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10화
“삐졌습니까?”
“안 삐졌네!”
“삐진 거 같은데요.”
“누가 이런 사소한 걸로 삐진단 말인가!”
다리를 꼬고 앉아 앙칼진(?) 팔짱을 끼고 있는 최갑수 영감님은 누가 봐도 삐진 모양새였다.
그에 반해 미셸장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엄청난 승리감을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게 뭐라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최갑수 영감님이 억울하다는 듯 물었다.
“어째서 그 이상한 이름이란 말인가?”
“그야…….”
VIP들의 속마음을 읽어냈다고 말하면 기분 나쁘려나?
솔직히 말하려다가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멋있는 건 무한한 혼돈의 망치파괴술이 멋있죠. 근데 단아하고 오롯한 망치가 제 성장을 증명해 주는 이름인 것 같아서요.”
“성장을 증명해?”
“예. 이번에 일부 공개한 힐링 브이로그 영상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거기서 많은 것을 깨달았거든요. 게다가 주 무기를 변경하게 되면서 제 편협했던 시각을 반성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죠.”
“그래서?”
“앞으로 더 좋은 채널이 되기 위하여, 더 많은 구독자분들께 즐거움을 드리기 위하여. 저는 이전보다 훨씬 더 폭넓은 방송을 이어갈 생각이고, 단아하고 오롯한 망치라는 이름이 제 방향성을 잘 드러내 준다고 생각해서 그걸 선택했습니다.”
“…….”
“결국 저는 더 나은 스트리머, 아니 엘튜버가 되어야 하니까요.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빨은 잘 터는군.”
최갑수 영감님은 ‘노력하는 새싹’에는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다.
다소 꼰대스러운 기질이 있기는 해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면 어지간하면 봐준다.
“며칠 전이었다면 당연히 무한한 혼돈의 망치파괴술을 골랐을 겁니다. 멋이 있잖아요.”
“역시 그렇지?”
“예.”
군주의 능력인 ‘외교술’을 딱히 발휘하지 않아도 중간 줄타기를 꽤 잘해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여기서 또 한 차례 성장했음을 느꼈다.
뭐니 뭐니 해도 ‘그냥 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딱히 공부하지 않아도, 원리를 이해하지 않아도, ‘그냥 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달인의 영역이다.
나는 지금 특별한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두 거인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두 사람에게 당근을 던져주기로 했다.
“제 다음 콘텐츠는 아시다시피 [세피아-그란델]입니다.”
“만만치 않을 거야.”
미셸장도 한마디를 보탰다.
“코딱지만 한 규모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범우주 연합이니까요.”
블랙이 코딱지만 한 규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미셸장 입장에서는 그런 모양이었다.
“예전의 저였더라면 단순히 [세피아-그란델]을 쳐부수는 것이 주 연출이었겠죠. 그렇지만 이제는 좀 달라질 겁니다.”
세피아-그란델과의 전투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건 말하자면 ‘사건’이었다.
이제 나는 다른 요소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별난 사건에 더하여 서사와 캐릭터가 뒷받침되어야 방송은 성공할 수 있다.
우물 안 개구리를 이제 조금 벗어난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연출 방향을 변화와 성장에 둬보려고 합니다.”
나 혼자 힘으로는 좀 어렵다.
이야기꾼 왕유미와 홈마 강은우의 도움을 받아서, 차근차근 준비해 보려고 한다.
스트리머 김철수의 내적 성장과 앞으로 채널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
그것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지.
“아주 좋네요. 잠깐 나한테 초대장 보내봐요. 나만 들어갈 수 있게.”
미셸장이 내게 50억 다이아를 후원해 줬다.
“이건 내기해서 받은 거고. 거기에 더블.”
또 50억 다이아를 후원해 줬다.
무지개 색깔의 직업명에 대해 물어보려고 왔는데, 100억 다이아를 받았다.
‘이래도 되나?’
당연히 좋기는 한데 이게 막 엄청 기쁘지는 않네.
“감사합니다.”
“100억을 후원했는데 리액션은 그게 다인가요?”
“……죄송합니다, 리액션 공부 좀 할게요.”
“아뇨, 됐어요.”
미셸장은 호호호! 하고 크게 웃었다.
“그 머쓱타드 얼굴이 신선하고 즐겁고 짜릿하니까. 1열도 아니고 코앞 직관이라니. 계 탔네요.”
“……예?”
“그런 게 있어요. 2기 때는 꼭 가입해야지.”
* * *
‘결국 무지개 색깔의 직업에 대해 알아낸 건 별로 없네.’
모든 색이 합쳐진 검은색이 10성을 뜻한다면 일곱 가지 색깔이 나열된 이건 9.5성쯤 되려나.
아무튼 강은우도 예전처럼 만인의 아이돌 직업을 얻었으니 내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사이 편집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강철 편집자님
힐링 브이로그 관련 영상 편집 완료했습니다. 왕유미 님 컨펌받아서 재수정 완료했고요. 업로드해도 될까요?
쇼츠 영상으로 맛만 보여줬었는데 내 힐링 브이로그 영상은 꽤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와ㅋㅋㅋㅋ 이것이 K-힐링이다
-이거시K치(명적)유(해)물ㅋㅋㅋㅋㅋㅋ
-미친ㅋㅋㅋㅋㅋ 개존잼 대유잼ㅋㅋㅋㅋㅋㅋ
내 힐링 컨셉을 잘 이해하고 즐거워하는 시청자들도 있었고.
-최고야…… 발그레한 볼…… 엘리를 바라보는 달달한 눈빛…… 확신의 센터상…… 사람이 이렇게 예뻐도 되냐…… 경이롭고 신비로워.
-나 쓰러져 ㅠㅠ 마지막 철수 표정 무엇? 이 영상은 평생 남겨야 한다.
-김철수 귀여운 걸 김철수도 알까?
-자기가 얼마나 잘생긴지 모르는게 킬포 ㅜㅜ
버즈량이 폭증했고 구독자 숫자도 급속도로 증가했다.
사건이나 컨셉보다는 스트리머인 ‘나’에게 집중하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첫 시도에 큰 성공을 거둔 것 같았다.
솔직히 나보고 왜 귀엽다고 하는 건지는 진짜 모르겠고 이해도 안 되지만 아무튼 저렇다니 그런가 보다 하는 중이다.
내 생각에는 엘리랑 같이 꽁냥꽁냥 하는 모습이 저들 눈에 꽤 귀엽게 보인 거 아닐까 싶다.
‘진짜 힐링 연출을 잘했나 보다!’
엘튜브 영상의 댓글을 좋아요(????) 순으로 정렬해 보니 반응을 좀 더 정확히 살필 수 있었다.
-이때까지의 모든 입덕영상 중 얼굴, 다정한, 배경, 표정, 화질까지 전부 레전드;;
(????41722 ????622)
-철수야 잘생긴 거 축하해
(????38722 ????422)
-ㄹㅇ 힐링물 미쳐버렸누ㅋㅋㅋㅋㅋ대유잼이넼ㅋㅋㅋㅋㅋ
(????19722 ????82)
‘음…….’
보니까 약간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 자체에 주목하는 댓글들은 좋아요 숫자도 높은데 그만큼 싫어요도 높네.’
반대로,
‘사건에 집중하는 댓글들은 좋아요가 엄청 높지는 않은 대신 싫어요도 적은 편이고.’
물론 나를 비방하는 댓글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아무래도 이런저런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할 거 같다.
-솔직히 저게 미친놈이지 귀여운 거냐? 잘생긴 것도 잘 모르겠음. 솔직히 좀 역하게 생김 ㅉㅉ
└난 김철수만 보면 심장만 뛰는 게 아니고 약간 벅차올라
└미쳐도 좋으니 저렇게 생겨보고 싶다. 진짜 잘생겼다. 하루만 저런 얼굴로 살아보면 좋겠다.
└모닥불에 비친 발그레한 얼굴이 예술 그 잡채. 이게 나라지, 이게 복지지, 김철수가 복지다!
└은혜로운 비주얼에 감사 드립니다.
신기한 건 순식간에 ???? 숫자가 몇천 단위로 뛰어오르고 있다는 것이고, 대댓글로 융단 폭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얼굴을 공개한 이후 스트리밍뿐만 아니라 편집 영상들을 엘튜브에 올리게 되면서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다.
나한테 관심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
자꾸 나더러 귀엽다느니 사랑스럽다느니 이상한 말을 해댄다.
‘근데…….’
왜 기분이 안 나쁘지?
솔직히 나도 내 스스로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명상으로도 답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나 왜 설레냐?’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내 이름을 검색하게 됐다.
* * *
옛 인연인 강은우와 만나고 나니 왠지 모르게 종철이 녀석이 떠올랐다.
‘이 새끼는 연락 한 번을 안 하네.’
예전에 내가 스트리머 하겠다고 미친 듯이 방송에만 매진하고 있을 때는 그렇게 자주 찾아와서 밥도 사주고 잔소리도 늘어놓고 하더니, 어느 순간 연락이 뚝 끊겼다.
‘그러고 보니 검왕 시절에도 연락이 거의 끊어졌었지.’
나는 나의 길을 가느라 바빴고, 원종철은 원종철의 삶을 사느라 바빴다.
한때 가장 친한 친구였던 우리는 서로를 잊고 살게 되었다.
‘연락이나 한번 해볼까.’
야
몇 시간이 지나서야 답장이 왔다.
원종철
ㅇ?
ㅁㅎ?
원종철
집
밥ㄱ?
원종철
귀찮
사줌
원종철
ㄱㄱ
원종철은 카톡도 귀찮다며 이내 전화를 걸었고 우리는 약속을 잡았다.
나한테 밥 많이 사줬었으니 나도 소고기를 사줬다.
원종철이 눈을 가늘게 뜨고서 나를 쳐다봤다.
“야.”
“왜?”
“나 돈 없다.”
“뭔 소리야?”
“소고기를 사주니까 의심스럽잖아.”
“그게 왜?”
“대가 없는 선의는 돼지고기까지니까.”
소고기를 사주는 게 영 의심스럽다나 뭐라나.
“처먹기나 해.”
우리의 대화는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잔소리를 그렇게 퍼부었었는데 이제는 잔소리할 기력도 별로 없나 보다.
“그새 많이 늙었다?”
“안 그래도 이마 넓어지는 중이니까 닥쳐.”
대화가 뚝뚝 끊어졌다.
그렇지만 그게 별로 불편하지는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난 뒤 내가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뭐가?”
이런 건가 싶다. 나한테 무슨 일이 있나 싶으면 얘는 귀신같이 그걸 알아차렸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했는데 이게 가능한 거였네.
“아무 일도 없어.”
“그것도 내가 맨날 하던 레퍼토리인데.”
딱히 시간 끌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중계자의 시야로 좀 살펴봤더니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거구나.’
요약하자면 꽤 흔하지만, 당사자에게는 고통인 그런 위기를 겪고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공무원 월급에 아득바득 모으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샀는데 금리가 치솟으면서 매월 나가는 이자 부담이 너무 커졌다나 뭐라나.
거기에 애는 쑥쑥 크지, 부모님은 슬슬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그러지, 주변 경조사는 또 왜 이렇게 많은 건지, 통장 잔고가 거의 0에 수렴한다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가 위암이란다.
아직 초기이고 수술만 하면 거의 완치할 수 있다고는 하는데,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다 보니 이래저래 늙어가는 모양이었다.
“야, 나 김철수야.”
“알아.”
“근데 왜 전화를 한 번 안 하냐?”
“남사스럽게 전화는 무슨.”
민망한 듯 내 시선을 피했는데 나는 요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 왜 기분이 나쁘냐?’
나보고 귀엽다, 사랑스럽다, 이런 어이없는(?) 말들을 하는 건 하나도 기분이 안 나빴는데 얘가 이러는 게 기분이 좀 나쁘다.
회귀 전에는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왜 나한테 연락 안 한 게 짜증 나지?
“나한테 도움받기 싫어서 그러냐?”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그냥 나한테 부담 주기 싫었다나 뭐라나. 성공한 친구한테 빌붙고 싶지 않았다나 뭐라나.
아무튼 개소리를 야무지게 해대길래 한 대 쥐어박으려다 말았다.
쥐어박았다가 죽으면 어떡해.
“일단 제수씨는 치료하고 보자.”
“몇 주 기다려야 돼. 예약이 꽉 차 있더라.”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대학병원에서 암을 치료해.
암 치료는 의사 플레이어한테 맡기는 게 대세인데 말이다.
딱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강원도에, 9성급 치료사인 ‘화타’로 각성한 플레이어가 하나 있으니까.
걔한테 진료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긴 하지만 나는 할 수 있을 거 같다.
돈이면 보통 다 되는데 돈으로도 안 될 경우, 폭력으로 하면 진짜로 다 된다.
“야, 내 앞가림은 내가 알아서 해. 신경 쓰지 마.”
“내가 너 때문에 그러는 거 같냐?”
“……그럼?”
“이건 서사야.”
내가 히죽 웃었다.
“내 캐릭터성을 돋보이게 만들어줄 서사.”
“……이 미친놈이?”
“힐링 브이로그 컨셉으로 딱이네.”
어차피 세피아-그란델과의 격전을 위해서 강원도에 가려고 했다.
놈이 정말 폭력 진리교의 교주인지.
그게 맞다면 폭력 진리교를 통해서 뭘 얻으려고 했는지 알아봐야 했으니까.
서브 스토리로 이거 같이 진행하면 될 거 같다.
‘이건 콘텐츠를 위해서다.’
이상했다.
엘튜브 각을 하나 뽑았을 뿐인데, 평소보다 좀 더 기쁘고 뿌듯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