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37화
‘이게 플레이지!’
방어결계가 깨지고 이후에 기다렸다는 듯 날아드는 살상 공격.
마치 선제각성 스트리머를 저격하는 듯한 이 연계에 나는 간만에 살아 있음을 느꼈다.
음, 근데 정확히 말하자면 생동감이라기보다는 유희에 가까운 느낌이기는 했다.
‘아쉽다, 아쉬워.’
검왕 시절의 내 플레이가 정말 살아 있음을 절감할 수 있을 정도로 치열하고 예술적인 것이었더라면, 이건 약간 놀이공원에 놀러 온 느낌이었다.
‘뭐, 어차피 이번 내 방송 컨셉이 유희에 가까우니까.’
치열함은 또 다른 콘텐츠에서 보여주면 되겠지.
아무래도 위기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파괴력이 강해도 저렇게 느리면 누가 맞냐?’
강한 공격도 안 맞으면 안 아프다.
화살 연계 다음에 살상 메테오를 날리는 건 꽤 좋은 선택이었지만 둘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절대결계 파괴되면 뭐하냐고. 다시 펼치면 그만인데.’
원래 결계는 깨지는 거다.
절대 안 깨지는 결계 같은 건 없다.
공격자는 결계를 깨고, 방어자는 결계를 다시 수복하고.
이게 물 흐르듯 유기적으로 계속 이루어져야 하는데 공격과 공격 사이에 텀이 너무 컸다.
‘근데 안 펼쳐야지.’
절대결계가 만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계가 깨진 김에 내 본신의 방어력도 어느 정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굳이 시간배율 촬영은 안 써도 되겠다.’
어차피 맞을 거니까.
리치가 사용한 메테오에 맞아 본다니, 약간 신나는 거 같기도.
콰과광!
메테오가 내 머리에 닿았다.
‘오.’
살짝 어질어질한 느낌이 있었다.
크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내 머리를 마구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흘려낼까?’
거의 수직에 가깝게 떨어지는 공격이라 궤도만 살짝 바꾸면 쉽게 피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건 버텨야지.’
나는 다리와 코어에 힘을 꽉 주고 메테오를 버텨봤다.
씨름하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다.
‘이 정도 수준의 마법 공격에는 이 정도 데미지가 들어오는구나.’
데미지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애매했다.
코끼리코 한 열 바퀴 정도 돈 것처럼 머리가 살짝 어지러운 것 정도?
내가 기대했던 수준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근데…….’
저 벽면 그림자에 숨어 있는 놈은 뭘까?
‘암살자는 아닌 것 같은데.’
적의 비슷한 무언가는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살기였더라면 당장 중계자의 통찰을 사용해서 정체를 파악하고 대처했겠지만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았다.
여기까지 기어들어 와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라.
그것도 아주 끈적한 눈길로. 근데 살기는 없다라.
‘혹시…….’
나는 꽤 그럴듯한 결론에 이르렀다.
‘사생팬인가?’
* * *
2번 늪지대.
그는 지형지물을 잘 활용하고, 던전 내의 요소들을 조작하는 데에 특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위험한 던전일수록 그에게는 커다란 힘이 되어주었다.
‘해운대 던전’ 초반부 모래 지렁이 또한 2번 늪지대가 조작해서 만들어낸 것이었다.
‘모래 지렁이가 놈을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김철수를 탐색하기 위함이었다.
‘너무 약하지도, 그렇다고 그다지 강하지도 않은, 상대하기 적당히 까다로운 마물일 때에 네 능력을 드러내게 되어 있지.’
그는 소문 같은 것은 믿지 않았다.
직접 파악하고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놈의 공격능력은 매우 뛰어나군.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그러나 상관없었다.
모르는 것이 무서울 뿐, 알면 대비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놈은…… 영웅심에 도취되어 있어.’
굳이 무리를 해가면서 –차진혁에게는 그다지 무리가 아니었다- 모래 지렁이의 서식처에 들어가 시신을 구해왔다.
인벤토리에 넣지 않고 굳이 굳이 등에 짊어지고 오는 것으로 보아 김철수 일행은 허례허식을 중요시하는 놈들이 틀림없었다.
이 모든 것들이 2번 늪지대에게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피해를 줄이려고 애쓰는 놈이다.’
첫 번째 습격.
두 번째 습격.
두 습격의 공통점은 바로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렇게 강력한 화력으로 공격하면서 동료를 다치지 않기 위해 세밀하고 정교한 컨트롤을 보여주었지.’
사실 저게 겉으로는 쉬워 보일지 몰라도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알게 모르게, 체력과 심력을 갉아먹는 행위였다.
유능하고 노련한 플레이어였다면 저런 짓은 하지 않는다.
차라리 동료를 조금 다치게 내버려 두고 힐러에게 치료를 맡기는 것이 훨씬 가성비가 좋으니까.
그는 결론을 내렸다.
‘능력은 뛰어나지만 마인드는 아직 애송이다.’
이러면 상대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죽이는 건 안 돼.’
하르코엔 부인의 의뢰는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의뢰다.
무려 2,000억 다이아가 걸려 있는 의뢰.
그래서 필사적으로 살기를 억눌렀는데, 그것이 차진혁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사생팬인가?’
다만, 이성으로 살기를 억누른다고 해서 살기가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때때로 마음속에 응어리진 살기가 조금씩 삐져나왔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으나 다행히도 김철수는 자신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네놈은 나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구나.’
……라는 것은 2번 늪지대의 착각이었다.
살기를 아예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살기가 상당히 귀여운 수준이어서 차진혁이 ‘끈적끈적한 시선’ 정도로 인식했을 뿐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토끼 한 마리의 살기를 느낀 기분에 가까워서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예능, 누군가에게는 다큐.
이른바 김철수 법칙은 지금도 아주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다큐를 찍고 있는 2번 늪지대는 아주 유효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네놈의 그 강력한 결계에는 꽤 긴 쿨타임이 있군.’
정확한 건 모른다.
그러나 최소 5초 이상의 쿨타임이 존재했다.
‘그리고 결계가 깨지면 당황하는구나!’
그 결과, 위에서 떨어지는 메테오를 그냥 몸으로 받아내며 버티는 최악의 수를 선택하고 말았다.
이건 경험의 부재가 틀림없었다.
능력만 뛰어나고 경험이 많이 축적되지 못한 애송이들이 주로 보이는 특징이었다.
‘좋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놈의 약점이 하나씩 보이는 기분이었다.
‘너를 공략할 방법들이, 내게는 수백 가지가 넘게 보이는군.’
* * *
메테오를 온몸으로 막아낸 차진혁은 마법의 구동이 끝남과 동시에 거리를 좁혀 미리를 휘둘렀다.
[“오만방자한 놈!”]
리치가 해골 지팡이를 휘둘러서 미리를 막아냈다.
그러나 마법용 지팡이가 미리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
해골 지팡이는 박살이 나버렸다.
-잘 먹었……어요.
미리는 꼴깍 침을 삼켰다.
해골도 어쨌든 머리는 머리니까, 깨부순 것에 꽤 만족한 모양이었다.
차진혁이 입을 열었다.
“보통 리치는 생명석을 다른 곳에 보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육체를 부숴도 부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뒤통수! 뒤통수를 보자!
리치는 공격 마법에 특화된 공격마법형 마물인 듯했다.
차진혁의 빠른 움직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채 뒤를 내주고 말았다.
“일단 한번 때려보겠습니다.”
미리를 휘둘러보았다.
-하아……!
미리는 달뜬 숨을 내뱉으며 잔뜩 흥분했다.
리치의 뒤통수가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
-맛있……어! 또…… 줘! 더……줘! 하아!
차진혁은 미리의 광기에 물들지 않기로 다짐했다.
정상인이 된 자신이 보기에 미리는 정도가 너무 지나쳤다.
[“네놈을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리치의 몸이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가 싶더니 꽤 먼 곳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리치의 머리는 원상복구 되어 있었다.
해골 병사들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독?’
독화살이어서 굳이 피하지 않았다.
어차피 독은 면역이니까. (이건 2번 늪지대가 차진혁의 독면역을 실험해 보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건 그냥 맞아야지.’
절대결계도 쓰지 않았다. 맞아봐야 그냥 살짝 따끔 하는 정도니까.
이런 거 일일이 신경 쓰면 정말 집중해야 할 것에 소홀해지게 된다.
정말 중요한 건 지금 저 리치 놈의 뒤통수를 부수는 것이었다.
리치는 이동마법을 사용하며 저항해 보려 했지만 차진혁의 속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빠각!
“두 번째로 부숴보았습니다.”
빠각!
“세 번째로 부숴봤네요.”
빠각!
“네 번째입니다.”
.
.
.
“아홉 번째.”
수차례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한 리치의 몸이 녹색으로 빛났다.
그의 몸 주변으로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진심으로…… 네놈을 상대해 주마.”]
리치가 같은 방식으로 수차례 뒤통수를 내어준 건 그만의(2번 늪지대의) 계략이었다.
시간을 벌면서 계속 마법수식을 완성시켜가고 있던 것.
보아하니 지금 차진혁은 절대결계를 제대로 구동할 수 있는 심적 여유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
머리를 깨부수는 것에만 급급하게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때 차진혁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나도 진심으로 때려주마.”
차진혁의 몸이 사라졌다.
여태까지는 유희에 가까웠다.
미리가 하도 즐거워하길래, 그냥 그것에 맞춰주었을 뿐이었다.
원래 놀이라는 것은 소모적이고 비합리적인 거니까.
-하아…… 너무 행복해…… 너무 좋아요.
미리도 꽤 즐겁게 해줬겠다.
차진혁은 진심을 담아 미리를 휘둘렀다.
그래도 시청자들에게 그냥 놀았다고는 할 수 없어 이렇게 말했다.
“아홉 번의 예행이 한 번의 빛을 이루리라!”
빠각!
여태까지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손맛!’
역시 가짜 손맛과는 차원이 달랐다.
미리 또한 엄청난 황홀감을 느끼고 있는 건지 달뜬 숨소리를 계속 내뱉었다.
‘이게 진짜지.’
앞선 아홉 번의 가짜가 있었기에, 이 한 번이 훨씬 더 큰 쾌감으로 다가왔다.
리치의 머리가 또다시 박살 났다.
[“소용없……!”]
그러나 소용없지 않았다.
* * *
2번 늪지대는 눈을 크게 떴다.
‘이런 미친!’
원래 리치를 상대하는 정공법은 두 개였다.
숨겨놓은 생명석을 찾아 부수는 방법이 가장 정석.
제일 효율적이고 쉬운 방법이다.
두 번째로 ‘설정값’을 뛰어넘는 수준의 초월적인 공격.
말하자면 ‘생명석을 깨야 리치가 소멸한다’라는 설정을 깨부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등급의 공격을 사용하면 리치를 죽일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소위 말하는 절대자들이나 가능한 방식이어서 일반적으로는 통용되지 않았다.
‘침착하자.’
어차피 리치로 김철수를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정보를 획득하는 과정이다.
‘놈은 10번을 때렸다.’
만약 저게 쉬웠다면 한 번에 했겠지.
‘놈에게는…… 10번을 때려야 강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특수한 힘이 있는 거다. 그것도 같은 지점을 공략해야만 해.’
2번 늪지대가 본 김철수는 집요하게 뒤통수만 노렸다.
다른 곳을 때릴 기회가 분명히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건 즉, 저 엄청난 공격에도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는 의미였다.
‘휴우. 지금이라도 알아내서 다행이군.’
맞더라도 10번을 연속으로 맞으면 위험하다.
절대로, 같은 곳을 10번 이상 내주면 안 되었다.
2번 늪지대가 그만의 정보를 계속 쌓아가고 있는 한편, 벽면에서 콰광! 하고 폭발이 일었다.
“아마도 생명석이 저쪽 벽면에 숨겨져 있던 거 같습니다.”
리치의 머리를 제대로 터뜨리면서 생명석이 함께 폭발했다.
차진혁은 폭발이 일었던 벽면 쪽으로 다가가 미리를 휘둘렀다.
콰광!
벽면 뒤에는 숨겨진 공간이 하나 있었다.
“오, 저기 보물상자 같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쿵!
바깥에서 거대한 돌이 떨어져 내려 입구를 막아버렸다.
이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을 결코 열 수 없을 것이다. 너는 이곳에서 나와 함께 말라 죽게 될…… 여왕께…… 무궁한……영광……”]
리치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보아하니 저 상자를 열어야만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방탈출 카페 같네.’
상자에는, 리치가 자신만만해할 만큼 강력한 결계가 걸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상자를 한번 열어보겠습니다.”
[신비, 해금술을 사용합니다.]
상자를 열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