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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04화 (204/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04화

[폭력이…… 만물을…… 구원…… 한다.]

나는 저 말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보통 갱생이 불가능하다 여겨지는 빌런들도 폭력에 노출되면 구원(?)을 받는 편이다.

나쁜 놈이 갱생돼서 착한 놈이 되는 거니까 구원이라고 할 수 있겠지 뭐.

폭력만으로 안 된다고?

그럴 리 없다. 안 되는 건 폭력이 부족해서 그렇다.

적절한 수위의 –너무 약하면 구원이 안 되고, 너무 강하면 죽는다- 폭력으로 구원하지 못한 빌런은 거의 단언컨대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감성 브이로그는 말이 아니라 자막으로 하던데.’

마시멜로 영상 보면 음성보다는 자막이 훨씬 많았다.

나는 미리미리 영상에 쓸 자막을 준비해놓았다.

스트리머라면 콘텐츠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자막을 만들어 넣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니까.

나는 룰 브레이커를 꺼내 들면서 동시에 자막을 작성했다.

[한 손에 쥘 수 있어 편리하고 단아한 도구를 꺼내 보아요 :)]

왜 단아한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이런 느낌 같아서 써봤다.

그사이 구원의 예티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숲 내음을 맡으며 도구를 휘둘러 봅니다.]

퍽!

예티의 움직임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하도 많이 사냥해 본 놈이라서 상대하기가 무척 쉬웠다.

놈은 꽤 숙련된 체술가 같은 몸놀림을 보여주었는데 사실 별거 없었다.

[콧잔등을 부숴주니 마물이 조용해졌네요. 오롯한 침묵의 시간을 즐겨 볼게요 :)]

한 번에 확실히 깨부숴야 조용해진다.

어중간하게 부수면 오히려 더 발작한다.

참고로 이건 권왕 김정현이 찾아낸 공략법이었다.

주먹이나 둔기류를 사용하여 코뼈를 한 번에 부러뜨리는 것.

구원의 예티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원래는 떼로 몰려다니는데…… 한 마리밖에 없네.’

예티는 없앴으니까 이제 얘를 소환한 놈들과 만나보아야겠지.

[폭력이 모든 것을 구원한다는 교훈을 얻은 날이에요.]

나는 룰 브레이커를 든 채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흑마법사들을 향해 걸어갔다.

* * *

강일남은 구원의 예티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레벨 177짜리 강력한 흑마법 소환마물이 공격 한 번에 사라진단 말인가.

심장을 다섯 개나 소모하여 소환한 비싼 개체인데.

“일단…… 자리를 피하자.”

“자리를 왜 피해?”

강이남이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우연히 약점을 얻어맞아서 저렇게 된 것뿐이야.”

“아무리 그래도 예티를 한 번에 때려죽인 놈이랑 맞상대를 할 수 있다고?”

“씨X, 그럼 도망치자고? 정령만 얻으면 돼. 형이 시간 끌고 있어봐. 내가 저 정령 잡아 올 테니까.”

모든 준비는 끝났다.

교주가 알려준 바에 의하면 예티보다 훨씬 더 강력한 마물을 소환할 수 있다.

“여태까지 모은 심장 다 써도 되니까 시간만 끌라고!”

“…….”

“여기서 도망치면 넌 이제 형도 아니다, 이 겁쟁이 새X야.”

강일남은 고민했다.

이남의 도움이 없으면 일남 또한 반쪽짜리 플레이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 일단 내가 시간을 끌어…….”

응?

강일남은 찔끔 놀랐다.

강이남의 몸이 스르륵- 쓰러졌기 때문이다.

강이남의 몸이 쓰러지면서 뒷쪽에 서있던 남자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 도대체 언제?’

남자는 히죽 웃고 있었다.

“뒤통수 깨는 맛이 일품이…… 아, 이거 아니지.”

남자는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감성 브이로그, 어렵네.”

* * *

강일남과 강이남은 압도적인 폭력을 경험했다.

둘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이 상했다.

그들의 얼굴은 거의 검은색에 가까웠다.

엘리가 신기한 듯 말했다.

“멍이 심하게 들면 검은색으로 드나 봐여.”

“어, 괴사에 가깝다고 보면 돼.”

“신기하당.”

“더 보여줄까?”

강이남은 정신을 잃은 상태고, 그나마 강일남이 부녀(?)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그…… 만……!”

이들은 미친놈들이 틀림없었다.

남자는 광기가 일렁거리는 눈을 하고서 자꾸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모닥……불…… 차…… 따뜻한…… 대화…… 차분한…….”

참고로 차진혁 본인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감성 브이로그의 자막과 제목을 설정하는 것이, 차진혁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어서 자막을 쓰다 보면 자꾸 혼잣말을 중얼거리게 되었다.

[힐링 브이로그│모닥불과 따뜻한 차 한 잔에 취해 보아요│대화의 시간│차분한 폭력 :)]

차진혁이 강일남에게 차 한 잔을 건넸다.

“드세요.”

그 말투 자체가 너무 기괴했다.

‘안 먹으면 죽인다’ 표정인데, 말의 톤 자체는 꽤 다정(?)했다.

미친놈이 정상인인 척을 하는 것만 같았다.

왜 여기서 갑자기 차를 내주는 건지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살려주시면 뭐든 하겠습니다.”

“따뜻한 차를 대접해 보아요.”

“……예?”

아 거 말 못 알아듣네.

“마시라고 이 새끼야.”

“넵.”

힐링/일상 브이로그의 감성을 전혀 모르는 놈 같아서 답답했다.

어쨌든 강일남은 황급히 차를 마셨다.

이게 목구멍으로 마시는 건지 콧구멍으로 마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차진혁은 룰 브레이커로 강일남의 머리를 후려쳤다.

“야. 힐링 콘텐츠야.”

도대체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까.

“감성 있게 마셔. 천천히 음미하면서.”

“…….”

아, 이거 쉽지 않네.

아무래도 이런 장면은 힐링 브이로그에 어울리지 않겠지?

말을 안 듣길래 룰 브레이커로 뒤통수 몇 대 때려주니까 교화가 되었다.

안 죽을 만큼 때리느라 진짜 집중했다.

힐링 브이로그치고 좀 잔혹한 거 같으니 나중에 편집으로 덜어내 달라고 해야지.

“여러분들의 병신 같은 수준으로 구원의 예티는 어떻게 소환해 낸 걸까요?”

“…….”

강일남은 너무 혼란스러워서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건지 인식하기가 어려웠다.

자꾸 힐링 콘텐츠라고 말을 하기는 하는데, 사실 말투만 따뜻하지 내용은 폭력과 협박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하지만 강일남에게 ‘말투만 다정하면 힐링이냐!’ 하고 따질 수 있는 용기 같은 건 없었다.

“저는 제물을 이용하여 제 능력보다 더 높은 수준의 마물을 소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알고 있어요. 패륜의 흑마법사이고, 패륜에 가까운 짓을 자주 저지를수록 더 많은 힘을 끌어낼 수 있는 개같은 힘을 지니고 있잖아요.”

강일남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말투와 내용 사이에 괴리는 이제 그렇다 치고.

‘어떻게 이렇게 다 알고 있는 거지?’

그러고 보니,

‘구원의 예티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어?’

구원의 예티.

이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셋밖에 없다.

교주와 강일남 형제.

강일남은 그제야 차진혁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교주께서 보내셨습니까?”

“…….”

차진혁은 순간 아무 말도 못했다.

뭔가 더 대단한 걸 들어버린 느낌인데.

‘아…… 고민이네.’

콘텐츠에는 컨셉이라는 게 있어야 했다.

인기 있는 컨셉이라고 해서 한 콘텐츠 안에 다 때려 박으면 이도 저도 아닌 잡탕이 되기 마련이었다.

‘아, 이건 힐링 일상 브이로그인데.’

교주인지 뭔지까지 나오면 콘텐츠가 망하는 느낌이었다.

‘일단 힐링 콘텐츠를 좀 더 진행하자. 분량은 뽑아야지.’

차진혁은 일단 교주 얘기에 대한 답은 피한 채 강일남과 대화를 좀 나눴다.

그사이 강이남도 정신을 차렸고 차진혁은 강이남에게도 차를 제안했다.

물론 처음부터 순순히 마시지 않았으나 결국 순종했다.

차진혁의 폭력에는 강대한 힘이 깃들어 있었으니까.

* * *

와, 진짜 미친놈들이네.

나 같은 정상인들은 이런 놈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그로는 끌리겠다.’

방송 제목은 이미 생각해놨다.

[미친놈들.]

얘들은 나한테 내적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무용담(?)을 자랑스레 떠벌렸다.

강이남은 자신의 탁월한 혜안에 대해 자화자찬했다.

“예, 결국 제가 거기서 어린애를 찾아냈죠.”

어린애가 필요해서 한 마을을 습격했는데 그 마을에는 어린애가 없고 전부 늙은이들밖에 없었다나 뭐라나.

“만삭이어서 가치가 충분했습니다.”

그러면서 씨익 웃는데 자기가 진짜 똑똑한 판단을 했다고 자부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강일남이 말했다.

“사자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산의 광인] 군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령이 꼭 필수였고, 태백산맥에서 정령을 찾아 헤매고 있었습죠.”

나더러 교주가 보낸 ‘사자’란다.

딱히 부정은 안했다.

구원의 예티, 폭력 진리교, 산의 광인, 교주.

이것들이 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맞아. 폭력 진리교 얘네 국가 전복세력이었지.’

잠깐이기는 했지만 세를 크게 떨치며 강원도 지방을 완전히 먹었던 게 기억이 났다.

정확히 얘네가 뭘 어떻게 했는지에 관해 아는 바는 많지 않았다.

나는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칼을 열심히 쓰는 실무자였고, 시키는 대로 얘네를 많이 썰었을 뿐이었다.

‘근데 산의 광인 군단이라니?’

산의 광인은 폭력 진리교가 소환해 낼 수 있는 개체 중 가장 강력한 개체였다.

레벨은 200대 초반.

당시 고레벨 랭커들 여럿이 팀을 짜고 겨우 사냥했었다.

한국에 나타났던 산의 광인은 끽해야 두 세마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근데 군단을 만든다고?’

회귀 전과 바뀐 부분이 있었다.

회귀 전 폭력진리교보다 좀 더 진화한 부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너희들은 어째서 폭력 진리교에 가입했지?”

“그야…….”

내 입에서 직접 ‘폭력 진리교’라는 말이 나오자 얘네 둘은 몹시 감격한 모양새였다.

마지막 남아 있던 의심의 끈마저 사라진 것 같았다.

“그야 당연히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입니다.”

“보다 공정한 세상을 위해서입니다.”

듣고 보니 생각이 났다.

더 나은 세상. 보다 공정한 세상.

대충 저런 것들이 폭력 진리교에서 주야장천 주장했던 가치였다.

“무엇이 더 나은 세상이고, 어떤 것이 더 공정한 세상인데?”

“힘 있는 자가 그 힘으로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세상입니다.”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얘들의 주장은 이랬다.

약육강식은 자연의 섭리.

어리석은 인간만이 그 섭리를 거부한 채,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느니,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건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느니, 기이한 프레임을 씌워 다수의 약자를 위한 비정상적인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강자는 약자 위에 군림하는 것이 원래 옳은 거라나 뭐라나.

신세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바로 그것이라나 뭐라나.

“와, 이거 미친놈들이네.”

“예?”

“네?”

어이가 없네.

“그게 왜 자연의 섭리냐?”

미친놈들이라서 상식을 잘못 알고 있는 거 같다.

“강한 놈들은 더 강한놈이랑 싸울 생각을 해야지.”

약자 위에 군림할 시간이 어딨어?

괴롭힐 시간이 어딨어?

마음만 먹으면 강자랑 싸울 수 있는 세상이다.

근데 무슨 공정하지 못하다는 건지 모르겠네.

이 정도면 충분히 공정하지.

“아. 근데 너네들 논리면 내가 너네를 패는 것도 자연의 섭리겠네?”

“물론입니다.”

“그렇습니다.”

방금 눈빛 흔들렸는데.

나는 이런 가짜 미친놈들을 싫어한다.

기준이 한결같고 변함이 없어야지, 지들 불리할 때는 제멋대로 들쭉날쭉하단 말이야.

물론 내 기준도 많이 오락가락하긴 하지만 그건 내가 미친놈이 아니라서 그런 거고.

‘근데 산의 광인 군단이 진짜로 나타나게 되면 피곤해지겠는데?’

아무래도 한국은 평온하면 좋겠다.

한국은 나한테 집 같은 곳이고, 집은 다이나믹하다기보다는 편안한 곳이어야 하니까.

산의 광인 한두 마리면 모를까 그게 군대를 이루면 집이 엉망진창이 될 거 같다.

‘교주라는 놈을 찾아야겠네.’

회귀 전에는 교주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다.

어느 순간, 교주는 사라졌고 폭력 진리교는 와해되어 버렸으니까.

‘정보를 좀 얻고 싶긴 하지만…….’

풀썩.

두 녀석이 차례대로 스르르 쓰러졌다.

엘리가 나뭇가지로 강일남의 볼을 콕콕 찔렀다.

“잠들어떠요?”

“어.”

강이남의 볼도 콕콕 찔러봤다.

“이 아저씨도 잠들었어요?”

“응, 졸립대.”

이 정도면 진짜 힐링 콘텐츠에 충실했다고 본다.

내가 손맛을 포기하고 독을 사용하게 되는 날이 오다니.

진짜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아, 아까 얘네한테 건넨 독에 차가 있…… 아니, 차에 독이 있었다.

나도 같이 마셨으니까 비겁한 건 아니지.

엘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호흡이 없떠요.”

“깊게 자서 그래.”

이상한 일이었다.

사실 저 아저씨들은 엘리 너를 납치하고 제물로 바치려고 했어.

아주 못된 아저씨들이고 그냥 죽여 버렸어.

이렇게 말을 하면 되는데 그 말을 못하겠네.

왜 이 쉬운 말을 못하겠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엘리에게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따뜻하게 자라고 불 붙여주자.”

“녜!”

아무튼 힐링 브이로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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