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24화
척추를 울리는 이 짜릿한 감각.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이 강렬한 시선.
‘엄청난 수준의 암살자.’
일단 겉으로는 티 내지 않기로 했다.
최소한의 빈틈을 보여야 상대가 치고 들어올 것이니까.
암살자의 은신이 가장 약화되는 때는, 암살자가 공격을 할 때니까.
‘들어와.’
태연한 상태로 약간 기다려보았으나 암살자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분명, 암살자 수준의 끈적한 시선이었는데.’
그 정도로 강렬한 시선은 느껴본 적이 별로 없었다.
하나만 보면 열을 안다고, 이 정도 시선을 보낼 수 있는 암살자라면 극강의 능력을 갖추고 있을 텐데 말이다.
‘이상하네. 당장 달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감각이었는데.’
차진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다음 영상에서 뵙겠습니다.”
머릿속이 조금 복잡했다.
집에 돌아와 휴식을 취하며 생각해 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암살자의 시선이 아니라 김민지의 시선이었나?’
김민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을 테니까.
정황상 단순 암살자라기보다는 김민지일 확률이 높은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왜 습격을 안 했지?’
분명 달려들 것 같았는데. 진짜로 그런 느낌이었는데.
‘김민지가 내게 달려들 이유라. 아무리 생각해도 날 찌르려는 것밖에 없지 않나?’
그런데 또 김민지쯤 되는 능력을 가진 자라면 굳이 그런 암습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아니, 애초에 김민지였다면 굳이 도망치듯 사라진 다음 숨어서 훔쳐볼 이유가 있었나?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겠군.’
차진혁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차진솔도 플레이를 하러 나간 거 같고.’
집은 조용했다.
김민지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더 생각한다고 해서 어떤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차진혁은 소파에 앉은 뒤 룰 브레이커를 꺼내 들었다.
“미안하다, 너한테 너무 신경을 못 써줬어.”
이름을 지어준다 지어준다 약속만 했지, 실제로 지어주지는 못했다.
차진혁은 소파 테이블 위에 부드러운 천을 깔고 그 위에 룰 브레이커를 올려놓았다.
다시 보니 자태가 참 영롱했다.
침을 꼴깍 삼켰다.
검술가가 좋은 검을 보면 환장하는 것과 비슷했다.
‘예쁘다.’
한동안 룰 브레이커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무슨 이름을 지어줘야 좋으려나.”
순간, 차진혁 바로 옆에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황금색 마법진으로부터 여자애 하나가 튀어나왔다.
“나도 이름 없으시도다!”
차진혁이 수호수의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수호수도 차진혁의 감정을 느낀다.
아까 차진혁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수호수는 괴상한 화장을 모두 지운 채 평범한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차진혁은 수호수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느끼고 있었다.
‘엄청 서운해하는데?’
자세히 보니 저 큰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왜 내 이름은 안 지어주는 것이냐도다.”
뚝, 뚝, 눈물이 흘러내렸다.
무게추 같은 오른손으로 눈언저리를 씩씩하게 닦아냈지만 그걸로는 역부족이었다.
뚝, 뚝, 눈물이 턱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공기와 만난 눈물은 황금색으로 반짝거리는 결정이 되어 마룻바닥에 부딪쳤다.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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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수의 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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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금보다 훨씬 비싼 값에 거래되는 재료 아티팩트.
극소량만 구할 수 있으며, 공학계열의 랭커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는 귀하디귀한 재료였다.
‘근데…….’
중계자의 통찰로 살펴보니 더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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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드라실의 암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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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그드라실이라면 수천 년 전 아르비스에 자리 잡은 수호수를 뜻하는 말이었다.
전 우주의 수호수를 통틀어 가장 크고 거대하며 막강한 권능을 지니고 있는, 지금의 아르비스를 만들어준 아르비스의 어머니.
아르비스의 사람들은 이그드라실을 일컬어 세계수라고 표현한다.
차진혁은 바닥에 떨어진 조각들을 주워들었다.
‘이 눈물이 암술이라고?’
식물학자가 아니라서 정확히는 알 수 없어서 핸드폰으로 이런저런 내용들을 검색해 봤다.
‘암술과 수술이 만나 씨앗이 생기고 번식한다.’
이게 암술이라면?
어디선가 수술을 구할 수 있다면?
‘그러면 지구에도 이그드라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인가.’
일단 눈물들을 주워서 인벤토리에 넣었다.
수호수는 차진혁의 그 모습이 무척 서운한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 울고 있으시도다!”
“어. 조금만 더 울어봐.”
안타깝게도(?) 울기는 울었으나 더 이상의 암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눈물만 뚝뚝 떨어졌다.
그쯤 돼서야 차진혁도 정신을 차렸다.
‘어?’
수호수의 마음이 느껴졌다.
수호수는 정말로 속상해하고 있었다.
‘아, 이거 기분 되게 별로네.’
이제야 수호수가 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여태까지는 인격체라기보다는 나무에 가깝게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영락없는 사람이었다.
“룰 브레이커만 예뻐하고.”
“…….”
“맨날 룰 브레이커만 데리고 다니고.”
“…….”
“나한테는 이름도 안 지어주고.”
“…….”
“나쁘시도다! 미우시도다!”
수호수는 폭주해서 나를 향해 앙증맞은 주먹을 내뻗었는데 딱히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본질적으로 ‘수호수’이다 보니 나를 공격하는 행위 자체가 불가한 것 같았다.
‘근데 왜 아프냐?’
가슴이 저릿한 느낌이었다.
차진혁은 수호수의 양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서 슥- 들어 올린 뒤 자신의 옆에 앉혔다.
“이름 지어줄게.”
“…….”
수호수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대답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수호수 또한 실시간으로 차진혁의 마음을 느끼는 중.
‘주인이 괴로워하고 있어.’
차진혁이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체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도다?”
“그래. 평소에 생각해둔 이름 있어?”
“흑염룡!”
“흑염룡?”
“별로시도다?”
“멋있기는 한데.”
수호수랑 그 이름이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다.
멋있다고 아무 데나 막 갖다 붙이면 이도 저도 아닌 잡탕이 되기 마련이었다.
“뇌룡이랑 약간 헷갈릴 거 같기도 하고. 너도 앞으로 내 방송에 종종 나올 테니까, 네 캐릭터성을 살릴 수 있는 이름이면 좋을 거 같다.”
“방송에 종종 나와? 내가?”
수호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맨날 룰 브레이커만 데리고 다녀서 화난다며.”
“화, 화난 것까지는 아니도다…….”
수호수는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수호수가 주인에게 화를 내다니, 나는 수호수로서 자격이 없어, 자책하는 마음도 들었다.
“수호수니까 수호 어떠냐? 이것도 약간 멋있는 이름인데.”
“남자애 이름 같으시도다.”
흑염룡은 무성체 같아서 괜찮지만 수호는 괜찮지 않았다.
수호수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나는 주인을 돕는 사명을 가진 나무이느니라.”
시청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호라는 이름에서 조금 더 자신의 스타일로 각색했다.
“수호에서 조금씩만 바꿔서 서효. 이 이름이 좋을 것 같으시도다!”
서효? 아 그건 좀 약해 보여서 별로인데.
차진혁은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수호수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보니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수호수는 지금 굉장히 설레하고 있었다.
“그래. 네 이름은 서효로 하자.”
나중에 [수호가 서효가 된 이유]와 같은 콘텐츠로 영상 하나 뽑으면 될 것 같았다.
수호수, 서효가 된 그녀(?)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룰 브레이커를 보며 혀를 내밀었다.
“이름은 내가 먼저 받으셨도다! 내가 1번이도다!”
룰 브레이커가 우웅- 하고 떨렸다.
* * *
수호수에게는 서효라는 이름을.
룰 브레이커에게는 ‘미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룰 브레이커가 이 이름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룰 브레이커에게는 약간의 자아가 있음. 예전 영상 링크 첨부 요망.]
룰 브레이커를 처음 획득했을 때, 룰 브레이커는 나를 거부했었다.
하마터면 복종시키지 못할 뻔했는데 당시 올 클리어(잔해더미에서 피어난 희망) 효과를 적용시켜서 결국 내 걸로 만들었었다.
“확실히 좋아하는 것이 느껴…….”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리라는 이름, 마음에 들어요.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굉장히 단아하고 차분했다.
나는 이 목소리가 룰 브레이커의 목소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사실도 무척 좋아요.
나는 룰 브레이커의 짙은 욕망을 알고 있었다.
솔직히 이게 내 욕망인지 룰 브레이커의 욕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얘는 적들의 뒤통수를 깨고 싶어 했다.
그래서 ‘머리’라는 단어에서 착안하여 약간 바꿔서 ‘미리’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이었다.
서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주인한테 말 걸지 말아라! 이 2번녀석! 조금 성장했다고 감히 대화라니, 너무 이르시도다!”
허리에 손을 얹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꽤 다부져 보였다.
확실히 애는 애였다.
‘나한테 엄청난 소유욕을 느끼고 있잖아?’
마치 딸이 ‘우리 아빠거든!’ 하는 것만 같았다.
확실히 수호수는 귀여운 구석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 감정을 조심해야 할 거 같다.
아무튼 귀여운 건 무조건 조심해야 하는 거니까.
나와 정신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으니 나를 이해해 주겠지 뭐.
-질투 같은 건 소모적이고 쓸모없는 감정이랍니다, 서효 씨.
육성으로 들리는 건 아니었지만 수호수는 미리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지, 질투 아니거든? 내가 1번이니까, 2번은 내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거든? 도다?”
미리는 가볍게 호호- 하고 웃었다.
서효가 미리에게 강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미리는 서효에게 딱히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했다.
대신 내게 강렬한 감정을 전달해 왔다.
-주인.
흥분을 겨우 감춘 목소리였다.
차분함 가운데 숨겨진 은은한 광기가 느껴졌다.
-머리를 깨버리고 싶어요. 적을 찾아줘요.
우리는 아주 좋은 파트너가 될 것 같다.
서효는 우리의 대화가 약간 마음에 안 드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역시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야. 방어구가 아니라 무기가 되어야 해. 무기가 되어야 해. 무기가 되어야 해. 무기가 되어야 계속 함께할 수 있어.”
검지 손톱을 깨물며 계속 중얼거렸다.
* * *
부산으로 향하기 전, 왕유미와 이번 콘텐츠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은우 님을 데려가시는 게 좋겠어요.”
“솔로잉을 해야 한다니까.”
“그건 해결했어요. 은우 님 스킬로 충분히 커버 가능해요.”
왕유미가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러니까, 플레이어로 안 친다고?”
“네. 완벽히 유령화되어서, 없는 사람 취급이 가능해요.”
스킬 이름이 굉장히 특이했다.
‘홈마스터의 열정’이라는 스킬이었는데, 이게 참 흥미로운 능력이었다.
이것 또한 좋은 엘튜브각이었다.
“중계결계가 스트리머를 보호하는 방어스킬이라면, 홈마열정은 홈페이지 마스터를 보호하는 회피스킬에 가까운 능력이네.”
애초에 방어가 필요 없었다.
완전히 유령이 되어, 어떠한 공격도 받지 않는단다.
던전에서 사람 숫자를 셀 때 카운팅도 되지 않는다나 뭐라나.
아예 없는 사람이 되는 개념이었다.
‘와…… 이게 된다고?’
몇몇 제한 조건들이 걸려 있기는 했다.
“물론 홈마이니만큼 촬영할 대상에 대한 열정이 가득해야 해요.”
내가 있어야만 저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단다.
“기존에 열정 가득한 사진 1만 장 이상, 촬영시간 3,000시간, 팬계정 팔로워 1억 이상을 달성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기는 했는데, 그건 이미 클리어했고요. 우리 홈마, 대단하죠?”
강은우가 얼굴을 붉히고 민망한듯 웃었다.
아무튼 강은우도 나와 함께 해운대 던전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던 대로, 이동은 KTX로 하기로 했다.
‘음.’
그런데 아주 사소한 문제가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