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30화
-혹시 상탈 가능하세여?
-상탈?
추간판 탈출처럼, 무슨 상반신을 탈출시키는 그런 걸 말하는 건가.
-누구 죽여야 돼?
-아니아니 상의 탈의요!
-지금 샤워가운밖에 안 입고 있는데.
-그거 흘러내리게 해서 상반신만 노출해요! 단어 정정하죠! 상탈 아니고 상반신 노출! 혹시 언짢으시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게여!
아, 상반신 노출.
근데 상반신 노출이 뭐가 언짢다는 거지? 상반신 탈출이면 좀 곤란하겠지만.
차진혁은 왕유미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언짢을 건 없지. 근데 지금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
-해운대 던전 홍보 영상 만들어야져. 에건 폴과의 합방으로 한 번 파도를 일으켰으니 이걸 증폭시켜야 해요.
-홍보랑 관련이 있다고?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여지껏 왕유미의 조언을 들어서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통화를 마친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진짜 구독자 늘리는 데 도움이 될까?”
“저는 확실히 된다고 봐요.”
강은우도 적극적으로 동의하면서 차진혁의 눈치를 약간 살폈다.
“노출컷이 특별히 싫다거나 수치스러움을 느낀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면요.”
“그런 걸 왜 느껴?”
방송에 도움이 된다면 노출이 아니라 탈출도 고려해 볼 만한 거 아닌가.
“그러면 여기 앉아주세요.”
강은우가 침대 중간 부근에 차진혁을 앉힌 뒤 조명을 세팅했다.
“주변 오브제랑 조명 온도 설정만 좀 할게요.”
“…….”
차진혁은 그런 강은우를 영상에 담았다.
‘캠빨은 진짜 엄청 잘 받는단 말이야.’
애가 듀얼직업을 갖게 되면서 점점 더 잘생겨진다.
‘내가 알던 강은우의 얼굴이 되어가는 것 같네.’
척 보니 인기 많아질 것이 분명했다.
‘저렇게 뭔가에 집중하면서 설레 하는 영상 같은 게 인기가 엄청 많았었지.’
솔직히 그게 왜 인기가 많은 건지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모른다고 해서 그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고, 어쨌든 방송 홍보에는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10초짜리 쇼츠 영상을 짧게 올렸다.
[열일하는 강은우.]
강은우는 그 사실도 모른 채 촬영준비(?)에 열과 성을 다했다.
“철수 님. 이제 명상 준비해 주세요!”
“여기?”
“네, 아, 잠깐만요. 옆에 이거 좀 뿌릴게요.”
강은우는 인벤토리에서 소품용 장미 꽃잎을 차진혁 주변에 흐트려놓았다.
‘피 같고 좋네.’
차진혁은 왕유미와 강은우가 세팅한 대로 명상 준비를 끝마쳤다.
입고 있던 샤워가운을 반쯤 벗어 상체만 노출되도록 했다.
‘집중하자.’
영상으로 봤던 백옥갑옷 기사의 움직임을 복기하며 명상에 빠져들었다.
무아지경에 빠져든 차진혁을, 강은우가 쉴 새 없이 촬영했다.
‘이것도 S컷, 저것도 S컷.’
강은우는 화사하게 웃었다.
어떻게 찍어도, 모든 사진이 S컷이었다.
S컷들 중에서도 잘 나온 사진들을 엄선하여 엔스타그램에 게시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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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l_chulsoo
해운대 던전 원정에 앞서 명상 중.
* * *
-와 미친 개존잘…….
-얼굴만 천상계가 아니었네.
-ㅅㅂ 저 얼굴이면 몸매라도 구려야 하는 거 아니냐? 복근 무엇?
-걱정 마라. 신은 공평하다. 분명 간은 못생겼을 거다.
-이 사진을 보고 숨이 멎어버렸습니다.
사진을 업로드한 강은우는 무척 뿌듯했다.
이 폭발적인 관심과 화력이 그를 들뜨게 만들었다.
‘철수 님 사진은 예술 그 자체다! 김철수가 곧 예술이다!’
소리치고 싶었지만 명상을 방해할까 싶어 속으로만 뇌까렸다.
짤막한 영상도 찍어서 엘튜브 쇼츠영상으로 올렸다.
명상하는 차진혁의 영상.
촬영장(?)을 세팅하는 강은우의 영상.
이 두 영상은 시너지를 일으키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얼굴합 무엇.
-와 이 형들 진짜 사기조합 아니냐? 걍 엔터 쪽으로 나가도 될 듯.
-확신의 센터상과 확신의 배우상의 조합이네.
해당 영상이 실시간 인기 동영상 1, 2위에 랭크되며 김철수의 ‘해운대 던전 원정’ 홍보가 굉장히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막상 차진혁이 명상을 끝내자 강은우는 괜스레 두려워졌다.
“죄송해요. 너무 멋진 사진을 건져서 허락도 전에 게시해 버리고 말았어요.”
차진혁은 히죽 웃었다.
“홍보가 제대로 됐네.”
어차피 던전 클리어하다 보면 알몸이 되는 것도 다반사다.
플레이하다 보면 노출은 너무 당연한 거라 상반신 공개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겨우 이런 걸로 이 정도로 홍보가 되었다면 아주 남는 장사였다.
‘근데…….’
분명히 홍보가 돼서 기쁜 거라고 생각했는데.
온갖 주접댓글들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수많은 이들이 ‘김철수’를 정도 이상으로 찬양하고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엔스타그램 댓글들을 쭈욱 읽으면서 좋아요 숫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거……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생각보다 홍보가 엄청 잘 돼서 그런 거겠지? 아마 그런 걸 거야.
처음으로, 플레이에 대한 설렘 외에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진짜 그렇게 잘생겼나?’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회귀 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됐다.
* * *
나는 에건 폴에게 꽤 많은 영감을 받았다.
‘아…….’
어벤저스 사단 전원이 모두 검은색 복장을 하고 있었다.
마치 장례식장에 온 것 같았다.
웃음기 하나도 없이 엄숙한 태도로 원정에 임했다.
‘다짜고짜 해운대 던전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구나!’
생각해 보면 나는 저런 연출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
해운대 던전에서 목숨을 잃은 네 명의 동료들.
나는 지금 그들의 무덤 앞에 와 있었다.
아, 참고로 진짜 무덤은 아니다.
보통 던전에서 행방불명되거나 목숨을 잃으면 시체를 못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유골을 묻지는 못했고 그냥 죽은 플레이어들의 애장품들을 유리병에 넣어 유골 대신 안치했다.
에건 폴이 낭독문을 읽어내렸다.
“전우들의 숭고한 죽음을 헛되지 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오늘도 위험한 여정을 시작하려 합니다.”
죽은 플레이어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의 무덤 앞에서 깊이 묵념했다.
나는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쟤가 방송 때문에 저러는 거야, 아니면 진짜로 깊이 애도하는 거야?’
진짜로 깊이 애도하는 거면 조금 실망이고, 방송 때문에 저러는 거면 조금 안심일 것 같다.
어차피 던전에서 누군가 죽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일일이 다 애도하고 슬퍼하면 정신이 못 버틴다.
최정상의 랭커가 될 수 없다.
‘근데…….’
중계자의 통찰로 살펴보면 속마음을 쉽게 읽어낼 수 있을 텐데.
왠지 모르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진짜 이상하게…….’
예전과는 너무 많이 다른 감정들이 느껴졌다.
회귀 전의 나였다면, 도대체 이런 거추장스러운 짓거리를 왜 하고 있느냐고 했을 거다.
아니, 참석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이런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도 않을뿐더러 이런 짓은 플레이어들의 정신을 좀 먹는 짓이니까.
던전 클리어에 악영향밖에 안 끼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런 행사를 진행할 때면 짜증만 났었다.
‘짜증이 안 나네.’
문득, 유가족이라 짐작되는 몇몇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나도 가족을 잃어본 사람으로서 저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모르겠다.’
마음이 여러모로 꽤 복잡했다.
던전 플레이하다 보면 누군가 죽는 건 너무 당연한 건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도 죽은 플레이어들의 영정사진 앞에 고개를 숙이고 묵념한 뒤, 국화꽃 한 송이를 헌화했다.
“나는 여러분의 얼굴도 이름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울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가능하다면 아드님의 시신도 수습해 오겠습니다.”
이건 방송이니까. 방송이라서 그런 거다. 진짜로. 난 원래 이런 불합리한 짓 안 한다.
백발의 한 할머니가 내 앞에 엎드려서 펑펑 울었다.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리겠다고, 그러나 너무 무리는 하지 말아 달라고 힘겹게 얘기했다.
‘이런 노인들도 조심해야 하는데.’
언제 어떻게 나를 찌를지 모르는데.
근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조금 이상한 날이었다.
나는 노인을 일으켜주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할머니는 주름진 손으로 내 손을 잡고서 한참 동안이나 울었다.
만약 이 할머니가 암살자였다면 벌써 몇 번은 내 목을 노렸겠지.
절대결계의 능력을 직접 확인했으니, 나도 이렇게 위험한 짓(?)을 한 거다.
정말이다.
* * *
우리는 해운대 던전 앞에 섰다.
어벤저스 사단은 해운대 던전 앞에 도열해서는 선서문을 읊었다.
“하나. 우리는 동료의 죽음을 잊지 않는다.”
“하나.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며 기꺼이 자신의 등을 동료에게 맡길 것이다.”
“하나. 우리는 동료를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며 숭고한 사명감으로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낼 것이다.”
‘와, 이거 좀 멋있네.’
K군단도 이런 걸 좀 배워야 할 거 같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아무래도 에건 폴과 합방하기로 한 것은 꽤 잘한 선택인 것 같았다.
내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앞장섭니다.”
내 뒤로 차진솔, 목재현, 김정현, 이현성이 엄숙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어벤저스 사단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해운대 던전에 입장합니다.]
해운대 던전 안에 도착했다.
던전 안의 날씨는 무척이나 좋았다.
“푸른 바다. 그리고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보이네요.”
이곳은 이미 어벤저스 사단이 이전에 다 진행했었다.
“이곳에 숨겨진 배를 찾아 저기 수평선 너머의 섬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이곳에는 전직 패스파인더인 한세린과 어벤저스 사단의 유능한 길잡이 흑표범이 함께하고 있는 중.
이미 이곳의 경험이 있는 흑표범이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했다.
“저기, 해안절벽 사이 동굴에서 나룻배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전원이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36명에게 맞는 숫자의 나룻배가 생성됩니다.”
흑표범은 검은 쫄쫄이를 입고 있어서 약간 암살자 같은 모양새였는데, 고양이 꼬리 같은 것이 길게 자라나 있었다.
저걸로 위험한 곳에서 중심을 잘 잡는다나 뭐라나.
‘근데…….’
이걸 말할까 말까.
이 백사장 아래에서 지금 우리를 노리는 벌레형 마물들이 있는 것 같은데.
‘얘네를 먼저 죽이고 시작하는 게 낫지 않나?’
왜 흑표범도 그렇고 한세린도 그렇고, 전혀 모르는 눈치지?
혹시 몰라 확인해 봤다.
“야.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거, 맞지?”
클리어에 별로 영향이 없는 요소여서 무시해도 상관없어서 그런 거겠지?
근데 한세린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