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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96화 (196/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96화

릴리아는 두 눈을 꿈뻑이며 공방을 돌아보았다.

‘상태가…….’

거의 전쟁 직후의 폐허였다.

이런저런 아티팩트와 자재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각종 포션이나 연금술 재료들이 제 위치가 아닌 이상한 곳에 놓여 있었다.

“연금술을 연구하다가 폭발했네. 죽을 뻔했어. 아주 기초적인 재료 배합에 실패해서 말이야.”

“괜찮으세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 분이시잖아요.”

“에잉, 내가 기초 재료를 모으는 걸 안 한 지 벌써 100년이 넘었어. 그래서 늘 비서나 조수들에게 맡겨왔잖나? 최근에는 자네가 다 해줬고 말이야.”

최갑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네가 없으니 공방이 아주 엉망이야. 다른 사람들을 고용해 봤지만 도움이 안 되더군. 아무래도 나한테는 자네가 필요해. 월급을 10배 올려줄 테니 계속 일하겠나?”

“…….”

“왜? 10배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럼 20배 주지.”

릴리아는 최갑수가 왜 저러는지 알고 있었다.

일을 더 해달라고 10배, 20배를 마구 퍼주지는 않는다.

최갑수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치 있는 일에는 돈을 펑펑 쓰지만,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자린고비다.

“제 사정을 다 알고 계신 거군요.”

“다는 몰라도 대충은 알지.”

최갑수는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몽마들에게는 몽마들의 사정이 있을 것이므로.

“나도 소싯적에 몽마랑 사귄 적이 있었거든.”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호의는 무슨. 하루 이틀 더 쉬도록 해.”

“네.”

릴리아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가부좌를 틀었다.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의 꿈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고, 결국 찾던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김철수 씨. 이건 꿈입니다. 하지만 오해하지는 말아요. 당신을 연모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런 방식으로 당신을 유혹할 건 아니니까.”

꿈을 통해 김철수에게 이야기를 전달했다.

-“내 대신 복수를 해줘서 고마워요. 그렇지만 제 복수는 끝나지 않았어요. 매켄드라 혼자서 그런 일을 벌인 게 아니니까요. 블랙은 지구 서버에 꽤 많은 공을 들이고 있었어요. 아마 당신을 제거하려고 하겠죠. 당신을 연모하기에, 그리고 언니의 복수를 위하여, 나는 블랙을 무너뜨리고 싶어요. 내가 도울게요. 몽마의 방식으로요. 몽마들의 네트워크에 의하면 블랙의 수장이 미국의 에건 폴과 만남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 * *

같은 시각.

블랙의 수장인 ‘세피아-그란델’은 에건 폴과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란델이 입을 열었다.

“네가 지구 서버 스트리머 계열 공식랭킹 1위, 에건 폴이지?”

“그렇습니다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에건 폴은 잔뜩 긴장했다.

어벤저스 사단의 그 누구도 이 자를 막지 못했다.

이자가 마음먹었더라면 어벤저스 사단은 몰살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타 서버의 강자가 틀림없었다.

“김철수를 알고 있겠지?”

에건 폴이 눈을 크게 떴다.

“알고 있습니다.”

“한 가지를 가르쳐주지. 경쟁자가 있다면 가차 없이 짓밟아야 한다.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니까.”

그란델이 후후- 웃었다.

“김철수를 짓밟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얘기를 모두 들은 에건 폴은 꿀꺽 침을 삼켰다.

잔뜩 겁에 질린 척 되물었다.

“그 정도 힘을 가지고 계시다면 직접 하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내가 직접 움직이기에는 여러모로 걸리는 것들이 많아서.”

* * *

‘세피아-그란델’과 헤어진 에건 폴은 굳은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그란델 앞에서 굽신굽신하고 겁먹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를 어쩐다.’

에건 폴은 차진혁을 넘어서고 싶다.

언젠가는 차진혁보다 더 위대한 스트리머가 될 거라는 자기확신도 지니고 있었다.

‘김철수를 짓밟는 건 나여야만 한다.’

그래야 의미가 있었다.

스트리머 대 스트리머로, 김철수 위에 올라서야 한다.

그것이 요즘 그의 목표였다.

‘김철수에게 위기가 닥칠 건데…….’

지금 김철수는 조로라는 타 서버의 랭커에게 쩔을 받고 있는 중.

지금 당장 연락할 수단도 없었고, 연락할 수 있다고 해도 되도록 자제하는 편이 좋았다.

‘놈들이 블랙이라고 했지.’

그란델이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는 않았으나 에건 폴은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초강대 연합은 아니지만, 반대로 또 아무 눈치도 안 보고 마구잡이로 일을 벌일 수 있는 소규모 연합도 아닌, 이래저래 중간에 끼여서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 중간규모의 연합.’

그래서 그는 직접 움직이는 대신 에건 폴 자신을 방패막이로 쓰려는 것 같았다.

김철수를 삼키겠다고 말을 하는데, 그건 저 샴 쌍둥이(세피아-그란델)의 관용적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죠셉. 오랜만인데 술이나 한잔하자. 별일은 무슨. 그냥 좋아하는 친구끼리 술이나 먹자는 거지, 브로.”

좋아하는 친구?

이건 무조건 무슨 일이 있는 거다.

죠셉은 그렇게 확신했다.

* * *

“그냥 요즘 나와 친한 사람들은 다 어벤저스 소속이거나, 어벤저스의 지원팀에 속해 있잖아. 친분을 나누고 싶은데 결국 다 비즈니스 얘기로 빠지게 돼서 재미가 없더라고.”

죠셉은 어깨를 으쓱하며 와인을 조금 마셨다.

‘내가 어벤저스가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있는 거구나.’

그를 통해 유추했다.

‘감시당하고 있나 보군.’

죠셉은 자연스레 술잔을 부딪치며 에건 폴과 대화를 나눴다.

얼굴이 빨개진 에건 폴은 약간 취한 듯 말했다.

“요즘은 뭐 비밀이 없어. 뭐 좀 숨기려고 하면 기자계열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알고 쫓아오고 탐정 놈들이 파헤치고 심지어 기밀문서는 도둑놈들이 다 훔쳐가잖아.”

비밀스럽게 전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둘은 옛날 해변에서 구덩이를 파고 몸을 묻었다가 못 빠져 나와서 911이 구해주었던 얘기와 어린 시절 누가 더 싸움을 잘했느냐로 다투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에건 폴과 헤어진 죠셉은 왕유미와 대화를 나눴다.

죠셉은 왕유미 채널의 관리자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왕유미와 함께 관리자 채팅으로 대화를 나눴다.

-아무래도 에건 폴이 차진혁에게 뭔가를 전하고 싶은 것 같다. 철저한 감시를 받고 있는 모양이던데.

-그래요? 비밀리에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거죠? 그렇다면 적임자가 있죠.

왕유미는 청담동에 위치한 최갑수의 공방을 찾아왔다.

본래 예약하기가 무척 힘든 곳이었으나, 차진혁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왕유미는 예약 없이도 이곳을 찾을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었다.

“뭐? 나를 찾아온 게 아닌가?”

“네, 릴리아 씨의 도움이 좀 필요할 거 같아서요.”

대화를 나눈 릴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건 폴의 꿈에 들어가 볼게요. 얘기를 나눠보죠.”

그리고 릴리아는 에건 폴의 꿈속에 들어가 그와 대화를 나눴다.

블랙의 수장, ‘세피아-그란델’이 어떤 계략을 꾸미고 있는지에 대한 지극히 사무적이고 공적인 대화였다.

“으음…….”

잠을 자던 에건 폴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아직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너무……나…… 아름……다……워.”

릴리아의 얼굴이 계속해서 아른거렸다.

그는 한동안 꿈에 취해 있다가 자신의 뺨을 때렸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응?”

에건 폴은 고개를 갸웃했다.

“꿈을 꾼 것 같은데?”

아주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 꿈 같았는데 기억이 잘 안 났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꿈을 기억해 보려 애썼다.

뭔가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무슨 꿈이었…… 헉? 이게 뭐야?”

오랜만에 몽정을 했다.

* * *

──────────

[누구보다 빠르게]

180~200레벨 구간, 우주 신기록을 달성하였습니다.

위대한 기록을 세운 이에게 24시간 동안 특별한 보정이 주어집니다.

업적 효과: 효과 발동 시, 24시간 동안 경험치 +120%

단, 해당 업적의 효과는 1회성 효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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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에 등록도 다 했겠다, 업적을 살펴보고 있는데 조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약속한 레벨업 버스는 200까지였다. 물소 던전은 레벨 200을 넘어가면서부터는 레벨업 속도가 급속도로 늦어져. 그러니까 여기서 이만 끝…….”

“잠깐.”

“왜?”

“내 업적 효과 확인해 봐라. 지금 내 방송 켜봐.”

내 구독자답게, 조로는 내 방송을 능숙하게 찾아 켰다.

“업적 효과가 엄청나군. +120%라니. 듣도보도 못한 효과다.”

“24시간만 더 도와줘라.”

“뻔뻔하게 말하는군?”

“뭔 소리야, 당연히 도와줘야지.”

“응?”

“내가 강해지면 네가 더 재밌을 거 아니냐? 네가 날 키워주는 이유는 좀 더 즐겁게 나랑 싸우기 위한 거 아니었냐?”

“물론 그렇지.”

“그러면 이왕 이렇게 된 거, 24시간만 더 키워봐. 내가 더 재밌게 해줄 테니.”

“……그럴까?”

업적효과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좋아. 8시간 후 다시 만나지.”

“그래.”

최적의 컨디션과 효율을 위해서는 잠과 명상이 필수였다.

‘일단은 잠부터 자볼까.’

그런데 잠에서 몽마가 나타났다.

본능적으로 베어버릴 뻔했지만, 얼굴이 낯익어서 가까스로 참았다.

‘꿈속에 나타나?’

이건 본격적으로 날 유혹하겠다는 건데?

확실히, 꿈속 세계에서 본 릴리아는 현실 세계에서 본 릴리아보다 훨씬 아름다웠고, 더 매혹적인 복숭아향을 흩뿌리고 있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진짜 미인계가 들어올 건가?’

이런 공격에도 면역을 많이 만들어놓아야 안심이 될 것 같다.

몽마치고 굉장히 오래 기다린 걸 보면, 아마도 많은 걸 준비했겠지.

과연 얼마나 치밀하게 날 유혹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응?’

근데 딱히 나를 유혹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에건 폴에게서 얻은 정보를 내게 전해주고 있었다.

‘신종 유혹?’

잘 모르겠단 말이야.

“조로가 당신을 공격할 거예요.”

“그건 알아.”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대화를 나눴다.

릴리아가 입을 열 때마다 달큰한 복숭아 냄새가 내 입안에 맴도는 것 같았다.

“알고 있었어요?”

“내 룰 브레이커를 노릴 거 같은데.”

“그것도 알고 있었어요?”

릴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에 상당히 침착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릴리아라서 그런지 조금 색다르기는 했다.

그 모습이 조금 귀엽기는…… 와, 신종 매혹 방법 맞네.

나는 정신을 번뜩 차렸다.

릴리아를 향한 호감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으로 보아, 유혹 아닌 척하면서 유혹하는 신종 기술임이 틀림없었다.

“단순히 룰 브레이커를 빼앗는 것에 그치지 않을 거예요. 블랙의 세피아-그란델이 움직였어요.”

“아…… 그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샴쌍둥이?”

릴리아가 움찔 놀랐다.

‘역시 늘 치열하게 플레이하고 있구나.’

단순한 직접 플레이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모든 곳에서 치열한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저 정도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었겠지.

‘하지만 아무리 치열하다고 해도, 지구 서버에서 세피아에 대한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은데.’

루시아의 업을 이어받고자 하는 상황에서 루시아는 차진혁이 어떻게 정보를 획득했는지 조금 궁금해졌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요?”

김철수의 대답은 심플했다.

“그 정도는 다 아는 거 아니야?”

“지구에서는 정보 얻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아냐. 걔 유명해.”

이 정도는 누구나 다 아는 거라는 표정이었다.

릴리아는 김철수의 눈높이에 맞춰 예시를 들었다.

“지구에서 제일 유명한 나라는 미국이죠?”

“갑자기? 아무래도 그렇지?”

“그 유명한 미국 중견 기업 오너의 이름 알아요?”

“모르지?”

“거봐요. 모르는 게 보통이에요.”

같은 서버 내. 다른 맵에 존재하는 중견 기업 오너의 이름은 모르면서, 아예 타 서버의 중견 연합 연합장의 이름과 특성은 정확히 알고 있다니.

근데 그걸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니.

아무래도 김철수에게서 뭔가를 배우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치열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김철수에게 있었다.

“두뇌를 담당하는 그란델이 계략을 짰어요. 그들이 에건 폴을 움직일 거예요.”

“에건 폴?”

에건 폴이라는 말에 차진혁의 심장이 조금 더 뛰기 시작했다.

참고로 에건 폴의 구독자 숫자는 4억 5천만.

차진혁보다 구독자가 더 많았다.(물론 과장된 숫자다.)

‘내가 아무리 치열해도 넘지 못하고 있는 산.’

솔직히 차진혁 입장에서는 이해가 잘 안 됐다.

자신보다 콘텐츠의 질도, 양도, 치열함도, 다 부족한 것 같은데 결국 구독자 숫자와 조회수는 에건폴이 더 높았으니까.

‘숫자는 거짓말 안 하지.’

숫자도 거짓말을 한다는 걸, 차진혁은 몰랐다.

어쨌든 에건폴의 이름이 등장하자 차진혁의 눈이 반짝 반짝 빛났고, 릴리아는 그런 차진혁을 보며 기쁘면서 슬펐다.

‘나보다 에건폴을 훨씬 반가워하네.’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릴리아는 서운함을 감춘 채 말을 이었다.

“에건 폴을 통해 조로에게 미션을 내릴 것 같아요. 룰 브레이커를 빼앗는데 그치지 않고서, 당신을 살해하라는 미션을 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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