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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83화 (183/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83화

돈을 안 받겠다고?

나는 골룸을 다시 봤다.

‘약간 실망할 뻔했는데 다행이군.’

솔직히 말해서 패스파인더나 두더지맨에 비해서 뭐가 그렇게 나은지는 잘 모르겠다.

본캐로 오면 모를까, 부캐인 골룸은 딱히 잘난 구석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역시 기본을 잊지 않았네.’

돈을 받지 않겠다고 말한 건 그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이었다.

자신이 밥값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 않는 것.

이게 의외로 많은 플레이어들이 못하는 거다.

자기가 한 것에 비해서 지나치게 보상만 바라는 애들이 아주 많다.

아주 양심 없는 녀석들이고 그런 녀석들은 높이 올라갈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골룸은 기본을 잊지 않은 플레이어인 것 같았다.

자존심이 조금 상했는지 골룸은 주먹을 꽉 말아쥔 채 앞장섰다.

“일단…… 가보자고. 정령이 모여든다는 건 분명 뭔가가 있다는 거니까.”

가까이 다가간 골룸은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품속에서 이상한 가루를 꺼내 뿌리는가 하면, 주변의 물고기 마물을 사냥하여 그 피를 허공에 던지기도 했다.

나도 쟤가 뭘 하는 건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아르비스 방식인가?’

나는 유심히 골룸을 살폈다.

내가 골룸을 따라 할 일은 없겠지만, 원활한 방송을 위하여 넓고 얕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저걸 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뭔지 알고 설명은 할 수 있어야 하니까.

‘아, 저렇게 해서 정령들을 끌어모으는구나.’

나도 진짜배기 정령술사가 아니라서 정확히는 느낄 수 없지만, 이곳은 정령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자아가 없는 하급 중에서도 최하급 정령들.

말하자면 정령의 기운을 모으는 것에 가까웠다.

골룸이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 한 올을 뽑더니 시동어 같은 것을 외웠다.

“나의 이름으로 명하니, 길을 열어라.”

바람에 나부끼던 머리카락이 화르륵! 하고 타올랐다.

그와 동시에 게이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던전, 고뇌의 다리]

“찾았다. 고뇌의 다리.”

* * *

골룸으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이건 반칙인데.’

사실 부캐로 활동할 때에는 오로지 부캐의 능력만 사용하려고 했다.

방금 게이트를 활성화시킨 것은 부캐의 능력 범위를 넘어서는, 본캐의 방식이었다.

본캐가 알고 있는 몇 가지 활성화 재료 레시피를 활용하여 억지로 게이트를 열어냈다.

그는 그 스스로에게 칭찬해 줬다.

‘잘했다, 골룸.’

그리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차진혁을 바라보았다.

‘이런 초저레벨 던전에 모두 입장할 수 있도록 조건을 바꾼 거다. 이건 진짜 힘든 일이다. 어떠냐, 김철수!’

그런데 차진혁이 물었다.

“부캐라고 그냥 놀면서 하는 건 아니지?”

“그게 무슨 소리냐?”

“최선을 다해주면 좋겠어서.”

“…….”

“패스파인더나 두더지맨이면 이미 찾았을 것 같거든.

골룸은 이를 꽉 깨물었다.

날카로운 직감을 가졌다 자부하는 골룸은 차진혁의 진심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저놈은 또 진심이다.’

도대체 기준이 어디에 가 있으면 저런단 말인가.

138레벨 길잡이가 이 정도 했으면 잘한 것 아닌가.

‘아닌…… 가?’

138레벨은 본캐 기준으로는 너무 저레벨이기는 했다.

원래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고, 138레벨 때의 자신이 어느 정도 실력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이것보다는 잘했던 것 같기도 하고?’

돌이켜보면 당시만큼의 치열함은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이건 본캐가 아니라 부캐였고, 부캐는 유흥에 더 가까운 거니까.

약간의 깨달음을 얻은 골룸은 남몰래 다짐했다.

‘두고 봐라.’

보여줘야 했다.

위대한 길잡이가 어떻게 위대한 길잡이라 불릴 수 있게 되었는지.

‘네놈의 인정을 받아내 주마.’

[던전, ‘고뇌의 다리’에 입장합니다.]

[입장 최소 레벨은 30, 권장 최소 레벨은 50입니다.]

입장제한 조건을 풀어내느라 시간이 좀 오래 걸린 것을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이런 사소한 것쯤은 자랑할 거리도 안 되지. 더욱 놀라운 걸 보여주마.’

차진혁에게 제대로 된 인정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이런 사소한 걸로 생색을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저놈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골룸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날씨가 굉장히 화창한 들판이었다.

서지수가 호들갑을 떨었다.

“와, 던전 안이 이렇게 상쾌해도 되는 거야? 햇빛은 왜 저렇게 따사로운데?”

저만치 앞에는 개울보다는 크고 강보다는 작은 물줄기가 하나 보였다.

“어? 무지개 다리가 있잖아?”

개울에 무지개 다리가 놓여 있었다.

무지개 다리 중간 즈음에는 아이 형상의 유령 하나가 무지개 다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유령이 이쪽을 발견했는지 벌떡 일어서서 말했다.

“나랑 놀아줄 테야?”

* * *

‘고뇌의 던전’은 애초에 저레벨 던전이었다.

장르는 힐링.

딱히 이렇다 할 마물도 없고, 따사로운 햇살과 끝없이 펼쳐진 초록 들판.

그리고 무지개 다리가 놓인 작은 강이 있는 평화로운 던전.

차진혁 일행의 레벨이 지나치게 높아서 발견하지 못했을 뿐, 저레벨 유저들에게는 꽤 유명한 곳이었다.

서지수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어, 그러고 보니 나 무지개다리가 놓여 있는 힐링던전 들은 적 있어.”

그 말에 골룸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곳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고?”

“아마 세상에서 난이도가 제일 낮은 던전이라고 했었는데. 위치는 네덜란드 쪽이라고 했었고. 무지개다리의 아이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면 된다던데.”

이기면 넘어갈 수 있고 지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는 구조였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기기만 해도 소량의 경험치가 주어지기도 하고, 날씨가 워낙 좋고 따뜻해서 피크닉을 오기도 한다고 했어. 세상에 그런 던전이 어딨냐고 코웃음 쳤었는데 진짜로 있을 줄이야.”

골룸은 본의 아니게 또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전혀 몰랐다!’

아무리 저레벨 전용 던전이라지만 그래도 그는 길잡이였다.

바다 건너 암살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어떻게 자신은 모른단 말인가.

소싯적에는 타 서버 던전 목록까지 줄줄 외우고 있었는데 말이다.

상처 입은 자존심을 티 내지 않은 채 골룸이 말했다.

“가위바위보라. 일단 해보지.”

골룸이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너 유령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유령의 머리 위에 [♩♩♬] 표시가 떴다.

“가위바위보! 힝, 졌어.”

가위바위보에서 지자 유령의 머리 위에 빗방울이 똑똑 떨어져 내렸다.

[가위바위보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지나갈 수 있습니다.]

[1/3]

골룸은 반대편으로 넘어갔다가 돌아왔다.

“가위바위보! 힝, 또 졌어.”

[가위바위보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지나갈 수 있습니다.]

[2/3]

“가위바위보! 힝, 또 졌어.”

[가위바위보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지나갈 수 있습니다.]

[3/3]

[업적, ‘연속된 세 번의 승리!’를 만족하였습니다.]

──────────

[연속된 세 번의 승리]

당신은 가위바위보에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3시간 동안 기분이 좋아지고 사소한 일에도 즐거움이 퐁퐁 솟아납니다.

──────────

골룸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가위바위보를 이겼더니 이런 업적이 생기다니.

[던전 클리어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저만치 멀리, 하얀색 문이 생겨났다.

──────────

[마음이 따뜻해지는 출구]

──────────

위험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게이트였다.

골룸이 문에 다가가 열심히 살펴보았으나 위험요소는 전혀 없었다.

* * *

종이술사 매켄드라가 루시아의 술집을 찾았다.

“손님에 대한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손님.”

“분명히 이곳 어딘가에서 연락이 끊겼다.”

“302호 손님은 어제 객실에서 빠져나가셨다는 사실만 고지할 수 있네요.”

“정보료로 2,000만 다이아를 주지.”

“죄송합니다, 손님.”

매켄드라는 인상을 찡그렸다.

보통 술집과 여관을 운영하는 몽마들은 돈에 예민하다.

정보료를 주면 어지간한 정보는 다 준다.

2,000만 다이아면 그리 적은 돈도 아니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나 보군.’

루시아에게서 이렇다 할 정보를 얻기는 어려운 것 같았다.

루시아는 루시아 나름대로 조사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케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케인은…… 여기서 죽었을 확률이 높아.’

이곳은 매켄드라에게도 무척 중요한 곳이었다.

‘피카소의 붓’이 숨겨져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은 곳.

그래서 각별히 신경 쓰던 곳이었고 가장 아끼는 심복을 이곳에 보내놓았다.

‘가만.’

302호?

매켄드라는 다시 루시아를 찾았다.

종이병정들이 루시아의 주변을 둘러싸고 종이창을 겨누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요, 매켄드라 님?”

“302호, 체크아웃했나?”

“아직 안 했습니다만.”

“그런데 왜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하고 있지?”

“…….”

“내가 준다던 정보료가 부족했나 보지?”

루시아는 품에서 5,000만 다이아가 담긴 가죽주머니를 꺼내 루시아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퍽!

가죽주머니가 루시아의 얼굴에 부딪쳤고, 황금색 동전들이 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녔다.

“302호와 관련된 정보들을 사겠다. 제대로 된 정보라면 5,000만 다이아를 더 주지.”

“…….”

“대신 무릎 꿇고, 입으로 떨어진 동전들을 주워.”

“네, 손님.”

루시아는 무릎을 꿇은 채 입으로 떨어진 동전들을 주웠다.

마지막 하나 남은 동전을 가죽 주머니에 넣었을 무렵.

매켄드라가 말했다.

“더러운 몽마 주제에 욕심이 과했구나.”

종이병정의 창이 루시아의 등을 찔렀다.

섬뜩한 창날이 등을 관통하여 복부를 뚫고 나왔다.

푹! 푹! 푹! 푹!

루시아를 둘러싸고 있던 종이병정들의 창이 루시아의 몸을 여러 방향에서 꿰뚫었고, 루시아의 몸에서 찐득한 피가 뚝뚝 흘러나왔다.

매켄드라는 루시아의 얼굴을 발로 지그시 밟았다.

“준다고 했지, 빼앗지 않는다고는 안했다.”

루시아의 눈에는 이미 초점이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가죽 주머니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안…… 돼.”

“돼.”

또다른 종이병정의 창이 루시아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이 와중에도 돈에 욕심을 내다니 역시 추잡한 종족답군.”

이미 302호 벽면에 걸려 있던 종이달력으로부터 기록을 읽어냈다.

‘골룸.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세 명의 플레이어. 그들이 무언가를 알아냈어.’

세 명의 플레이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골룸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골룸을 추적하면 되겠군.’

매켄드라가 손가락을 튕기자 종이병정들이 루시아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

루시아의 여관과 술집은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고, 매켄드라는 종이병정들을 풀어 골룸의 행방을 쫓기 시작했다.

* * *

이제 이것은 자존심싸움이다.

진짜배기 길잡이로 인정받느냐, 인정받지 못하느냐의 싸움.

‘아니!’

단순히 그게 아니었다.

‘내가 너보다 유능한 길잡이냐, 아니냐를 두고 싸우는 라이벌전이다!’

골룸은 차진혁의 눈썰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차진혁의 말 한마디로부터 시작되었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유령체들이 강물 주변에 떠다니고 있어. 정령의 기운과 흡사해서 잘 눈에 띄지는 않지만. 아까 게이트가 활성화되기 전과 비슷한 구조야. 뭐, 너도 당연히 알고 있겠지?”

“무, 물론 알고 있었다.”

골룸은 보지 못한 것을 차진혁이 보았다.

거기서 골룸은 1차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고 정확히 2분 18초마다 무지개 다리 위의 아이가 바뀌는군. 영혼이 바뀌는 건가?”

2차적인 위기감을 느낀 골룸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아니. 껍데기도 함께 바뀐다. 자세히 보면 오른 손목에 있던 점이 사라졌어. 그 다음 나타난 녀석은 가위바위보 할 때 왼팔을 내밀었고. 아까는 오른팔을 내밀었었다. 이번에 나타난 녀석의 옷의 줄무늬가 미묘하게 다르다.”

“오.”

차진혁 또한 골룸의 눈썰미에 감탄했다.

틀린그림 찾기 수준의 차이를 굉장히 잘 짚어냈다.

‘역시 위대한 길잡이의 부캐라 이건가.’

묘한 호승심이 생겼다.

‘나 얘한테 왜 이기고 싶지? 우린 분야가 완전히 다른데?’

패스파인더나 두더지맨에게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골룸에게는 이기고 싶었다.

‘나는 비록 스트리머이지만 너보다 길잡이 능력이 더 뛰어나다!’를 주장하고 싶은 요상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내 차진혁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길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래서 경쟁심이 자꾸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겨보고 싶었다.

여긴 힐링 던전이니까.

차진혁의 눈에, 차진혁만 모르는 광기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디스 이즈 컴피티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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