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32화
[#내가 뭘 본 거냐 #저게 된다고?]
흑표범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나 싶어 살펴보려 했건만 실패였다.
놈이 워낙 강렬한 감정을 느끼고 있어서 그런 거 같다.
근데 솔직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하긴. 미리가 좀 대단하긴 했어.’
내가 해놓고서 내가 놀랐다.
내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화력이었으니까.
나도 조금 당황해서 0.2㎝나 오차가 발생했다.
운이 좋아서 망정이지, 운 나빴다면 저 앤더슨의 머리까지 증발시킬 뻔했다.
-그것도 나름 좋겠어요. 맛있는 게 하나 더.
얘는 도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미쳐버린 걸까.
평소에 말하는 걸 보면 교양 넘치는 귀족 부인 같은데, 꼭 전투 상황만 되면 이렇게 돌아버린다.
미리가 내 영향을 받는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그건 잘못된 정보인 거 같다.
내 영향을 받았으면 이럴 리가 없지.
‘아, 가만.’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저거 위장일 수도 있나?’
내 중계자의 통찰을 속이기 위해서 이런저런 수를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상황에 맞춰서 ‘무척 크게 놀라는 척’하면서 말이다.
‘오. 그렇다면 좀 덜 실망인데.’
나를 속이기 위해 놀라는 척을 한다는 건 아주 반가운 일이다.
이상한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좋다. 이 또한 엘튜브 각이니까.
이왕 할 거면 나를 제대로 속이고 진행하면 좋겠다.
‘그래. 쟤는 꿍꿍이가 있는 거구나!’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을지 생각하니 벌써부터 심장이 콩닥거린다.
아주 위험하고 쫄깃하면 좋겠다.
* * *
흑표범은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저게 된다고?’
시청자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저 정도 화력을 뿜어내면서, 그것도 모래 안에 숨어든 마물을 저토록 정교하게 공격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가 아는 한 이런 게 가능한 사람은 없었다.
차진혁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과는 별개로, 적어도 저 공격에 한해서 흑표범이 느낀 감정은 경외였다.
스트리머가 저런 걸 해버릴 줄은 몰랐다.
충격과 경외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났을 무렵 제정신을 찾은 그는 생각에 잠겼다.
‘진짜로 마물이 있었잖아.’
흑표범 또한 지렁이 형태 비슷한 것을 느끼기는 했었다.
꼬리를 땅에 깊이 찔러넣고 알아보지 않았던가.
‘나는 분명히 수맥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물에게 탐지 방해 속성 같은 것이 걸려 있는 것 같았다.
‘김철수는 그걸 모래 지렁이라고 정확하게 파악한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됐다.
저런 비상식적인 공격과 컨트롤을 구사하면서, 거기에 탐지 능력까지 나보다 좋다고?
저게 그 유명한 올라운더의 힘인가?
그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먼발치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김철수와 눈이 마주쳤다.
김철수가 묻고 있는 것 같았다.
-길잡이가 이런 것도 제대로 대비 안 하고 뭐하냐?
물론 착각이었다.
김철수는 흑표범이 무슨 계략을 꾸며주고 있을까를 기대하는 중이었다.
어쨌든 흑표범은 억울해졌다.
‘나 또한 대비를 했었다고! 안 한 게 아니다!’
차진혁이 ‘이 아래에 마물이 있다’라고 얘기했을 때.
흑표범은 차진혁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비는 해놓았다.
‘놈이 숨어서 기다리는 타입이라면 우리의 인원이 줄어들길 기다리고 있을 거다. 그렇다면 방어능력이 뛰어난 플레이어들을 마지막에 배치해야겠어.’
혹여 마물이 튀어나오더라도 그들이 시간을 벌어줄 수 있도록 말이다.
‘근데…… 본신의 공격이 강한 게 아니라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타입의 마물일 줄이야.’
조금 더 다각도로 생각하고 분석했어야 했는데 이건 명백한 실책이었다.
솔직히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왜냐하면 저번 공략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니까.
사실상 ‘해운대 던전’이 위험한 이유는 마지막에 등장했던 ‘백옥갑옷 기사’ 때문이었다.
그는 에건 폴과 같은 배에 타고 있었고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나는 이 던전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게 시간이라 판단했어. 일종의 타임어택처럼 말이야. 그렇게 판단할 만한 합당한 근거도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 밀물이 밀려와 해안가를 모두 덮어버린다.
일종의 시간제한을 둔 것인데, 이것이 이 던전의 전체적인 기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빨리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
“됐어, 흑표범. 괜찮아. 멘탈 잡아.”
에건 폴이 흑표범의 어깨를 두드렸다.
“누가 뭐라 해도 너는 어벤저스 사단의 길잡이야. 이런 실수는 누구나 해. 중요한 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거지. 네가 흔들리면 우리 전원이 흔들려. 좋은 면만 보자. 아무도 죽지 않았어. 안내를 부탁한다.”
* * *
차진혁은 한세린과 함께 배에 올랐다.
다른 배에 있던 에건 폴이 이쪽으로 넘어왔다.
“야, 에건 폴. 솔직히 말해. 흑표범이 일부러 모른 척한 거지?”
“…….”
에건 폴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방금, 무너질 뻔한 흑표범의 멘탈을 보듬어주고 오는 길이었다.
흑표범이 이 질문을 직접 들었다면 아마 억울해서 까무러쳤을 것이었다.
에건 폴은 침착하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 당연하잖아. 스트리머인 나도 발견했고, 심지어는 은퇴한 길잡이인 얘도 발견했어. 근데 흑표범이 모를 리 없잖아.”
“…….”
에건 폴은 잠시 고민했다.
사실 관계를 제대로 잡아줘야 하나. 아니면 그냥 이대로 오해하게 내버려 둬야 하나.
이건 흑표범의 자존심, 더 나아가 어벤저스 사단의 자존심과도 직결된 문제였다.
‘아니, 김철수 앞에서 자존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지.’
그냥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흑표범도 몰랐다. 수맥이라고 생각했더군.”
“아, 그렇구나.”
의외로 차진혁은 별다른 말 없이 넘어갔다.
그 모습에 에건 폴도 어쩐지 억울해졌다.
‘내가 일부러 잡아떼주는 것처럼 여기는 모양인데?’
아니라고! 우리 진짜 몰랐다고!
그렇다고 여기서 그걸 박박 우기기도 애매해서 왠지 모를 억울함을 마음속으로 삼켰다.
“난 또, 네가 네 모든 걸 뻥튀기한 것처럼, 어벤저스 사단의 능력이 과대포장되어 있는 줄 알았지.”
에건 폴은 지금 실시간 방송 중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며 차진혁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제발. 그런 것들은 대중에게 비밀로 좀 해주면 안 되나?”
“흐음.”
“그게 네 방송에도 좋을걸? 따라잡아야 할 경쟁자가 있는 그림이 되잖아.”
“그건 그렇네?”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듣고보니 맞는 말이라서 에건 폴의 뻥튀기 능력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틀린 말이었다면 그냥 공개했겠지만 말이다.
거기에 한세린이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로열티를 지급해야겠는데요.”
“……로열티?”
로열티라 함은 남의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 등을 사용하고 지불하는 값을 말하는 거 아닌가.
로열티라는 단어가 여기서 왜 나온단 말인가.
한세린은 인상을 팍 썼다. 평소 곱상한 외모와는 완전히 다른 모양새였다.
“척하면 척 알아들어야지. 곱게 표현해서 로열티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나 지금 삥 뜯는 거야. 네 비밀을 담보로.”
“…….”
“쫄리면 뒤지시든가.”
차진혁은 그런 한세린을 보며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애들이 왜 이렇게 과격해졌지?’
회귀 전 한세린보다 지나치게 많이 터프해진 느낌이다.
‘어쨌든 내가 못 보는 걸 봐주니 좋기는 하네.’
방송각이 더 산다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서 그냥 비밀을 지켜줄 뻔했다.
“그래. 우리도 아주 심하게 네 등골을 빼먹을 생각은 없어. 가볍게 1억으로 하자. 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당연히 한 달에 1억이지.”
결국 한세린은 한 달에 1억을 받아내기로 했다.
그 과정을 보며 차진혁은 감탄했다. 월급 1억 달성하기가 이렇게 쉽구나.
방금까지 상당히 터프했던 한세린은 차진혁 옆에 앉아 갑자기 조신한 척했다.
“너도 들었지? 다달이 1억 받기로 했어. 계약 중개료로 나한테 10프로만 떼어줄 수 있어?”
“그래.”
“정말?”
와, 저 콧소리는 진짜 적응 안 되네.
회귀 전보다 터프해진 부분도 있는데, 회귀 전보다 더 징그러워진 부분도 있었다.
‘내 평생 살면서 한세린의 애교 섞인 목소리와 반달 같은 눈웃음을 보게 될 줄은 진짜 몰랐다.’
함께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비던 전우가 저러니까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냥 터프한 게 훨씬 나았다.
“나 잘해떠?”
왜 이러는 거냐 도대체.
……얘도 방송각 재는 건가?
차진혁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차진혁의 기색을 읽은 한세린은 더욱 화사하게 웃으며 차진혁 옆에 몸을 밀착시켰다.
그러고서 머리를 슬쩍 내밀었다.
“나 칭찬해 주라.”
……미리로 칭찬해 줘도 되나?
* * *
한세린은 속으로 킥킥대고 웃었다.
‘진짜 귀엽다니까.’
한세린이 보는 차진혁은 ‘결코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오, 엘튜브 각, 오히려 좋아!’를 외치는 비상식적인 인간.
그런데 차진혁이 당황하는 순간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이런 순간이었다.
“나 잘해떠?”
이렇게 행동할 때마다 차진혁은 눈에 띄게 당황해했다.
“나 칭찬해 주라.”
이러면 차진혁의 온몸이 굳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한세린은 기분 좋은 상상에 빠져들었다.
‘나 좋아하나?’
그렇지 않고서야 차진혁이 이런 딱딱한 반응을 보일 리는 없지 않은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차진혁을 당황하게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꽤 기뻤다.
‘어디 보자, 저기 섬까지 도착하는데 남은 시간은 대략 10여 분가량.’
이왕 던전에 들어왔는데 시간을 그냥 버리는 건 아까웠다.
한세린은 그녀 나름대로 차진혁의 방송을 돕고 싶어서 입을 열었다.
“어벤저스에서는 탱커계열 플레이어들을 일부러 뒤에 배치했어. 혹시 마물이 튀어나왔을 때를 대비해서 말이야. 내 말이 맞지?”
“……그렇다.”
“그렇다는 말은 너희도 마물의 습격을 예상했던 거 아냐?”
“그렇다기보다는…….”
한세린은 일부러 자극적인 워딩을 사용했다.
섬네일이나 예고 영상을 만들기 좋도록 말이다.
“경쟁자인 김철수를 제거하려고 했던 거 아냐? 마물의 힘을 빌려서.”
“……뭐?”
에건 폴은 화들짝 놀랐다.
놀람과 동시에 더욱 억울해졌다.
‘저 미친놈을 누가 어떻게 배신하냐고!’
그 또한 똑똑히 봤다.
그저 망치를 휘둘렀을 뿐인데 거대 지렁이 마물의 머리통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공격을.
그런 괴물을 상대로 누가 감히 배신을 꿈꾼단 말인가.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뭐야, 역시 그런 거냐?”
에건 폴이 배신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
차진혁은 이걸 방송의 일환으로 봤다.
이런 내용은 충분히 어그로가 끌릴 수 있는 내용이니까.
다만, 쉽게 생각하고 있는 차진혁과 달리 에건 폴에게는 거의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누군가에게는 예능, 누군가에게는 생존 다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