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03화
나는 엘리와 함께 태백산맥 깊은 곳, 플레이어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캠핑을 왔다.
“엘리는 정말 귀여운 것 같습니다.”
엘리의 얼굴이 불꽃에 휩싸였다.
일반 어린이였다면 큰일이었겠지만 엘리는 불의 정령이니 별 상관은 없겠지.
부끄러움을 저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게 꽤 귀엽다.
얼굴이 불에 휩싸인 채 엘리는 신이 나서 물었다.
“정말요? 엘리 귀여워여?”
“귀엽지 그럼.”
참고로 생방은 아니고 그냥 녹화 중이다.
아직 이런 일상 콘텐츠는 감이 별로 없어서 일단 촬영한 다음 왕유미와 강철(편집자)의 얻어서 업로드하려고 한다.
“귀엽따고 말해줘서 조와여. 신나여. 행복해여!”
머리에 노란 꽃을 꽂은 채 빙글빙글 돌며 말하는 엘리를 보면 확실히 귀엽기는 귀여웠다.
‘귀여운 것도 원래는 엄청 조심해야 하는데.’
솔직히 엘리에 대한 경계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예쁜 것과 귀여운 것들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방송이니까.
방송이니까 나는 얘를 맘껏 귀엽다고 표현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엘리 덕분에 모닥불도 엄청 쉽게 피울 수 있네요.”
나는 엘리의 손목을 잡고 모닥불 쪽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엘리. 불.”
“얍!”
엘리의 손가락 끝에서 불덩이가 넘실넘실 날아가 장작에 불이 붙었다.
“캠핑 너무 죠타아아아. 채고!”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나도 왜 웃는지 모른다. 사람을 웃기게 하는 특성을 가진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엘리는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턱을 괸 채 일렁이는 불꽃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물었다.
“다이빙해도 대여?”
하라고 했더니 신이 나서 모닥불에 뛰어들었다.
불덩이로 변한 엘리는 간지러운 듯 한참을 꺄르르- 꺄르르 웃어댔다.
모닥불이 춤추는 것 같았다.
이내 다시 사람의 형상으로 변한 엘리는 다가와 몸을 기대며 쪼그리고 앉았다.
“모닥불이랑 춤춰서 피고내.”
정말 피곤한 듯 내 어깨에 기대어서 꾸벅꾸벅 졸았다.
졸리면 그냥 자도 될 거 같은데 모닥불을 끝까지 보겠다며 자꾸 눈을 부릅떴다.
서둥이들을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흐뭇한 맛이 있었다.
이곳은 태백산맥 어딘가고 –어딘지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 중간중간 산속 깊은 곳에 서식하는 마물들도 이따금 쳐들어오곤 했다.
‘완벽히 힐링 방송이네.’
방금 나한테 덤빈 놈은 몸집 약 3미터쯤 되는, 바퀴벌레 형상의 벌레 마물이었는데 이거 불에 구워 먹으면 진짜 별미다.
‘이놈 덕분에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는데.’
습하고 어두운 곳에 서식하면서 생명력이 워낙 질긴 놈이다 보니 던전 깊숙한 곳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식량이 떨어졌을 때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생긴 게 좀 역하기는 해도 영양적으로 진짜 완벽한 녀석이다.
불에 잘 익혀 먹기만 하면 부작용도 거의 없고 말이다.
대신 잘라내거나 터뜨리면 고약한 악취가 나는 피를 왕창 뿌리기 때문에 잘 찔러 죽여야 한다.
아, 다리털이 너무 수북해서 식감이 나쁘다는 것도 별로이긴 하네.
푹!
잘 찔러 죽였다.
그래도 손맛은 나쁘지 않았다.
‘잔잔한 힐링 콘텐츠도 나쁘지 않네.’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사람마다 선호하는 게 있고 취향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었다.
‘근데 히든 던전 같은 거 안 나오나?’
이왕 힐링하는 김에 히든 던전이나 이벤트 보스몹 같은 거 나와주면 더 재밌을 텐데.
슬슬 조금 지루한 느낌이 들 무렵, 나는 이상한 기척을 감지했다.
‘어, 잠깐만.’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사삭- 사삭- 하고 움직였다.
짐승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폭력이…… 만물을…… 구원…… 한다.]
자세히 들어보니 사람의 언어와 비슷했다.
[폭력이…… 만물을…… 구원…… 한다.]
* * *
강일남, 강이남 형제는 올해로 각각 42세, 41세의 친형제였다.
무직이었던 강일남은 칠순이 넘은 아버지에게 용돈을 달라며 행패를 부리다가 실수로 아버지를 살해했다.
그리고 패륜의 흑마법사로 각성했다.
형이 히든 클래스의 플레이어로 각성하는 것을 본 강이남은 어머니를 살해하여 똑같이 패륜의 흑마법사로 각성할 수 있었다.
이후 그들은 플레이에 큰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을 죽여도 아무런 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 그 자체로 무척 흥미로웠는데, 이후에는 점점 강해지는 것이 즐거웠다.
백수에 술주정뱅이라 손가락질하던 동네 주민들은 이제 강일남, 강이남 형제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더 강해져야 한다.”
“더 강해져야 해.”
그들은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성장 속도가 제법 빨랐다.
사람을 죽여서 막대한 양의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는 특성인 [살인의 기쁨] 덕택이었다.
형인 강일남은 소환계열의 흑마법사로 성장 방향을 잡았고, 동생인 강이남은 제작계열의 흑마법사로 성장 방향을 잡았다.
둘은 꽤 잘 맞는 듀오였다.
강이남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어린애가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어찌 된 것이 이 마을에는 늙은이들밖에 없었다.
“저기, 한 명 있잖아.”
“어디?”
강일남 형제는 마을 사람들을 마을회관 앞에 불러모아 무릎 꿇린 상태였다.
이미 머리가 잘린 시체가 넷이나 있었고 사람들은 저항하지 못한 채 살려달라고 빌기만 했다.
강일남이 한 여자를 가리켰다.
배가 꽤 많이 불러 있었는데, 가방에는 임산부임을 나타내는 핑크 배지가 달려 있었다.
강이남이 히죽 웃었다.
“아하! 그러네, 애 있었네!”
강이남이 검은색 기운이 일렁이는 단도를 들고 임산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임산부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으나 강일남이 소환해 낸 식물형태의 마물이 줄기를 뻗어내 임산부를 결박했다.
마물의 줄기에 사로잡힌 임산부는 발버둥 쳤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
“걱정 마. 우리한테 필요한 건 아줌마가 아니라 애거든.”
단도를 여자의 배에 가져다 대었고, 한 노인이 돌멩이를 집어 던졌다.
“이 천인공노할 놈들! 하늘이 두렵지도 않으……!”
식물 형태의 마물이 또 다른 줄기를 뻗어내 노인의 목을 움켜쥐고 하늘로 들어 올렸다.
으득!
노인의 목이 꺾이는가 싶더니 힘없이 축 늘어졌다.
마을회관 앞에 무릎 꿇은 사람들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비명을 겨우 참아냈다.
폭주하는 강일남 형제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일남 형제는 오늘도 목표를 달성했다.
“좋아. 어린애의 신선한 피는 구했고, 다음은 이제 정령만 하나 녹이면 되겠어. 형이 정령을 잡을 수 있다고 했지?”
“물론이지.”
이제 남은 재료는 정령 하나뿐이었다.
마침 태백산맥은 자연의 기운이 무척 강한 곳이었다.
정령력이 강하다는 의미였고, 때때로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저번에 내가 소환한 [포식꽃]이 정령을 삼킬 수 있을 거다.”
“형이 소환했다니? 내가 소환 제물들 다 만들어줘서 가능했던 거잖아.”
“아, 그래. 우리. 우리가 소환한 포식꽃.”
“말 좀 바로 하자. 좀 짜증 나니까.”
강일남은 인상을 살짝 찡그리고 동생을 노려봤으나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미안하다, 미안해.”
그리고 그들은 태백산맥에서 웬 미친놈을 보았다.
부녀로 보이는 그들은 이 깊은 곳에서 캠핑을 하고 있었다.
몰래 살펴보니 어린 여자애는 불의 정령인 것 같았다.
강이남이 히죽 웃었다.
“하늘이 우리를 돕나 보다.”
“잠깐.”
“왜?”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지 않냐?”
“뭐 연예인 누구 닮았나 보지.”
꽤 잘생긴 놈이었다.
강일남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아이돌인가?”
“형이 아이돌 얼굴을 알기나 해? VTS는 알아?”
VTS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의 아이돌이었다.
빌보드 차트를 수차례 석권하고 전 세계적으로 수억 명 이상의 팬을 보유하고 있는 위대한 엔터테이너.
강일남도 이름 정도는 알았다.
“이름은 알지.”
“얼굴은?”
“……모르지.”
“근데 쟤 얼굴은 어떻게 알겠냐? 재수 없게 생긴 놈들이 뭐 한둘도 아니고. 어디서 봤겠지.”
그렇지만 강일남은 왠지 모르게 찝찝했다.
“쟤 왠지 우리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뭔 소리야? 흑마법으로 기척 다 숨기고 있는데.”
“그래도 왠지 불안하다.”
“형은 맨날 불안하다고 하잖아.”
“잠깐만. 상황 좀만 보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냐? 강한 마물이 곧잘 나타나는 여기서 저렇게 느긋하게 캠핑을 하는 걸 보면 뭔가 있는 놈 같다.”
이건 그냥 직감에 가까웠다.
“아무래도 [구원의 예티]를 불러서 간 좀 봐야겠다.”
강이남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거 소환하려면 심장이 다섯 개나 필요하잖아.”
흑마법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대신 많은 제물을 필요로 한다.
제물의 종류가 무척 다양한데 ‘생명체였던 것’일수록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강일남 형제는 사람의 심장을 즐겨 사용했다.
“또 사냥하면 되잖아. 내가 사냥해 올게.”
“10대 애들 걸로 가져오면.”
“알았다, 알았어.”
“10대야. 저번처럼 20대 거 10대 거라고 구라치지 말고.”
“알았다니까.”
그리고 강일남은 ‘구원의 예티’를 소환해 냈다.
이 예티는 흑마법 소환술사인 강일남이 소환할 수 있는 개체들 중 가장 강력한 개체였다.
지금의 강일남 형제가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교주’가 선물해 준 소환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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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77/구원의 예티/폭력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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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남의 눈에도 붉은색으로 표시되었다.
그만큼 강렬한 소환개체라는 뜻이었다.
“폭력이…… 모든 것을…… 구원…… 한다.”
강일남으로서도 정밀한 컨트롤이 불가능했다.
목표를 지정하고 공격하게 하는 것이 다였다.
“저 남자부터 죽여.”
쉬운 일처리를 위해 저 재수 없게 생긴 놈부터 죽이기로 했다.
혹시 저놈이 한가락 하는 놈일지라도 상관없었다.
“예티와 저놈이 싸우는 동안 우리는 정령을 훔쳐 오면 되겠어.”
그때가 차진혁이 강일남 형제를 인식한 순간이었다.
사실 차진혁은 강일남 형제를 이전부터 느끼고는 있었지만 신경은 쓰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인식 자체를 거의 못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숲에 벌레가 많네’ 정도의 느낌이었다.
힐링 피크닉을 왔는데 주변에 날파리 몇 마리가 날아다닌다고 해서 그게 몇 마리인지, 어디로 날아가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딱히 궁금해하지 않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니까.
그러나 그게 날파리가 아니라 모기였고, 그 모기가 내 팔에 붙는 순간 얘기가 달라진다.
멀리서 날아다니는 날파리는 관심 밖이지만 내 팔에 붙은 모기는 잡아 죽여야 할 해충이다.
“예티까지 소환했으면 저 새끼는 죽여.”
“그래야지.”
차진혁의 눈에도 구원의 예티가 보였다.
‘구원의 예티?’
차진혁은 이 구원의 예티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거 [폭력 진리교] 놈들이 소환해 낸 흑마법 소환개체인데?’
알고는 있지만 잘은 모른다.
왜냐면 만나는 족족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베어버렸으니까.
폭력 진리교는 국가에서 지정한 공식 빌런 단체 중 하나였고, ‘구원의 예티’는 무조건적인 척살 대상이었다.
만날 때마다 그냥 죽여 버려서 아는 바는 별로 없었다.
‘아 근데 쟤네랑 연관된 뭐 큰 게 있었던 거 같은데?’
솔직히 기억은 잘 안 났다.
내가 쳤던 샌드백의 브랜드가 뭐였더라? 정도의 느낌이었다.
차진혁은 감성 브이로그답게 침착하고 평온하게 말을 이었다.
“오롯한 힐링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