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15화 (215/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15화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고 여기저기서 뇌전이 떨어져 내렸다.

흡사 인류 재앙의 날을 맞닥뜨린 것만 같은 저 비주얼은 아무래도 부럽다.

‘뇌룡 녀석.’

굳이 연출하지 않아도 알아서 저런 걸 보여줄 수 있다니.

저런 게 천부적인 재능 아니겠는가.

‘뭐, 그래도 저런 멋있고 비장한 연출 원 툴이니까.’

딱히 경쟁심을 느끼는 건 아니다, 진짜다.

아무튼 뇌룡은 무척 불쾌한 듯했다.

-다시는 이자를 내 등에 태우지 않으리라.

분위기를 보아하니 테르서박은 전기구이가 될 뻔했다.

-그대의 친우라기에 살려두었다.

“우웨에에엑!”

테르서박은 뇌룡의 등 위에서 여러 차례 토악질했다.

뇌룡은 강력한 뇌전을 피워올려 토사물을 흔적도 없이 태워버렸다.

-호수에 몸을 담그고 씻어야겠다. 나는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지.

회귀 전에는 둘이 사이좋았었는데 지금 뇌룡은 테르서박을 혐오하고 있었다.

테르서박 입장에서는 좀 아쉬울 거 같다.

테르서박은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차진솔보고 이거 치료할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못 한단다.

“너는?”

“저, 저도 멀미는…….”

빠각!

화타는 조금 억울한 표정이었다.

조금 더 자극하면 폭발할 거 같아서 톡 건드려봤다.

“왜? 쟤는 안 때리고 너만 때려서 억울하냐?”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빠각!

룰 브레이커의 손맛이 참 일품이란 말이야.

힘 조절을 잘못했는지 화타는 기절하고 말았다.

나는 기절한 화타를 향해 가르침을 내려주었다.

“얘는 치유술사고 너는 치료술사잖아. 얘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너는 할 수 있어야 해.”

이런 가르침을 겨우 2빠각에 내려주었으니 얘는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예전에는 얘가 돈맛을 많이 보고 나태해졌었잖아?

그래서 회귀 전에는 탈모를 치료하지는 못했었는데, 아예 나태해질 여유가 없도록 빡세게 굴리면 결국 탈모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무려 9성급 닥터 플레이어인데.

‘흐음. 열심히 굴려야겠네.’

잘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지도?

한세린에게 진짜 열심히 굴리라고 부탁해야겠다.

아무튼 테르서박은 겨우겨우 속을 진정시켰고 갑자기 울먹거리면서 내게 무언가를 일러바치기 시작했다.

“아주 나쁜 놈들이었어. 우리 스왈로우 씨를 괴롭히고, 때리고, 묶고, 실험하고, 괴롭히고, 먹이고!”

“진정하고 말해.”

테르서박은 흥분을 좀처럼 가라앉히지 못했다.

저런 흥분을 가라앉히려면 역시 빠각빠각 또빠각이 최고인 것 같아서 룰 브레이커를 슬며시 들어 올리고 잠시 고민했더니 때마침 테르서박은 이성을 되찾았다.

또박또박 정확하게 말했다.

“우리 스왈로우 씨는 원래 평화로운 하천에 살고 있던 착하고 순수한 청년이었어.”

“…….”

“플랑크톤과 작은 새우를 좋아하는, 소소하고 행복한 미식가였지.”

얘는 교감적으로 미친놈인가 보다.

이상하게 내 주변에는 미친놈들이 몰려드는 거 같단 말이야.

“따사롭고 평온한 나날을 무너뜨린 건 블랙의 수장, 샴쌍둥이였대.”

“그리고?”

“스왈로우 씨에게 억지로 이상한 권능을 주입시켰어.”

매켄드라의 종이병정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고 했다.

말 그대로 ‘삼키는 민어’를 만들어내기 위한 시설.

종이병정의 약점을 파악하는 것은 그냥 부가적인 실험이라나 뭐라나.

“그게 바로 무엇이든 [삼키는 권능]이었지.”

이로써 확실해졌다.

교주가 곧 세피아-그란델이다.

이거 한세린이 말한 대로 다 흘러가면 진짜 조회수 대박 날 거 같다.

나는 황급히 왕유미에게 연락해서 한세린의 예측영상을 비공개로 올려달라고 얘기했다.

‘진짜 그란델이 세피아를 배신할까?’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내 영상은 성지가 될 텐데.

조회수 대박 날 거 같은 예감이 든다.

* * *

우리는 나름대로 정리 영상을 다시 만들었다.

제발 성지가 되길 바라면서.

“자. 정리해 보자. 세피아-그란델은 삼키는 권능을 이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어. 덕분에 [삼키는 민어]를 만들어냈고 말이야.”

“…….”

“하지만 마구잡이로 그 권능을 이식하기는 어려울 거야. [삼키는 민어]가 겨우 한 마리밖에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증거야. 삼키는 민어가 더 필요했다면 또 만들면 되었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어.”

나는 잠자코 한세린의 말을 들었다.

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서 보기 참 좋았다.

역시 얘는 군주 역할을 수행할 때 가장 빛난다.

‘근데 왜 눈을 피하지?’

예전에는 자신만만하고 의기양양한 태도로 나를 바라보며 ‘내가 이 정도다!’를 열심히 주장했던 녀석인데.

왜 지금은 슬며시 눈을 피하는 건지 모르겠다.

혹시 자기 의견에 확신이 없나?

‘그건 아닌 거 같은데…….’

한세린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동료로서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쟤는 지금 확신을 가지고 얘기하고 있다.

쟤가 저렇게 확정적으로 얘기한 것들 중 틀린 것은 거의 없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얘처럼 딱히 뛰어난 구석이 없는 애가 화타처럼 뛰어난 직업으로 각성한 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닐 거야.”

그 말에 화타의 몸이 움찔했지만 딱히 반항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교주가 이식해 줬다고 보는 편이 훨씬 타당하지.”

한세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근데 그란델은 책사잖아. 너를 노리고 있을지도 몰라. 비약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란델이 너를 여기로 유인한 건 아닐지 걱정도 되고.”

“나를 노려? 나를 유인해?”

히죽,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왜 신나 하는 거 같지?”

아차.

내가 또 예전 습관 못 버리고 이러고 있다.

“엘튜브각이라서?”

“……아.”

내가 신나는 건 엘튜브각이 잡혀서 그런 거다.

진짜다.

나는 ‘우리 스왈로우 씨는 참 자상하고 다정해’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저, 교감적으로 미친놈과는 다르니까.

절대 쫄깃한 습격이 즐거운 거다. 진짜다.

‘언제 날 노릴까?’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 *

그란델의 목이 주욱 늘어났다.

세피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뭐하는 거야? 정신 사납게.”

“잠을 잘못 잤는지 목이 아파. 스트레칭 좀 하자.”

그란델은 하품하듯 입을 크게 벌렸다.

그의 입이 쭈욱- 벌어졌다.

마치, 삼키는 민어가 그랬던 것처럼.

꽈득!

세피아의 머리통을 집어삼키고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더럽게 맛없네.”

세피아를 먹어치우는 데 걸린 시간은 약 3분가량.

그란델은 냅킨을 여러 장 뽑아 피를 닦아냈다.

“흐흐흐.”

그란델은 책사였다.

오랜 시간 세피아와 함께하며 신뢰를 얻었고 나름대로 계략을 꾸몄다.

“어쨌든 잘 먹었습니다.”

꺼억-

하고 트림했다.

차진혁의 회귀 전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란델은 상당히 신중한 타입이었고 아주 오랫동안 몸을 사리며 검은 속내를 감춰왔으니까.

차진혁이 회귀할 때까지 그는 계속해서 세피아의 비위를 맞춰주며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제는 얘기가 달라졌다.

김철수라는 거대한 변수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김철수를 집어삼켜야 해.’

그란델이 본 김철수는 최고의 재능을 지닌 자였다.

모든 방면에 두루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빛나는 외모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 얼굴은 내 것이어야 한다.’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것을.

“김철수의 성장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지.”

강해지는 속도가 기이할 정도로 빨랐고, 유명세도 너무 빠르게 얻고 있었다.

이대로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는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거물이 되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지금 욕심을 낼 수밖에 없었고,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세피아를 집어삼켜야만 했다.

몇 분 뒤, 그란델은 우에에엑! 하고 무언가를 게워냈다.

그것은 펄떡거리는 심장이었다.

“화타가 없어도 상관없다.”

화타는 세피아를 속이기 위한 연막이었다.

세피아의 심장이 있으면 ‘산의 광인 군단’을 완성할 수 있으니까.

그놈의 고질적인 심장병이 없는, 완성형의 산의 광인을 소환해 낼 수 있을 테니까!

“김철수. 너는 내가 반드시 집어삼켜 주마.”

* * *

홈마로 각성한 강은우는 무척 기뻤다.

“이 사진도 A컷, 이것도 A컷.”

자기가 찍은 사진들을 기분 좋게 살펴보던 강은우는 한 사진을 보며 또 감탄했다.

이건 거의 예술이었다.

“이건 S컷.”

그것은 한세린과 차진혁의 대화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어쩌면 그란델이 너를 여기로 유인한 건 아닐지 걱정도 되고.”

그 말을 들은 차진혁의 모습은 마치 아침햇살과도 같았다.

새벽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온 땅을 밝히는 따사로운 햇살.

히죽 웃은 이후, 입꼬리가 내려오던 그때 그 찰나를, 강은우는 놓치지 않았다.

‘이 표정은 진짜 아름답다.’

분위기, 시선, 콧날에 턱선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S컷이었다.

강은우는 차진혁의 눈에 담긴 다정함을 읽어냈다.

정확히 말하면 ‘한세린의 성장을 보며 느낀 뿌듯함’이었지만, 어쨌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한세린을 바라보는 표정은 분명했다.

‘한세린 님은 컷에서 빼고.’

한세린을 저런 눈으로 바라보는 김철수?

전 우주의 철수랜드가 봉기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이 시선은 진솔 씨한테 향하는 걸로 해야겠다.’

사진이 공개되었고 강은우의 레벨이 급속도로 상승했다.

-다음 생애는 차진솔로 태어날게요ㅠㅠㅠ

└저도요 ㅠㅠㅠㅠㅠㅠㅠ그저 부럽 ㅠㅠ

└우리 엄마아들과는 종이 다른 듯.

└막상 동생은 무덤덤한듯?

└평소에도 음청 다정한듯. 자유의 성녀한테는 저 은혜로움이 일상인 거지. 저 눈빛에 녹아버릴 거 같다ㅜㅜ

└지금이라도 김철수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면 안 될까요?

각종 포털에는 ‘김철수 동생되는 법’과 관련된 키워드가 한동안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란델도 김철수의 엔스타 계정에서 그 사진을 봤다.

‘재수없게도 잘생겼군.’

그 또한 잡아먹히기 전에 엔스타 계정이 있었다.

팔로워는 수십 명에 불과했고, 좋아요나 댓글수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김철수의 계정은 본인이 직접 관리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팔로워가 벌써 억 단위에, 좋아요와 댓글 숫자는 수십, 수만이었다.

김철수의 삶을 상상하며 흐흐 웃었다.

‘반드시 먹어 치운다!’

사진의 단서들을 조합하면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김철수를 삼키려면 서울이 아니라 강원도에서 하는 것이 좋았다.

그란델이 킥킥 웃었다.

‘내가 일부러 너를 끌어냈다는 건 몰랐겠지.’

아직까지 흑장미 연합보다는 블랙이 한 수 위였다.

송하영이 자신의 뒤를 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일부러 몇몇 정보를 흘려주었다.

김철수가 결국 냄새를 맡고 강원도로 찾아오게 하게 위하여.

아무래도 김철수를 삼키기 위해서는 수호수가 있는 서울보다 강원도가 훨씬 편했으니까 말이다.

중간에 화타를 빼앗긴 건 예상하지 못했으나,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의 생각대로 되었다.

‘대계를 시작하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