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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11화 (211/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11화

플레이 도중 입은 부상이나 저주나 독을 치료하는 것은 ‘치유술사’다.

차진솔 같은 힐러들을 뭉뚱그려 치유술사라고 부른다.

플레이 때문이 아닌 이유로 발생한 질병을 치료하는 사람을 ‘치료술사’라고 부르는데, 치유니 치료니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서 보통은 의사 플레이어라고 부른다.

의사 플레이어는 기존의 의사들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 인력 중 하나였지만 너무 비싼 몸값 때문에 일반인들은 의사 플레이어를 만나기가 어려웠다.

‘그중에서도 화타는 진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얘는 대기업 총수나 고위급 정부인사. 혹은 최상위 랭커들만을 상대하는 의사 플레이어였다.

‘선민사상에 찌들어 있던 새끼였는데…….’

쥐어박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한 10개쯤 된다.

화타로 각성하기 전 얘는 6년 차 공시생이었다.

그 시절, 한 친구한테 300만 원을 빌린 후 연락을 차단했다나 뭐라나.

화타가 유명해진 이후 돈을 빌려준 그 친구가 이 사건을 공론화시켰더니 화타는 불같이 화를 냈었다.

-“300만 원? 하, 그거 내 하루 밥값밖에 안 되는데, 겨우 그걸 가지고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굴어? 먹고 떨어져, 이 그지새끼야.”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꽤 욕을 많이 먹기도 했는데 화타는 강철같은 멘탈을 보여주었다.

엔스타 라방 내용도 생각이 나네.

-“어차피 제 몫도 못하는 병X들이 지X하는 건 신경도 안 써. 맘껏 짖으라 해. 나는 늬들 평생 벌 돈을 하루 만에 벌고 있으니까. 루저 새끼들아.”

대다수의 평범한 보통 사람들을 일컬어 제 몫도 못하는 병X 혹은 루저들이라고 표현하는 놈이었다.

국정원 소속의 우리 팀원들도 화타에게 치료를 부탁할 일이 가끔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얼마나 개무시를 당했는지 모른다.

-“국정원장이 특별히 부탁하니까 치료해 주는 겁니다.”

혼잣말로 ‘내가 일개 공무원 따위를 상대할 신분이 아닌데’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그때가 아마 한세린의 어머니가 아팠던 때였던 거 같다.

-“그쪽이 절대군주?”

당시 한세린은 절대군주로 전직을 한 상태였다.

군주계열에서는 단연코 한국맵 1위였으나 공무원 신분이라서 얼마나 개무시를 당했는지 모른다.

솔직히 우리가 명성에 비해서 돈은 별로 없었으니까.

걔한테 있어서 돈 없는 사람은 그냥 노예였다.

진짜 패버릴까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참았다.

국가 차원에서 지원을 받는 대신 감수해야 할 것들이 꽤 있었다.

-“예쁘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진짜네. 오늘 밤, 시간 좀 있어요? 근사한 곳에서 저녁 먹고 술 한잔합시다. 내가 어머니는 꼭 고쳐줄 테니까.”

이어지는 말은 싸구려 삼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말이었다.

어머니를 살리고 싶다면 어쩌고저쩌고 불쾌한 말을 해댔는데, 만약 한세린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그때 나는 걔 머리를 깨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놈에 대해서 까먹고 있었는데.’

막상 떠올리자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난 이제 공무원 아니잖나.

힐링 콘텐츠를 진행하기 너무 좋을 것 같다.

엘리의 불꽃보다 더 따뜻한 힐링을 할 수 있겠다.

* * *

나는 감성도 다룰 줄 아는 엘튜버로 성장하고 있으니, 단순히 효율만 따지면 안 됐다.

효율만 따지면 뇌룡을 타고 날아가는 게 가장 편하고 빠르겠지만 오늘은 기차를 탔다.

기차 너머의 평화로운 풍경 한 컷을 건지기 위해서라도 기차를 이용필요가 있었다.

내 옆에는 송하영이 앉아 있고, 뒷자리에는 잔뜩 상기된 표정의 강은우가 있었다.

“참 좋네.”

“응?”

생각해 보니 공무원 시절보다 일이 너무 편해졌다.

그때는 뭐 하나 하려고만 하면 뭔 놈의 보고를 그렇게 올려대야 하는지.

이 보고 올리면 저거 올리라 그러고, 이거 하면 또 저거 하라 그러고, 아무튼 일 복잡하게 하는 건 공무원 세계가 최고시다.

쉬운 일도 어렵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집단.

아무튼 그때는 제약이 진짜 많았는데 이제는 그냥 송하영한테 말만 하면 어지간한 건 다 찾아준다.

“화타를 이렇게 쉽게 찾을 줄이야.”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어. 원주 근방에서 이미 꽤 유명세를 떨치고 있더라고.”

아직은 화타가 아주 유명해지기 전.

이런저런 사람들을 치료해 주면서 명성을 쌓아가는 단계였다.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사이비 취급 한다나 뭐라나.

얘는 원주에 한 ‘치료실’을 만들어 영업 중이었다.

“송하영,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간단한 결계 같은 거 칠 수 있냐?”

“초보급 플레이어나 일반인들이 못 들어오게 하는 정도는 가능해.”

“그 정도면 돼.”

나는 화타의 치료실로 들어갔다.

간호사복인지 병원복인지 아무튼 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우릴 맞이했다.

제법 병원과 비슷하게 꾸며놓은 곳이었다.

“예약하셨습니까?”

“아뇨.”

“어쩌죠, 저희는 예약 손님만 받고 있는데요.”

“지금 예약하려고 합니다.”

“소, 손님!”

나는 성큼성큼 걸어 ‘진료실’이라고 쓰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좀 앳되기는 하지만 화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치료를 위해서입니다. 일단 옷을 벗고 여기 눕도록 하세요.”

“오, 옷을 벗으란 말인가요?”

당황한 여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치료하기 싫어요? 시한부 판정받았다면서? 싫으면 관두고.”

“자, 잠깐만요.”

와 진짜. 예나 지금이나 진짜 한결같구나.

간호사가 내게 달려왔다.

말이 좋아 간호사지 사실은 암살자 계열의 플레이어였다.

호위 겸 청소부 겸 간호사 겸 고용해놓은 것 같다.

“가만히 있을 때는 일반인이지만.”

벽면 그림자에 스며들었다.

저러면 내가 당황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 콘텐츠의 컨셉은 힐링이니까, 힐링 콘텐츠답게 나래이션하듯 천천히 말했다.

“암살자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요?”

나도 모르게 방긋 웃었다.

룰 브레이커를 휘둘렀다.

“조신한 망치.”

빠각!

소리와 함께 암살자가 고꾸라졌다.

“저와 함께하게 된 반려무구는 참으로 단아합니다. 손맛이 일품이네요.”

암살자는 게거품을 물고 기절한 상태.

죽일까 하다가 죽이지는 않았다.

이제 나는 미친놈이 아니고,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감성 엘튜버니까.

사실 어지간하면 죽이지는 말라는 왕유미의 부탁도 있었고 말이다.

찰칵, 찰칵,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계속 터졌다.

홈마 겸 아이돌로 각성한 강은우는 이미 셔터를 300번쯤 누른 거 같다.

쟤도 쟤 나름대로 치열하게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는 치료실의 문을 활짝 열었다.

[LV114/물욕의화신/화타/스킬/100명을 치료하다]

“누, 누구냐!”

화타는 소리를 질렀고, 안에 있던 여자는 가슴팍을 가린 채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어우, 비명은 내가 지르고 싶다.

힐링 컨셉 감성 영상인데 노딱(*노란 딱지) 붙으면 큰일이지.

중계상점에서 커다란 천 하나를 사서 여자에게 던져주었다.

보온 기능 있는 좋은 아이템이다.

“일단 이거 덮고 있어요.”

그리고 화타, 아니, 물욕의 화신에게 다가갔다.

예전에는 그냥 화타라고 불렸어서 각성명을 몰랐었다.

물욕의 화신이라. 진짜 지 같은 각성명이네.

“야.”

얘는 책상 밑의 버튼은 연달아 눌러대고 있었다.

암살자를 호출하는 버튼 같다.

“호위하는 데 암살자를 쓰면 어떡하냐?”

굳이 따지자면 암살자는 공격하는 역할이다.

보호하는 역할에 암살자를 고용한 걸 보면 얘가 얼마나 플레이에 대한 개념과 이해도가 낮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누, 누구냐!”

“네가 물욕의 화신이냐?”

얘 앞에 섰다.

나의 반려 무구, 룰 브레이커가 따사롭게 애원하고 있었다.

나에게 짜릿한 손맛을 허락하여 달라고.

‘딱히 오디오는 신경 안 써도 되겠지?’

어차피 이 부분은 다 편집으로 덜어낼 거니까.

우리 유능한 편집자가 알아서 다 해줄 거다.

“나, 나를 어떻게 알고 있지? 누, 누구냐!”

“나? 김철수.”

“그, 그게 누군데.”

와, 김철수를 모른다고?

솔직히 모든 사람이 다 날 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쯤 되니 좀 자존심이 상하긴 했다.

얘가 나이가 엄청 많은 것도 아니고 엘튜브 열심히 볼 텐데 나를 모른다니.

‘아직 부족하구나.’

부족한 마음을 담아 룰 브레이커를 휘둘렀다.

“그리고 제 망치는 겸손하죠.”

빠각!

오, 이 손맛.

깨달음을 얻기 이전의 나와 깨달음을 얻은 이후의 나는 완전히 달랐다.

룰 브레이커의 찰진 격타음이 내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예전의 빠각! 소리가 리코더였다면, 지금의 빠각! 소리는 오케스트라였다.

“으아아악!”

힘 조절을 아주 잘한 탓에 머리가 깨지지도 않았는데 왜 저렇게 크게 비명을 지르는지 모르겠다.

아, 근데 이 사람은 민간인이니까 여기서 나가게 해줘야겠다.

“강은우. 이 사람 좀 부축해서 잠깐 밖에서 기다려.”

강은우는 대포 알같은 카메라로 날 촬영하고 있다가 찔끔 놀랐다.

카메라에 엄청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였는데 저 집중력을 깨뜨려서 좀 미안하기도 했다.

“뭐해? 얼른.”

“아, 알았어요.”

뭔가 아쉽다는 듯 이쪽을 바라봤다가 셔터를 몇 번 더 눌렀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니까 진짜 보기 좋네.

어쨌든 강은우가 여자를 데리고 나갔고 이후에는 장엄하고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시간이었다.

빠각! 빠각! 빠각!

가장 중요한 건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룰 브레이커는 나의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건지, 내 의지와 공명하며 스스로의 살상력을 크게 낮추었다.

‘와, 이게 된다고?’

무구와 함께 호흡하는 이 기분.

한 몸이 되어 공명하는 이 기분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 같다.

검왕 시절의 경지를 뛰어넘은 것만 같다.

“크아아악!”

그 즈음해서 차진솔이 들어왔다.

좋아, 이제 조금 더 안심하고 팰 수 있겠다.

“내, 내가 뭘 잘못 했다고!”

“누가 더 잘못해서 때린대?”

“나,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힐링 콘텐츠 제작 중이야. 협조해라.”

“뭐, 뭔놈의 힐링, 크아아악!”

유능한 치유술사가 합류했으니 좀 더 다채로운 선율을 연주해도 되겠지.

김철수의 메인 테마 ‘빠각빠각 또 빠각’ 2막이 시작되었다.

관객이 된 차진솔도 내가 연주하는 이 선율에 꽤 감동한 것 같았다.

정성을 다해 힐링하며 얘를 살려주면서 내 단아한 망치질을 감상했다.

“아름…… 다워.”

내 동생이지만 참 볼 줄 아는 녀석인 것 같다.

예술과 힐링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가 무척 높았다.

‘여러모로 신이 나네.’

절대, 절대, 절대로, 얘를 패서 신나는 게…… 맞다.

공무원 안 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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