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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29화 (229/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29화

에건 폴이 뒷걸음질 쳤다.

“왜, 왜 그러냐?”

“거기. 가만히 딱 서 있어 봐.”

에건 폴은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설마……!’

차진혁이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자신의 허장성세를 파악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 나한테 거짓말한 거 없냐?”

“그, 그건…….”

이건 떠보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알고 하는 말인가.

‘미치겠군.’

언젠가 들킬 거라고는 생각했다.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2인자 취급을 받고 있는 김철수에게는 언젠가 밝힐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지구의 진정한 1인자는 김철수였으니까.

‘이렇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는데.’

먼저 고백하는 것과 들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에건 폴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다 설명하겠다, 서둘러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차진혁이 말했다.

“레벨도 뻥이고. 구독자 숫자도 뻥이고. 조회수도 뻥이고. 좋아요 숫자도 뻥이고.”

“……다 설명하겠다. 속이려던 건 아니었다.”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그 미소를 마주한 에건 폴은 식은땀을 흘렸다.

‘저 미소는……!’

망치를 휘두르며 적의 뒤통수를 깰 때의 그 표정이 틀림없었다.

김철수가 가장 환하게 웃는 그 순간.

헤드 브레이커 김철수의 광기를 엿볼 수 있는 그 순간.

에건 폴은 저도 모르게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생각보다 하꼬였잖아?”

그런데 김철수는 크게 기분 나빠 보이지 않았다.

딱히 속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저 에건 폴의 성과들이 생각보다 낮다는 것을 신기해하며 즐거워할 뿐이었다.

‘무슨 생각이지?’

보통 사람들이라면 크게 화를 낼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속인 덕분에…… 김철수가 크게 저평가되었다. 먹지 않아도 될 욕도 많이 먹었고, 조롱도 많이 당했지.’

이를테면 ‘응, 그래봤자 에건 폴 미만 잡’이라는 여론이 강세였으니까.

특히 미국에서는 더 그랬다.

‘당연히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그런데 김철수가 말했다.

“아니, 전부터 궁금했거든. 화력은 분명 내가 더 센 거 같은데 왜 좋아요나 구독자 숫자는 내가 훨씬 적을까? 왜 내가 너보다 레벨이 낮을까, 진짜 많이 고민했단 말이야.”

“…….”

“근데 그냥 네가 뻥튀기를 했던 거였네? 이야, 아직 제대로 된 10억도 달성 못한 하꼬였다니!”

“…….”

“덕분에 내가 가는 길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됐어.”

에건 폴은 조금 헷갈리기 시작했다.

‘하꼬? 나를 먹이는 건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에건 폴이 아는 차진혁은 빙빙 둘러서 말하는 걸 잘 못하는 타입이다.

‘그냥 진심으로 감탄하는 중인가……?’

드디어 차진혁의 본심을 깨달았다.

실제로 차진혁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중이었다.

에건 폴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이봐, 나는 너를 속였어.”

“근데?”

“네게는 언젠가 말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왜?”

“…….”

에건 폴은 차진혁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크게 당황했다.

“왜……냐니? 너를 속여도 상관 없다는 뜻이냐?”

“속이는 게 뭐가 나쁘냐?”

차진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주변인들이 조금 이상해진다 싶었는데 에건 폴도 좀 이상해진 것 같았다.

“속는 놈이 나쁜 거지.”

“……사기꾼도 상관없다는 거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사기꾼은 머리를 깨…… 아니, 참교육 해야지.”

“방금 속이는 건 안 나쁘고 속는 게 나쁘다고…….”

“왜 이리 답답하게 구냐, 너?”

차진혁의 논리는 이러했다.

플레이어가 정당한 플레이 방식으로 속이는 건 괜찮다. 그건 플레이니까.

그러나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적인 사람이 일반적인 내용으로 사기를 치는 건 안 된다.

“아무튼 네가 하꼬여서 다행이다. 좋네.”

“……칭찬인가?”

자동 번역 구슬에 약간 문제가 생긴 건가.

에건 폴은 영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 * *

“그곳에서 백옥갑옷을 입은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투구를 쓰고 있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여성체라 짐작이 된다. 그놈은 강했다. 우리 전원이 전력을 다해 싸워도 이길 수 없었어.”

에건 폴은 녹화된 영상을 차진혁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망치를 사용하는 놈이다.”

“흥미롭네.”

미리와 비슷한 크기의 망치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놈이었다.

“결국 우리는 팀원 넷을 희생시키고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완벽한 실패지.”

“그게 왜 완벽한 실패냐?”

“……응?”

“던전을 한 번에 클리어하는 놈이 어디있어?”

에건 폴은 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게 네가 할 소리냐?

그런데 또 차진혁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날 놀리는 것 같지는 않은데.’

차진혁이 계속 말을 이었다.

“원래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해야 겨우 성공하는 게 던전 클리어잖아.”

“……그런 거냐?”

“그래도 결국 클리어 못하는 경우도 일상다반사고.”

에건 폴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에건 폴의 이상향이자 기준은 늘 스트리머 김철수였다.

김철수는 늘 모든 던전을 거의 솔로잉에 가깝게 홀로 클리어해 냈다.

거의 대부분 한 번의 트라이로 클리어를 이끌어냈다.

“근데 도대체 여긴 왜 도전한 거냐?”

“……아, 네 영역을 침범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차진혁은 인상을 찡그렸다.

대화를 나눠보니 에건 폴에 대해 조금 더 알 것 같았다.

‘얘랑 안 맞네. 영역을 침범하기는 뭘 침범해?’

던전에 주인은 없다.

그냥 먼저 도전하는 놈이 임자다.

‘대화 포인트가 더럽게 안 맞아.’

에건 폴이라는 사람 자체가 싫은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친구로 가까워지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았다.

“아니. 왜 도전한 거냐고?”

“한 플레이어에게…… 영감을 받았다.”

“영감은 무슨 얼어죽을 영감. 구체적으로 말해봐라.”

같은 스트리머로서, 차진혁은 묻고 싶었다.

에건 폴에게 어떤 바람이 불어서 얘가 이런 무모한 선택을 한 것인지.

그 선택의 이면에는 어떤 인사이트와 판단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내게 항의하려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그리 집요하게 캐묻는 거지?”

“아니, 미공략 던전을 콘텐츠로 쓰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잖아.”

“……이상하다고?”

“가성비가 너무 안 맞으니까.”

“……가성비가 안 맞는다고?”

“어. 그걸 콘텐츠로 쓰는 미친놈이 어디 있어?”

“…….”

에건 폴은 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네 다음 콘텐츠가 해운대 던전 공략 아니었나?

“……네 말대로 가성비가 나쁘긴 하더군.”

“너한테 영감을 줬다는 그런 놈이야말로 사기꾼이야.”

“…….”

“너한테 미공략 던전을 콘텐츠로 쓰게 할 생각을 하다니. 미친놈이네. 아무튼 영상은 고맙다.”

차진혁은 에건 폴로부터 영상을 받아들었다.

‘백옥갑옷 기사라.’

해운대 던전에 입장 인원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진다.

한 명이 들어가면 난이도가 훨씬 낮아지기 마련이다.

‘근데…….’

영상을 보며 자꾸 의문점이 생겼다.

‘저걸 왜 맞지?’

백옥갑옷 기사가 제법 빠르기는 했는데,

‘3번 늪지대보다 느리잖아?’

3번 늪지대보다는 훨씬 느렸다.

망치를 휘두르는 폼이 위협적이기는 했으나 그렇게 치명적인 것 같지는 않았다.

‘여기. 어깨로 날아드는 망치 그냥 맞아도 될 거 같은데?’

어깨야 좀 박살 나긴 하겠지만 그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여기서 탱커가 어깨로 망치를 받아냈으면 백옷갑옷 기사에게는 큰 틈이 생겼을 거고, 어벤저스 사단에게는 기회가 왔을 거다.

‘이런 기회가 한두 번이 아니네.’

영상을 여러번 돌려본 차진혁이 물었다.

“너. 지나치게 욕심 낸 거 아니냐?”

“그래, 인정한다.”

해운대 던전은 우리 수준에 지나치게 난이도가 높은 던전이었어.

그렇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차진혁이 이상한 말을 이어갔다.

“엘튜브각도 적당히 잡아야지.”

……?

“위기감 연출하려고 너무 힘쓰다가 오히려 망해 버렸네.”

“아니, 나는…….”

“그래, 알아. 최선을 다했겠지.”

연출을 신경 쓴 게 아니라 정말 필사적으로 싸웠다고! 방송 끈 거 보면 모르냐!

에건 폴은 어쩐지 억울해졌다.

“그래도 나한테는 나쁘지 않은 정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말인데.”

원래는 솔로잉으로 진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영상으로 백옥갑옷 기사를 보고 난 뒤 마음이 바뀌었다.

“합방할래?”

“……합방?”

에건 폴의 이성은 ‘거부해야 해. 그곳은 지나치게 위험한 곳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김철수와의 합방이다. 이런 기회는 또 오기 힘들어.’라고 주장했다.

“같이 해운대 던전 클리어하자. 대신 인원 총합은 저번이랑 똑같이. 인원 부족한 부분은 우리 애들 부르면 돼.”

* * *

김철수와 에건 폴의 합방이 성사되었다.

[지구서버 공식 랭킹 1위와 비공식 랭킹 1위의 합방이라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와 조합 지려버렸다 ㅋㅋㅋ 어벤저스 사단과 김철수라니.

└김철수뿐만 아니라 자유의 성녀, 목왕, 권왕에 항문검까지 원정에 참여한다고 함.

└항문검이 거기 낄 급은 아닌 거 같은데.

└ㄴㄴ 항문검이 이름 때문에 저평가 되어서 그렇지, 한국맵 검술가 계열 공식 랭킹 1위임.

└헐 ㄹㅇ? 항문검이 1위였음?ㅋㅋㅋㅋㅋㅋㅋㅋ 몰랐네 ㅋㅋ 존재감 실화냨ㅋㅋㅋ

[해운대 던전이 진짜 위험하기는 한가 보다.]

└진리와 질서와 평화의 치열좌가 직접 나선 거 보면 던전 브레이크가 임박한 거 아님?

└위험한 일 생기면 꼭 직접 나서잖아.

└한국은 좋겠다. 김철수 보유국이라서.

김철수와 에건 폴의 합방 소식은 지구 전역을 꽤 뜨겁게 달구었다.

김잘알TV와 강은우는 덩달아 바빠졌다.

왕유미는 왕유미대로, 이번 원정에 참여하는 K-군단 인원들에게 나름의 역할을 부여했다.

“이번 방송 목표는 김철수 원탑 체제를 보여주는 거예요. 이번에 우리는 최대한 뒤에 빠져서 김철수가 제일 빛나게 연출하는 겁니다. 다들 아시겠죠?”

차진솔. 목재현. 김정현. 이현성.

이번 해운대 던전 원정에 함께 참여하게 된 네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이현성은 왕유미의 말이 아주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차진혁에게 강한 경쟁심과 승부욕을 느끼는 중.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그러나 내가 네게 협력하는 이유는 너를 넘어서기 위해서다.’

이현성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이번 원정은 김철수가 직접 활약할 계획이었다.

그러면 김철수를 보다 가까운 곳에서 보다 정확히 관찰할 수 있을 것이었다.

김철수의 스텝 하나, 습관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어 왕유미는 강은우에게 연락했다.

-지금 철수 님 뭐하고 계세요?

-방금 샤워 마치고 나오셨습니다.

-어! 그러면 아직 드라이는 안 했겠네요?

-네. 아직 안.

-얼른 철수 님 좀 바꿔줘요.

-네?

-빨리요!

왕유미는 차진혁과 대화 통화를 하며 한 가지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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