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16화
최순남은 5일장에 각종 채소를 내다파는 상인이었다.
‘오늘은 장사가 잘 됐으면 좋겠네.’
그래야 귀여운 손주 녀석들한테 장난감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해줄 텐데.
30년간 해온 일이고 어차피 수입이야 늘 비슷비슷했지만 오늘은 왠지 장사가 잘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음?’
그런데 시장 입구에 도착하자 이상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김씨! 김씨! 아이고, 왜 이래? 대낮부터 취해서 돌아다니는 거야?”
약재상인 김씨가 헐벗고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순남은 김씨에게 황급히 달려갔다.
그런데 김씨의 눈동자가 약간 이상했다.
“폭력은…….”
영화에나 나오는 좀비 같은 모양새로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크!’
최순남은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낀 채 얼른 몸을 돌렸다.
김씨가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오길래 발걸음은 조금 더 빨리 했다.
“폭력은…… 모든 것을…….”
“기, 김씨! 왜, 왜 이래!”
“구원…… 한다.”
김씨가 최순남을 쫓아오고 있었다.
술에 만취한 사람처럼 걸음걸이가 비틀거렸다.
최순남은 입술을 꽉 깨물고 종종걸음으로 도망쳤다.
머리 위에 지고 있는 보따리들을 버리면 조금 빨리 도망갈 수 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사이 김씨의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폭력은…….”
그리고 갑자기 소리쳤다.
“모든 것을 구원한다!!!”
그리고 최순남을 향해 달려와 최순남의 등을 발로 찼다.
최순남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와중에도 오늘 내다 팔 보따리는 꼭 쥐고 있었다.
“기, 김씨!”
최순남이 쓰러진 채 뒷걸음질 쳤고 김씨는 최순남을 향해 달려들었다.
최순남은 보따리를 꼭 끌어안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괜찮으세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남자가 보였다.
너무 황망하여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고, 젊은 남자는 피가 묻은 검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최순남은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뉴스에서 몇 번 봤던 양반인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았다.
굉장히 이상한 이름으로 불렸던 거 같은데, 똥꼬검인가 뭔가 하는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았다.
이현성은 반응이 무척 익숙한 듯 말했다.
“예, 예, 똥꼬검 이현성입니다. MK재단 소속의 플레이어이고 정부와 협력해서 구호활동 벌이는 중입니다. 일어나세요. 저희 측 지원 플레이어들이 안내해 줄 겁니다.”
그때, 최순남이 중얼거렸다.
“폭력이…….”
최순남을 부축하던 이현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을 빼 들었다.
“모든 것을…….”
최순남이 한 손으로 스스로의 옷을 찢기 시작했다.
마치 약재상 김씨처럼.
이현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까지 멀쩡했는데…… 베어야겠군.’
그때, 현장을 지휘하던 마리아가 도착했다.
“공격하지 마세요.”
“……예?”
“저 할머니의 왼손을 봐요.”
오른손으로는 옷을 찢고 있으면서 왼손으로는 보따리를 꼭 쥐고 있었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본인의 의지가 남아 있어. 생포하죠. 이 괴현상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니.”
* * *
강원도 일대에 일명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다.
이 바이러스에 노출된 사람들은 스스로 옷을 찢고 ‘폭력이 모든 것을 구원한다’라고 중얼거리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향해 극도의 공격성을 보였다.
몇몇은 사람을 물어 뜯기도 했고 자기 주먹이 부러질 때까지 폭행을 이어가기도 했다.
한세린이 말했다.
“엄청 대놓고 움직이고 있어. 교주의 정신계열 마법인 것 같아. 레벨 30만 되어도 방어가 되기는 하는데…… 뇌를 녹여 버리는 게 좀 끔찍하네.”
3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들에게는 딱히 위험하지 않지만 비플레이어 혹은 저레벨 플레이어들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저주였다.
“최악인 건 치유술사의 디버프 무력화가 작동하지 않아.”
한세린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미간에 주름이 서렸다.
간만에 본다. 얘 지금 엄청 화났다.
“이 저주에 당한 사람들은 뇌가 파괴돼. 저주를 무력화시키더라도 사망하는 거지. 비플레이어를 상대로 특화된, 아주 질 나쁜 저주야.”
“그러게.”
블랙은 범우주 연합이고 그래도 나름 우주사회의 눈치를 보는 놈들인데.
왜 이렇게 극단적인 일을 벌였는지 모르겠다.
“교주도 지금 아주 급한 거지. 우주사회의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진행해야 할 어떤 것이 있겠지.”
“그게 뭔데?”
“둘 중 하나일 거 같은데, 머리가 말하는 것과 가슴이 말하는 게 다르네.”
내가 알던 절대군주 한세린은 무조건 ‘머리가 말하는 것’만 믿는 타입이었는데.
지금의 한세린은 조금 더 낭만적인 군주 같았다.
“머리가 말하는 건 뭔데?”
“이 수작을 통해 [산의 광인 군단]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같아. 화타의 도움 없이도 말이야.”
산의 광인 군단은 정말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면, 블랙은 어쩌면 지구 서버 전체를 지배하게 될 수도 있었다.
지구가 그렇게까지 매력적인 서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 서버를 통째로 먹는 건 수많은 연합들의 꿈이고 자랑거리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서버 내 거 #이 행성 내 거 같은 해시태그가 진짜 플렉스의 상징이기는 했으니까.
“그럼 가슴이 말하는 건?”
“너를 먹고 싶은 것 같아.”
“나를?”
나를 먹으려고 이런 짓을 벌인다고?
이건 한세린이 조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저주는 기체형태로 전이 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위력은 약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빠르게 살포할 수 있어. 살포지점을 파악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데.”
한세린은 허공에 가상의 지도를 생성시켰다.
예전의 한세린은 ‘나는 이제 길잡이가 아니라 군주야’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어서 길잡이 때의 능력을 거의 활용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의 한세린은 그때의 한세린보다 좀 더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살포 지점들을 선으로 연결하면 이렇게. 일정한 거리 공식을 지닌 점들로 이어져 있고, 태백산맥 방향으로 향하는 루트를 찾아낼 수 있어.”
지도에 점 몇 개를 이은 녹색 선이 생성되었다.
“다음 살포지점은 여기가 될 거고.”
때마침 뉴스에서는 또 다른 피해자들이 발생했다.
한세린이 짚은 포인트가 바로 이곳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이 산 쪽이겠지. 나는 이게 널 유인하고 있는 것 같아. 이쪽으로 와보라고. 내가 널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야.”
* * *
강원도 일대에 큰 혼란을 야기시킨 주동자인 그란델은 한 야산 위로 올라가, 여기저기 불타고 있는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마음에 드는군.”
폭력이 모든 것을 구원한다.
이것은 하나의 언령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걸 함께 외칠수록 그만큼 마법력이 강화된다.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폭력이 모든 것을 구원한다’라는 언령을 외우고 있는 중.
그란델은 이를 일컬어 ‘언령값’이 차고 있다고 표현했다.
“언령값이 곧 다 차겠어.”
본래는 천천히 스며들어 자연스레 언령값을 모으려고 했었다.
시간과 비용이 아주 많이 드는 방법이었다.
언령이라는 것은 언령을 외우는 사람이 그 언령을 진심으로 믿고 내뱉어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역시 뇌를 녹여 버리는 게 제일 빠르지.’
뇌를 모두 박살 내고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게 만드는 것.
폭력이 모든 것을 구원한다는 맹목적인 믿음만을 가지게 만드는 것.
이게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었다.
비난이야 좀 받긴 하겠지만 지구서버가 강대서버랑 이권으로 얽힌 서버도 아니고, 죽은 세피아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면 그만이었다.
그는 돌로 만든 제단 위에 세피아의 심장을 올려놓았다.
그 심장은 여전히 펄떡거리고 있었다.
그간 모아왔던 수많은 제물들을 공식에 맞추어 올려놓았다.
눈알, 간, 손가락 등. 대부분은 사람의 신체였다.
“이제부터, [산의 광인] 소환의식을 시작한다.”
장밋빛 미래가 그려졌다.
‘산의 광인 군단을 데리고, 김철수의 얼굴로 살아갈 것이야.’
우주를 얻은 것만큼 기쁠 것 같았다.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중얼거렸다.
“모두가 나를 흠모하겠지?”
강해진다. 멋있어진다.
이 뛰어난 두뇌로 모든 것을 해낼 것이다.
그간 자신을 혐오했던 여자들도, 이제는 자신을 우러러볼 것이 분명했다.
“이제는 내 세상이다!”
앞으로 자신의 것이 될 세상에 선포했다.
“2시간. 딱 2시간이면 된다.”
* * *
나는 약간 의심스러웠다.
‘되게 무방비로 있네?’
마치 이 장소가 들킬 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한세린이 작게 말했다.
“혼자 덮칠 거야?”
“글쎄. 일단 조금 더 지켜보고. 혹시 함정일 가능성은?”
“꽤 높지.”
나는 내 나름대로 영상을 녹화했다.
한세린이 함정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준 덕분에 영상에 긴장감을 살릴 수 있을 거 같았다.
원래 귀신영화도 막상 귀신이 나오는 순간보다, 귀신 나오기 직전이 더 긴장되는 법 아니겠는가.
“꽤 끔찍한 것들이 제단 위에 올려져 있네요. 정말 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것 같습니다.”
일단 최대한 자세히 찍었다.
심의에 걸릴 만한 것들은 편집자가 알아서 잘라줄 테니까.
그란델은 제단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튼 채 명상을 하고 있었다.
“빈틈투성이라 공격하기는 쉬울 것 같네요.”
나는 룰 브레이커를 들어 올렸다.
룰 브레이커가 웅웅-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짜릿한 손맛을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문득 미안해졌다.
‘아, 아직도 이름을 안 지어줬잖아?’
진짜 이름 지어줄게. 조금만 기다려.
마음속으로 룰 브레이커에게 사과했다.
이번 일만 마무리 지으면 정성을 담아 작명해 줘야지.
“일단 기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함정일 수 있으니 최대한 기척을 내지 않고 조심스레 접근하겠습니다.”
편집 포인트도 확실히 체크했다.
[*이 부분, 긴장감 넘치는 BGM 깔 것.]
내가 체크하지 않아도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만 어쨌든 메모는 남겼다.
수풀을 헤치고 조심조심 놈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놈은 나를 눈치채지 못한 느낌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자막으로 작성. 후에 목소리 넣어서 재편집. (목소리 넣을 부분은 *표시해서 자막으로 삽입하겠음)]
맨날 암살 당하는 입장에 있다가 암살하려는 입장에 놓이니 이건 또 이것 나름대로 쫄깃하고 즐거운 맛이 있었다.
빠각 교향곡을 연주하기 너무 좋은 뒤통수가 보였다.
[*분명히 함정이 있을 텐데.]
중계자의 시야로 꽤 구석구석 살펴봤지만 함정의 흔적은 없었다.
이러니 오히려 더 쫄깃했다.
‘일단 부딪쳐보는 수밖에 없겠다.’
나는 살금살금 다가가 놈의 뒤통수를 향해 빠각 교향곡을 연주했다.
룰 브레이커가 그란델의 뒤통수를 세차게 내리쳤다.
빠각! 꽤 요란한 격타음.
평소보다 훨씬 찰진 손맛이 느껴졌다.
정말 제대로 된 빠각이었다.
‘오…… 좋다.’
망치가 저 깊은 우주까지 뚫고 들어간 것 같은 이 묘한 감각에 나는 무척 설렐 수밖에 없었다.
풀썩.
그란델의 몸이 쓰러졌다.
‘응?’
그란델은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그럴 리는 없을 것이었다.
음산한 BGM도 깔 거고 잔뜩 긴장하며 연출했는데 이런 결과로 이어지면 그다지 좋은 영상이 못 된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애초에 코믹 연출로 노선을 바꿔야 할 거 같은데…… 또 일반인 피해자가 너무 많이 발생해서 코믹 연출도 좀 힘들 거 같고.
‘에이 근데 말이 안 되지. 이건 분명 함정일 거야.’
함정이어야만 했다.
‘어?’
줄줄 흘러내리던 그란델의 피가 역행하여 그란델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축 늘어졌던 그란델의 손끝이 미세하게 꿈틀대고 있었다.
‘역시 함정이었다!’
조금 기뻐졌다.
나는 황급히 세 걸음 정도 물러서서 다급하게 말했다.
“비열한 놈. 함정이었구나……!”
좋아. 꽤 당황한 것처럼 보였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