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87화
골룸이 출구를 샅샅이 조사하고 있을 무렵 나는 내 나름대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주목한 건 1번 쪽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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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트호른 GM들→난이도 조정→보상만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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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보상만땅’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물론 즉살처럼 진귀하고 훌륭한 업적을 손에 넣기는 했지만 이건 내가 상급악마를 한 방에 처치하고서 150억 다이아를 때려 박았기 때문에 얻은 거지, GM들 덕분에 얻어낸 건 아니었다.
히죽, 웃음이 나왔다.
‘보상만땅은 아마도 [피카소의 붓]을 의미하겠지.’
그리고 저렇게 의욕이 불타오르고 있는 상태의 골룸은 가진 바 모든 잠재력을 이끌어 내어 게이트에 뭐가 숨겨져 있는지 결국 찾아낼 것이 분명했다.
“찾았…… 다!”
골룸이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소리쳤다.
“이 출구는 단순한 출구가 아니다!”
또, 또 다 아는 소리 하고 있네.
쟤는 앞으로 설명충이라 불러야겠다.
“설정을 조금 매만지면 이중던전의 입구로 탈바꿈된다. 그걸 어떻게 매만지는지, 김철수, 너는 알고 있나?”
의기양양한 모양새로 내게 가까이 다가와 자랑스레 말하길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모르지.”
“그러므로 이번 경쟁에서는 내가 이겼다.”
“그래.”
“왜 쉽게 인정하지?”
얘는 왜 인정해도 불만인 거 같냐.
인정하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았다고 또 뭐라 할 거잖아?
설명충이 아니라 불편충인가 싶기도 하고.
“길잡이가 스트리머 이겨 먹어서 좋겠다.”
“아, 맞다. 너 스트리머였지.”
“그럼 네 패배냐?”
“……그, 그건 아니지.”
얘는 본캐만 위대한 길잡이지, 부캐는 좀 허접한 거 같다.
앞으로 얘랑 다시 플레이할 일은 없을 거 같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골룸이 손뼉을 쳤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게이트의 이름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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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예술에 미친 자의 고뇌(잠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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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은 계속 의기양양한 채 말했다.
“이중던전이 있을 거라는 내 예상이 맞았다. 이중던전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던전 안에 던전이 있는 거잖아.”
설명충이 또 설명을 시작했다.
애초에 별로 흔하지 않다나, 훨씬 난이도가 높아진다나, 아무튼 그런 뻔하고 뻔한 얘기들이었다.
다 알고 있는 얘기고 재미는 없었지만 차분히 들어줬다.
‘그래 떠들어라.’
얘가 맘껏 떠들면 떠들수록 방송 분량을 따낼 수는 있겠지.
열 개 말하면 그중 하나 정도는 쓸 만한 것들이 있지 않을까?
어차피 편집이야 내가 하는 게 아니고, 내게는 유능한 편집자가 있으니까 걱정은 없었다.
“……하여, 이 잠금 상태를 풀어내기만 하면 우리는 이중 던전 안에 진입할 수 있다.”
“지금은 못 들어간다는 거지?”
“그래. 이 잠금 상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들이 필요할 거야.”
“그걸 이제부터 찾는다고?”
“그래. 이 정도면 굉장한 속도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본캐 기준 가져오라고 말하고 싶었다.
‘어디서 되지도 않는 기준을 갖고 와서 굉장하다 어쩌다 난리야?’
“비켜봐.”
“왜?”
“잠금 얼른 풀자.”
“기다려라. 내가 금방 풀어…….”
해금술을 사용했다.
내 해금술이라면 이런 잠금 같은 건 쉽게 풀 수 있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별다른 체력소모 없이도 잠금 상태를 풀어버렸다.
“……해금술을 갖고 있었냐?”
“설마 해금술도 없냐?”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기준이 이상하다.
뛰어난 길잡이라면 해금술 하나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고 보니 한세린(패스파인더)이나 두더지맨한테도 해금술이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아냐. 뭔가 있겠지.’
정확히 해금술은 아니어도 해금술 부류의 비슷한 뭔가는 가지고 있을 거다.
나도 모르게 진심이 튀어나왔다.
“해금술도 없이 무슨 길잡이를 하겠다고…….”
“……미친놈이?”
* * *
던전, ‘예술에 미친 자의 고뇌’는 미궁 형태의 던전이었다.
골룸이 말했다.
“어지러울 테니 눈을 감고 있는 걸 추천한다.”
형형색색의 폭죽이 사방에서 불규칙적으로 계속 터지는 것 같았다.
듣기 싫은 고주파가 간헐적으로 울려왔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래도 미친 예술가의 정신세계를 표방하고 있는 던전 같군.”
“그런 것 같네.”
똑바로 걷고 있다 싶으면 어느새 거꾸로 뒤집어져 있고, 분명 앞으로 걷고 있는데 뒤로 걷기도 했다.
벽면이 붉은색이었다가 푸른색이었다가 제멋대로 마구 바뀌었다.
골룸은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모양새로 내게 물었다.
“어지럽냐?”
[#어지럽다고 말해 #너는 어지럽다 #근데 #나, 좀 어지럽냐?]
말하자면 이런 거였다.
나는 하나도 안 어지러운데 너는 어지럽지, 이 허접아?
얘는 진짜 기준이 이상한 거 같다.
“이 정도로 어지러우면 스트리머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스, 스트리머?”
[#길잡이가 아니고?]
“그래. 스트리머는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방송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정신력이 있어야 하잖아.”
“하긴.”
[#기준이 #미친놈이다 #조로같은 새끼.]
골룸은 겉으로는 납득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자꾸 딴 생각을 해댔다.
이러니 내가 중계자의 시야를 끌 수가 있나.
아무튼 골룸은 미로 형태의 길은 우주에서 자기가 두 번째로 잘 찾는다면서 나를 안내했다.
약 30여 분이 흘렀고, 저만치 앞에 문 하나가 생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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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고뇌에는 출구가 없다(잠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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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문 옆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강철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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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가 담긴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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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은 또다시 의기양양해졌다.
“나는 이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이중던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패턴이지. 입구와 출구에 비슷한 설정이 걸려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래서 나는 출구에도 일종의 잠금이 걸려 있다고 봤다. 저 옆에 놓여 있는 상자가 어떤 경로로 여기 모습을 드러냈는지 알려줄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골룸은 이런 저런 설명을 이어갔다.
“아까 적색광과 청색광이 계속 반복되었던 것을 기억하지? 청색광의 파장은 약 450nm 내외이다. 적색광의 파장은 650nm 내외이지. 해당 파장과 던전계수를 ……하여…… 인위적인 각을 구성하여 계산할 수 있다. 이는 간단한 삼각함수의 덧셈정리로…… 하여 탄젠트 알파 플러스 베타는 탄젠트 알파 플러스 탄젠트 베타 분의 1마이너스 탄젠트 알파 곱하기…… 하여…… 우리의 경로를 설정했고…… 하여…… 저 강철상자가 출구 바로 옆에 놓일 수 있도록 설정한 것이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 다 흘려들었지만 중요한 사실 하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개노잼이네.’
세상에 그 어떤 시청자도 저따위 설명을 오래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편집해도 노잼일 거 같다.
제일 좋은 편집은 통편집이거나, 아니면 32배속쯤 해서 대충 넘기는 것이겠지.
“상자 안에 뭐가 있지?”
“아마 이곳을 나갈 수 있는 열쇠가 들어 있겠지.”
나는 진짜로 궁금해져서 물었다.
“근데 왜 안 열리냐?”
“……뭐?”
“이게 열려야 열쇠를 꺼낼 수 있을 거 아니냐?”
“……이걸 여기 소환시킨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거냐?”
나는 또 진심으로 물었다.
“너는…… 이걸로 만족할 수 있는 거냐?”
위대한 길잡이가?
* * *
“너는…… 이걸로 만족할 수 있는 거냐?”
그 말에 골룸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차진혁의 말은 진심이었고,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었다.
‘내가…… 초심을 잃었었구나.’
본캐를 키울 때에는 이렇지 않았다.
그 어떤 성과를 이루어내도 목이 말랐다.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만족이란 걸 몰랐던 것 같다.
‘아무리 부캐라지만 너무 물렀다!’
이제야 본질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초심을 잃었던 자신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혹시 이 상자도 해금술로 열 수 있나?”
[신비, ‘해금술’을 사용합니다.]
해금술이 적용되자 녹색 빛이 상자를 감싸안았고, 상자가 저절로 들썩거렸다.
그러나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신비, ‘해금술’을 사용합니다.]
.
.
.
[신비, ‘해금술’을 사용합니다.]
차진혁은 여러차례 해금술을 사용했다.
골룸은 그 모습을 넋놓고 바라보다가 이내 물었다.
“네가 가진 신비가 해금술이 맞지?”
“맞지.”
집중이 깨진 탓에 차진혁은 인상을 찡그렸다.
‘아…… 잘못하면 정신 잃을 뻔했구나.’
정신을 차리고보니 몸에 무리가 너무 많이 간 상태였다.
아무래도 해금술을 연속해서 사용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몸 상태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뭐, 적당한 타이밍에 잘 끊어줬네…… 가…… 아니잖아? 여기서 몇 번 더 하다가 쓰러졌으면 엘튜브각인데!’
“왜 매너없이 집중을 끊고 난리냐?”
“해금술 연속 사용은 보통 두어 번이 끝이라는 걸 알고는 있는 거냐?”
“몰라.”
“제왕의 격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 서너 번 정도는 쓸 수 있지. 그게 보통이다.”
“근데?”
“너처럼 연달아서 계속 쓰면 정신이 못 버텨. 미친놈이 된단 말이다.”
“뭔 소리야?”
식은땀이 좀 많이 나고 체온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고, 숨을 헐떡거리고 있고, 입안에 잔뜩 메마르기는 했지만 정신은 온전했다.
“멀쩡한데.”
“원래는 미친놈이 되어야 하는데…….”
골룸이 인상을 찡그렸다.
“……원래 미친놈이라서 괜찮은 건가?”
* * *
차진혁은 연속해서 해금술을 사용했고, 결국 상자를 여는 데 성공했다.
[‘열쇠가 담긴 상자’가 해금되었습니다.]
강철상자가 열렸다.
그 안에는 황금열쇠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걸로 열면 되나 보다.”
[예술가의 고뇌에는 출구가 없다(잠금)]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려보았다.
찰칵.
[‘예술가의 고뇌에는 출구가 없다’가 열렸습니다.]
출구 이름에서 ‘잠금’ 표시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이름 자체가 바뀌었다.
[예술가의 고뇌에도 출구는 있었다]
“여기로 나가면 되나 보다.”
“……그래.”
골룸은 깊은 열패감을 느끼며 차진혁을 뒤따랐다.
내가 길잡이니 내가 앞장서겠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차진혁을 인정했다.
‘네놈이 진짜배기 길잡이다.’
이내 알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던전, ‘고뇌하는 다리-예술에 미친 자의 고뇌’를 클리어 하였습니다.]
[업적, ‘올 클리어(고뇌하는 다리-예술에 미친 자의 고뇌)’을 달성하였습니다.]
골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감동했다.
그의 스킬, ‘자동 기록’이 올 클리어 조건을 읽어낸 뒤 양피지에 적어 내려갔다.
‘보스 몬스터의 솔로잉. 그리고 이중던전의 클리어. 그리고 GM들의 인위적인 개입. 이 세 가지 요소가 바로 올 클리어의 조건이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이 던전에 GM들이 인위적인 개입을 많이 했던 모양이었다.
결국 이 부캐로도 올 클리어 업적을 달성해 내고야 말았다.
기쁜 건 차진혁도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곧바로 업적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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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클리어(고뇌하는 다리-예술에 미친 자의 고뇌)]
‘고뇌하는 다리-예술에 미친 자의 고뇌’를 올 클리어한 이에게 부여되는 업적.
1) 올 클리어 각인. (각인 생성위치 : 오른 손목)
- ‘고뇌하는 다리-예술에 미친 자의 고뇌’ 던전 속 마물들에게 공격을 받지 않습니다.
- ‘고뇌하는 다리-예술에 미친 자의 고뇌’ 던전 내에서 모든 능력치가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2) 예술가의 고뇌
- 명상을 통하여 신비를 강화합니다.
- 강화하고자 하는 신비는 예술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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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골룸은 또 놀라고 말았다.
“벌써…… 명상을 끝냈다고?”
신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명상이 필수였고, 차진혁은 이미 명상을 끝낸 상태였다.
골룸도 접해본 적 없는 엄청난 속도의 명상이었다.
차진혁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스트리머 제대로 하려면 멀티 태스킹이 되어야 하더라고.”
명상은 집중이 좀 많이 필요해서 멀티 태스킹까지는 안 되고, 빨리 끝내는 것 정도만 겨우 되었다.
언젠가는 이것도 멀티태스킹을 하는 날이 와야 제대로 된 스트리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중에는 더 잘할 수 있겠지.”
차진혁의 눈에 녹색으로 빛나는 문양이 하나 보였다.
그가 문양을 향해, 새로운 올 클리어 각인이 돋아난 오른손을 내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