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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19화 (219/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19화

왕유미는 내게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줬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들이었다.

-“평소에는 3인칭이 좋을 거 같아요. 특히 힐링이나 일상을 주제로 한 콘텐츠에서는요. 시야에 홈마도 한 번씩 잡아주시고용.”

대신,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면 1인칭으로 바꿔주세요. 아무래도 치열좌의 콘텐츠는 그게 또 제맛이니까요. 평범한 스트리머들은 보여주기 힘든 쫄깃한 긴장감이용. 제가 엄청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찾아봤는데 진혁 님처럼 플레이하면 보통 레벨 100 언저리에 다 도태되더라고요?”

그러니까 레벨 200대에서도 이런 식으로 활동하는 스트리머, 아니, 엘튜버는 내가 유일하다는 뜻이었다.

유일무이한 엘튜버. 그것만큼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말은 없었다.

-“그러니까 전투 시에는 1인칭. 알겠죠? 그리고 진혁님 심연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광폭한 흑염룡을 깨워서 맘껏 날뛰게 해도 괜찮아요.”

내가 했던 멋들어진 대사들은 일부 조롱짤로 커뮤니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중2 냄새가 너무 진하게 난다나 뭐라나.

그래서 요즘에는 조금 자중하고 있는데, 오히려 왕유미는 흑염룡을 더욱 개방시키라고 주문했다.

-“그건 하나의 컨셉이 되어줄 테니까. 걱정 마요. 마음껏,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해요. 낭만 넘치는 대사들을 마구 풀어내도 좋아요. 편집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그렇게 듬직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마음 놓고, 내가 하고 싶은 대사들을 마음껏 쏟아내기로 했다.

“부수는 힘보다 지키는 힘이 더 강하다.”

그란델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지키는 힘을 꺼내어 진심으로 너를 막아낼 것이다.”

내게는 방어신비 환상검희가 있다.

신유리가 방어신비 아이언 돔과 네메시스 함포를 융합하여 바빌론 캐논을 만들어냈듯.

나 또한 방어신비 환상검희와 네미시스 함포를 융합할 수 있다.

“방어신비, 환상검희.”

특수효과 아티팩트를 활성화시켰다.

내 발밑에 황금빛 마법진이 생성되는가 싶더니 강대한 황금빛무리가 내 몸을 감싸고 맹렬히 회전했다.

바람이 일어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휘날렸다.

이것도 카트리나의 공방에서 만든 것이고, 눈에 보이는 효과는 아주 멋들어지지만 실질적은 능력은 딱히 없다.

환상검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질화가 이루어진 환상검희.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를 가진 천사의 형상이었다.

풍성한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

그녀의 등 뒤로 여기저기 찢겨진 여섯 장의 백색 날개가 보였다.

몸 곳곳에 검붉은 상처와 흉터가 도드라져 있었다.

예전과 조금 달라진 점이 있었다.

내 주 무기가 바뀐 탓인지, 환상검희는 자줏빛 망치를 들고 있었다.

“복수의…….”

칼날을 손에 쥐어라.

원래 이 대사가 나올 거라서 기다리고 있었다.

타이밍을 맞추어 함께 말한 뒤 교차편집하면 멋있을 거 같아서.

근데 그럴 수 없었다.

“복수의 망치를 손에 쥐어라.”

칼날이 아니라 망치?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 다음은 알게 하라. 어리석은 자들의 말로가 무엇인지. 말살의 대상은 무엇인가, 나의 주인이여. 이건데…….’

아무래도 뭔가 좀 달라졌다.

“알게 하라. 어리석은 자들의 뒤통수가 어찌 될지. 깨부숴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나의 주인이여.”

더 멋있어진 거 같다.

* * *

차진혁의 방송이 1인칭으로 바뀌면서 전투의 긴장감과 생동감은 배가 되었지만, 아쉬워하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난 전투에 관심없고요, 나는 그냥 우리 철수님 얼굴 보러 온건데요 (당당)

-얼굴은 언제쯤 나오나여? 1일 1철수 못하면 살 수 없는 병에 걸려버렸단 말이에여.

-전투 콘텐츠 노잼. 얼굴 대유잼.

왕유미는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런 요구들을 다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김철수 방송의 본질은 역시 남들과는 차별화된 스트리밍이다.

다른 스트리머들은 보여줄 수 없는 무위를 바탕으로 진행하는 직접 전투 콘텐츠.

그 외의 다른 것들도 중요하지만 근본을 잊을 수는 없었다.

대신 김철수 자체에 집중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숨 쉴 구멍을 따로 만들어주었다.

“실시간 사진이랑 영상 등은 김철수 공식 엔스타 계정에 업로드되고 있어요. 확인 부탁드려용!”

김철수 엔스타 계정에 수많은 시청자들이 몰려들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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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l_chulsoo

vs 그란델…… 더보기

* * *

-와 진짜 천사와 악마, 여유와 치열함이 공존하는 섹시한 얼굴이다…… 넘나 잘생겼어 ㅠㅠ

-은우 님 사진 좀 제발 많이 올려주세요 ㅠㅠ

-수많은 입덕을 거쳐왔던 내가 여기 정착했다.

15초 이내의 짧은 영상들도 올라왔다.

김철수가 작게 읊조리는 장면이었다.

“방어신비, 환상검희.”

처음에는 조롱성 댓글들이 달렸다.

-컨셉 미쳤냨ㅋㅋㅋㅋㅋㅋㅋ

-볼때마다 오그라들어죽겠넼ㅋㅋㅋㅋㅋ

-무슨 판타지 소설 주인공이냐고요 ㅋㅋㅋ

그러나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이걸 이해 못한다고?

-방송 컨셉 이해 못하는 머저리들은 제발 껒여주세요.

왕유미와 차진혁이 의도했던 대로, 차진혁의 마음속 깊이 뿌리내린 ‘흑염룡’은 컨셉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와…… 간지 그 잡채.

-개멋 존멋 숨멎.

-진짜 개멋있다. 저런 인생 살면 무슨 기분일까?

김철수는 어느새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처럼 되어 있었다.

악의 무리, 산의 광인 군대를 홀로 맞서 싸워 지구를 지켜내는 영웅처럼.

그리고 강은우가 차진혁을 잡아내는 앵글과 구도는 가히 김철수 주연의 영화 같아 보이기는 했다.

차진혁이 간단한 설명을 이어갔다.

“바빌론 캐논과 환상 검희는 근본적으로 같은 갈래에서 시작한 힘.”

이내,

재장전에 성공한 신유리가 다시 한번 바빌론 캐논을 쏘아냈다.

주변을 초토화시키며 발사된 거대한 빛줄기가 산의 광인 군대를 훑었다.

집채만 한 바위가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희뿌연 먼지가 맹렬히 피어올랐다.

강은우의 앵글 속 김철수마저도 바빌론 캐논에 잡아먹힌 것처럼 보였다.

자욱한 흙먼지를 헤치며 김철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하여, 바빌론 캐논은 나를 해할 수 없고.”

김철수 바로 옆에 환상검희가 김철수를 호위하듯 서 있었다.

황금빛 보호막이 김철수를 둘러싸고 있었다.(이것도 그냥 아티팩트로 만든 효과였다.)

주변은 황폐화되었으나 김철수 뒤로는 모든 것이 멀쩡했다.

“나는 지켜낼 것이다.”

산의 광인은 분명 강한 개체이기는 했다.

그러나 차진혁이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내 기억 속 산의 광인보다 약해.’

함포 공격에 대한 내성을 키우느라 다른 능력들에 투자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비교적 쉽게 산의 광인들과 뒤엉켜 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

-ㅋㅋㅋㅋ 아까 뭐랬더라? 또 한 번 함포 공격 왔을 땐 이미 김철수를 삼켰을 거라고 도발하던데.

-함포 또 터졌쥬? 못 삼켰쥬? 광인들 얻어 터졌쥬? 아무고토 모타쥬?

한마갤 네임드, 백과사전은 차진혁의 전투를 실시간으로 분석했다.

[대단위 포격은 바빌론 캐논이 맡아서 산의 광인들에게 적당한 피해를 끼치고, 보다 집중 공격이라 할 수 있는 환상검희가 산의 광인 개개인의 뒤통수를 깨부수고 있다.]

환상검희는 바빌론 캐논의 영향에서 자유로웠다.

산의 광인 사이사이를 누비며 황금빛 망치를 세차게 휘둘렀다.

환상검희는 교묘하게도 산의 광인 뒤통수만을 노렸는데, 망치와 뒤통수가 맞닿자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신묘한 목소리로,

“깨져라. 머가리여.”

라는 일종의 시동어를 읊으면서.

[저렇게 우아하면서 저돌적인 환상검희는 처음 보았다. 필자가 보아왔던 환상검희들은 저렇지 않았는데.]

나비처럼 날아 망치를 휘두르는 모습은 고귀한 천사가 악마의 망치를 휘두르는 것만 같았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신비의 외모도 주인 따라간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그게 김철수 덕분에 증명이 되었다.

다른 환상검희들에 비하여 김철수의 환상검희는 유독 아름답고 오묘했다.

오죽하면 김철수의 환상검희를 추종하는 팬들이 생겼을 정도였다.

심지어 김철수와 함께 있으니 둘의 외모가 시너지를 일으키며 더욱 빛났다.

-잘생긴 애 옆에 예쁜 애, 예쁜 애 옆에 잘생긴 애. 눈호강 미쳤네요.

-그저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김철수는 누구랑 붙여놔도 얼굴합이 미친듯. 조화의 치열좌.

일부 시청자들은 김철수와 환상검희의 얼굴합에 대해 열심히 전도(?)했지만 백과사전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저 강력한 바빌론 캐논이 오히려 김철수에게는…… 무대장치처럼 발현되고 있다. 때로는 폭죽처럼, 때로는 조명처럼.]

백과사전은 전율을 느끼는 중이었다.

이 우주에, 김철수보다 더 강한 플레이어를 찾으라면 최소 수십 명은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수백 명은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김철수처럼 낭만적으로 싸우는 플레이어를 찾기는 힘들었다.

‘모든 것들이 김철수의 무대 요소로서 활용되고 있어. 게다가 저 홈페이지 마스터로 각성한 강은우라는 자의 능력이 심상치가 않고.’

순간순간, 김철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포착하고 가장 치열한 순간을 잡아낸다.

같은 사람이라도 누가 찍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강은우의 대포 카메라에 잡힌 김철수는, 3인칭 시점의 방송으로 노출된 김철수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김철수의 발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과거 김철수의 플레이를 훨씬 더 능가하는 경지로서.]

예전에는 ‘검술을 잘하는’ 스트리머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이제는 망치를 잘 휘두르는 ‘스트리머’였다.

[김철수는 보다 진일보하였다. 단순히 레벨로 표기할 수 없는 도약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마시멜로를 능가하는 스트리머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 *

‘확실히 단단하기는 하네.’

신유리와 힘을 합쳐서 상당히 잘 싸운 건 맞았다.

지금 보면, 멀쩡한 상태의 ‘산의 광인’을 찾기는 거의 힘들었다.

너덜너덜해졌고 피투성이들.

‘죽은 놈은 하나도 없어.’

놈들의 재생능력이 만만치 않았다.

조금 긴장한 것처럼 보였던 그란델도 어느새 여유를 되찾았다.

“네놈을 완벽히 분석했다고 말했을 텐데.”

“……그래 보이는군.”

“이제 슬슬 끝을 낼 때가 왔군. 놀아주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란델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명령했다.

“움직여라, 나의 광인들아.”

산의 광인들은 붉은 눈빛을 쏘아내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익진처럼 양옆으로 움직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나와 환상검희를 포위했다.

제 역할을 충분히 해준 환상검희의 몸은 약간 반투명상태로 변해 있었다.

“수고했어.”

환상검희는 아직 멀었다며, 아직도 놈들의 뒷통수를 깨부수겠다는 전의를 내게 전해왔지만 고개를 저었다.

환상검희의 역할은 이 정도면 되었다.

이만하면 정말 멋진 연출을 해냈을 것이다.

마무리는 내가 해야 했다.

그란델이 쿡쿡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느냐?”

“초짜에게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이 나쁘다.

그란델 따위가 감히 한세린을 평가해?

나를 평가한 것보다 훨씬 더 불쾌하다.

“그 한계를 직접 경험해 봐.”

나는 룰 브레이커를 들어 올렸다.

이게 내 마지막 발악으로 보였는지, 그란델은 여유롭게 피식 웃었다.

“저항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게 삼켜줬을 텐데.”

“…….”

“그러나 이미 늦었다. 네 머리부터 잘근잘근 씹어주지.”

나는 룰 브레이커를 들어 올린 채 나와 마주보고 있는 산의 광인을 가리켰다.

어디선가 보았던, 아주 멋들어진 대사를 내뱉었다.

사실 이거 하고 싶어서 오래 기다렸다.

“너는 이미, 죽어 있다.”

순간,

산의 광인이 울컥! 피를 토하며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내가 가리켜서 그런 건 아니었고 그냥 내가 타이밍을 잘 맞춰서 룰 브레이커를 들어 올렸을 뿐이다.

그란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이, 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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