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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17화 (217/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17화

제단으로부터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검은 기운으로 만들어진 팔들 같았다.

‘서둥이들 능력과 비슷한 느낌이네.’

그림자가 여러 가닥의 팔을 만들어 나를 덮치는 느낌.

그렇지만 서둥이들에 비해서는 정교함이 조금 부족하고, 조금 더 불길한 느낌이 드는 기운이었다.

‘중계결계.’

나는 스트리머답게, 스트리머다운 방식으로 막아냈다.

검은 기운은 내 중계결계를 뚫지 못했다.

해초처럼 내 중계결계를 뒤덮고 꿈틀거렸다.

약간 검은 문어한테 잡아먹힌 거 같기도 하고?

어느새 정신을 차린 그란델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나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망치?’

아무래도 내 중계결계를 깨부수고 싶은 모양이었다.

보는 순간 느껴졌다.

‘망치질은 허접하겠네.’

망치를 쥔 자세만 봐도, 휘두르는 폼만 봐도, 많은 것들이 보였다.

이건 신성한 망치에 대한 모독이었다.

내가 만약 검술가, 아니, 망치술가였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스트리머.

‘중계결계를 좀 약화시켜서 맞아줘야겠어.’

그래야 긴장감이 살지.

쟤가 때리는 그 지점을 약화시켰다.

쩌적- 쩌적- 내 결계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놈은 희망을 맛보았는지 여러 차례 망치질을 해댔고 결국 내 중계결계가 와장창 박살 났다.

검은 팔들은 제단 주변에서 여전히 일렁거리고 있는 중.

저 의기양양한 표정과 결계가 부서진 이 상황이 편집점으로 쓰기 딱 좋을 거 같다.

그란델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게 말했다.

“너. 그 기술의 이름이 뭐냐?”

“이 기술의 이름?”

뭐지, 이 신박한 속임수는?

날 모르는 사람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렇지.

날 상대로 하는 책사가 내 능력을 모를 수 있나?

너무나 뻔하게도 이건 중계결계…….

“중계결계라고는 하지 마라.”

“…….”

“스트리머의 중계결계 따위가 그 정도 방어능력을 지닐 수는 없으니까.”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내 중계결계가 특별하긴 한데 저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목재현의 수목산성보다 훨씬 덜 단단한데 말이다.

“계산 착오군. 여기서 널 집어삼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흐르지 않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위험했다. 잡아먹히는 줄 알았어.”

“나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네놈의 결계가 생각 이상으로 단단하더군.”

놈이 피식 웃었다.

숨긴 패가 더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예상 범위 안의 변수다.”

이 제단을 통해 나를 삼키려던 생각은 이제 접은 것처럼 보였다.

더 이상 검은 기운이 일렁거리지 않았다.

아, 저거 꽤 좋은 시각적 연출이었는데 아쉽네.

근데 왜 얘 아까부터 약간 당황한 거 같지?

* * *

그란델은 김철수가 이곳을 찾아내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김철수에게는 유능한 동료인 패스파인더 –아직 군주로 각성한 건 파악하지 못했다- 가 있으니까.

‘족히 1시간은 넘게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란델의 착오였다.

김철수가 예상보다 너무 빨리 이곳을 찾아왔다.

정작 이곳을 빨리 찾아낸 김철수나 패스파인더는 딱히 감흥이 없어 보였지만.

이건 한세린의 기준이 김철수의 기준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뛰어난 길잡이 재목은 아니야.’라는 것이 한세린의 기준이었다.

만약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길잡이였다면 두더지맨과 1, 2위를 다투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압도적인 1등을 하지 못한다는 건 뛰어난 재능을 가지지 못했다는 말이었고, 그리 대단하지 못한 자신이 해낸 것이 딱히 대단한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그란델은 약간 당황한 상태.

‘아직 [삼키는 제단]이 완성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모든 힘을 끌어내지 못했다.

게다가 김철수의 숨겨진 힘(중계결계)이 생각보다 너무 강해서, 제대로 삼킬 수 없었다.

‘여기서 김철수를 삼켰다면 제일 좋았겠지만, 이미 글러 먹었어.’

하지만 여기까지는 예상 범위 안이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한 대비책은 미리 세워놓았다.

그란델의 목소리가 약간 바뀌었다.

“안 그래도 너와 싸워보고 싶었다.”

그란델이 인벤토리에서 대검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란델이 예전에 삼켰던 인격 중 하나였다.

“내 이름은 얀센. 스트리머……였었지.”

대검을 든 스트리머.

차진혁은 그 키워드를 듣자마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이슈몰이하기에 아주 좋은 콘텐츠가 뽑히는 것 같았다.

한세린이 크게 말했다.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야! 알고 있는 거지?”

차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이 간질간질거렸다.

회귀 전의 한세린과 호흡을 맞췄던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만약 정말로 비밀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면 군주 스킬로 귓속말을 보냈겠지.’

사실 차진혁이 아니라 그란델보고 들으라는 소리였다.

이후, 차진혁은 대검을 든 그란델과 싸우기 시작했다.

‘아…… 실망인데.’

이건 긴장감을 주는 연출을 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압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것이 좋아 보였다.

“아, 검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

차진혁도 오랜만에 대검 라칸을 꺼내 들었다.

룰 브레이커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이게 조금 더 모양새가 살 것 같다.

차진혁이 라칸을 휘두르자 얀센(그란델)이 중계결계를 사용했다.

‘응?’

중계결계가 너무 약했다.

‘하마터면 목을 칠 뻔했네.’

현재 인격은 검쟁이 스트리머 얀센이지만, 아무튼 몸은 그란델의 몸이었다.

힘 조절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란델의 목을 벨 뻔했다.

생각보다 전투 능력이 너무 떨어졌다.

힘을 풀어서 때린 덕분에 놈의 중계결계가 부서지지는 않았다.

“죽어라!”

얀센이 검을 휘둘렀고 차진혁은 중계결계로 막았다.

그리고 직감했다.

“너, 그란델 아니지?”

그럼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그란델이 이렇게 약할 리는 없었다.

그란델은 아마도 자신의 대역을 이곳에 박아놓은 모양이었다.

‘느낌이 오네.’

아주 정교하게 만든 인형이었다.

아마도 종이술사 매켄드라의 능력을 발전시킨 것 같았다.

그리고 제단 아래, 땅 밑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법이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제단 아래에 녹색 마법진이 생성되었고 뜻을 알 수 없는 상형 마력문자가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고위 마법, 공간 분리.”

녹색 빛이 제단을 덮기 시작했다.

이내 육면체가 되어 제단 전체를 감쌌다.

‘숨쉬기가 힘들어지는데.’

차진혁은 알 수 없는 위기감을 느끼고 일단 자리에서 벗어났다.

스스로를 얀센이라 주장했던 종이인형은 스르르 녹아 없어져 버렸다.

“저 육면체 안은 그란델이 생성해 낸 다른 차원의 공간 같습니다.”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진짜 그란델이 제단 정중앙에 앉아 있었다.

“네가 내 예상을 훨씬 웃도는 실력을 가졌다는 것은 인정해 주마.”

……나 살살했는데?

그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너를 잡아먹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군.”

그란델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차진혁은 저 육면체를 부수고 들어가 볼까 잠시 고민했다.

룰 브레이커라면 부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렇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내가 예전에 해왔던 방송이랑 차별점이 없겠지.’

고맙게도 그란델은 더욱 자신만만한 태도로 부연설명까지 해줬다.

“네 동료년의 말대로, 나는 시간을 끌고 있었다.”

한세린의 외침은 그란델로 하여금 약간의 방심을 이끌어냈다.

마치 다른 노림수가 있는 것처럼.

“내 생각보다 네가 빨리 도착하는 바람에 약간의 시간을 끌 필요가 있었거든.”

* * *

우리가 빨리 도착했다고?

이것도 트릭인가?

“너를 삼킬 수 있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그 계획은 포기했다. 이후 얀센을 내세워 시간을 더 끈 뒤, 나의 위대한 마법, 공간분리를 사용했지.”

“위대한 마법……이라고?”

‘좋아. 알아서 방송각을 잡아주고 있어.’

더 떠들어주면 좋겠다.

“네놈의 공간과 이곳의 공간을 철저히 분리하는 차원 이격계열 마법이다. 지금의 네 수준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고차원의 마법이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효과만큼은 탁월하다.”

“……라고 네가 삼킨 마법사가 가르쳐준 건가?”

“그래.”

‘실망이네.’

차진혁은 그란델이 똑똑하다는 것을 일부 인정하기는 한다.

그러나 아무리 똑똑해도 계속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녹화 중인 영상에 메모를 남겼다.

[*자기 객관화 실패. 세피아-그란델로 너무 오래 살았음.]

솔직히 말해주고 싶었다.

네 수준에서 잡아먹을 수 있는 마법사가 진짜 위대한 대마법사겠냐?

진짜 대마법사는 너한테 안 잡아먹히지.

하지만 겉으로는 긴장하는 척했다.

“확실히. 차원이 분리된 느낌이군.”

그리고 실시간 스트리밍 채널을 열었다.

[위대한 마법]

순식간에 시청자들이 몰려들었다.

김잘알TV의 채팅 화력은 너무 어마어마해서 제대로 읽어낼 수 없을 정도였다.

채널을 분리하여 VIP들만 채팅을 칠 수 있도록 설정을 조절한 상태였는데도 그랬다.

아무래도 VIP 기준을 더 올려야 할 것 같았다.

-강원도 사건의 원흉이 저놈?

-빛철수가 또 빛철수하는 중.

-혼자서 위험 다 뒤집어쓰고 나쁜놈 잡으러 간 듯 ㅠㅠ 그저 빛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이 대신 해주는 중. 김철수 너무 나대는 것 같아서 역겨웠는데 솔직히 이건 인정함.

왕유미와 강철은 시기적절하게 미리 제작한 영상본도 업로드했다.

세피아-그란델이 사실은 교주이며, 그란델이 세피아를 집어삼킬 것을 예상한 내용이었다.

-와, 이걸 다 예측했다고?

-에이 설마. 시간 조작했겠지.

그러나 실시간으로 영상 전문가들이 나타나 영상이 조작된 게 아니라고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에이 말도 안 돼. 김철수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다 예측해서 행동함?

-김철수는신이시다(한마갤 네임드): ???

-빛철수는 다 알고 있었다고!

-근데 지금은 꽤 고전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다 알고 있었다고 해도 강력한 상대라서 어쩔 수 없는 듯.

왕유미는 중계자 메세지를 통해 차진혁에게 반응들을 실시간으로 전달해 줬다.

‘계획대로 되고 있네.’

[꽤 적당한 수준의 긴장감이 유지되고 있어요. 아주 좋아요.]

긴장감이 너무 심하면 고구마라고 욕먹는다.

[비록 그란델이 위험한 상대이기는 하지만, 김철수라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어! 정도의 기대감

을 심어주는 게 제일 좋아요. 진행 엄청 매끄럽고 좋은 것 같아요!]

검왕 시절에는 왕유미에게 이렇게 적극적인 칭찬을 받아보지 못했었는데.

검은 내게 맞지 않는 옷이었어, 차진혁은 괜스레 뿌듯해졌다.

“곧 내 군대가 강림할 것이다.”

“산의 광인 군대를 말하는 거냐?”

“그래. 네가 자랑하는 뇌룡으로도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란델이 계속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었다.

“네 뇌룡은 막강한 개체이기는 하지만 선공은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지. 나의 군대는 네 뇌룡을 결코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30분. 30분 후면 나의 군대가 강림한다.”

차진혁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대화로 시간을 꽤 끌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약간 루즈해질 것 같아서 조심스러웠다.

‘여기서 절박하게 연출하자.’

차진혁은 룰 브레이커를 들어 올렸다.

손에 쥔 룰 브레이커가 기분 좋게 공명했다.

‘잘 부탁한다, 룰 브레이커. 너무 세게 치면 안 돼.’

“그렇다면 여기서 부숴버려야겠군.”

절대 부수면 안 돼.

망치와 하나 되어 육면체를 공격했다.

겉으로는 여유롭던 그란델도 속으로는 긴장했다.

하필이면 김철수가 지닌 무기가 룰 브레이커니까.

차원을 이격시켜 놓았지만 룰 브레이커라면 저 마법 자체를 무효화시킬 수도 있었다.

‘다행이군.’

다행히 김철수에게 그 정도 능력은 없는 듯했다.

김철수는 정말 처절하게 –스트리머로서 아주 열심히 연출하면서- 육면체를 공격했다.

“너의 공격은, 나의 위대한 마법에 닿지 않는다!”

아까 30분을 얘기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트릭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시간은 불과 7분이었다.

‘놈은 30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겠지! 네게는 대비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란델은 결국 소환마법을 완성시켰다.

하늘에 검은색 소환 게이트 수십 개가 생성되었다.

“자. 나의 군대를 맞이하여라! 순순히 나와 한 몸이 되어 영생을 누리자꾸나.”

그는 보지 못했다. 김철수가 웃고 있다는 사실을.

김철수의 연출은 사실 여기가 절정이었다.

방송 제목을 바꿨다.

[반전]

전직 패스파인더. 현직 절대군주 한세린의 공식적인 데뷔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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