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40화 (240/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40화

내가 회귀하기 전, 지구에서 가장 거슬리는 빌런단체를 꼽으라면 역시 반신연합이었다.

공무원이었던 우리는 반신연합과 여러 번 맞부딪쳤고, 반신연합의 연합장이었던 신유리를 사로잡을 뻔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신유리는 그 자체로도 강력했지만…….’

일 대 다수를 상대할 때 최강의 화력을 자랑하는 신유리는 일대일 소규모 전투에서는 약간 약했다.

함포를 장전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한번 발사하고 나면 위치가 발각되어 저격당하기 딱 좋았으니까.

방어신비로 여차저차 버무리기는 했었지만 그마저도 한계는 있는 법이었다.

우리가 신유리의 약점을 활용하여 신유리 체포 작전을 펼칠 때마다 우리의 발목을 잡았던 존재가 바로 이 ‘웅이’였다.

우리는 웅이를 이렇게 평가했다.

‘곰돌이 탈을 쓰고 다니는 미치광이.’

딱히 이렇다 할 빌런 짓은 하지 않았으나 특급으로 분류된 빌런 중 한 명이었다.

나쁜 짓을 나서서 하는 놈은 아니었지만 신유리를 너무 열심히 지켰다.

세상에 알려지기로는 신유리의 호위무사쯤으로 알려졌었다.

‘플레이어인 줄 알았는데?’

어쩐지 그렇게 신상을 파려고 해도 아무것도 안 나오더라.

‘근데 저게 곰돌이 탈이 아니야?’

곰돌이 형상의 인형 탈인 줄 알았는데, 중계자의 통찰로 보니 그냥 저게 진짜 몸이었다.

‘진짜 곰돌이였다고?’

시스템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곰계 수인족 중 하나인 것 같다.

덩치는 김정현보다 더 컸다. 일어서면 대충 4~5미터는 될 것 같았다.

웅이가 크게 소리쳤다.

“폐하!”

목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주변이 쩌렁쩌렁 울렸다.

웅이는 네 발로 달려 여왕 앞으로 달려가서는, 여왕의 시체(?) 앞에서 냄새를 킁킁 맡았다.

“뭔가 이상한데, 곰돌.”

저 말투를 들으니 확실해졌다.

내가 아는 웅이가 맞다.

이 세상에 저런 괴팍한 말을 덧붙이는 인간은 두더지맨과 웅이, 딱 두 명이었으니까.

“폐하 멀쩡한가, 곰돌?”

전신에 들끓어 오르던 마력은 조금 잠잠해졌다.

웅이의 머리 위로 [???] 표시가 생성되었다.

“이상하다, 곰돌.”

그리고 거대한 솜뭉치 같은 팔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폐하가 멀쩡한데 나 왜 깼지, 곰돌?”

웅이는 꽤 평온해졌다.

사람처럼 두 발로 일어서서 나한테 다가왔다.

“넌 나쁜 녀석이냐, 곰돌?”

“아니. 난 여왕 폐하의 백성이다.”

“착한 녀석이군, 곰돌.”

중계자의 통찰을 통해 느껴졌다.

나를 향하던 약간의 경계심과 적의가 완전히 사라지고, 갑자기 호의가 느껴졌다.

덕분인지 놈에 대한 정보가 좀 더 읽혔다.

[LV258/웅이/?/빠돌이의 끝을 달리다]

‘저딴 게 업적이야?’

──────────

[빠돌이의 끝을 달리다]

아르비스 최강의 용병을 꿈꾸던 웅이는 베셀리티 공주의 호위무사가 되기로 작정하였다.

베셀리티와의 첫 만남부터 끝까지, 그는 호위무사로서 베셀리티를 지켰고, 끝내 함께 봉인되기를 원했다.

여왕을 지킬 때에, 빠돌이는 상상 이상으로 강해진다.

──────────

설명도 영 이상했다.

‘이게 시스템이 준 업적이야?’

기분이 묘했다.

이건 마치 자연적으로 생성된 업적이 아니라, 이런 업적이 있다고 억지로 만들어서 시스템에 욱여넣은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어, 가만.’

그러고 보니 잊고 있던 뭔가가 떠올랐다.

빌런이었던 신유리와 직접 마주쳤을 때, 신유리가 머리에 뭔가를 쓰고 있었다.

그냥 장신구의 일종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저거였던 거 같은데?’

아무래도 신유리를 불러야 할 것 같다.

곧장 왕유미에게 비밀 메시지를 보냈다.

[긴급. 지금 당장 신유리를 여기로! 두더지맨이랑 같이 보내면 될 거야.]

“근데, 네 목적은 뭐지, 곰돌?”

웅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 네 녀석, 여기 왜 왔는지 이유를 밝혀라, 곰돌!”

사실 ‘백옥갑옷기사’를 사냥하러 온 거니까 여왕을 죽이러 온 것이 맞기는 맞았다.

쟤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내가 즉살을 사용해서 여왕을 죽인 것도 맞고.

‘아…… 여기서 쟤랑 싸우면 압도 못 할 거 같은데.’

압도는커녕, 어쩌면 지금은 패배할 수도 있었다.

중계자의 통찰이 내게 많은 정보를 보내오고 있었다.

──────────

여왕을 지킬 때에, 빠돌이는 상상 이상으로 강해진다.

──────────

쟤 입장에서 지켜야만 하는 여왕이 여기 있으니, 쟤는 본신 레벨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낼 것이었다.

‘압도 못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질 수도 있어.’

그러니까 지금 당장 쟤랑 싸우는 건 답이 아니었다.

방송 컨셉에도 어긋나고 말이다.

나는 일부러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여길 왜 왔겠냐?”

“저의를 밝혀라, 곰돌!”

“너 바보지?”

“난 바보 아니다, 곰돌!”

“바보 맞잖아.”

“아니다, 곰돌!”

웅이의 머리 위로 [!!!] 느낌표 세 개가 떴다.

저 느낌표가 빨간색으로 변하면 화가 난 건데, 지금은 검은색이었다.

화가 난 건 아니고 약간 당황한 모양새였다.

정곡을 찔린 거 같기도 하고.

“내가 여길 왜 왔겠어? 잘 좀 봐라. 여왕 폐하, 뭐 달라진 거 없냐?”

“달라진 거, 곰돌?”

오빠,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그 말을 들은 연애 초기의 연인처럼 웅이의 머리 위에는 [;;;] 표시가 생성되었다.

실제로도 땀이 줄줄 흘러내려서 털이 잔뜩 젖었다.

“뭐, 뭐가 달라졌지, 곰돌?”

“네가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네가 그러고도 여왕님의 호위무사라고 할 수 있냐?”

단순히 기호를 넘어서서 조금 더 정확하게 상태가 표현되었다.

[시무룩, 곰돌.]

“넌 여왕님한테 관심이 없는 놈이었냐?”

“아니다, 곰돌! 내가 여왕님 팬 1호이자 마지막 팬이다, 곰돌! 나만큼 여왕님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시다, 곰돌!”

“근데 왜 몰라?”

내가 손가락으로 여왕의 머리를 가리켰다.

“투구를 벗었잖아.”

“고, 곰돌?!”

“투구 대신 티아라 쓴 게 안 보여?”

“고, 곰돌!”

솔직히 관심 없는 사람도 저 정도면 알겠다.

아무튼 웅이는 크게 당황한 모양새였다.

“저거 선물해 주려고 들어온 거야.”

그러자 웅이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오해해서 미안하다, 곰돌. 사이좋게 지내자, 곰돌.”

나도 손을 맞잡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시간을 좀 끌어야 해.’

애들이 도착할 때까지 아주 자연스럽게, 지루하지 않게.

어떻게 하는 것이 지루하지 않을까를 치열하게 고민해 봤다.

* * *

두더지맨에게는 요즘 큰 고민이 하나 있었다.

‘패스파인더가 도태되면서 나는 확고한 랭킹 1위의 자리에 올라섰어.’

물론 패스파인더 본인은 도태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두더지맨은 도태라고 믿기로 했다.

‘그렇지만…….’

그는 어디 한 연합에 속하지 않고 프리랜서 길잡이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요즘 꼭 듣는 말이 있다.

-근데 K사단 소속은 아니죠?

-아, 죄송합니다. K사단 소속 길잡이만 찾고 있어서요.

예전에는 그냥 ‘랭킹 1위’라는 타이틀만 있으면 됐는데 이제는 꼭 ‘K사단 입니까?’를 묻는다.

두더지맨은 김철수와 여러 차례 함께 플레이를 진행했고 친분도 나름대로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었으나, ‘그래서 K사단이냐?’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대답하기 애매했다.

‘K사단이 아니긴 하지.’

그렇다고 랭킹 1위의 자존심이 있는데 김철수더러 나를 받아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저쪽에서 스카웃을 한다면 몰라도 말이다.

‘흥, 그리고 나는 1차 연합이 아니면 필요 없어!’

김철수와 직접적으로 묶여 있는 ‘1차 연합’이 아니면 관심 없었다.

그런데 왕유미로부터 연락이 왔다.

-혹시 지금 어디예요?

-나는 지금 부산이다, 두지!

그는 창밖 야경을 보며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혹시 김철수가 도움을 요청할까 싶어 일부러 부산에 내려온 거지만 그건 비밀로 했다.

-잘됐네요! 김철수 님이 긴급으로 도움을 요청하셨어요. 보수는 원하는 대로 드릴게요. 지금 바로 신유리 씨와 테르서박 씨를 데리고 해운대 던전으로 가줄 수 있어요?

-음, 나 지금 바쁜데, 두지.

-그럼 어쩔 수 없고요. 다른 분 알아볼게요. 시간이 없어서 이만.

-자, 잠깐, 두지!

-네?

-혹시 김철수가 뭐 특별히 나를 언급했다거나?

왕유미는 아주 잠깐 고민했다가 이내 탐스러운 미끼를 던졌다.

-두더지맨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했어요. 독보적 랭킹 1위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근데 두더지맨이 바쁘다면 어쩔 수 없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나도 어쩔 수 없지, 두지.

테르서박과 신유리는 뇌룡을 타고 이동했다.

뇌룡은 테르서박에게 단단히 경고했고,

[한 번만 더 내 등에 토악질을 한다면 통구이로 만들어주마.]

테르서박은 미리 준비한 비닐봉지에 토악질을 했다.

다행히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잘 왔다, 제군들. 압도적 랭킹 1위, 두더지맨의 파티에 온 것을 환영한다, 두지!”

두더지맨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는 흐흐흐- 웃고 있었다.

“그치.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흐흐흐.”

신유리는 약간 떨떠름해했다.

“저 사람이…… 진짜 랭킹 1위의 길잡이 맞죠?”

* * *

두더지맨은 테르서박과 신유리를 데리고 ‘버려진 사원’ 입구에 도착했다.

“한국맵 랭킹 1위, 진짜배기 길잡이가 도착하셨도다, 두지!”

두더지맨을 알아본 한세린은 인상을 찡그렸다.

“여긴 어쩐 일이야?”

“김철수가 나를 애타게 찾아서 말이야.”

“김철수는 솔로잉 중인데 무슨 소리야?”

한세린도 방송을 통해 차진혁의 플레이 영상을 확인한 상태.

그리고 한세린은 어벤저스 사단이 차진혁의 솔로잉을 방해하지 않도록 적당히 핑계를 대가며 기다리던 중이었다.

“어리석은 녀석. 그러니까 네가 만년 2위였던 것이다. 도태된 길잡이, 패스파인더여!”

“이미 은퇴한 내가 1위였던 시간이, 네가 1위였던 시간을 모두 합친 것보다 길다는 거 아직도 모르냐?”

“그, 그걸 계산했단 말이냐, 두지?”

“아직도 내가 32시간이나 더 길다.”

두더지맨은 상황이 조금 불리해진다 싶었는지 얼른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김철수가 특별히 나를 콕 짚어서 제발 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니까 가준다, 두지!”

“…….”

한세린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몸을 일으켰다.

어벤저스 사단도 함께였다. 1층에 진입한 이후, 어벤저스 사단의 길잡이 흑표범은 묘한 패배감을 느꼈다.

‘뭐지?’

흑표범과 패스파인더.

저 둘은 지금 서로를 향한 엄청난 경쟁심을 느끼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둘은 1층의 히든피스를 찾아내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누가 더 나은 길잡이인지 경쟁하고 있었다.

“흥, 이곳 벽화의 패턴이 이상하다, 두지!”

벽화에 손을 대는가 하면,

“이 뼈들을 자세히 보면 작은 문양들이 새겨져 있어. 이 문양들을 해석해서 살펴보면…… 이 뼈들을 활용한 마법진을 생성할 수 있어.”

김철수가 사냥한 시체들을 활용하여 마법진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두더지맨이 저렇게 열성적인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한국맵 랭킹 1위의 길잡이였으니까.

그러나 한세린은 달랐다.

‘당신은 길잡이에서 은퇴했잖아?’

그러면 사실 두더지맨과 경쟁해야 하는 건 흑표범 자신이었다.

근데 왜?

‘지금 나를 경쟁자로도 안 본다는 거냐!’

자존심에 크게 상처 입은 흑표범은 예전보다 훨씬 과감해졌고 욕심이 많아졌다.

승부욕이 들끓어 올랐다.

‘나도 길잡이란 말이다, 이놈들아!’

꼬리를 땅에 박아넣고 최대출력으로 마력을 흘려 넣기 시작했다.

그들이 구성한 마법진에서 녹색 빛이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작은 상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면장갑이군.”

1층에서는 면장갑을 획득했다.

2층에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손수건을 획득했다.

차진혁이 마물들을 모조리 휩쓸고 지나간 덕분에 히든피스를 찾아내기가 제법 수월했다.

3층에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차진혁이 위치하고 있는 4층에 도착했다.

“특별한 내가 왔다, 두지! 응?”

두더지맨은 고개를 갸웃했다.

“김철수. 뭘 하고 있는 거야, 두지?”

두더지맨의 눈으로 본 김철수가 아무래도 좀 이상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