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05화
송하영은 폭력 진리교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잘…… 몰라.”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흑장미 연합의 수장으로서 무척 부끄러운 일이었다.
송하영은 진심을 다해 사과했다.
“미안해.”
“세상의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
송하영은 놀란 눈으로 차진혁을 바라보았다.
이것도 모르냐며 실망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괜찮다고 위로해 주고 있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다정해?’
차진혁이 너그러운 것은, 본인 또한 회귀가 아니었다면 폭력 진리교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폭력 진리교가 아직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도 아니었고.
따지고 보면 그저 보편타당한 말을 했을 뿐이었지만 송하영에게는 따뜻하고 다정한 위로처럼 들렸다.
송하영의 텐션이 높아졌다.
“진짜?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그래도 나 열심히 할게. 흑장미 연합의 연합장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얘는 갑자기 왜 이렇게 의욕적이야?
차진혁은 괜스레 마음이 뿌듯해졌다.
요즘 같아서는 긴고주를 안 외워도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 또 속아 넘어갈 뻔했다.’
요즘 송하영은 반항을 그만두었을 뿐만 아니라 차진혁 자신에게 굉장히 호의적으로 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지면 언제든 뒤통수를 치겠지!’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한다.
그런 것도 훌륭한 도적의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까.
어쨌든 차진혁은 송하영의 변화에 속지 않기로 다짐했다.
세상에 예쁘고 귀여운 모든 것들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굳이 따지자면 송하영은 예뻤고, 또 귀여운 축에 속했다.
차진혁이 경계해야 할 요소를 두루 갖춘 요주의 인물이었다.
방금도 ‘이제 긴고주를 그만 외워도 되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그리고 며칠이 흘러 송하영이 다시 차진혁의 집을 찾았다.
“내 판단에는 [교주]는 지구 플레이어가 아닌 것 같아.”
“그래?”
“네가 보여준 영상 보면 구원의 예티가 등장하잖아? 레벨이 생각보다 엄청 높더라고.”
“그래?”
몇이었더라? 그렇게 안 높았던 거 같은데?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응. 레벨 177이었어.”
“…….”
“에게, 그게 뭐가 높아? 라고 생각하지 마. 김철수의 시선으로 보면 세상의 이치를 파악하기 어려워.”
“무슨 말이야?”
“김철수의 시선은 대단히 뒤틀려 있단 말이야. 너무 왜곡되어 있어서 가끔은 나도 헷갈려.”
내 시선이? 내 시선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인데.
차진혁은 말하고 싶었지만 송하영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지구 수준에서 소환해 낼 수 있는 개체가 아냐. 조력자가 있었을 거고. 교주에 관한 것은 아무리 파봐도 아무것도 안 나오더라. 흔적을 감추는 실력이 제법이야.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실력보다 한 차원 위의 상대라는 건데…….”
송하영은 자못 진지한 표정과 태도로 팔짱을 꼈다.
며칠 동안 밤을 지새우며 고민했는지 눈 밑에는 다크써클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표정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솔직히 지금 시점에서 의심할 수 있을 만한 세력이나 인물이 딱 떠오르긴 하거든.”
“누군데?”
“너는 누구라고 생각해? 혹시 짐작 가는 사람 있어?”
송하영은 차진혁에게 늘 영감을 받는다.
새로운 인사이트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차진혁의 대답을 기다렸다.
“생각하지 않아.”
차진혁은 생각하지 않는 중이다.
머릿속에 콘텐츠와 연출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해서 다른 것까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송하영은 그런 차진혁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있잖아. 이상한 키메라 실험을 진행하던 존 프릭부터 시작해서 최근 스왈로우 씨로 각종 실험을 자행하던 단체. 룰 브레이커의 진화 레시피를 알려주겠다고 공언했을 정도로 진보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 단체.”
“아…… 블랙?”
“응. 그 블랙의 수장 세피아-그란델이라면 그 두 살인마에게 구원의 예티를 소환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지 않았겠어?”
듣고 보니 꽤 그럴싸한 말이었다.
“그래서 내가 조사를 좀 해봤는데 말이야.”
송하영의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다.
화사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내 마음도 좋아졌다.
역시 사람은 자기 일에 집중하며 즐길 때 보기 좋은 법이다.
“세피아-그란델이 한국맵에 접속한 기록이 남아 있더라.”
“그런 기록이 있다고?”
‘워프포탈 이용기록은 시스템 차원에서 암호화하여 보관하고 있을 텐데?’
그건 지금 지구 수준의 플레이어들이 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우주 전체를 통틀어서 10명이 안 되는 초고레벨 해커들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차진혁은 흥미가 생겼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그러자 송하영이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툭 내뱉었다.
“너, 인기 많더라?”
“뭔 소리야?”
어떻게 알았는지 알려달라니까 뭔 놈의 인기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인기 많아서 좋겠더라.”
“…….”
차진혁 입장에서는 송하영의 기분이 왜 갑자기 나빠졌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진짜 이해가 안 돼서 중계자의 시야로 살펴보았다.
[#짜증나 진짜 #왜때무네 내가 1호가 아닌데 #나도 실력 나쁘지 않거든]
봐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문득, 차진혁은 스스로에게 의문점을 가지기 시작했다.
‘얘가 헛소리하면 그냥 긴고주 외우면 되는데…….’
이상하게 요즘 긴고주를 외우기가 싫단 말이야.
‘이상하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수작이라도 부린 건가.’
왜 이렇게 이상한 마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 * *
요즘 애들의 능력이 내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진 것 같다.
세피아 그란델의 위치를 찾아내기도 하고, 한국에 왔었다는 것도 알아내고.
‘다들 치열하게 하나 보다.’
그에 반해 나는 지금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고 있는 중이다.
‘휴식도 치열하게 취해야 하는 거니까.’
누군가가 본다면 놀고먹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니다.
나는 지금 최대한 열심히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잔잔한 분위기의 일상 힐링 콘텐츠도 찍었으니까 이제 다시 본 콘텐츠에 열을 올려야 한다.
‘다음 콘텐츠는 세피아-그란델과의 싸움이 될 텐데…….’
근데 놈과 중국에서 싸우면 승산이 없을 거 같다.
그나마 수호수의 권역 안에서 싸워야 답이 나올 거 같아서 얘를 어떻게 하면 한국으로 불러들일지 고민 중이다.
‘예전 같았으면 일단 싸우고 봤을 텐데…….’
새삼 나도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많이 신중해졌고, 보다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상식적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비상식적으로 변화하는 애가 하나 있었다.
-“낄낄낄! 머가리를 깨부셨도다!”
약간 이래도 되나? 싶었다.
수호수는 근엄한 척하지만 목소리에는 애티가 상당했다.
어린애 목소리로 저러니까 왠지 안 될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요즘 들어 마물 침범이 별로 없어 가지고 심심했는데 아주 잘 되셨도다! 낄낄!”
그렇게 외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아, 이게 아니라, 내 수호의 권능이 더욱 높아진 것이 자랑스럽도다!”
하고 말을 정정했다.
그러니까 얘 말을 해석해 보자면,
“네가 마물을 적극적으로 학살해댄 탓에 마물들이 접근을 잘 안 한다는 거지?”
-“그, 그렇도다.”
내 레벨이 높아지면서 얘와의 정신적 연동이 더 강해졌는지, 이제는 목소리만 들리는 게 아니라 얘의 모습이 이미지화되어 보이는 느낌이다.
머리카락이 온통 금색인 사람 형상의 무언가가 보였다.
몸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어서 실루엣만 보였는데 붉게 물들어 있었다.
‘수호수가 원래 이랬나?’
내가 얘를 더 정확히 느끼게 되었듯, 얘도 내 속마음을 어느 정도 느끼는 모양이었다.
-“나, 나는 그저 수호수로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하여……!”
누가 뭐랬나.
왜 이렇게 말을 더듬으면서 민망해하는 건지 모르겠네.
“잘하고 있네.”
역시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수호수는 아주 바람직한 성장을 하고 있다.
-“여, 역시 주인도 그렇게 생각하는군?”
“그래.”
붉게 물들었던 녀석의 몸이 다시 황금색으로 번쩍번쩍 빛나기 시작했다.
신이 난 수호수의 마음이 나한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러던 중, 수호수가 무언가를 느꼈다.
-“쌍검 괴물이 또 나타났도다.”
“조로?”
-“주인이 세지면서 나도 더 강해졌는데, 머가리를 깨볼까?”
* * *
우리 집 의자에 앉은 조로가 말했다.
“이 공간 자체가 내게 무척 적대적이군. 수호수가 나를 미워하는 모양이야.”
“그게 느껴지나?”
저게 느껴지는 거면 수호수도 아직 멀었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고, 최고의 공격은 몰래 하는 공격이다.
맞는 것도 모르고 맞아야 기절하는 법이다.
물론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무지막지하게 강하게 때리면 기절하긴 하지만, 지금의 수호수에게 그런 힘은 없으니까.
-“바, 반성하겠도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내 생각을 읽은 수호수는 적극적인 반성모드에 들어갔다.
이래저래 올바른 방향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아서 내심 뿌듯하네.
“룰 브레이커를 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것 같다.”
“갑자기?”
“원래도 거의 대부분의 것을 알고 있었다. 아주 일부의 정보가 더 필요했을 뿐이다. 에건 폴이 가진 정보가 마침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더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딱딱 맞아떨어지니까 뭔가 수상해서 한세린을 불렀다.
“이, 이 사람은……!”
“인사해. 이쪽은 조로. 이쪽은 패스파인더.”
한세린은 탐탁지 않은 눈으로 조로를 바라보았다.
얘도 아직 멀었다.
훗날 군주로 각성하려면 표정이나 눈빛을 잘 관리해야 할 텐데, 이렇게 경계하고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서야 쯔쯧.
얘 감정은 중계자의 시야에도 적나라하게 잡혔다.
[#나 얘 싫어]
왜 이렇게 싫어하는 거야?
물론 조로가 나를 죽이려고 했던 건 사실이지만 겨우 그런 걸로 이렇게까지 싫어할 리는 없고.
내가 모르는 뭔가가 엮여있는 게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한세린은 팔짱을 끼고서 여전히 탐탁지 않은 모습으로 조로와 대화를 나눴다.
“내 생각에는 이 아저씨가 가진 정보들이 진짜 같아.”
“그래?”
“문제가 있다면…….”
한세린은 조로를 다시 한번 흘겨보았다.
“이 아저씨한테 네 룰 브레이커를 맡겨야 한다는 거겠지?”
“그래?”
“근데 문제는 이 아저씨가 룰 브레이커를 들고 튈 수도 있다는 거?”
조로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나, 나를 뭐로 보고!”
“룰 브레이커 빼앗겠다고 김철수 죽이려고 한 게 누구시더라?”
“…….”
조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완전히 갑과 을의 관계처럼 보였는데 다시 보니 내가 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속마음을 일부러 더 과장해서 다 드러내는 거구나.’
군주라면 그 정도는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우물 안 개구리의 생각이었다.
얘처럼 아예 이렇게 갑의 지위를 가지고 압박하는 것도 꽤 좋은 것 같았다.
실제로 조로는 제대로 반박도 못하고 어버버하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이렇게 딱딱 맞아떨어지도록 정보가 주어지고 너한테 좋게 흘러가는 게 우연 같지는 않아.”
“그래?”
“사생의 덕질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랄까.”
“응?”
“있어, 그런 게. 자꾸 지가 1호라고 주장해서 기분은 나쁘지만 능력은 진짜인 애.”
송하영도 그렇고 한세린도 그렇고.
얘네가 말하는 1호가 뭔지 모르겠다.
뭐냐고 물어봐도 굉장히 불쾌해할 뿐, 제대로 대답을 안 해준다.
“뭐, 어쨌든 답은 정해져 있네.”
나는 룰 브레이커를 꺼내 조로에게 내밀었다.
오히려 놀란 사람은 조로였다.
“이걸…… 나한테 준단 말이냐?”
“가져가야 진화를 시켜 올 수 있다며?”
“…….”
조로는 한참 동안이나 나와 룰 브레이커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는 내 무엇을 보고 그렇게 날 신뢰하는 거지?”
“응?”
참고로 나는 얘네 집 주소도 안다.
천사소녀를 보내면 다시 훔쳐 올 수 있다.
아, 그리고 얘네 집에는 얘가 목숨보다 사랑하는 아내도 있다.
내가 얘 아내를 인질로 삼아서 뭘 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얘가 내 뒤통수를 먼저 때리면 나도 얼마든지 통수 칠 준비가 되어있다는 얘기다.
‘이것까지 솔직히 말하는 건 좀 그렇지?’
이제 나는 사회성이라는 것을 많이 배웠고 보다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 된 상태.
굳이 이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뭐라고 대답할까 살짝 고민했는데 얘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너는 진정한 무사였구나.”
[#이시대의 #무사도를_보았다]
아무튼 얘는 감격했다.
며칠이 흘러 얘는 정말로 룰 브레이커를 진화시켜서 나를 찾아왔다.
“받아라. 룰 브레이커다.”
……응?
근데 뭔가 조금 이상하네.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