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86화
내가 꺼내든 건 ‘알키나스의 정령석’이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잊지 않았다.
‘여기서 편집점 잡고 예전 장면 따오자.’
비록 지금 방송 중은 아니지만 방송 중이라 생각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진행했다.
아주 짧은 자료화면을 띄우는 상상을 생생하게 해냈다.
“한 번, 계약 없이도 나를 소환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 내가 도와주겠다.”
좋아, 이걸 자료로 쓰면 되겠어.
골룸을 보며 배운 사실이 하나 있었다.
구독자라고 할지라도 모든 영상을 다 보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알키나스와 관련된 영상들은 다 안 봤나 보다. 엘리와 계약한 것도 모르고.’
그래서 생각보다 더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야 했다.
그게 구독자를 위한 스트리머의 본분인 것 같다.
‘이건 부수면 되는 거였지?’
꽈득.
[‘알키나스의 정령석’을 사용합니다.]
강렬한 불꽃의 기운이 던전 전체를 휘감았다.
불로 이루어진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다.
나는 온몸에 힘을 푼 채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세계를 음미했다.
‘뇌룡이나 정령왕이나, 등장 임팩트가 참 멋있단 말이야.’
나도 이렇게 멋있는 등장 같은 걸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건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런데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뜨, 뜨거워.”
작은 서둥이의 피부에 열꽃이 피었다.
얼굴이 무척 붉었는데 당장에라도 녹아내릴 것 같았다.
‘어, 안 되겠다.’
내색은 안 하고 있지만 큰 서둥이도 상황은 비슷했다.
강대한 정령력에 잔뜩 긴장한 악마도 잠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어서 내게는 약간의 시간과 여유가 있었다.
‘집어 던지는 수밖에.’
나는 서지수를 먼저 들어 올렸다.
생각보다는 훨씬 가벼웠다.
‘투포환하듯이 집어 던지면 멀리 가겠지.’
생각해 보면 권왕 김정현이 동료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이런 짓을 자주했던 것 같다.
나도 많이 날아봤고, 날리는 걸 많이 보기도 했다.
김정현처럼 하면 되겠지.
다행히 얘네는 체급도 낮고, 몸놀림이 가벼운 암살자니까 던지기 편할 것 같다.
“얼른 출구로 나가.”
나는 서지수를 집어 던졌다.
후웅-
내 생각보다는 잘 날아서 흡족했다.
이것도 영상에 담았으면 조회수 좀 잘 나왔을 거 같은데.
나중에 잘 편집해서 ‘날으는 서둥이’ 같은 쇼츠 영상으로 만들면 재밌을 거 같다.
“지아. 너도 나가 있어.”
쌍둥이라 그런지 체급은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서지수가 날아가는 걸 먼저 본 서지아는 그 나름대로 몸을 뒤틀고 회전력을 더해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미리 준비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걸 보면 기특해 죽겠다.
서둥이들은 게이트 앞에서 이쪽을 힐끗 쳐다봤다.
아주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우리가 이렇게 나가도 될까? 등의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는 했다.
저럴 시간에 빨리 나가주는 게 나한테 도움이 되는 건데, 이런 부분은 나중에 혼내야겠다.
‘악마가 쫄아서 다행이지. 안 쫄았으면 둘 중 한 명은 죽었겠어.’
강대한 화기에 짓눌린 악마가 가만히 있어서 망정이지, 만약 이 악물고 움직였으면 서둥이 중 한 명은 죽었을 거다.
검은색으로 변한 다리를 부수며 높은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알키나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불렀나?”]
“등장이 늦고 요란하네.”
사실 나오려면 금방 나올 수 있었을 텐데.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악마도 긴장하고 있었던 것일 테고.
“하긴, 이해해.”
여기 딸이 있으니까.
딸에게 멋져 보이고 싶은 아빠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는 바다.
[“나를 왜 불렀지?”]
내가 말했다.
“쟤 보이지??”
“악마?”
“쟤가 엘리를 두고 몹쓸 말을 했어.”
와,
불로 만들어진 벼락이 진짜 있구나.
불벼락이라는 말을 말로만 들어봤지 진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불벼락 수천 다발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정령력이 가득해서 맛이 좋을 거 같다나 뭐라나.”
악마에게는 변명의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천인공노할 놈!!!”]
분노한 불의 정령왕 앞에 중상급 악마는 먼지에 불과했고, 실제로 먼지가 되었다.
허무하리만치 어이없는 최후였다.
나는 골룸 쪽을 바라보고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봤지? 한 방 컷.”
* * *
정령석에 깃들어 있던 정령의 기운이 모두 소진되고, 불의 정령왕 알키나스는 엘리를 데리고 정령계로 돌아갔다.
골룸은 떨떠름한 모양새로 털썩 주저앉았다.
“네가…… 이겼다.”
던전, ‘고뇌하는 다리’에서만큼은 차진혁의 승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압도적인 힘 앞에 기술은 의미가 없어지는 법.”
정교한 계산?
복잡한 수식?
각종 요소의 분석?
그런 건 의미 없었다.
그런 것들은 ‘그냥 하니까 되는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급 악마, ‘Dermiane Metodum’를 처치하였습니다.]
[보스몬스터를 성공적으로 사냥하였습니다.]
게다가 솔로잉이었다.
골룸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 올 클리어인가?’
본캐로는 올 클리어를 여러 번 경험했지만, 부캐인 골룸으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올 클리어를 달성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콩닥거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 클리어 알림은 없었다.
[대업적, ‘악마 사냥꾼’을 달성하였습니다.]
아쉬운 대로(?) 대업적을 달성했다.
[명예의 전당에 등록하시겠습니까?]
명예의 전당에 대업적 등록을 마친 뒤, 그는 차진혁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나는 악마 사냥꾼 업적을 달성했는데, 넌?”
“나는 음.”
차진혁은 잠시 고민했다.
아무래도 업적 이름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악마는 한 방 컷이 제맛]
──────────
“왜? 뭔데 그래? 나보다는 좋은 거 얻었을 거 아니냐?”
“이름이 좀 그래서.”
“이름이?”
골룸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너 설마…….”
“악마는.”
“한 방 컷이 제맛? 설마 그거냐?”
“어? 아는 업적이냐?”
골룸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진짜로 그 업적을 얻은 거냐?”
“어. 이름에 위엄이 없어서 좀 아쉬운 참이다.”
골룸은 잠시 고민했다.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는 차진혁과 함께한 꽤 치열했던 경쟁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에게 있어서 차진혁은 상당히 뛰어난 경쟁자였고, 라이벌이었다.
스트리머인 주제에 길잡이를 긴장하게 만들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좋은 경쟁을 했다. 그러니 비밀을 알려주겠다.”
“비밀?”
“명예의 전당에 등록 안 할 거냐?”
골룸이 알기로 차진혁은 명예의 전당에 업적을 등록하지 않는다.
차진혁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비교적 최근 영상인데 안 봤어? 나도 이제 명예의 전당 등록하기 시작했는데.”
“……그럼 등록하겠네?”
“등록 해야지. 근데 왜?”
“조로라는 플레이어를 알고 있냐?”
“조로?”
알다마다.
아우툴 서버. 룰 브레이커의 주인 중 한 명이었고, 회귀 전 차진혁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줬던 검술가였다.
“그 조로가 획득했던 업적이 악마는 한 방 컷이 제맛이다. 네 덕분에 이 업적을 얻는 조건을 알게 됐군.”
조로와 차진혁.
두 사람의 공통점을 찾아 분석하면 ‘악마는 한 방 컷이 제맛’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레벨 구간에서 네임드 악마의 구마에 성공한 다음, 격차가 아주 많이 나는 악마를 원샷으로 사냥하는 데 성공하면 주어지는 업적이겠군. 이따위 조건이니 전 우주에 두 명밖에 없지.”
“좋은 거냐?”
“조로는 미친놈이다.”
“……갑자기?”
“어떤 대업적들은 명예의 전당에 등록할 때, 기부금을 내도록 되어 있지.”
그건 유명한 사실이었다.
보통 기부금을 내는 경우는 잘 없지만.
“기부금을 내봤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GM들 성과급 잔치에나 쓰이지, 보통은.”
“혹시 말을 빙빙 돌려하는 게 취미냐? 본론만 좀 말해라.”
“악마는 한 방 컷이 제맛을 등록할 때에는 기부금을 낼 수 있다. 참고로 조로 그 미친놈은 인벤토리에 있던 다이아를 전부 다 털어넣었어. 그게 상남자 스타일이라면서.”
“…….”
참고로 차진혁의 인벤토리에 있는 다이아는 약 150억 다이아였다.
골룸에게 일급으로 주려고 후원금 일부를 수령해놓은 상태.
“조건은 나도 모른다. 인벤토리의 금액을 전부 털어 넣어야 하는지, 아니면 조로의 전 재산이었던 8,000만 다이아를 털어넣어야 하는지. 뭐가 맞는지는 나도 몰라.”
“…….”
“어쨌든 조로는 그것을 통해 대업적 효과를 상향 조정하는 데 성공했었다. 업적의 이름 자체가 바뀌어 등록되었지.”
“설마, 즉살?”
“그래. 즉살이다.”
차진혁은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그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골룸은 꽤 뿌듯해했다.
“즉살에 대해 알고 있나보군.”
“당연히 알지. 개빡센 능력이잖아. 상대하면 진짜 주옥 같은 능력.”
즉살은 상대에게 무차별적으로 크리티컬샷을 터뜨리는 능력이었다.
그 위험한 한 방이 언제 터질지 모르니 상대 입장에서는 모든 공격을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나도 그거 조심한다고 체력 엄청 빨렸지.’
지구문명 비유하자면 핵무기 같은 것이었다.
‘즉살’은 핵무기 한 방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그걸 경험해 본 것처럼 말한다?”
“라고 썰들이 많이 돌아다니던데.”
차진혁은 딱히 고민하지 않았다.
“기부금을 내야겠군.”
“얼마 내려고?”
“대충 150억 좀 넘게?”
“……뭐?”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어차피 너 일급 안 받는다며?”
그 돈이 그 돈이었다.
* * *
150억 다이아가 아깝지 않았다.
──────────
[즉살]
험난한 여정을 거쳐 위대한 권능을 손에 넣었다.
대업적을 지닌 자여, 즉살의 권능을 담아 적을 쳐라.
업적효과: 7% 확률로 ‘즉살’ 효과 활성화.
──────────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업적을 계속 살펴봤다.
내가 즉살을 가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거 하나가 수십 레벨업보다 효용성이 클지도 모른다.
명예의 전당을 확인한 골룸이 히죽 웃었다.
“얻었구나. 즉살을.”
“그래.”
골룸은 한참을 킥킥대며 웃어댔다.
“역시, 내가 인도하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나기 마련이지! 으하하하핫!”
길잡이로서 나와의 경쟁에서 밀려났던 골룸은 자신감을 회복한 것 같았다.
“업적효과, 나랑 공유해 줄 수 있냐?”
“미쳤냐? 이걸 공유해 주게.”
골룸은 포기하지 않고서 은근슬쩍 나를 떠봤다.
“그게 일정 퍼센트로 적용되는 건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업 다운으로 힌트만 주면 안 되겠냐?”
“일단 말해봐.”
쟤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조로가 가진 ‘즉살’ 효과의 활성화 확률을 대충은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골룸은 여러 번 내 눈치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0.7프로?”
나는 하마터면 컥! 소리를 낼 뻔했다.
쟤가 저렇게 말을 하는 걸 보면 아마 조로의 즉사 확률도 얼추 저 언저리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거보다는 높다.”
“이, 이거보다 높다고?”
골룸은 이상하리만치 크게 놀랐다.
어쩌면 조로의 즉살효과 확률은 이거보다 많이 낮을 수도 있을 거 같기도 하고.
‘그럼…….’
생각해 보니 좀 억울해졌다.
확률이 0.7도 안 되는 거였으면, 그냥 긴장하지 말고 싸울걸.
즉살이 언제 뜰지 몰라서 체력이 쪽쪽 빨렸던 것만 생각하면 열받네.
즉살 신경만 안 썼어도 내가 이겼을 텐데.
‘나중에 다시 싸워봐야지.’
한 200레벨쯤 되면 싸워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그걸 생각하니 가슴이 콩닥거렸다.
예전에 이기지 못했던 상대를 이제는 이길 수 있다면, 그건 곧 나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일 테니까.
어쨌든 골룸은 골룸 나름대로 굉장히 흡족해하고 있었다.
자신의 안내를 통하여 내가 대업적을 달성하고 무려 즉살을 얻었으니, 그것이 제 공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뭐, 딴지는 걸지 말자.’
쟤 덕분인 것도 있기는 있으니까.
나름대로 인정해 줄 부분이 있었다.
골룸은 무척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근데 말이야. 뭔가가 더 숨겨져 있을 거 같단 말이지.”
“그걸 이제 알았냐?”
“……뭐?”
골룸이 움찔하고서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너는 뭔가를 느끼고 있는 거냐?”
“저 게이트. 이상하지 않냐?”
솔직히 뭐가 이상한 건지는 나도 모른다.
왕유미의 쪽지를 받았을 뿐이다.
──────────
2. [출구 게이트 이상한 코드→평범X]
──────────
뭐가 이상한지 찾아내는 건 골룸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