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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84화 (184/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84화

차진혁과 골룸은 뜨거운 경쟁을 시작해 버린 상태.

서지수가 아주 작게 귓속말로 물었다.

“저러면 힐링의 의미가 있어?”

“…….”

장르는 힐링.

차진혁 본인도 힐링이라 얘기하기는 했으니 힐링은 힐링일 텐데.

“저게…… 힐링 맞지?”

이럴 거면 길잡이를 뭐하러 데려왔을까 싶을 정도로 차진혁은 던전 탐색에 진심이었다.

“골룸 쟤는 눈 튀어나오겠다.”

경쟁체제에 돌입한 건 차진혁뿐만이 아니었다.

차진혁과 골룸은 지금 서로를 의식하며 단서를 하나라도 더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아니, 스트리머랑 길잡이랑 왜 경쟁하는 건데? 이게 경쟁이 된다고?”

심지어 그 경쟁에서 스트리머가 조금 더 우위인 듯했다.

이곳이 정령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는 것도, 2분 18초마다 무지개다리 위의 아이가 바뀐다는 것도 스트리머인 차진혁이 알아냈으니까.

침묵하던 서지아도 입을 열었다.

“힐링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지아도 사실 저 둘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차진혁은 좋은 생각이 난 듯 스킬을 사용했다.

“귀여운 엘리 나타나라 얍!”

그 목소리가 상당히 커서 들판 전체에 들릴 정도였다.

서지수는 허-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멀리 있는 골룸 들으라고 시동어를 말해준 거지?”

“……응.”

“공정한 경쟁, 뭐 그런 건가? 난 정령도 사용할 거야, 알아둬, 이런 거?”

“……아마도.”

골룸도 질세라 스킬명을 외치고 있었다.

차진혁과 골룸은 둘 다 웃고 있었다.

“언니, 어디 가?”

“…….”

서지아가 무지개다리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서지수는 깨달음을 얻었다.

“가위바위보 해보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아무튼 귀엽다니까.”

“…….”

스트리머와 길잡이가 함께하는 무한 경쟁의 장, 그곳에서 평화로운 가위바위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위바위보!”

* * *

골룸 판단에 의하면 이곳은 정령력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는 곳이었다.

‘놈이 더 유리하다.’

김철수는 스트리머인 주제에 정령술사이기도 해서, 정령을 다루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도 제법 양심은 있는 놈인지 정령을 사용하지는 않고 있었다.

‘강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유령들 중 정령력이 유독 강한 개체가 하나 있다.’

엄청난 집중 상태의 그는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유령들 사이에서 약간의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건가?’

김철수의 말대로, 정확히 2분 18초마다 무지개다리 위의 아이는 바뀌었다.

여태까지는 그 법칙이 계속 유효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김철수가 정령을 소환하는 것 아니겠는가.

‘비겁한 놈!’

아무래도 이 던전의 특성상, 자신이 더 불리한 건 맞는 것 같았다.

그때,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김철수가 쩔쩔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꼴 좋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1분 1초가 아주 귀했다.

반드시 이 던전의 비밀을 먼저 찾아내고 말리라.

그 사이, 암살자 두 명은 뭐가 그리 신났는지 평화로운 가위바위보를 즐기고 있었다.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김철수는 여전히 소환한 정령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고, 골룸은 새로운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가위바위보의 승리도 하나의 조건이구나!’

무지개다리 위의 아이 형상이 계속 이겼다.

다시 말해 서지아는 계속해서 패배했다.

“언니, 잘 좀 해봐.”

“…….”

서지아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평온했던 그녀의 눈에도 집착과 승부욕이 깃들었다.

“또 이겼다! 헤헤!”

서지아의 특출난(?) 가위바위보 실력 덕택에 골룸은 완벽히 알아낼 수 있었다.

‘가위바위보에서 계속 이기면 대타가 들어오지 못해.’

골룸은 아예 서지아와 서지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서지아는 승률 0%에 가까운 가위바위보 실력을 보여주었고, 그건 서지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서지수가 승률이 더 높기는 했다.

“좋아, 또 이겨주겠어, 가위바위보! 으아아아! 짜증 나!!!”

골룸은 그들을 계속해서 관찰했다.

그리고 한 가지 법칙을 알아냈다.

‘유령들은…… 평화로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게 아니야.’

이곳은 무한 경쟁의 장.

그것은 저 유령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들도 가위바위보 놀이를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혈투를 벌이고 있다!’

질서와 평화 같은 건 없었다.

저들이야말로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그런데…….’

정령력이 제일 강한 유령은 이 경쟁에 제대로 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까 따돌림을 당한다고 느꼈던 것이 이런 이유였다.

‘배척당하고 있군.’

이 던전이 이런 식으로 설정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저 못난이 유령을 가위바위보의 장으로 끌고 나오는 것이 관건인데.’

그 방법을 김철수보다 먼저 찾아내야 했다.

비록 부캐이지만, 김철수에게 패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내가 방법을 찾아주마! 너보다 먼저!’

* * *

“귀여운 엘리 나타나라 얍!”

정령문 속에서 엘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엘리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뾰루퉁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차진혁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엘리?”

“…….”

“엘리, 왜 그래?”

“…….”

엘리는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내 고개를 휙! 돌렸다.

“엘리, 삐져떠.”

육아를 해본 적이 없는 차진혁은 나름의 위기를 맞이했다.

도무지 엘리가 삐졌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소환할 때 아무런 거북함이 없었는데?’

정령은 소환자의 소환을 거부할 수 있다.

소환에 실패하면 상당한 거북함을 느낀다고 알려져 있었다.

심한 경우는 속이 메스껍고 여러 번 구토를 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엘리를 소환할 때에는 그런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정령문이 저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보면 엘리도 이 소환을 기다렸던 거잖아? 지금 신났잖아? 근데 왜 저러지?’

차진혁은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오래 소환을 안 했구나.’

엘리는 한창 클 나이였다.

호기심이 왕성하고 에너지가 출중하여 다양한 경험과 수련을 쌓을 나이.

그런데 그런 엘리를 평화로운 정령계에 너무 오래 방치했던 것 같다.

“미안해 엘리.”

하긴, 저 나이의 불의 정령이면 불화살 같은 걸 만들어서 켄타로스 같은 마물을 쏴 죽일 나이이기는 하지.

내가 너무 무심했나 보다.

다음에는 꼭 강력한 마물이 등장하는 곳에서 엘리를 소환해 주기로 다짐했다.

차진혁의 사과에 엘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흐, 흥! 엘리 삐져떠.”

“다음에는 꼭 소환할게.”

“엘리는 안 미더요. 엘리는 혼자여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엘리의 표정에 점차 훈풍이 깃들기 시작했다.

차진혁은 조금 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혼자 아니야. 다음에는 꼭 같이 놀자.”

“……놀아?”

“응. 히든 던전에서 치열한 플레이를 해보자.”

엘리에게는 아직 히든 던전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기는 했지만 왠지 좋은 것 같았다.

사실 엘리는 차진혁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다였다.

그래서 맨날맨날? 하고 묻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차진혁이 자신을 성가셔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조금 무서워서 ‘맨날맨날’ 대신 다른 말을 선택했다.

“자주자주?”

“그래. 자주자주.”

히든 던전이 뭔지, 치열한 플레이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계약자를 자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엘리는 마음이 풀어졌다.

머리 위에 형형색색의 작은 불꽃이 팡팡! 터졌다.

“엘리. 저기 물 위에 유령들이 많이 떠 있는 거 보여?”

“응, 보여요.”

“뭐 특이한 건 없고?”

엘리는 작은 손가락을 턱 위에 올리고 고심하다가 이내 무언가를 발견했다.

“정령력을 가진 애가 이써여.”

엘리는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애들한테 괴롭힘 당하고 이써여.”

“괴롭힘을 당해?”

“방금도 길막당했는걸?”

“길막이 뭔지는 알고 말하는 거야?”

“웅! 길 막는 거!”

‘아니, 이놈의 알키나스(불의 정령왕)는 도대체 애 교육을 어떻게 하길래 벌써부터 저런 말을 아는 거야?’

순간 차진혁은 흠칫 놀랐다.

‘나 지금 약간 학부형 마인드 된 거 같은데.’

플레이를 하면서 이런 마음이 든 건 또 처음이라 낯설었다.

엘리를 보고 있으면 괜스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이, 차진혁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는 머리로 그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요즘 육아 콘텐츠도 인기지.’

육아 콘텐츠는 아주 오래전부터 수요가 탄탄하고 조회수(혹은 시청률)도 잘 나오는 콘텐츠였다.

스트리머로서 콘텐츠의 외연을 더 확장할 수 있는 기회 아니겠는가.

‘그래서 내가 몽글몽글한가 보다!’

스트리머로서 또 다른 기회를 발견했으니까.

그래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 틀림없었다.

“도와주고 시퍼여.”

“도와줘?”

“친구들끼리는 사이조케 지내야 하는 거자나여. 괴롭힘은 나빠. 안대.”

그 옳은 말에 차진혁이 굉장히 뿌듯해졌다.

아이가 올바른 길로 잘 크고 있는 것 같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목소리가 저절로 다정해졌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정령인 엘리는 주변 기운에 무척이나 예민했고, 차진혁의 다정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기분이 무척 좋아졌고 더 씩씩해졌다.

“엘리가 도와줄거야!”

“엘리가 도와줄 수 있겠어?”

“당근빠따! 말밥이디!”

“…….”

도대체 엘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건지, 차진혁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 * *

‘네놈이 정령과 트러블을 일으키고 있는 동안 나는 수백 개의 방법을 탐구했다.’

수많은 가설을 세우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이 들판에는 도합 17종의 야생화가 자라나고 있다.’

그리고 이 17종의 야생화 중 유령화 개체들에게 특이 반응을 보이는 야생화는 4종.

이것을 적절한 양과 순서 배합하여 절구통에 찧으면 특별한 액체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것을 단권 마력승압의 원리를 이용하여 증폭시키고…….’

이미 계산은 다 끝났다.

‘……하여, 기체를 액화시킨 뒤 특별히 제작된 이 분무기를 사용하여 골고루 뿌려주면 놈들의 실체가 드러나게 돼.’

차진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건 길잡이로서 엄청난 역량이 필요한 작업이었고, 길잡이 흉내를 내고 있는 스트리머 따위가 흉내낼 수 없을 거라 자부했다.

“……하여…… 마력 결선도를 그려보면 이러한 모습이 되게 되고…… 하면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즉, 정령력이 뛰어난 저 개체를 가위바위보의 장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초석을 만들 수 있는…….”

“뭔 소리야?”

차진혁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그냥 데리고 오면 되지.”

엘리의 손에 유령 하나가 붙들려 있었다.

유령의 눈에서 눈물이 똑똑 흘러내리고 있었다.

‘유령을 잡았어?’

골룸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왜?”

“……그러니까…… 단권 마력 승압의 원리를…….”

“어쨌든 잡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

골룸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패배감에 휩싸였다.

“그렇게 정령력을 가진 존재를 손으로 붙잡으려면 정령의 격이 어마어마해야 한다…….”

“정령왕의 딸 정도면 되지 않겠냐?”

“……정령왕의 딸이랑 계약했다고?”

“내 채널에 계약하는 영상 있어. 구독하고 잘 찾아봐. 좋아요도 누르고.”

그때, 엘리가 소리쳤다.

“너네들 나빠!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놀아야지!”

유령들은 겁먹은 듯 흩어졌다.

무지개다리 위에서는 가위바위보가 한창이었다.

“가위바위보! 아싸! 내가 이겼다! 어떠냐, 서지수 님의 이 가위바위보 실력이!”

마침 2분 18초가 지났다.

엘리의 손에 붙들려 있던 유령은 엘리의 손을 탁! 쳐내고서 재빠르게 날아가 무지개다리 위에 앉았다.

“아얏.”

엘리의 손등이 빨개졌다.

차진혁은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참아냈다.

이건 플레이의 일환이고, 플레이를 하다가 부상을 입는 것 정도는 당연한 일이니까.

“괜찮아?”

“갠차나여, 헤헤.”

엘리는 손등을 비비면서 가위바위보를 위해 날아간 유령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서지아가 나섰고, 서지수가 비장한 태도로 응원했다.

“언니, 언니도 할 수 있어.”

“응.”

사뭇 진지한 태도로 서지아는 가위바위보에 임했고, 결국 연속 7번이나 패배했다.

그사이 골룸과 차진혁은 동시에 무언가를 깨달았다.

“지아, 계속 져.”

“암살자, 계속 져라!”

차진혁이 말했다.

“내가 0.02초 더 빨리 말했다.”

“…….”

그건 네 단어가 더 짧았기 때문이다.

너는 다섯 글자(지아 계속져), 나는 일곱 글자(암살자 계속 져라)를 말해서 그런 것 아니냐! 따지지는 않았다.

따지는 것이 오히려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었으니까.

한편,

7번 연속으로 승리한 유령의 몸집이 조금 커져 있었다.

“가위바위보!”

12번 연속으로 승리한 유령의 몸 뒤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서지아와 비슷한 크기까지 성장했다.

서지아는 조용히 읊조렸다.

“329전 328패, 가위바위보.”

17번 연속으로 승리한 유령의 몸이 점점 실체화하기 시작했다.

머리에는 뿔이 돋아났다.

21번 연속으로 승리한 유령은 완전히 실체를 갖추게 되었고 등에 검은색 날개가 돋아났다.

눈동자는 시뻘건 색이었다.

“338전 337패, 가위바위보.”

“가위, 바위, 보.”

목소리도 굉장히 굵어져 있었고, 일곱빛깔 무지개다리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참고로 가위바위보에만 몰두하고 있는 서지아는 그 모든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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