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94화
차진혁의 반응을 예상 못한 건 아니었다.
서지아와 서지수는 차진혁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감명 깊게 배운 것은, 모든 것에 치열하게 임하는 자세였다.
그녀들은 차진혁을 대할 때에도 치열하게 대했고 또한 치열하게 경쟁했다.
차진혁의 머릿속이 꽃밭(?)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차진혁의 반응 또한 예상할 수 있었다.
둘은 동시에 생각했다.
‘진혁 오빠답네.’
서지수가 히히 웃었다.
“우리 많이 성장한 거야?”
“어.”
서지수는 서지아를 힐끗 쳐다봤다.
그녀 또한 서지아를 사랑하지만, 경쟁은 늘 공정해야 했다.
‘나는 [SSS급, 이성의 마음을 얻는 101가지 방법]을 읽었다고!’
서지수 주변에는 늘 이성이 들끓었다.
태어나기를 예쁘게 태어난 그녀는 호감을 얻기 위해 노력 같은 것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랬던 그녀가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SSS급, 이성의 마음을 얻는 101가지 방법]이란 책을 알게 되고 무려 15만 원이나 주고 그 책을 사서 읽었다.
바이럴에 당했다.
“그럼 나 머리 쓰다듬어줘.”
서지수가 머리를 내밀었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기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차진혁은 역시 보통은 아니었다.
‘신종 암살 기법인가?’
차진혁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서 서지수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어 보았다.
그림자군주로서 어떤 기상천외한 암살을 노릴까 하는 기대 때문에 조금 설레기도 했다.
‘딱히 암살 시도는 없고.’
그렇다면 이건 아마도 셋업 과정이겠지.
나중에 치명적인 한 방을 보여줄 것이 틀림없어서 조금 더 설레기 시작했다.
그 옆에 서지아도 아무 말 없이 은근슬쩍 머리를 내밀었다.
“……너도? 머리 쓰다듬으라고?”
끄덕.
‘둘 다 이러는 걸 보면 분명히 합작 공격이겠지?’
지금은 아닌 것 같지만, 언젠가 분명 치명적인 수법을 사용할 것이 틀림없었다.
차진혁은 긴장을 풀지 않고서 서지아의 머리도 쓰다듬었다.
‘애들이 성장한 만큼, 이제는 셋업 과정을 철저하게 가져가는 것 같네.’
차진혁은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내가 매켄드라나 조로를 상대하면서 보여준 셋업에 많은 영감을 받았나 보다.’
애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건 늘 즐거운 일이었다.
서지수가 말했다.
“근데 아까 그 아저씨 낭만이 있는 아저씨이기는 하더라.”
“낭만이 있다고?”
“응. 오빠랑 제대로 싸워보고 싶으니까 오빠 버스 태워준다고 하잖아. 타 서버까지 데려가서.”
차진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 그게 다라고 생각해?”
“응? 그게 다가 아니야?”
서지아도 고개를 갸웃했다.
“중계자의 시선. 썼잖아.”
속마음까지 다 읽어내지 않았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었다.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진짜 광기와 가짜 광기는 달라.”
만약 진짜 광기였다면 뒤에 ‘#?’ 같은 것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뒤에 ‘?’같이 애송이 같은 게 붙었다는 건 가짜로 미쳤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나도 진짜 광기인 줄로 오해할 뻔했다.”
차진혁은 알고 있었다.
아우툴 서버의 검술가 조로가 훗날 사용하게 될 아이템이 무엇인지를.
‘놈이 미쳐 있는 건 사실인데. 내가 아니라 내가 가진 룰 브레이커에 미쳐 있는 거겠지.’
아무래도 룰 브레이커를 노리고 접근한 것 같았다.
‘지금 당장은 빼앗을 수 없고, 아마도 내 레벨이 많이 올라야 빼앗을 수 있나 보지?’
또 한편으로는 레벨급을 맞춘 다음 싸우고 싶다는 말도 아주 거짓은 아닐 것이었다.
서지수가 펄쩍 뛰었다.
“그, 근데 그걸 알고도 받아들였단 말이야? 왜?”
서지아가 서지수의 허벅지에 손을 대고 소파에 앉혔다.
그녀가 작게 말했다.
“엘튜브 각.”
“……응?”
“골드 버튼. 가야지.”
서지아의 눈에 ‘진짜 광기’가 깃들어 있었다.
쌍검을 쓰는 누구와 달리, 중계자의 시야에는 단 한 단어만 잡혔다.
[#골드버튼]
* * *
범우주 연합 블랙은 이번 일로 크게 체면을 구겼다.
“매켄드라의 손실은 꽤 아프네.”
블랙에는 두 명의 공동연합장이 존재했다.
바로 세피아와 그란델.
참고로 둘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샴쌍둥이였다.
머리는 둘, 몸은 하나.
세피아는 여성체로서의 얼굴과 인격을 지니고 있었고, 그란델은 남성체로서의 얼굴과 인격을 지니고 있었다.
세피아가 말했다.
“매켄드라는 너무 아까워.”
그란델이 세피아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약점이 너무 뚜렷한 놈이었어. 사실 알 만한 놈들은 다 알고 있었을 거고.”
이미 강대 서버의 정보상들은 블랙의 ‘시설’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었고 그곳이 무엇을 위한 곳인지도 다 알고 있었다.
다만 건드릴 필요가 없어서 내버려 두었을 뿐.
그란델이 계속 말했다.
“차라리 잘 된 거라 생각해.”
“어떤 면에서?”
“우리가 한국 맵을 장악할 명분을 줬잖아. 우리는 3등 군주들 여럿도 잃었고, 나름 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던 존 프릭과 험프리 밀런도 잃었지. 이번에는 매켄드라까지 죽었고.”
블랙은 범우주 연합이기는 했으나 강대연합은 아니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강대연합이면 지구와 같은 신규 서버를 탐낼 이유도 없을 거고.
그렇다고 아주 이름이 없는 건 또 아니어서 활동하기가 마냥 편한 것도 아니었다.
강자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나 명분 같은 것들이 있었으니까.
그들이 최소한의 인원만 지구에 파견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세피아는 인상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그러고 보니 [피카소의 붓]은 우리가 얻을 계획이었잖아. 거기 들어간 돈이 얼만데…….”
“다 알고 있는 얘기를 할 필요는 없잖아?”
히트호른의 관계자들에게 온갖 종류의 뇌물을 많이도 먹였다.
“나한테 화내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냐.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도 이제 피해를 입을 만큼 많이 봤다 이거지.”
“그래서?”
세피아는 그란델의 말들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생각하고 전략을 짜는 건 그란델의 몫이었다.
그러려고 취향도 아닌 그란델을 삼켰다.
똑똑한 그란델을 삼켜서 그 힘을 손에 넣었다.
세피아의 특성이 바로 ‘삼키는’이었다.
시설에서 관리하던 ‘삼키는 민어’는 세피아의 능력을 일부 이식한 것이었고.
“물론 지구가 자원이 풍부한 서버는 아냐. 훌륭한 아티팩트가 쏟아지는 서버도 아니고. 하지만 김철수가 있잖아.”
“김철수?”
“김철수를 삼켜. 이제 네가 직접 움직여도 뭐라 할 사람 없어. 김철수를 먹고, 황금 수호수의 소유권을 가져와. 그리고 서울맵의 토지를 강대서버에 판매하는 거지.”
“걔들이 서울맵의 땅을 탐내?”
“별장으로 쓰기 딱 좋잖아. 특히 어린 애들 데리고 있는 부모들은 너도나도 사겠다고 달려들걸? 마침 커다란 강이 있어서 요트 띄우기도 좋고. 거기 있는 건물들을 싹 밀고 강대 서버 취향으로 별장들을 만들어 분양하면 떼돈을 벌 수 있을 거야.”
“오!”
세피아가 헤헤 웃었다.
“그럼 우리는 부자가 되는 거야?”
“부자로 만들어줄게, 세피아.”
둘이 마주 보았다.
그란델은 침을 꼴깍 삼키고서 목을 길게 쭉 뻗어 세피아의 입술에 입술을 맞대었다.
세피아는 그란델을 밀어 낼까 하다가 내버려 두었다.
부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고, 삼켜진 대상이 자신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세피아가 입술을 뗐다.
“키스까진 허락 안 했어.”
그란델은 약간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첫 분양에 성공하면, 키스하게 해줘.”
* * *
[폭풍 레벨업]
차진혁은 방제답게 빠른 레벨업을 이어갔다.
버스를 태워준다던 조로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확실히 레벨업 특화 던전입니다. 제가 스트리머로서 딱히 활약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파티원에게 자신의 경험치를 몰아줄 수도 있는 설정까지 걸려 있었다.
“또다시 물소들이 떼로 리젠되었습니다.”
[LV182/거대 뿔 물소/뿔 질주]
차진혁은 어그로를 끌지 않고 조용히 구석에서 조로를 구경했다.
이곳은 커다란 하나의 공간으로 구성된 던전이었는데, 한 번에 수백마리의 물소들이 생성되었다.
조로가 검을 휘둘러 어그로를 당기면 수백마리가 한 번에 조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피흡템과 고레벨 콜라보로 레벨 180대 물소들을 아주 쉽게 사냥하고 있네요. 게다가 쌍검이라서 공격속도도 아주 빠릅니다.”
레벨 220대 플레이어가 레벨 180데 물소들을 사냥해 봐야 경험치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경험치를 전부 차진혁에게 몰아주고 있었다.
덕분에 차진혁의 레벨은 벌써 170을 달성했다.
튜토리얼 필드만큼 빠른 레벨업이었다.
‘이렇게 손쉬운 레벨업 존이 있는데 왜 다른 스트리머들은 이걸 안 하지?’
이곳의 이름은 ‘물소 신전’이었다.
설정상 소를 섬기는 자들이 소를 경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특별한 신전.
차진혁도 이미 알고 있는 곳이기는 했다.
레벨 150~200 사이에서 최고의 효율을 내는 레벨업 전용 던전이었으니까.
다만 회귀전의 차진혁은 이 던전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
레벨과 경험은 함께 가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이었으니까.
저레벨에는 저레벨에 맞는 경험이 있고, 고레벨에는 고레벨에 맞는 경험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지나치게 레벨만 빨리 올리면 빨리는 갈 수 있지만 멀리는 못 간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건 전투 계열 애들 얘기고. 스트리머들은 여길 이용할 법도 한데?’
차진혁의 신념과는 별개로,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물소 신전’을 이용했다.
차진혁과 달리 빠른 레벨업에 목숨을 건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이상하게 스트리머들은 여기 이용을 안 했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차진혁은 몸을 살짝 뒤틀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물소 한 마리의 얼굴 옆면을 쳐냈다.
너무 강한 공격을 하면 어그로가 끌리니까 최소한의 동작으로 물소의 공격을 막아냈다.
“워낙 숫자가 많다보니 한 번씩 어그로가 튀긴 하네요.”
아무래도 단순 반복작업의 연속이다보니 좀 지루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생방 시청자들 숫자도 그렇게 많이 떨어지지 않을 걸 보면 말이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LV 180을 달성하였습니다.]
한편, ‘물소 신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마갤 유저들은 황당하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원래 저곳은 전투계열, 그중에서도 방어에 특화된 탱커들이 버스 탈 때 이용하는 곳임.]
┗설명 좀.
┗뉴비들이 알기 쉽게 좀 알려줘라.
[저긴 딜러계통 고레벨 플레이어가 물소를 대량학살하기 위해 최적화된 던전임. 물소는 난폭하고 공격력이 강하지만 방어가 개쓰레기임. 쉽게말해 딜 몰빵 몹. 피흡 저항도 거의 없다시피 해서 고레벨 딜러가 피흡템차고 때려대면 대량학살이 쌉가능해지는 곳이라 할 수 있음.]
[여기서 중요한 건 딜 몰빵임. 고레벨 딜러들이야 피흡템 없이도 몇 대는 얻어맞아도 괜찮지만 정작 버스 탄 저레벨 애들은?]
결국 몇 마리 정도는 저레벨 플레이어를 공격하게 되어 있다.
거기서 너무 크게 반응하면 물소 떼들의 공격이 쏟아져 사망하게 된다.
[결국 저기서 살아남으려면 최소한의 동작으로 물소의 공격을 쉽게 흘려낼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뜻이고, 그게 가능한 저레벨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음. 피지컬적으로나 멘탈적으로나.]
차진혁 기준에서는 ‘개나 소나’ 이 던전을 이용하여 레벨업을 했었지만 이건 그의 기억이 조금 왜곡된 것이었다.
개나 소나 이 던전을 이용했던 것이 아니라, 물소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는 수준의 방어력을 가졌으면서, 물소의 공격에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멘탈을 가진 플레이어들만 이곳을 이용했다.
그게 차진혁 기준에서 개나 소나였을 뿐.
[되게 쉬워 보이는데? 나도 저기가면 폭풍 레벨업 쌉가능할듯?]
┗원래 보는 건 쉽다, X신아.
┗응, 입 축구로는 나도 손흥민.
많은 이들이 물소 던전에서 벌어진 사건사고에 대한 영상 링크를 한마갤에 공유했다.
차진혁의 왜곡된 기억과는 별개로, 사실 물소 던전은 난이도가 상당한 던전이었다.
입장 제한 인원은 다섯이었고, 보통은 고레벨 플레이어 네 명에 저레벨 플레이어 한 명이 입장했다.
고레벨 플레이어를 무려 넷이나 고용할 수 있을 정도로 돈 많고 부유한 집안의 플레이어나 가능한 버스였다.
[혼자서 저 많은 딜을 때려 넣고 있는 조로나, 170레벨 주제에 저기서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김철수나, 둘 다 미친놈이다.]
┗방송 놓침? 지금 180레벨인데?
┗엥? 이틀 만에?
┗이틀 동안 방송을 안 봤다고?
┗치열하지 못하누 ᄍᄍᄍ
┗반성합니다. 치열하지 못했습니다, 회개합니다, 치-멘.
[ㅅㅂ김철수 레벨 200 달성 함. 이게 나라냐?]
┗사상 초유의 레벨업 아니냐?
┗와 이제 김철수 중수도 벗어났네.
┗말이 200이지, 카드버프 먹이면 사실상 220 아님?
실제로 차진혁은 엄청난 속도로 레벨 200을 달성했다.
차진혁으로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속도였다.
‘이게…… 되네?’
200레벨을 달성한 직후, 그에게 알림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