의 욕망을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인벤토리에 담긴 미리로부터 황금빛 기운이 새어 나와, 또 다른 아이템인 엑토리얼을 향해 뻗어갔다.
‘더욱 아름다운 배필이 되기 위하여.’
엑토리얼의 일부가 부식되었고, 미리의 몸이 반짝거렸다.
이 모든 것은 인벤토리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었기에 차진혁도 눈치채지 못했다.
* * *
한동안 여왕을 멍하니 바라보던 신유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경건한 의식이 필요해요. 티아라를 닦을 천을 빌려줄 수 있을까요?”
그 말에 두더지맨이 2층에서 획득한 손수건을 내밀었다.
“혹시 이건가, 두지?”
“고맙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세린이 나섰다.
“이걸 먼저 착용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한세린이 1층에서 얻은 하얀 면장갑이었다.
신유리는 면장갑을 먼저 꼈다.
그리고 두더지맨으로부터 손수건을 받아 여왕의 티아라를 조금씩 닦기 시작했다.
한세린이 면장갑을.
두더지맨이 손수건을 건넸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은 흑표범에게로 향했다.
‘쟤들은 저런 걸 구해왔는데, 흑표범 너는?’ 하고 묻는 것 같았다.
‘젠장!’
두더지맨에게 밀리는 건 그렇다 쳐도 한세린에게 밀리는 것은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질 수 없지.’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던전에는 비밀들이 숨겨져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이미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였건만, 체력안배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마력을 방출했다.
예전의 흑표범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던 과감함이었다.
‘특별한 흐름이 보인다!’
한세린과 두더지맨은 아직 느끼지 못한 묘한 기류.
이 공간 안에서 신유리와 웅이 사이에 오가고 있는 저 마력의 교류는, 지금 이 자리에서 흑표범 자신만 느끼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 저것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딱히 느껴지지도 않는다.
동물적인 기감을 가지고 있어야만 느껴지는 특별한 것이었다.
그렇게 확신하며 신유리와 웅이를 집중적으로 관찰했다.
그때 즈음, 잿빛으로 물들었던 티아라가 다시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신유리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름…… 다워.”
그러고서 그것을 머리 위에 썼다.
마치 티아라가 자신을 써달라고 애원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신유리의 머리 위에 얹힌 티아라에서는 은빛 기운이 넘실넘실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웅이가 홀린 듯 신유리에게 다가가 냄새를 킁킁 맡았다.
“너는 누구야, 곰돌?”
거대한 곰이 사냥감의 냄새를 맡는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웅이는 홀린 듯 중얼거렸다.
“그리운 냄새가 난다, 곰돌.”
웅이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이 거짓말쟁이!”
머리 위에 [!!!] 표시가 떴다.
“감히 나의 여왕을 사칭해? 죽여 버릴 테다, 곰돌!”
웅이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가,
“못 죽여, 곰돌. 흐어어어엉! 그리운 냄새가 난다고, 곰돌곰돌.”
울음을 터뜨렸다가,
“흥! 너는 가짜가 틀림없다, 곰돌!”
하고 화를 냈다가,
“보고 싶었다, 곰돌.”
갑자기 신유리를 안고 엉엉 울었다.
다중인격자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흑표범은 직감했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군.’
웅이가 저렇게 오락가락하고 있는 이유를 파악한 것은 이 자리에 오로지 나뿐이라 생각했다.
신유리와 웅이 사이에 오가는 저 마력선 사이에 꼬이고 응어리진 것들이 있었다.
그것을 풀어내야 정상적인 교류가 일어날 것이었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흑표범보다 먼저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삼키는 민어를 길들여서 유명세를 얻은 테이머, 테르서박이었다.
“웅이는 지금 일종의 착란상태다. 길들이기가 필요해. 저 두 사람 사이에 연결된 마력이 꼬여 있다. 풀어줘야 해.”
테르서박이 황급히 뛰어갔고, 그 광경을 본 흑표범 조금 멍해졌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만 파악한 줄 알았는데 저 테이머 녀석도 이미 다 파악한 모양이었다.
테르서박이 웅이의 등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괜찮아, 진정해, 아무도 너를 해치지 않아.”
그 사이에도 웅이는 여러 차례 신유리를 위협했다가 껴안았다가 울었다가 웃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차진혁도 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 그런 거구나.’
회귀 전에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다만, 시점이 지금보다 훨씬 뒤.
지금 시점보다 더 성장한 상태의 신유리와 웅이가 만났겠지.
‘지금 시점에서는…… 신유리에게 종속되기 어려운 거야.’
티아라를 쓴 신유리와 웅이는 운명의 상대.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았다.
몇 년, 아니, 몇 달만 나중에 만났더라면 아무런 문제 없이 웅이가 신유리에게 충성을 맹세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테르서박이 연신 웅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네 마음을 내게 맡겨봐.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다, 웅아.”
테르서박이 테이밍 스킬을 통해 웅이의 마음을 다독이고 있었으나 쉽지는 않아 보였다.
테르서박이 직접 테이밍하는 것도 아니고, 신유리를 돕고 있는 입장이라서 더욱 그런 듯했다.
‘부족해!’
테르서박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계속 오락가락하던 웅이는 결국 오른손을 한 번 휘둘러 신유리의 몸을 할퀴었다.
다행히 신유리의 방어신비인 아이언돔이 웅이의 공격을 한 번 막아냈다.
목재현과 김정현이 끼어들어 신유리를 대피시키려고 했으나 신유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나는 도망치지 않아요.”
신유리의 뜻은 완고했다.
웅이가 신유리에게 운명의 이끌림을 느꼈듯, 신유리 또한 마찬가지인 듯했다.
신유리는 지금 티아라가 보여주는 환상을 보고 있었다.
사랑했던 남편을 잃어버렸던 과거의 환상.
버림받은 공주 베셀리티가 저주를 받아 끔찍한 몰골로 변하여 버림받던 그때의 환상을.
환청도 들려왔다.
-그대도 나와 같았구나.
신유리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계속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디, 내게 매인 웅이를 자유롭게 해다오.
그때 즈음 차진혁이 끼어들었다.
그의 손에는 미리가 들려 있었고, 테르서박은 기함을 토했다.
“김철수! 지금 무슨 생각인 거지?”
“나도 테이밍을 도우려고.”
차진혁에게도 뛰어난 테이밍 스킬이 있었다.
그 이름은 바로 길들이기(물리).
테르서박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제발, 제발 그만둬라!”
“네 테이밍 방식을 존중한다.”
차진혁 또한 온화하고 다정하게 교감을 나누는 방식이 더 정도라고 생각은 한다.
그러나 때로는 극약처방도 필요한 법이었다.
“근데 지금은 시간이 별로 없어. 쟤 점점 미쳐간다.”
웅이의 눈이 약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절대 신나서 때리려는 거 아니다. 이해해 줘라.”
“5분만. 내게 5분만 시간을 줘. 내가 잘 달래서 교감할 수 있다!”
5분이나 기다리라고?
아, 이건 못 참지.
“폭력을 동반한 테이밍은 테이밍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오히…….”
[스킬, 길들이기(물리)를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