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09화 (209/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09화

편애광신(偏愛狂神).

미셸장(돈쭐) 또한 편애광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신의 파편을 뵙습니다.”

태초에 ‘최초의 의지’가 세상을 탄생시켰다.

태초의 의지가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고, 빛과 어둠을 나누어 낮과 밤을, 아침과 저녁으로 부르게 하였더라 등의 내용이 전설처럼 기록되어 있었다.

최초의 의지는 우주를 창조한 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 우주의 운영을, 자아를 가진 생명체들에게 내어주기 위함이었다.

최초의 의지가 언제 깨어날지, 언제 다시 우주 섭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최초의 의지를 일컬어 창조신 혹은 신이라고 불렀다.

‘깊은 잠에 빠진 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작은 조각들.’

최초의 의지는 우주를 탄생시킬 만큼 절대적인 것이었고, 그로부터 떨어져 나온 작은 부스러기조차도 엄청난 권능을 품고 있었다.

그 신들은 ‘최초의 의지’, 그러니까 신의 일부였고, 신의 뜻에 따라 세상을 관조하며 조용히 살아갔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이 다양하듯 파편들의 성격도 굉장히 다양했다.

편애광신은 세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신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꽂힌 대상’에 한하여 매우 적극적으로 끼어드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어떤 신의 파편은 편애광신을 일컬어 ‘머리가 꽃밭인 미친X’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편애광신이 물었다.

“나를 알아?”

“물론이죠, 직접 뵙는 것은 처음이지만요.”

편애광신은 흡족하게 웃었다.

“내 이름은 1호야.”

“그게 무슨 뜻입니까?”

“철수랜드 1호.”

최갑수와 미셸장은 동시에 깨달았다.

‘아, 저 미친 신이 김철수한테 꽂혔구나.’

어안이 벙벙해진 미셸장을 대신하여, 경험 많은 최갑수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인간들의 세계입니다. 그 이름은 좀 유별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이름이 마음에 들어.”

“그런 이름으로 활동하면 김철수를 오래 못 볼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1호가 움찔했다.

“어째서?”

“정말 오랜만에 잠에서 깨신 걸로 압니다. 그전에는…….”

그건 최갑수가 아주 어린 시절의 일이었다.

편애광신은 우주의 1세대 아이돌이자 우주에서 가장 섹시한 마왕이라 불렸던 ‘가르비누’를 좋아했었다.

그냥 좋아한 수준이 아니라 광적으로 좋아했다.

과연 광신이라 불릴 정도로.

‘이 미친 여자가 마왕군 1호를 자청했었지.’

마왕을 위해서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바람에 결국 가르비누는 마족 출신 최초로 아르비스의 황제 자리에 올랐다.

“가르비누는 잊었어. 알고 보니 완전 바람둥이에 사생활이 문란하더라고. 내가 왜 그렇게 걔를 덕질했나 몰라.”

“크흠, 아무튼,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 못하십니까?”

편애광신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 젠장, 엄마한테 끌려가서 삭발당했다고. 그리고 수면제를 먹였어. 2000년도 지난 일인데 아직도 생생해.”

신의 파편들은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편애광신이 무언가 하나에 꽂혀서 너무 지나치게 날뛰면, 어떤 파편은 그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편애광신이 인간계에 너무 지나치게 개입하면 또 다른 신이 편애광신을 제압하여 봉인해 버린다.

파편들은 결국 신의 일부이며, 결국 궁극적인 방향은 ‘최초의 의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된다.

“너무 눈에 띄게 행동하시면 결국 또 어머니께서 움직이실 겁니다. 신께서는 인간세상에 지나친 개입을 싫어하시지 않습니까? 삭발이랑 수면제로는 안 끝날지도 모릅니다.”

“으.”

“1호는 척 봐도 눈에 띕니다. 쉬운 이름을 쓰시죠. 민지 같은 이름이 좋겠습…….”

눈치를 슬쩍 살폈다.

마왕군 1호로서 행성을 초토화시키던 광년의 모습이 떠올라 최갑수는 말을 멈췄다.

“김철수한테 이름을 지어달라고 해볼까요?”

“좋아!”

“마침 김철수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지, 지, 진짜?”

편애광신은 몸을 벌떡 일으키고서 미어캣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그런 건 미리 말을 해줘야지!”

편애광신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다가 온몸이 붉어지고 이내 화르륵! 불타 사라져 버렸다.

손에 들고 있던 노트북도 완전히 타버려서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휴우, 릴리아. 이 잔해들도 좀 치워주게. 신불이니까 꼭 보호장갑 끼고.”

미셸장은 후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편애광신이 진짜로 존재하는 거였군요. 저도 전설로만 접했지 진짜로 보는 건 처음이에요.”

“진짜지 그럼. 요즘 애들은 자기가 본 게 아니면 통 믿지를 않아.”

최갑수는 이때다 싶었는지 미셸장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요즘 애들은 통 배울 생각을 안 한다느니, 어른들이 말하는 걸 믿지를 않는다느니, 이래서 어른들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느니.

“그만. 귀에서 피날 것 같아요.”

“이봐, 이봐. 어른들 잔소리를 1분도 못 견딘다니까?”

“8분 22초 했는데요.”

“어른의 지혜를 받아들일 생각을 좀 해야지. 이게 다 너를 위해…….”

“편애광신이 여긴 왜 온 걸까요? 김철수를 보러 온 건 아닌 거 같은데…….”

지금 저 상태를 보아하니 아마 김철수는 평생 못 만날 거 같았다.

“김철수를 보러 와? 그건 절대 아니네. 마왕군 1호일 때도 마왕과 눈도 못 마주쳤어.”

“그럼 왜……?”

“음.”

최갑수는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자기가 1호라는 걸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어서?”

“…….”

“그래도 우리가 김철수의 팬 1, 2호 자리를 두고 나름 다투고 있는 경쟁자 아닌가.”

최갑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1호는 자기라고 확실히 못 박으려고 온 거 같은데.”

“……신이 그런 이유로 움직여요?”

“나도 신에 대해선 잘 모르네. 그게 저 미친, 아니, 광신의 정체성인가 봐.”

* * *

“오늘 뭔가 좀 이상합니다?”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어떤 상서로운 기운이 공방에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최갑수 영감님이 빙그레 웃었다.

“향수를 좀 뿌렸네.”

“향수요?”

무슨 향수를 뿌리면 이런 느낌이 나지.

“아무튼, 나한테 묻고 싶은 게 있다고?”

“네. 방송으로 공개는 안 했는데요. 혹시 홈마스터라고 아세요?”

“홈마스터?”

영감님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미셸장은 알고 있는 듯했다.

“알죠. 홈페이지 마스터. 줄여서 홈마. 근데 홈마를 왜요?”

“아, 저한테 홈마가 생겼거든요.”

미셸장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고퀄 영상이랑 직캠 볼 수 있겠네. 홈마 레벨이 몇이죠?”

“아직 100도 안 돼요.”

“빨리 레벨업 하라고 해요. 그러면 직캠을 3D로 구현할 수 있으니까!”

미셸장은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였다.

“근데 사람들이 구분하는 직업 등급은 아시죠?”

“1성, 2성, 뭐 이런 거요?”

“네. 보통은 9성을 끝이라고 하기는 하는데, 알고 계십니까?”

“당연하죠. 그건 비단 지구에서만 쓰는 분류는 아니에요. 대부분 서버에서 그 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분류도 대동소이하죠. 근데 왜요?”

미셸장은 무척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에 반해 최갑수 영감님은 약간 기분이 나빠 보였다.

둘이 아주 죽이 척척 맞는구만, 나는 아주 뒷방 늙은이야, 하고 투덜거렸는데 이건 영감님 잘못이다.

영감님은 홈마가 뭔지도 잘 모르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랑 어떻게 대화를 한단 말인가.

“저한테 9성은 빨간색으로 보여요.”

“그것도 우주 표준이죠.”

“혹시 그다음도 아십니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가던 미셸이 멈칫했다.

“나는 잘 몰라요. 그건 돈벼락 영감님이 잘 아실…….”

그리고 최갑수 영감님 쪽을 쳐다봤다.

최갑수 영감님은 헹! 하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겠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몇 마디만 얹어주면 결국 자기 입이 근질거려서 잘난 체를 할 것이 분명했다.

“지혜로운 영감님께 조언을 좀 구할 수 있겠습니까?”

“흥. 독거노인 취급할 때는 언제고.”

“이거 방송으로도 공개 안 할 거고, 저희 방 최고 VIP인 두 분한테만 공개하는 영상인데요.”

영감님의 귀가 쫑긋거렸다.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완전 미공개 영상이거든요.”

“……일단 한 번 보지.”

나는 강은우와 있었던 일들을 보여주었다.

“미공개 소장본. 드립니다.”

“크흠.”

최갑수 영감님은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 * *

영감님은 두 시간 정도 자기자랑과 잔소리를 섞어서 열심히 말을 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지. 9성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무지개 색깔 직업에 대해서는 모르신다는 거잖아요.”

“이잉! 내가 언제 모른다고 했나!”

“그럼 무지개 색깔 직업이 10성입니까?”

“그, 그건……!”

“모르는 거네요.”

“아니라니까!”

“그럼 뭔데요?”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결국 최고 등급, 끝에 가서는 검은색으로 회귀하게 된다고.”

최갑수 영감님의 주장에 따르면 이랬다.

처음에는 노란색, 초록색, 주황색, 빨간색 등으로 6, 7, 8, 9성의 등급을 표기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상, 그 너머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결국 ‘검은색’ 글씨로 회귀한다고 했다.

모든 색깔을 전부 섞으면 결국 검은색이 되니까.

-“이를테면 먼치킨 같은 것 말이지.”

먼치킨은 검은색으로 표기된다고 했는데 나는 여기서 약간 의아했다.

‘먼치킨은 직업이 아니라 특성인데?’

내가 보기에 최갑수 영감님도 약간 오락가락하는 거 같다.

정보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어서 정확히는 모르는 느낌.

‘아니 근데 또 몰라.’

강은우가 나한테 큰 힌트가 되어주었다.

걔는 특성이 곧 직업이 되어버렸다.

특성과 신체의 궁합이 너무나도 잘 맞으면, 특성이 곧 직업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그럼 내 먼치킨 특성도 아예 직업이 될 수 있다고?’

에이 설마. 먼치킨 같은 직업이 있으려고. 그건 솔직히 사기지.

그리고 솔직한 말로 먼치킨과 내 궁합이 진짜 잘 맞았더라면, 진작에 그게 직업이 되었겠지.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모든 색을 다 합치면 검은색이 된다. 그게 극강의 등급이라는 거죠?”

“그렇지!”

“그럼 무지개색은요?”

“…….”

“모르시네.”

“아니지. 다양한 색깔을 하고 있으니 검은색의 바로 전 단계라고 보면 되지 않겠는가?”

“추측이죠?”

“아! 우리가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게 두 개가 있는데 말이야.”

말 돌리는 게 틀림없다.

“이거 아주 중요한 거니까 꼭 진지하게 대답해 줘야 하네.”

“뭔데요?”

“잘 들어봐. 무한한 혼돈의 망치파괴술. 들었나?”

“네. 무한한 혼돈의 망치파괴술이요. 멋진 이름이네요.”

“역시 그렇지?”

그러자 미셸장이 끼어들었다.

“자꾸 사감 넣지 마요. 공정하게 해야지. 김철수 씨. 그러면 단아하고 오롯한 망치는 어때요?”

“…….”

내가 잠시 말을 멈추자 최갑수 영감님이 씨익 웃었다.

나는 직감했다. 이거 둘이 내기했구나.

둘이 얼마나 강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중계자의 시야에 이들의 상태가 바로 잡혔다.

[#김철수 감성은 내가 잘 알지 #200억은 나의 것]

[#김철수는 성장했어 #100억을 내놓아 보아요 :)]

‘와, 이거 설마?’

최갑수 영감님은 100억 걸었고.

미셸장은 200억 걸고 내기를 했다?

그럼 답은 간단하지.

“당연히 단아하고 오롯한 망치 아니겠습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