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28화
“내가 뭘 했는데?”
키하엘은 쓰러져 있는 3번 늪지대에게 시선을 옮겼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3번 늪지대는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늪지대 크루의 크루원을 죽인 거잖아.”
“죽었어?”
차진혁도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 건 살살 쳤는데.”
이번 건? 그럼 다음 거는 세게 치려고 했냐?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고 본론을 이어갔다.
“이번 사건 시스템 청원에도 올라온 거 알지?”
“그래?”
“100만 건 넘었고, 진상 파악을 위해서 내가 온 거다.”
“근데 그게 뭐가 문제라는 건데?”
“사람들이 왜 청원을 올렸겠냐?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100만 명 넘게 청원했겠냐?”
“글쎄.”
“네가 부조리한 핍박을 받고 있다는 것에 네 팬들의 불만이 폭발한 거다. 스트리머 보호 조약을 어기고, 각성자 사냥꾼이 스트리머를 공격한 거니까.”
“그래서 내가 역습해서 상황 종료된 거잖아.”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건지.
역시 저 녀석은 엄살이 너무 심하단 말이야.
“근데 네가 상처 하나 없이 개박살을 내버렸잖아.”
“이렇게 박살 날 줄은 나도 몰랐다.”
-박살…… 하아…… 좋아.
“각성자 사냥꾼들한테 명분을 주게된 거지. 3번 늪지대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박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다. 스트리머 보호조약 같은 건 의미가 없다. 뭐 이런. 그렇게 되면 각성자 사냥꾼들이 보다 쉽게 너를 노리게 될 거다.”
키하엘은 키하엘 나름대로 절박했다.
그는 지금 아주 큰 리스크를 짊어지고 차진혁에게 협력 중.
해고되면 MK재단에 취직하여 진정한 의미의 워라밸을 즐기려고 했는데, 김철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그 또한 곤란해진다.
MK재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미셸장은 사실 김철수 때문에 MK재단을 운영 중인거나 다름없었으니까.
만약 김철수가 사라진다면? MK재단도 끝이라는 의미였고, 키하엘의 행복한 계획도 박살 나는 것이었다.
저기 널브러진 3번 늪지대처럼.
“위험해진다고!”
‘저 미친놈이…… 왜 입맛을 다셔?’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나를 노린다고? 개꿀?
키하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미친놈은 아니겠지.
각성자 사냥꾼들이 자기를 노릴 거라는데 설레 하는 미친놈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아니어야만 했다.
그러나 차마 차진혁의 본심을 묻지는 못했다.
설렌다고 대답할 것 같아서.
* * *
키하엘이 물었다.
“혹시 이 상황 촬영 중이었냐?”
“당연하지.”
“당분간은 공개하지 말자.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약 시속 200㎞로 달리고 있는 기차 위.
차진혁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 등은 없는 것 같았으나 혹시 몰라 확인했다.
“널 촬영하고 있는 놈이 있냐? 당연히 없겠…….”
“있지.”
“있다고? 어디?”
“여기, 아래.”
차진혁이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바닥밖에 없었다.
“뭔 소리야?”
“이 아래 객실에서 날 촬영하고 있을 거야, 홈페이지 마스터가.”
“막혀 있는데?”
“투시 정도는 다들 하잖아?”
“……뭐?”
키하엘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래, 네놈의 기준이 그렇지 뭐.
키하엘은 반쯤 자포자기한 상태로 말을 이었다.
“그래, 투시 정도는 다들 하는 거였지.”
“투시로 날 촬영하기는 했을 거야. 저레벨이라서 이런저런 효과를 주거나 하지는 못하겠지만. 아, 화질도 엄청 좋지는 않을 건데. 뭐, 저레벨이니까 어쩔 수 없겠지.”
“세상에 어느…….”
세상에 어느 저레벨이 투시해서 촬영하냐?
상식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자꾸 포기가 안 됐다.
그러나 더 따지고 들면 본인만 피곤할 것 같아서 따지지는 않았다.
“됐고. 이렇게 하자.”
키하엘은 3번 늪지대의 시체를 굴려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것은 던져진 인형처럼 떨어져 바닥을 몇 바퀴 구르며 멀어졌다.
“너랑 3번 늪지대랑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는데 내가 등장한 거야. 내가 진상조사를 위해 전투를 막다가, 놈이 자기 움직임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여기서 추락사한 걸로.”
“왜 굳이?”
“각성자 사냥꾼들한테 명분 주고 싶냐?”
“…….”
“왜 대답을 안 해?”
명분 주고 싶어!
이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마지막 남은 정상인의 사고방식으로 최후의 이성을 다잡고 있는 느낌이군.’
더 추궁했다가는 분명히,
-어, 오히려 좋아. 다들 덤벼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
다만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 스스로도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자부하는 차진혁이 꽤 타당한 질문을 던졌다.
“시체 수거하면 사인 어차피 정확하게 나올 텐데?”
“어차피 시체 수거는 내가 할 거야. 100만 청원 돌파도 했고, 내가 전적으로 맡았으니까. 사인은 내가 발표할 거야.”
“와, 그게 돼? SSP가 무슨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돼. 우리 윗선은 효율적인 최신 시스템을 구축하기보다는 관리자들 갈아넣는 걸 더 좋아하거든. 그게 싸게 먹히니까.”
차진혁은 잠시 고민했다.
솔직히 그의 입장에서는 사실을 굳이 은폐할 필요는 없었다.
‘근데…… 아직 내가 내 능력을 잘 모르잖아?’
아까도 사실 3번 늪지대를 죽이려고 친 건 아니었다.
자기가 어느 정도 힘을 가졌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시험해 봤을 뿐.
그런데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플레이의 기본은 나를 정확히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니까.’
아마 해운대 던전에 입장하고 나면 비교적 정확히 자신의 전력을 파악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키하엘이 말한 대로 하고 다음부터 그냥 보여주고 싶은대로 보여줄까? 그게 순서가 맞는 거 같기는 한데.’
한줄기 불안함이 있었다.
마음속 깊숙이 숨어 있던 본심을 저도 모르게 꺼내 들었다.
“근데…… 이러다가 각성자 사냥꾼들이 나를 안 덮치면 어떡하지?”
* * *
에건 폴과 그가 이끄는 어벤저스 사단이 해운대 던전에 도전한 것은 꽤 큰 이슈였다.
[와, 지구 서버 1위 군단이 한국맵 상륙이라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ㅇㅈㅇㅈ
└티저 봤음? 핵추진 항공모함타고 오던데 진짜 지렸음 ㅋㅋㅋ
└해운대 던전도 결국 클리어되는 거 아님?
[지구 서버 1위 군단은 K군단이지 뭔 소리임?]
└K군단은 비공식임. 일단 김철수부터 비공식랭커인데 무슨 ㅋㅋ
└솔직히 김철수 빼면 다 거품 아님?ㅋㅋㅋ
└거품 쌉인정 ㅋㅋ 김철수 빼면 어벤저스 사단에 비비지도 못함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K군단보다는 어벤저스 사단을 더 높게 쳤다.
김철수의 존재감이 워낙 강렬하다보니, 김철수 빼고는 다 거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심지어 김철수조차도 미디어가 만들어낸 영웅이라는 얘기도 많이 나돌아다닐 정도이니 말 다했다.
한마갤은 자동번역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는, 온 우주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사이트.
[솔직히 한국에서만 김철수 빠는 거지 ㅉㅉ 구독자 숫자도 김철수보다 더 많음. 지구 최초 실버 버튼 달성에 20억 달성도 에건 폴이 먼저함ㅋㅋㅋ]
└한국맵 놈들아 제발 정신 좀 차려라.
└구독자 숫자, 전체 조회수, 좋아요 수, 모든 것에서 에건 폴이 김철수보다 앞섬 ㅋㅋ
└국뽕도 적당히 해라 한국 놈들아 ㅋㅋㅋ보는 내가 다 부끄럽닼ㅋㅋㅋ
[이번에 어벤저스 사단이 해운대 던전 클리어하면 세계 랭킹 1위라는 걸 증명하는 거겠네?]
└아마 그럴듯 ㅋㅋ
└김철수는 무서워서 여지껏 도전도 못함.
한마갤을 모니터링하던 왕유미는 흐흐 웃었다.
왕유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편집자 강철(김철수는신이시다)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으세요?”
“우리 철수 님 욕을 엄청 많이 하고 있잖아요.”
“그게…… 그렇게 좋은 일인가요?”
“까가 이렇게 많아진다는 건 빠는 더 많아지고 있다는 거거든요. 빠와 까는 늘 공존해요. 슈퍼스타라면 어쩔 수 없이 지고 가야 할 운명같은 거죵. 까가 많으면 빠는 오히려 더 결집하게 돼요. 공동의 적이 생기면 아주 무섭게 세력을 이루죵.”
“하지만…… 철수 님 보시면 속상하시지 않을까요?”
“아뇨? 많이 언급돼서 좋아하실 걸요?”
“……아!”
강철은 오늘도 또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 대표님, 이거 보셨어요?”
“지금 보고 있어요.”
왕유미도 동글뱅이 안경을 고쳐쓰고서 상황을 살폈다.
기세 좋게 해운대 던전에 입성했던 어벤저스 사단이 처참한 몰골로 밖으로 겨우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여기. 던전 원정 시작하고서 약 2시간 후부터는 생방이 끊겨요. 녹방으로 대체한다고 했는데…… 이후 2시간 만에 겨우 길을 뚫고 도망친 것 같습니다.”
“꼴들이 말이 아니네요.”
밖에서는 도합 4시간가량의 시간이 흘렀지만, 해운대 던전 안에서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흐른 모양이었다.
꽤 오래 굶었는지 피골이 상접해 있었고 얼굴빛이 말이 아니었다.
“에건 폴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쓰러졌고, 어벤저스 사단의 멤버들 중 네 명이 돌아오지 못했네요.”
어벤저스 사단의 이번 원정은 완전한 실패였다.
* * *
나는 조금 의외였다.
‘이렇게 무모한 녀석이 아닌데,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둔 거지?’
에건 폴의 성향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내가 아는 에건 폴은 약간 안전을 지향하는 주의였다.
‘핵추진 항공모함을 타고 오면서 엄청 웅장한 배경음을 깔았던 건 멋있었어.’
그 티저 영상은 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조회수도 벌써 3억을 넘었고 말이다.
‘그게 원래 에건 폴 스타일이잖아?’
핵추진 항공모함.
멋들어진 제복을 갖춰 입고 도열한 어벤저스 사단.
미군들의 경례를 받으며 엄숙한 태도로 한국맵에 상륙하는 영웅들.
푸른빛이 일렁거리는 바다와 반짝이는 햇빛.
산산이 부서지는 하얀 파도와 끼룩거리며 날아다니는 갈매기들까지.
사실 따지고 보면 별 거 아닌 것들인데, 그 별 거 아닌 것들을 아주 멋있게 포장해서 보여주는 맛이 있는 녀석이었다.
대부분 던전 클리어도 그런 식으로 진행하는 편이었다.
‘이미 공략이 알려져 있는 곳들을 위주로 공략하면서…… 최대한 멋있게 영상을 뽑아내는 데 특출난 녀석인데.’
영상미를 극대화 시키고, 그 안에서 팀원들간의 관계를 통하여 캐릭터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에건 폴의 영상은 한 편의 영화나 극적인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서 솔직히 나도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미공략 던전을 도전하는 건 여러모로 가성비가 안 맞는 짓이잖아? 완전히 모르는 곳이니 연출을 제대로 하기도 힘들고. 변수가 많아서 방송을 제대로 살리기 어려울 텐데.’
에건 폴이 왜 이런 선택을 한 건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그렇게 미련한 놈이 아닌데 말이다.
안전하고 확실한 길 놔두고 미공략 던전으로 콘텐츠 진행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어?
‘모르겠다.’
차진솔도 어쩐지 약간 이상해진 거 같고.
한세린을 비롯해서 서효(수호수)나 미리(룰 브레이커)의 성격도 영 이상하고.
아무튼 나만 정상인이 되어가고 나머지는 좀 이상해지는 거 같은 느낌이다.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강은우와 함께 객실로 올라갔다.
“네. 저 옆방에서 24시간 대기할 테니까 혹시 어디 나가실 때는 꼭 불러주세요!”
총기 넘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당히 열정이 넘치는 모습이라서 꽤 뿌듯했다.
생각해 보니 강은우도 정상인인 거 같다.
“아참. 그…… 전 이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거든요.”
얘가 카메라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줬다.
미리로 3번 늪지대의 관자놀이를 치던 그 순간을 포착한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웃고 있었어?’
미친놈처럼 웃고 있는 게 보였다.
내가 이렇게나 활짝 웃고 있었구나.
“물론 대중에는 비공개로 하겠지만 왕유미 님한테는 공유해도 될까요? 자랑하고 싶어서요. 이 사진은 진짜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
강은우는 사슴 같은 눈망울로 해맑게 웃었다.
“또…….”
“응?”
“부숴 주세요. 이때 철수 님 표정이 제일 아름다운 것 같아요.”
얘는 자기가 찍은 사진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자기 예술에 푹 빠진 것 같았는데 미리도 한 마디를 보탰다.
-동의…… 해요. 그때의 주인이 제일 아름다와.
……아무래도 다들 이상하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에건 폴이 내 방을 찾아왔다.
해운대 던전 공략에 실패한 이후 내게 꼭 전해줄 말이 있다나 뭐라나.
별로 도움은 안 될 것 같지만 들어보기로 했다.
‘어?’
근데 에건 폴에게서 이상한 것들이 보였다.
‘레벨을 속였어?’
레벨뿐만이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