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14화
송하영은 마음이 무척 심란했다.
‘내 긴고아를 빼낸다고?’
긴고아는 그녀를 속박하는 서버급 아이템.
예전에는 이걸 빼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이것만 없었더라면 당장에라도 김철수의 뒤통수를 치고서 자유의 몸이 되었을 것이었다.
적어도, 몇 달 전의 송하영이라면 그랬다.
하지만 히트호른에서 종이술사 매켄드라와 최후의 일전을 벌일 때에 그녀의 생각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약속했다. 나와 함께하는 전우들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그것은 엄숙한 서약이자 나의 다짐이었다.”
“오늘 나는 그 맹세를 지켜야만 했다.”
그날, 김철수의 모습은 송하영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그간 자신을 옭매고 괴롭혔던 긴고아에게 고마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만약 긴고아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김철수를 진작에 배신했겠지.’
그랬다면 김철수와 지금의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긴고아가 있었기에 지금이 있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긴고아는 자신과 김철수를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그게 특별한 결속감을 주었다.
이게 사라지면 김철수와도 멀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김철수는 오른 주먹으로 왼 손바닥을 탁! 치면서 말했다.
“아! 알겠다! 네가 알아내지 못한 걸 내가 알아내서 자존심이 상한 거냐?”
“……그래.”
아냐, 그런 게 아니라고!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내 이용가치가 이제 없어? 너 지금 잘나간다고 나 무시하는 거야?’
그렇게 말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마음을 다스렸다.
그녀 스스로도 이게 억지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긴고아를 화타에게 씌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김철수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송하영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송하영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명분을 내밀었다.
“긴고아야말로 내 성장의 원동력이었어.”
“……응?”
“나는 무조건 널 배신하고! 뒤통수도 치고! 네가 가진 무구들과 능력들을 훔치고! 그래서 떵떵거리면서 살고 싶었단 말이야! 근데 이놈의 빌어먹을 긴고아가 그걸 다 못하게 막아내고 있어. 나는 이 긴고아의 능력으로부터 최대한 벗어나기 위해 내 능력을 갈고닦는 중이고, 이게 있어야만! 나는 정말 절실하고 간절하게 성장할 수 있어!”
물론 시스템상 종신계약서를 쓰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고!
‘어? 너 어차피 종신계약서 썼잖아?’ 하고 반박할까 봐 괜히 말하지는 않았다.
“어…… 음,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네.”
사실 차진혁도 지금 조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얘가 고분고분 말을 안 들으면 그냥 긴고주 외우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왠지 긴고주를 외우고 싶지 않았다.
대신 다른 협상안을 내밀었다.
“그럼 긴고주를 외울 때보다 더 강하게 널 패면 되지 않을까?”
“……뭐?”
거기까지 말한 차진혁은 인상을 찡그렸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별로 달가운 방법은 아니었다.
‘폭력만큼 효율적이고 편한 수단이 없는데…… 왜 이렇게 싫지?’
아무래도 좀 이상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근데 그러고 싶지가 않네.”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맞잖아. 긴고주를 외우는 것보다 더 아프게 패면 되는 거잖아.”
“…….”
“대신 다음에 긴고아처럼 강력한 속박도구 또 나오면 꼭 너한테 쓰도록 할게.”
송하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치상, 긴고아를 넘겨주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맹세해. 그때처럼.”
“맹세까지 하라고?”
“어. 진지하게 맹세해. 히트호른에서 맹세했던 그때처럼.”
“…….”
차진혁은 이게 맞나 싶다가도 한세린이 워낙 강경해서 일단 약속은 했다.
“그래. 제2의 긴고아가 나오면 꼭 너한테 쓸게.”
둘은 엄숙하게,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차진솔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조금 이상한 거 같은데…… 저게 저렇게 맹세할 일이라고?’
한쪽에 너무 불리하고 나쁜 아이템을 채우는 건데, 불이익을 받는 당사자가 약속하라며 저렇게 난리를 피울 일인가? 싶었다.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됐다.
‘역시 나는 아직 부족한가 보다.’
잘은 모르겠지만 공부가 더 필요할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슬몃 궁금해지기도 했다.
‘긴고아가 그렇게 좋은 건가?’
약간 갖고 싶어졌다.
* * *
“됐……다! 룰 브레이커가 해냈네.”
나는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역시 룰 브레이커는 날 배신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긴고아에 걸려 있던 설정들을 부수는 데 성공했다.
긴고아를 손에 든 송하영이 두 눈을 끔뻑거리며 말했다.
“이 정도면 룰 브레이커가 아니라 룰 체인저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 참고로 룰 브레이커의 설명은 좀 바뀐 상태다.
원래는 ‘법칙을 파괴하는 무구’라는 간략한 설명만 있었는데 부연 설명이 붙었다.
──────────
[룰 브레이커 (성장) (귀속)]
법칙을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정립하는 무구.
──────────
이 룰 브레이커와 공명하며 정성을 다해 긴고아를 두드렸더니 긴고아에 큰 변화가 생겼다.
──────────
[긴고아 (대상 : -)]
등급 : 서버지정
특별 주문, ‘긴고주’를 발동할 수 있습니다.
긴고아를 착용한 대상은 긴고주에 의하여, 극복할 수 없는 극도의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룰 브레이커에 의하여 귀속 아이템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주인 : 김철수)
*룰 브레이커에 의하여 대여 기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대여자 : -)
──────────
대여기능이 무엇인가 살펴봤다.
말 그대로 누군가에게 대여해 줄 수 있었는데 주인이 원한다면 즉시 회수가 가능한 추가옵션이 생겼다.
‘와, 너무 좋네.’
룰 브레이커가 내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룰 브레이커가 기분 좋은지 웅웅- 대며 공명음을 내고 있었다.
무구와 함께 호흡하며 같은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이 순간, 이거야말로 진짜 극도의 쾌락이었다.
‘그러고 보니 룰 브레이커한테 이름도 안 지어줬네.’
이건 좀 미안한 부분이었다.
삼키는 민어한테 스왈로우 씨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좀 웃겼는데, 이제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역시 사람이 경험해 봐야 안다니까.
좋은 이름 생각해서 지어줘야겠다.
마침 한세린이 문을 열고 나왔다.
방문을 열자 뜨거운 열기가 화악- 뿜어져 나왔다.
저 안에서 상당히 열정적인 플레이를 펼친 모양이었다.
내 빠각 빠각 또 빠각에 버금가는 장엄한 선율이 흘러나왔었는데, 얘 플레이 스타일이 많이 과격해진 거 같다.
한세린은 방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화타를 가리켰다.
꽤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있었다.
“쟤가 레벨 120이 되면 심장병을 치료하는 어떤 스킬을 얻을 수 있다고 해.”
“무슨 심장병?”
“소환해 낸 산의 광인에게 고질적인 심장병이 있는 모양이야. 그걸 치료해 내기 위해 화타를 키워낸 거야.”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쟤를 키워냈는지가 중요한데 말이야.”
“어.”
“교주라는 자가 [삼키는 권능]을 가지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 상대의 능력을 삼킨 뒤 다른 대상에 이식하는 경지에 이르렀어. 그 결과가 강일남 형제와 화타고.”
“삼키는 권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봐.”
나는 알지만 우리 시청자들은 잘 모를 수도 있으니까.
얘도 내 의도를 읽었는지 최대한 쉽게 풀어서 말해주었다.
“상대를 포식하고 상대의 힘이나 자아를 빼앗는 힘. 근데 이 비슷한 능력을 어디선가 봤었지?”
어디서 봤더라.
열심히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어차피 한세린이 가르쳐줄 테니까.
나는 딱히 대답하지 않았지만 알아서 말을 잘 이어갔다.
“맞아. 스왈로우 씨에게 이식된 능력과 비슷해.”
“스왈로우 씨는 그냥 입 크게 벌리고 삼키는 거밖에 못하던데?”
“스왈로우 씨는 미완성 실험체였으니까. 자기 권능을 전부 이식한 게 아니야.”
“…….”
“스왈로우 씨는 비밀 시설에 갇혀 있었다고 했지?”
“어. 그랬지.”
“그건 아마도 교주가 [삼키는 권능]을 다른 자에게 이식하기 위한 실험이었을 거야. 대외적으로는 종이병정의 약점을 보완하는 걸로 포장했지만.”
한세린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교주는 틀림없이 세피아-그란델이야. 삼키는 권능을 계속해서 연구해 왔고 그걸 통해 일을 꾸며왔어.”
그리고 중요한 점을 하나 짚었다.
“좀 알아보니까 원래 본체는 세피아라고 해. 그란델은 수십 년 전에 잡아먹은 대상이고. 그란델의 머리가 워낙 좋아서 샴쌍둥이 형식으로 끌어내서 책사로 부려먹고 있나 봐.”
이제 나도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그 연구는 사실 세피아가 아니라 그란델이 원했던 거겠네?”
“맞아. 내 생각이 맞다면, 그란델은 삼키는 권능을 연구하고 이식하고 싶어 했어.”
사실 본체인 세피아 입장에서는 굳이 삼키는 권능을 연구할 필요가 없었다.
원래부터 갖고 있는 힘이니까.
“그란델은 자기 스스로에게 삼키는 권능을 이식하고 싶었던 거야. 본체인 세피아로부터 그 권능을 빼앗아서.”
“…….”
“내 예상이 맞다면, 그란델이 본체인 세피아를 배신하고 잡아먹을 거야.”
와, 예고편 제대로 뽑았다.
이 일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조회수 대박 날 거 같다.
* * *
한세린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진짜? 긴고아를 빌릴 수 있다고? 진짜 잘 됐다!”
[‘긴고아’를 대여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침대에 쓰러져 편안히 자고 있는(?) 화타의 머리에 긴고아를 씌웠다.
[‘긴고아’를 대여하였습니다. 대여자: 패스파인더]
[각성명, ‘물욕의 화신’에게 ‘긴고아’가 적용되었습니다.]
[‘긴고주’를 외울 수 있습니다.]
아이템은 얻자마자 쓰는 것이 국룰이지.
한세린은 히죽 웃으며 긴고주를 외워보았다.
“크아아아아악!”
기절했던 화타가 벌떡 일어섰다.
극심한 고통을 느꼈으나 눈에 반항기는 없었다.
한세린은 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격렬하게 반항할 줄 알았는데 안 하네.”
차진혁도 화타의 고분고분해진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내가 했으며 저렇게까지 고분고분하게 만들지는 못했을 텐데.
진심을 담아 칭찬해 줬다.
“네가 진짜 잘 다스렸나 보다.”
“……고마워. 아직 많이 부족해.”
한세린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 사이, 차진혁이 말했다.
“앞으로 너는 MK재단의 의료팀에서 근무하게 될 거야.”
“제, 제가요?”
긴고아의 아주 좋은 점은 후유증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긴고주를 외울 때는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지만 긴고주가 끝나면 다시 멀쩡해진다.
화타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했다.
“어. 부팀장으로 근무하게 될 거야. 거기서 정의로운 의술을 많이 펼쳐봐.”
“……부팀장이면…….”
“월급조건이나 그런 건 팀장이랑 협의하고.”
“팀장이라면……?”
“여기. 한세린.”
“…….”
사실 한세린은 명목상 팀장이었다.
할 일은 딱히 없었고 화타를 정기적으로 교육하는 일이었다.
일단 제대로 된 의료팀을 꾸리기 전까지 화타의 단물을 쪽쪽 빨아먹겠다고 말해 차진혁을 기쁘게 만들었다.
여러모로 한세린에게 맡기기를 잘한 것 같았다.
이후, 차진혁은 테르서박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왈로우 씨랑 얘기 좀 했냐?”
-안 그래도 얘기를 좀 하고 싶었던 참이었다. 내가 스왈로우 씨랑 깊은 대화를 나눴는데 말이야.
전화를 하다가 갑자기 열불을 냈다.
이 분노를 감출 수 없으니 직접 와서 얘기를 하고 싶다나 뭐라나.
-지금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