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36화
차진혁의 이번 방송 컨셉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먼치킨이었다.
‘이제부터가 진짜인데.’
버려진 신전 4층.
저곳 보스룸에 백옥갑옷 기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제일 멋있게 하려면 솔로잉이 최고인데.’
그래야 컨셉에 맞는 방송을 할 수가 있다.
‘근데 쟤네가 허락 안 해주면?’
사실 어벤저스 사단은 인원수를 맞추기 위해서 데려온 것이었다.
저번 원정 때와 인원수를 맞춰야 원하는 ‘백옥갑옷 기사’가 나타날 테니까.
던전 입장인원이야 대충 맞췄으니 이제 적당한 핑계를 대어 혼자 들어가야만 했다.
‘솔직히 동의하기 싫겠지.’
저번에 레이드에 실패했던 보스몹.
사람이라면 당연히 재도전해서 잡고 싶은 거 아니겠는가.
나 같아도 지금 당장에라도 뛰어 들어가고 싶을 것이었다.
보스몬스터 레이드만큼 플레이어의 심장을 뛰게 하는 콘텐츠는 많지 않다.
게다가 한 번 경험했던 놈이니 훨씬 쉽게 잡을 수 있을 거고.
저들 입장에서도 이건 꿀 콘텐츠라는 얘기였다.
‘미안하다 얘들아. 내가 너희들의 재미를 다 빼앗는 것 같은 기분이네.’
약간 죄짓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공과 사는 분리해야만 하니까.
슬쩍 눈치를 보며 에건 폴에게 말했다.
“일단 내가 먼저 잠입해서 살펴보고 나올게.”
“……네가?”
역시 떨떠름해하는군.
그럴수록 차진혁은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했다.
“어. 나는 스트리머잖아.”
말하고서는 약간 아차 싶었다.
‘어, 나는 길잡이잖아’도 아니고 ‘어, 나는 스트리머잖아’라니.
차진혁은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내게는 잠입취재할 수 있는 스킬이 있어. 내 탐색 작업이, 덧없는 희생을 막을 수 있을 거야. 가능하면 백옥갑옷 기사의 습성 같은 것도 알아낼 수 있도록 해볼게.”
“……아니, 지나치게 무리할 필요는 없어.”
이 자식. 역시 내가 콘텐츠 독식하는 걸 경계하고 있군.
콘텐츠 양보는 아까 거기까지였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에건 폴은 사실 감동받는 중이었다.
‘잠입취재를 하겠다고? 직접?’
물론 김철수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저런 용기를 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김철수가 어째서 저렇게 무모한 짓을 자처하는가.
‘우리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저번에는 4명이 죽었다. 김철수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아무도 죽지 않을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흑표범조차도 약간 감동받았다.
‘김철수. 내가 너를 조금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커다란 위협을 무릅쓰고 모래 지렁이의 서식처에 기어이 들어가 시신 두 구를 관에 담아 이고 왔을 때부터 그의 마음이 바뀌었다.
‘김철수는 이번 원정에 그 누구보다 경건하구나. 단순히 방송에 미친놈이 아니었어!’
에건 폴과 흑표범은 마음 속 깊이 감탄했고, 지금의 이 상황은 ‘유령화’ 상태의 강은우가 모조리 촬영 중이었다.
“그럼 먼저 갔다온다.”
“……건투를 빈다. 이곳에서 기다리지.”
차진혁은 기쁜 마음을 숨겼다.
생각보다 훨씬 쉽게 동의를 받아서 다행이었다.
기쁜 마음을 열심히 숨기느라 겉으로는 상당히 진중하고 진지한 표정이었다.
두 사람은 약간 넋 놓은 채,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차진혁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강은우는 신나서 셔터를 계속 눌러댔다.
‘표정 좋고!’
이끼가 가득한 고대 신전.
홀로 계단을 오르는 영웅의 고독한 뒷모습.
그리고 그 영웅을 흠모하는 공식 랭킹 1위의 스트리머와 어벤저스 사단의 길잡이.
‘그림이네!’
김철수 공식 계정에 이 영상과 사진들을 올릴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한편, 김철수는 끝까지 계단을 올라 입구에 도착했다.
[필드, ‘버려진 신전’에 진입합니다.]
‘잘 따돌렸어!’
나름 비장한 연출도 잘했고, 적당한 명분으로 혼자 들어오는 것에도 성공했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재미있는 건 솔로잉이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 *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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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l_chulsoo
홀로 계단 오르는 김철수.
* * *
-뒷모습에서 광채 터지는 거 실화냐?
-어떤 인생을 살았으면 저렇게 할 수 있지?
-저러다 백옥갑옷 기사 나오면 큰일 나는 거 아님?
-안 돼, 우리 철수 절대 지켜!
강은우도 깜짝 놀랐다.
‘이 정도 속도로 좋아요 숫자가 빨리 올라간다고?’
평소 다른 게시물에 비해서 좋아요가 굉장히 빨리 상승했다.
아무래도, 다른 팀원들을 위해 스스로 위험을 짊어지는 숭고한 희생이 대중들에게 잘 먹혀 들어간 것 같았다.
서비스 컷으로 에건 폴과 흑표범이 진심으로 감탄하는 영상도 첨부했다.
-에건 폴이랑 흑표범 김철수한테 반한 듯ㅋㅋㅋㅋㅋ
-저 정도면 반할 수 있지 ㅇㅇ
-남자가 봐도 개멋있다.
-와 저런 인생 살면 무슨 기분이냐?
강은우 입장에서는 아주 고무적인 성과였다.
‘이번에는 남자 팔로워들의 반응이 무척 뜨겁네.’
강은우로서는 약간 고민이기는 했다.
아무래도 엔스타는 남자 보다는 여자들 화력이 훨씬 강하기 마련이었고, 남자보다는 여자들 유입이 훨씬 많았다.
그런데 이번, ‘무거운 짐을 지고 홀로 계단을 오르는 영웅’ 컨셉에서는 남자들의 호응이 엄청났다.
강은우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차세대 슈퍼스타.’
그에게 있어 김철수는 그런 존재였다.
‘우주 각지에서 유입되고 있네.’
지금 겨우 사진 몇 장과 영상 두어 개로 이 정도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후, 제대로 된 영상이 공개되면?
특히 흑표범과의 스토리와 서사가 공개되면?
그걸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SNS게시글이 늘 그렇듯 선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저 미친놈은 내가 죽여드림
강은우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이런 댓글은 그냥 지워버리는 것이 마음 편했다.
[삭제하기]
‘응? 시스템 오류인가?’
여러 번 삭제를 시도했으나 삭제가 되지 않았다.
‘뭐지?’
* * *
버려진 신전 내에 진입하자 미리가 계속 졸랐다.
-저를 사용해 주실 거죠?
그렇다고 대답을 했는데도 얘는 나를 못 믿는 거 같다.
-꼭이요. 꼭 거칠게 다뤄주어야 해요.
거참, 알았다니까.
미리는 속고만 살았는지 계속 나를 보챘고, 나는 미리를 들고서 걷기 시작했다.
-좋아…… 너무 좋아……!
미리는 환희가 가득 찬 음성을 내질렀다.
1층에는 레벨 100 중반대의 잡몹들이 꽤 많았다.
굳이 다 잡을 필요는 없을 거 같지만 나도 열심히 사냥에 임했다.
[골드 해골 전사를 처치하였습니다.]
[골드 해골 궁수를 처치하였습니다.]
[골드 해골 번견을 처치하였습니다.]
사실 별다른 이벤트는 없었다.
그냥 보이는 족족 언데드형 마물들의 머리를 부숴버렸다.
미리는 무척 흥분해서 즐거워하고 있었는데, 사실 나도 그랬다.
‘손맛……!’
이 손맛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은 내 마음을 알 거다.
미리와 하나 되어 느끼는 이 짜릿한 감각은 내게 강렬한 쾌감을 선사해 주었다.
‘1층에는 더 이상 없는 거 같고.’
계단을 찾아 2층에 올라갔다.
2층에는 조금 더 강한 ‘플래티넘 해골’ 계열 마물들이 있었다.
레벨은 100대 후반. 사냥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벤저스 놈들, 엄살이 좀 심한 편이었네.’
저번에 방송으로 봤을 때 여기서 좀 고전했었다.
2층의 마물들은 리젠 속도가 워낙 빨랐으니까.
여기서 체력 소모를 꽤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한다.
다시 보니 그건 방송적인 연출이었던 거 같다.
‘제대로 부수니까 리젠 안 되는데?’
머리를 완전히 깨부숴버리면 리젠 같은 건 되지 않았다.
아마 힉슨이나 흑표범은 이 조건을 알았을 거다.
알면서 일부러 힘겹게 진행했겠지.
‘진짜 힘들었겠다.’
나는 안다. 힘들지 않은 걸 힘겹게 진행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그냥 때려부수는 게 훨씬 쉬웠다.
이윽고 나는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3층에 진입합니다.]
‘오!’
3층에 진입하자 공기가 약간 달랐다.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니, 아무래도 무색무취의 독이 살포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아마 불사조의 심장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했다면 독이 있는지도 몰랐겠지.
화르륵!
내 몸 속의 화기(火氣)가 내 몸에 침투한 독들을 쉴 새 없이 태웠다.
이 독이 생각보다 강해서 약간은 호흡이 거칠어졌다.
‘어벤저스 애들이 들어왔을 때 이런 독은 없던데.’
그러나 크게 신경 쓰이는 건 아니었다.
혼자 들어온 시점에서 많은 변수들이 발생하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니까.
이런 건 변수 축에도 못 낀다.
[“감히 여왕의 잠을 깨우려 하느냐”]
리치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리 위로 작은 운석 같은 것이 떨어져 내렸다.
그걸 본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것은 남자들의 로망, 메테오니까!
‘이건 못 참지.’
여기까지 오면서 한 대도 안 맞았다.
그렇지만 이건 맞아봐야 할 것 같다.
메테오니까.
* * *
늪지대 크루의 2인자.
‘2번 늪지대’는 다짐했다.
“반드시 김철수를 죽이고 돌아오겠습니다.”
“우리 목표는 그게 아냐. 3번 녀석도 그걸 원하지 않을 거고.”
“압니다.”
죽이는 건 둘째 문제였다.
늪지대 크루는 각성자 사냥꾼들이 모인 크루이며, 각성자들의 능력을 빼앗는 것이 제1 목표였다.
“김철수의 능력을 원하는 VIP들이 많아. 알지?”
“물론입니다.”
“얼굴이랑 몸도 살려와.”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요.”
2번 늪지대는 입술을 깨물었다.
“온몸을 난도질해서 시체도 찾기 어렵게 만들 겁니다.”
감히 동생을 죽였으니까.
죽이더라도 곱게 죽일 수는 없었다.
“하르코엔 부인의 의뢰다.”
“…….”
하르코엔 부인이라는 말에 2번 늪지대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그 정신 나간 인형수집가가 또요?”
“김철수에 단단히 홀린 모양이더군.”
하르코엔 부인은 아르비스의 귀부인 중 한 명이었고, 늪지대 크루의 VVIP였다.
취미는 젊고 잘생긴 남자의 육체를 사들여 인형으로 만들고 전시하는 것.
“선수금 1,000억 다이아. 성공시 1,000억 다이아를 약속했어.”
“……노력해 보겠습니다.”
“계획은?”
“놈은 해운대 던전으로 향했습니다. 기회를 엿보다가 그곳에서 놈을 치겠습니다.”
2번 늪지대는 자신만만했다.
1번 늪지대 또한 2번 늪지대를 꽤 신뢰했다.
“너라면…… 가능할 거다.”
3번 늪지대는 사실 늪지대 크루원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약한 구석이 있었다.
가진 것이 속도밖에 없었으니까.
무기가 하나뿐인 사람은 일정 수준 이상의 플레이어를 상대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에 반해 2번 늪지대에게는 무기가 다양했다.
늪지대 크루에서 실적이 가장 뛰어난 사람 또한 2번 늪지대였다.
‘김철수. 네놈도 여기까지다. 우리도 더 이상 방심하지는 않을 테니까.’
2번은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데 도가 텄다.
특히나 던전 안에서라면 그 능력이 배가 된다.
‘너는 해운대 던전에서 절대 살아나오지 못할 것이다. 내 동생이지만 2번은 교활해. 그리고 치밀하지. 3층부터, 네놈은 크게 곤란해질 것이다.’
한편, 3층에 도착한 차진혁은 약간 더 신이 났다.
‘메테오다!’
어쩐지 200레벨 초반대의 리치가 사용하는 것치고는 꽤 강력한 파괴력을 갖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과연 얼마나 큰 충격을 줄 수 있을까?’
절대 결계로 받아봤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몹시 실망스러웠다.
‘에게?’
겉으로만 화려했지 파괴력은 별 거 없었다.
절대결계와 부딪친 메테오는 스르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방금 건 에피타이저였나?’
리치는 쉴 새 없이 영창을 외우고 있었다.
조금 더 기대하기로 했다.
일단 리치를 살려두고, 나머지 잡몹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그사이, 화살들이 쏟아졌는데 꽤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절대결계가 일부 손상되었습니다.]
[절대결계가 일부 손상되었습니다.]
화살들을 맞을 때마다 결계가 조금씩 손상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결계를 무력화하는 특성을 가진 화살인 것 같았다.
살상력은 거의 없지만 결계를 파괴하는 데 특화된 무기.
‘대(對) 결계 특화형 무기라. 오랜만이네.’
마치 차진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한 맞춤형 공격이었다.
[절대결계가 파괴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리치가 또다시 메테오 마법을 구사했다.
아까와는 분명히 다른 마법이었다.
아까의 메테오는 대 결계형 특성을 가진 마법이었다면, 이번에는 살상형 특성을 지닌 마법이었다.
차진혁 또한 구현된 마법 내에 잠재된 강맹한 화력을 느낄 수 있었다.
겉모습은 같지만 아까와는 분명 다른 마법이었다.
[“여왕의 처소에 침입한 자에게 영원한 죽음을 하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