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99화
조로는 쌍검을 모두 놓쳤다.
하나는 부러졌고, 하나는 더 이상 쥐고 있을 힘이 없었다.
그는 반쯤 무릎 꿇은 채 숨을 헥헥 내쉬었다.
“정말로 힘을 숨기고 있었군.”
“스트리머니까.”
조로는 커다란 열패감을 느꼈다.
‘내가 룰 브레이커에 정신이 빼앗겨 [여벌 목숨]조차 잊고 있을 때, 김철수는 방송을 위한 철저한 계산과 빌드업을 진행했다.’
김철수는 자신보다 한 차원 위의 싸움을 했다는 것이었다.
몇 번의 격돌로 확실히 깨달았다.
김철수는 자신의 능력을 계속해서 숨겨왔다.
레벨을 204까지 올리는 그 와중에도 철저하게 자신을 숨겼다.
어쩌면 지금도 본신의 모든 능력을 꺼내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것도 모른 채, 김철수의 천재성을 폄하하고 말았다.’
완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갓 200이 된 플레이어에게, 그것도 비전투계열 플레이어에게 패배하게 될 줄은 몰랐다.”
조로가 눈을 감고 말을 이었다.
“죽여라.”
“싫다면?”
“이 또한 퍼포먼스의 일부이냐? 나는 네 목숨을 빼앗으려고 했다.”
“나는 룰 브레이커의 진화에 관심이 있어서 말이야. 네게 거래를 제안하려고 하는데 어떠냐?”
차진혁은 사실 조로의 생사에는 크게 관심 없었다.
그것보다는 우트검(우주에서 제일 트렌디한 검)을 획득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으니까.
지금 에건 폴이 진화 레시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룰 브레이커를 꼭 진화시키고 싶거든. 네 목숨값으로 네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내놓는 게 어떠냐?”
조로는 룰 브레이커에 대해 수십 년간 연구해 온 플레이어였다.
룰 브레이커의 완벽한 진화에 조로가 분명히 필요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조로는 요지부동이었다.
“네 목숨을 노렸으니 내 목숨을 내놓는 것이 합당하지.”
여러 번 설전 아닌 설전이 오갔다.
결국 차진혁이 말했다.
“후회하지 마라.”
“후회 따윈 없다.”
차진혁이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내가 얼마나 강해지는지 못 봐도 괜찮다는 거냐?”
“……뭐?”
“나는 지금 200레벨에 불과하다. 그것도 물레벨.”
“……물레벨?”
조로의 기준에서 차진혁은 절대 물레벨이 아니었다.
“네 스스로를 물레벨로 평가한단 말이냐?”
“당연한 거 아니냐? 레벨업 속도가 전 우주에서 가장 빨랐다. 덕분에 난 이 신체에 익숙해질 시간도 없었어.”
검술가로서의 기억이 남아 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이 정도 힘도 못 끌어낼 뻔했다.
“…….”
조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랬다.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었다.
차진혁의 기준과 자신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고 말았다.
그리고 차진혁의 기준이 더 옳다는 것도!
“근데 내가 더 레벨업 많이 하고, 불레벨되면 어떨 거 같냐?”
“…….”
“기대 안 되냐? 보고 싶을 거 같지 않냐?”
“…….”
-와 뻔뻔한 거 봐랔ㅋㅋㅋㅋㅋㅋ
-근데 조로 설득되는 거 같은데?
-저걸로 설득이 된다고?ㅋㅋㅋㅋㅋㅋ
-설득 이유 존나 이상함ㅋㅋㅋㅋ
“나 존나 세질 건데?”
-패기 미쳤눜ㅋㅋㅋㅋ
-근데 헛소리가 아니란 게 함정.
-솔직히 어디까지 강해질지 나도 궁금하긴 하다.
결국 패배한(?) 조로가 입을 열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
차진혁의 말을 듣고 보니 살고 싶어졌다.
살아서 김철수의 성장을 눈에 담고 싶어졌다.
그러나 공짜로는 안 된다.
목숨값은 내놓아야 했다.
“아니. 먼저 저자로부터 룰 브레이커의 진화 레시피를 강탈해 오도록 하지. 잠시 기다려라.”
에건 폴이 손사래를 쳤다.
“자, 잠깐! 나, 나는 스트리, 으아아악!”
에건 폴에게는 좀 불행한 일이었다.
약간의 참사가 벌어진 이후 조로가 말했다.
“이래도 진화 레시피를 알려주지 않겠다고?”
입술이 퉁퉁 붓고 치아가 몇 개 부러진 에건 폴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알려주지 않겠다고 한 적 없다!’
“꽤 심지가 굳은 놈이군.”
내 심지는 굳어본 적이 없다!
말하고 싶었으나 몸이 말을 안 들었다.
“크아아아아악!”
에건 폴은 조금 더 처참한 꼴을 당했고, 결국 조로는 진화 레시피를 획득할 수 있었다.
조로가 에건 폴로부터 강탈한 종이를 차진혁에게 건네주었다.
“입이 무거운 놈이라 시간이 좀 걸렸다.”
이 시X놈이! 말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 끄륵대는 것이 전부였다.
-저 정도면 말하는 거 인정한다.
-에건 폴 안 죽은 게 신기하누.
-솔직히 저 정도 맞으면 나라도 다 술술 불듯.
조로가 에건 폴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사주한 자는 누구냐? 뭐? 말할 수 없다고?”
또다시 대참사가 벌어지기 직전, 차진혁이 말렸다.
“에건 폴의 방송 보면 나와. 세피아-그란델이라는 이름을 쓰는 자군. 자신을 블랙의 수장이라고 소개하고 있어.”
조로는 에건 폴을 내려주었다.
“끈질긴 놈. 끝까지 입을 안 여는군.”
내가 언제 끈질겼다는 거냐, 이 개 같은 새X야!
에건 폴은 억울했으나 무자비한 힘의 논리 앞에 억울함을 토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차진혁이 말했다.
“설마 그게 전부겠냐?”
“뭐?”
“블랙의 수장쯤 되는 놈이 완벽한 레시피를 넘겼을 리 없지. 이건 레시피의 일부일 거다.”
“그럴…… 수도 있겠군.”
“결국 세피아인지 세파이인지 그놈에게 완벽한 정보가 있을 거야. 놈을 잡아야 해.”
차진혁은 자신의 방송과 에건 폴의 방송을 통해 말했다.
“너는 내가 죽여줄게, 샴 쌍둥이.”
* * *
[아바타, 각성명 ‘골룸’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각성명 골룸.
위대한 길잡이 골럼베룸이 신규 서버인 지구 서버에서 플레이를 즐기기 위해 만들었던 부캐.
그 부캐는 이제 삭제되었다.
골럼베룸은 최강의 서버 아르비스 내에서도 네임드 연합인 ‘디저트’에 속한 길잡이였고, 디저트의 부길드장 마시멜로는 골럼베룸의 복귀를 환영했다.
“어쩐 일이냐? 본캐는 재미없다더니?”
디저트 연합원들은 대부분 부캐를 키운다.
부캐를 키우기 위한 최소 조건은 레벨 250을 달성하는 것.
그러니까 부캐를 가진 플레이어들은 모두 레벨 250을 돌파했다는 소리였다.
골럼베룸이 말했다.
“초심을 알게 해준 녀석이 하나가 있어서.”
“응? 지구에?”
“그래.”
마시멜로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지구 같은 하위 서버에서 골럼베룸에게 자극을 준 플레이어가 있다니.
“자극을 준 녀석이 대단했다기보다는, 네가 착즙해서 자극받을 거리를 찾아냈겠지.”
“그런 게 아니다. 김철수. 그자는 내게 수많은 영감을 선물했다. 내가 잊고 있던 나의 오래전 모습을 보여주었지.”
“김철수라.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곧 알게 될 거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야.”
“평가가 후하네?”
“그래. 그놈은…… 진짜배기였어. 어쩌면.”
골럼베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언젠가 너를 뛰어넘을지도 모르겠다.”
“걔 직업이 뭔데?”
“스트리머.”
“스트리머?”
마시멜로는 푸하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걔 골드버튼은 받았냐?”
“아직. 현 구독자 4억 수준이다.”
“근데 무슨 나를 뛰어넘어?”
마시멜로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각성하면서부터 구독자가 3억이었어. 레벨 10을 달성했을 때 이미 4억이었고.”
“그건 네 부모님 덕분이잖아.”
“그것도 재능 아니냐?”
참고로 마시멜로의 부모는 이전 세대의 초고레벨 랭커였다.
그것도 최상위 서버인 아르비스에서 말이다.
그들의 아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우주에서 3억의 구독자가 밀려들었다.
“뭐, 어쨌든, 위대한 길잡이가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이름 정도는 기억해둬야겠지. 이름이 뭐라고?”
“김철수. 꼭 기억해라.”
“김철수. 그래. 기억하지.”
“내게 의뢰할 공략 후보지들이 있나?”
“있지.”
마시멜로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사실 김철수에게 큰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위대한 길잡이가 다시 길잡이 활동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는 건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장한계에 부딪혀 더 이상 본캐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던 골럼베룸이었으니까.
“아! 야. 위대한 길잡이 복귀 기념 Q&A 영상하나 찍자. 조회수 잘 나오겠다.”
엘튜브각 잡혔다.
* * *
백과사전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온몸이 차게 식는 것만 같았다.
한마갤과 김잘알TV의 채팅창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미친…….”
그는 한동안 멍하니 액정을 살펴보다가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김철수의 분석이 지나치게 정확했다는 것은 둘째 문제다.”
김철수가 ‘검은 범의 노래’의 원리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 놀라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납득할 수는 있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김철수가 사용한 ‘모방’의 능력이었다.
‘분명히 세 마리였다.’
조로가 형상화한 것과 거의 비슷한 퀄리티의 흑호였다.
그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채 옆집의 대문을 쾅쾅 두드렸다.
“뭐냐?”
옆집 소꿉친구, 각성명 ‘마시멜로’였다.
각성명 ‘백과사전’과 ‘마시멜로’는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였으며 지금도 이웃집에 살며 상당히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마시멜로 형상의 모자를 쓰고 잠옷을 입은 남자, 마시멜로가 문을 열어주었다.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구냐?”
“야, 너 모방 있지?”
“모방?”
마시멜로는 고개를 갸웃했다.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생각해 냈다.
“아, 내가 두 살 때 쓰던 거?”
“그래, 그거.”
아르비스의 스트리머라면 대부분 ‘모방’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시멜로처럼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지는 않았더라도, 보통 중수 레벨쯤 되면 모방을 익힌다.
“상대의 스킬을 어느 정도로 재현할 수 있냐?”
“상대의 스킬이 뭐냐에 따라 다르지?”
“잘만 사용하면 즉살의 효과를 100퍼센트에 가깝게 올려주는 기술.”
“야, 그런 건 전 우주를 뒤져도 몇 개 없어. 그 이름이 뭐더라? 조로였던가? 걔가 쓰긴 쓰는 것 같던데.”
“그래, 그거. 모방을 사용하면 그걸 얼마나 똑같이 재현할 수 있지?”
“스트리머가 그걸 왜 재현하는데?”
“아무튼 재현한다면 얼마나 할 수 있냐고!”
백과사전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마시멜로는 귀를 막았다.
“이 새X가 아침부터 왜 이럴까?”
“제발 알려줘.”
“그렇게 절박해?”
“그래, 절박하다.”
“그럼 형 해봐.”
“형.”
“이걸 한다고?”
마시멜로의 머리 위에 놓인 마시멜로 형상의 모자가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형님 해봐.”
“형님.”
“와, 이 새끼 이거 진심이네?”
결국 마시멜로는 답을 내려주었다.
“대충 비슷한 형상 정도는 흉내 낼 수 있겠지.”
“똑같은 효과를 낼 수 있냐?”
“미쳤냐? 그건 모방이 아니라 복사지. 그건 지금의 나도 쉽지 않아.”
“그렇지? 일반적으로는 이게 안 되는 게 맞는 거지?”
마시멜로는 모자를 똑바로 썼다.
백과사전의 모양새를 보아하니 괜스레 그 또한 진중해졌다.
“모방으로 그런 스킬을 복사해 낸 놈이 있어?”
“있다.”
“뭐하는 놈인데? 특수 계열의 술사같은 건가?”
“아니. 스트리머.”
“스트리머가 모방을 해서 그 정도 등급의 스킬을 똑같이 사용했다고?”
“오히려 더 뛰어난 구석도 있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사기 칠래?”
백과사전은 녹화된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상을 확인한 마시멜로는 어이없다는 듯 허- 웃었다.
“조작 흔적은 없는데?”
“원본이다. 나는 실시간으로 봤어.”
마시멜로도 어이없다는 듯 백과사전을 쳐다봤다.
“야, 이게 어떻게 되는 거냐?”
“너도 모르냐?”
“모방이 원래 이런 게 아닌데?”
마시멜로는 한참 동안이나 영상을 계속 살피다가 물었다.
“얘 이름이 뭐라고?”
“김철수.”
“김…… 철수?”
마시멜로의 눈에 이채가 깃들었다.
결국 백과사전은 며칠 후에나 그 대략적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 그것은 불가사의한 힘이었다. 카드 능력을 통하여 상대 능력을 복사해 오는 권능을 이미 수차례 경험한 김철수이기에, ‘모방’의 능력이 극대화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또한 완벽한 분석이라 보기는 어렵다.) 어쩌면 ‘올라운더’ 특성이 적용되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올라운더만으로는 이 정도 효과를 일으키기 어렵다.
(중략)
……하여, 지금 단계에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어쩌면 김철수는 전설로만 전해지는 ‘먼치킨’ 특성을 이미 획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글 작성자: 백과사전]
그리고 차진혁도 한마갤에 올라온 백과사전의 게시글을 확인했다.
‘먼치킨’이라는 불가사의한 특성을 두고 수많은 유저들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최근 논란 중에 가장 뜨거운 논란이었고 조회수와 댓글도 급증하고 있었다.
관련 게시글도 쉴 새 없이 리젠되었다.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아무래도 이거, 엘튜브 각이다.
차진혁이 방송을 켰다.
[먼치킨.]
방송 제목은 심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