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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18화 (218/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18화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야! 알고 있는 거지?”

그것은 일종의 연막이었다.

‘우리는 네가 시간을 끌려는 수작임을 알고 있다!’라는 것을 강조하여, 급박한 척했다.

겨우 그것만을 알아내서 급하게 전달하는 느낌으로.

그러나 절대군주 한세린이 노린 것은 그 이상의 것이었다.

‘잘해줘야 할 텐데.’

그녀가 보는 차진혁은 굉장히 치열하게 자신만의 플레이를 이어가고 있었다.

적당한 긴장감과 위기감을 연출하면서, 실수로라도 그란델을 압도하지 않도록 적당히 조절해 가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냥 때려 부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정교한 연출이었다.

‘하영아, 이제 네 차례야.’

한세린의 눈으로 송하영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천사소녀 송하영은 이미 움직이고 있을 터.

차진혁이 전면에 나서서 아주 치열하고 화려하게 연출하면서 사실 작전의 핵심 중추는 송하영이 맡았다.

참고로 왕유미가 설정한 방송 제목은 [성동격서]였다.

동쪽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서쪽을 친다.

실제로 그란델은 차진혁에게만 집중한 나머지 송하영의 존재를 놓쳤다.

송하영은 검은 팔이 일렁거리는 제단에 몰래 침투했다.

그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제일 가치있는 것을 훔쳐야 해.’

제단 위에 올라와 있는 여러 끔찍한 것들 중, 가장 가치있게 끔찍한 것을 훔쳐내야 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한세린, 차진혁과 대화를 나눈 상태.

“산의 광인에게는 고질적인 심장 문제가 있다고 했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화타를 키운 거고. 그런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이렇게 급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분명히 그 문제를 해결했다는 거거든?”

한세린이 말을 이었다.

“심장과 관련된 뭔가가 있을지도 몰라. 그게 키포인트 매개체일 거고.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 하영이, 네가 직접 보고 네가 판단해. 나는 천사소녀의 직감을 믿어.”

송하영이 대답했다.

“그런 흑마법 개체를 소환하려면 제물들이 있어야 하잖아. 제물을 싸그리 훔쳐 버리는 건?”

“그건 안 돼. 첫째로 너무 많은 걸 훔치려 들면 티가 나기 마련이야. 그란델이 분명 눈치챌 거야. 둘째로, 차진혁, 아니, 김철수는 산의 광인 군대가 결국 소환되기를 바라고 있어.”

평범한 사람들이 들으면 ‘그런 생각을 하는 미친놈이 어디있어?’라고 되물었겠지만 송하영은 평범하지 않았다.

“……아! 맞네!”

결국 ‘산의 광인’ 군대가 실제로 소환되어야 엘튜브각을 잡을 수 있다는 것.

그건 아주 양질의 콘텐츠각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리고 지금, 결국 송하영은 성공했다.

‘심장. 저거야. 저렇게 대놓고 심장이 있을 줄은 몰랐지만.’

지휘자의 안목과 실무자의 현장경험이 만나 극도의 시너지를 발산했다.

‘저것만 훔치면 되겠다.’

차진혁이 워낙 잘해준 덕분에 그란델은 송하영의 도둑질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산의 광인 군대는 결국 소환될 것이다.

고질적인 심장병 문제를 고치지 못한 채로.

* * *

하늘 위에 마법진들이 열렸다.

그란델은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핫!”

검은색 원형 마법진 수십개가 생성되었다.

각종 마력문양이 새겨진 마법진들이었다.

그 안으로부터 붉은 털을 가진 마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차진혁은 긴장한 듯 말했다.

“전체적인 형상은…… 고릴라와 비슷합니다. 털이 무척 길다는 것을 제외하면요.”

그란델은 무척 여유로운 태도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렇다. 산의 광인이다. 네 중계자의 시선으로 보면 레벨도 확인 가능하겠지?”

“레벨은…… 217.”

지구 기준으로는 상당히 고레벨이었다.

“마법진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산의 광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요.”

차진혁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정말로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사실 긴장해서 떨린 게 아니라, 약간 설레서 떨린 거지만.

-와, 저게 도대체 몇 마리임?

-최소 수백 마리는 되는 듯.

-이건 아무리 김철수라도 위험한 거 아니냐?

-일단 도망쳤다가 연합들 소집해서 다시 와야 할 듯.

김철수의 무위를 알고 있는 시청자들 또한 김철수를 걱정했다.

그도 그럴것이 어느덧 전열을 갖추기 시작한 산의 광인들의 기세가 자못 어마어마했다.

땅에 발을 디딘 산의 광인들은 흉악한 근육질 팔을 휘둘러 주변 나무들을 쳐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수수깡처럼 힘없이 꺾이고, 주변은 어느새 평탄화되었다.

-딱봐도 전사형 마물들이네.

-맷집이랑 공격력 존나 세 보인다.

-철수야, 물량 앞에서는 장사 없다. 일단 튀자.

이러한 시청자 반응들은 왕유미를 통해, 차진혁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는 중이었다.

‘이상하게 자존심이 안 상하네.’

검술가 시절이었다면 자존심이 상했을 테지만 지금은 오히려 좋았다.

그만큼 긴장감이 잘 연출되었다는 뜻일 테니까.

그란델은 승리감을 만끽하며 말했다.

“나는 너를 삼킬 것이다. 나는 너로, 너는 나로,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되겠지.”

그의 뒤로 수백마리 산의 광인들이 도열했다.

흉흉한 붉은 눈빛을 뿌려대는 모양새가 자못 살벌했다.

크르륵- 거리며 괴성을 내고 있었는데 그 날숨에는 코를 찌르는 악취가 가득했다.

그리고 한세린이 말했다.

“김철수. 물러서.”

물론 각본이었다.

이 대사는 차진혁과 한세린, 그리고 왕유미가 미리 만든 것이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내가 너한테 물러서라고 얘기할게. 김잘알TV의 시청자 반응에 따라서 결정하면 될 것 같아. 만약 시청자들이 널 걱정하고 있다면 김철수, 물러서라고 얘기할게. 그렇지만 만약 신나서 싸워라! 를 외치고 있다면 물러서, 김철수라고 명령할 거야.”

‘김철수, 물러서’라고 했다.

미리 약속한 대로 차진혁이 오히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아니.”

룰 브레이커를 들어 올렸다.

현재 시점은 3인칭 드론 시점.

김철수의 모습은 홀로 해일을 막아내고자 앞에 선 하루살이 같았다.

“내가 여기서 물러서면?”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너무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접근하면 너무 과해질 수 있으니까.

대신 시청자들이 알아서 상상하고 스스로 감동해 주었다.

-이미 김철수는 수많은 민간인 피해를 목격했음.

-더 이상의 민간인 피해는 좌시할 수 없다. 그저 빛철수.

-김철수: 여기서 내가 물러서면 내 뒤에는 민간인들의 도시가 있어. 그래서 나는 물러설 수 없어. 비록 역부족일지라도.

-치열한 곳에서는 치열해야만 한다. -질서의 치열좌.

-감덩 ^,~

김철수는 황금빛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신화급 카드. 참고로 더 멋있어 보이기 위해, 귀금속 공방의 카트리나에게 약간 세공을 받았다. 금실로 세공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무려 3억 다이아.

기능적으로 좋아진 건 없고 그냥 카드가 좀 더 예뻐졌다.

“내가 막아야 해.”

그란델은 김철수의 처절함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손을 뻗어 명령했다.

“가라, 나의 군대여. 놈을 죽이지 말고 내 앞에 끌고 와라.”

그와 동시에 한세린이 말했다.

“김철수. 중계결계.”

김철수는 전력을 다해 중계결계를 펼쳤고,

“바빌론 캐논, 발포.”

저만치 먼 곳에서 플라즈마 레이저포 형상의 두꺼운 빛줄기가 쏘아졌다.

일대다수의 수성전에서, 최강의 전력이라 불리는 바빌론 캐논이었다.

* * *

‘나약한’ 항문검의 별호를 얻게 된 이현성은 약간 불만이었다.

“우리가 왜 김철수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까?”

“공익을 위해서요.”

공익이라는 말에 이현성은 결국 동의하고 말았다.

마리아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MK재단의 실질적인 주인은 김철수에 가깝다는 사실을 잊지 마요. 우리가 트리니티 클럽의 VIP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건 김철수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에요. 어느 우주를 가도, 이 정도 지원을 이렇게 쉽게 받아낼 수 있는 경우는 없어요.”

“그건…… 저도 알고 있죠. 그래도 유리 씨한테 너무 위험한 게 아닌가 해서.”

“걱정마요. 목왕이 파견 나와서 유리 씨를 보호할 거니까요.”

“목왕이요?”

목왕 목재현.

그가 신유리를 보호해 줄 것이란다.

신유리가 방긋 웃었다.

“현성 씨. 걱정하지 마요. 저도 제가 활약할 기회를 얻어서 좋아요.”

“……네.”

이현성은 신유리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신유리를 볼 때면 자꾸만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신유리가 위험한 작전에 투입된다 생각하니 세상이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이현성은 신유리와 대화하는 시간 자체가 너무 벅찼다.

그만큼 짜증이 치밀었다.

‘유리 씨는 왜 그런 미친놈을 좋아하는 겁니까! 김철수는 미친놈입니다!’

신유리가 김철수를 좋아한다고 직접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신유리를 좋아하는 이현성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신유리는 분명 김철수를 마음에 담고 있었다.

스승으로서 좋아하는 것이든, 은인으로서 좋아하는 것이든,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것이든.

그 어느 쪽이든 아무튼 부러워 죽을 것 같았다.

‘흥, 나도 더 강해지면 되겠지!’

그러면 김철수가 아니라 나를 봐주겠지.

이현성은 다짐했다.

나약한 항문검처럼 우스꽝스럽고 연약한 이명 따위는 벗어던지기로.

그는 굳은 결심을 담아 중얼거렸다.

“강력한 항문검이 되어주마.”

* * *

바빌론 캐논.

신유리가 다뤄었던 화포의 최종병기 버전.

몸 전체가 거대한 화포로 변하여 어마어마한 파괴력의 화포를 쏘아내는 능력이며, 반신 연합을 이끌었던 신유리를 최악의 빌런으로 손꼽히게 만들었던 능력이다.

차진혁은 이전에 송출했던 영상의 링크를 첨부했다.

[“이 폭력적인 힘은, 상성이 뛰어난 방어신비와의 결합을 통해 완성됩니다.”]

신유리의 방어신비인 아이언 돔. 공격능력인 네메시스의 함포.

그 둘의 결합이 결국 걸어다니는 공성병기 ‘바빌론 캐논’을 구현해 냈다.

바빌론 캐논은 실로 어마어마해서,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희뿌연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그토록 강인해 보였던 ‘산의 광인’들 피부가 여기저기 찢기고 몇몇은 피를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죽은 개체는 없었다.

“흥! 김철수, 네 놈이 개미여왕을 어찌 막아냈는지에 대한 분석은 다 끝내놓았다.”

그래서 산의 광인을 소환해낼 때 ‘함포 공격’에 대한 내성에 특별히 더 신경썼다.

함포 공격에 대한 내성이 올라간 만큼 공격력이 조금 약화되기는 했지만 상관없었다.

지구 서버를 먹는 데 그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네놈들의 함포 공격은 위력은 강하지만 딜레이가 길고 정교한 타격을 하지 못하지.”

산의 광인들이 넓게 진을 치기 시작했다.

김철수를 포위하여 천천히 접근했다.

“또 한 번의 함포 공격이 온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때, 나는 이미 네놈을 삼켰을 테니까.”

그는 한세린 쪽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군주로 전향했나 보군.”

“…….”

“나도 너 같은 시절이 있었다. 내가 누구보다 똑똑하고, 상대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고 있다고 자부하던 그런 때가.”

“…….”

“운이 나빴구나. 몇 년, 아니, 몇 달 후였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군. 그러나 너는 너무 초짜이고, 결국 초짜의 한계는 명확할 수밖에.”

한세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다분히 의도된 동작이었으나 승리감에 취한 그란델은 그저 낄낄대며 웃었다.

한세린은 차진혁에게 신호를 보냈다.

‘지금이야.’

지금부터가 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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