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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82화 (182/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82화

골목 반대편을 바라보니 네 발로 기어오는 작은 형체가 있었다.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는데 작은 서둥이는 꽤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작은 서둥이는 내 왼쪽 팔을 껴안았고, 큰 서둥이는 내 오른쪽 팔꿈치 부근의 옷을 살짝 잡았다.

“암살자들이 이렇게 겁쟁이면 어떡하냐?”

……겁먹은 척하면서 나를 찔러보려는 전략인가 싶었지만 얘들은 날 습격하지 않았다.

근데 나 왜 기분이 안 나쁘지?

내가 이렇게 틈을 보였으면 얘들이 날 찔러야 하는 게 당연한 거다.

목검이든 손가락 같은 걸로 찔러서 내게 빈틈이 있다고 알려줘야 한다.

동료들의 틈을 발견해서 알려주는 것도 암살자들의 역할 중 하나니까.

애들이 암살자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은데도 이상하게 화가 안 난다.

아무튼 얘들한테는 좀 너그러워지는 거 같다.

“잘 봤다 김철수. 여러모로 놀랍군. 레벨 차이가 꽤 많이 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야.”

가까이 다가온 사람은 다름 아닌 골룸이었다.

“왜 네 발로 기어오는 거냐?”

“임팩트 있는 등장을 원해서?”

“그렇군.”

당연한 건데 괜히 물어봤다.

멋과 낭만을 이해하려면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골룸이 물었다.

“신화급 카드, 사용 안 한 거지?”

“안 했다.”

이런저런 잔머리가 안 통하면 직접 일대일로도 싸워보려고 작정했었다.

질 수도 있겠지만 이길 수도 있는 거니까.

골룸은 킥킥대며 웃고는 내게 정보 하나를 전해줬다.

“그런데 그놈, 블랙 소속의 플레이어라는 건 알고 있나?”

“블랙 소속? 케인이?”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얘와 본격적으로 싸우던 당시에도 얘는 자신이 블랙 소속이라는 걸 밝힌 적이 없었다.

“모르고 죽인 거냐?”

“몰랐지.”

“난 또. 블랙이라서 죽인 줄 알았네.”

내가 블랙과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혹시 구독자세요?”

골룸은 내 물음에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뭔지는 몰라도 여기서 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던 것 같던데.”

나 아무래도 중요한 정보를 들은 것 같다.

‘피카소의 붓’과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이놈, 어디서 머무는지 알아?”

“알지. 루시아가 운영하는 여관, 302호다.”

나는 골룸에게 5억 다이아가 담긴 가죽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이건 정보료.”

“……흥, 싸군.”

이런 수전노를 상대 할 때는 아낌없이 펑펑 써야 한다.

어쭙잖게 아꼈다가는 역효과만 발생한다.

얘가 가난한 이유는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라 돈을 너무 많이 써서 그렇다.

애초에 돈을 많이 버는 녀석이라 적은 금액을 주는 건 차라리 안 주느니만 못하다.

“이 정도 금액으로는 날 만족시킬 수 없지.”

“단순 정보료치고는 괜찮은 금액이라 생각했다.”

나와 레벨 격차가 많이 나는데도 상태가 잡혔다.

[#개꿀]

나는 곧장 루시아의 술집으로 돌아갔다.

“어머, 우리 김철수 씨 아니야?”

내게서 분명 피 냄새를 느꼈을 텐데 딱히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302호 열쇠 좀.”

“그건 안 돼.”

“되게 하려면?”

“글쎄? 신분증이라도 있나 봐?”

“여기.”

케인의 품을 뒤져서 나온 신분증을 내밀었다.

피가 조금 묻어 있기는 했지만 우리는 둘 다 모른 척했다.

“자, 열쇠.”

[#VIP는 신이시다]

공무원 시절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절대적 편의였다.

여러모로 돈은 참 좋은 것 같다.

‘돈이…… 참 좋은 거였네.’

이래서 다들 경제적 자유, 경제적 자유, 하나 보다.

아무래도 최갑수 영감님이나 미셸장한테 좀 더 잘해야 할 거 같다.

‘생각해 보니까 돈 많이 벌어야겠다.’

돈이 너무 많아지면 은퇴 시기를 앞당겨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돈을 지나치게 많이 벌까 봐 재단까지 차려서 다이아를 소모했었는데 그건 정말 애송이 같은 생각이었다.

‘아예 범우주적 최상위 랭커가 되면 오히려 돈이 부족해지는 거였잖아?’

물론 나는 스트리머니까 얘기가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대체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럼 돈이 많아도 되겠네? 혹시 내가 최상위 랭커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돈을 조금만 벌어야 한다는, 그런 나약한 생각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 * *

차진혁은 302호에 입장해서 샅샅이 살펴보았다.

책상, 침대 밑이라든가 벽장 속에 무언가가 있는지를 살펴보았으나 딱히 유의미한 물건을 찾을 수는 없었다.

‘중계자의 시야로 아무것도 안 보이네.’

차라리 이능인 마법 결계 등을 사용해서 숨겨놨다면 쉽게 단서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닌 듯했다.

‘벽면을 파볼까?’

혹시 몰라 ‘행운 그 자체’를 사용해 봤지만 이렇다 할 반응은 없었다.

그냥 이곳에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강렬한 확신이 더해졌을 뿐이었다.

한편, 서지아는 문 근처에 서서 차진혁을 관찰했다.

‘진혁 오빠, 분명 실망했었어.’

아까 골룸이 나타났을 때 차진혁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내가 오빠를 찔렀어야 했어.’

최소한 손가락으로라도 찔러서 빈틈이 있다고 알려줬어야 했다.

암살자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했고 그녀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다.

‘지금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이자.’

마침 지금은 방해꾼도 없는 곳이니, 암살자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빠를 급습하려면…….’

암살자의 눈으로 열심히 살펴보니 괜찮은 곳이 보였다.

‘마루 밑에 스며들자.’

그녀는 그림자 암살자 고유의 스킬, ‘그림자 운신’을 사용하여 책상 다리에 생긴 그림자에 스며들었다.

차진혁이 가까이 왔을 때 그녀는 모형칼로 차진혁의 발바닥을 공격했다.

“엇!”

단서 찾기에 정신이 팔려 있던 차진혁은 황급히 발을 들어 올렸고, 그와 동시에 라칸을 꺼내 마룻바닥을 내리쳤다.

곽도형이나 케일린이었다면 검날로 내리쳤겠지만 상대가 서지아다 보니 검면으로 내리쳤다.

우지끈!

나무로 된 마루가 부서졌다.

그림자 운신 스킬이 깨지면서 서지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도 좋았어.”

“노력…… 할게요.”

서지아는 왠지 모르게 분해 보였다.

그녀의 눈이 차진혁의 라칸을 향하고 있었다.

그 시선을 느낀 차진혁은 ‘아…….’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봐줬다는 걸 느낀 모양이네. 암살자에게는 모욕이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약간 미안해졌다.

그런데 그때, 서지수가 뭔가를 발견했다.

“어, 오빠. 마루 밑에 뭔가 쓰여 있어.”

종이라든가 특별한 아티팩트에 적어놓은 게 아니었다.

그냥 마루 밑에 매직으로 써놓은 글씨들이 보였다.

‘너무 허접한 방식이라 못 알아차렸네.’

차진혁은 서둥이들에게 부탁했다.

“이거 마루들, 결 따라서 깔끔하게 절삭 가능해? 뒷면에 뭐가 써 있는지 봐야 할 것 같은데. 나한테는 좀 어려운 일이라서.”

* * *

서지아와 서지수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우리가 도움이 되고 있어.’

언제까지 이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녀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경건한 태도로 마룻바닥을 도려냈다.

마룻바닥 밑에는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던전, 하디온 앤 가디언]

[던전, 에르메시아 별자리]

.

.

.

[던전, 기르자일의 목수]

대부분은 ‘던전, OOOO’으로 표기가 되어 있었는데 딱 세 개의 던전만 글자 그대로 적혀 있었다.

[던전, 헥사일 성녀]

[던전, 고뇌의 다리]

[던전, 제르민 데르고]

다음 날 아침, 차진혁은 루시아에게 5,000만 다이아를 선물했다.

“우리가 마룻바닥을 다 뜯어냈거든. 이건 원상복구비용.”

“손님, 수리비용은 2,000만 다이아면 족합니다.”

“그럼 3,000만 다이아 돌려줄래?”

“그렇지만 손님의 성의와 정성을 무시할 수 없으니 기쁜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손님.”

차진혁은 또 은근히 유혹 스킬을 사용해 주기를 바랐으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루시아는 공과 사가 분명한 사장인 듯했다.

“좀 아쉽네.”

“네?”

“적극적으로 날 유혹하길 바랐는데.”

“어째서죠?”

“다양한 유혹 공격에 맞서 싸워보고 싶었거든.”

거기서 루시아는 깨달았다.

‘이 VIP는 미친놈이구나!’

차진혁의 눈에 광기가 일렁거리고 있는 것을 눈치챈 그녀는 동생이 왜 차진혁에게 반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원래 미친놈이 섹시한 법이니까.’

어쨌든 차진혁은 골룸과 만나 세 개의 던전을 하나하나 찾아보기 시작했다.

“여기가 헥사일 성녀의 던전이다.”

대부분의 던전이 물길을 따라 존재했는데, 요트를 어떻게 타느냐, 몇 명이 타느냐, 어떤 방식과 순서로 타느냐 등이 던전 입구를 활성화 시키는 조건들이었다.

[던전, ‘헥사일 성녀’를 클리어하였습니다!]

골룸의 도움을 받아 ‘헥사일 성녀’ 던전을 클리어했다.

가고일에게 붙잡힌 성녀를 구출시키는 스토리가 담긴 던전이었는데 난이도가 그리 높지는 않았다.

[던전, 제르민 데르고를 클리어하였습니다!]

하루 만에 두 개의 던전을 연달아 클리어했다.

소요된 총 시간은 대략 18시간가량.

“돈은 일급으로 지급해 주면 좋겠군.”

“그러지.”

차진혁은 90억 다이아를 건넸다.

“고뇌의 다리 던전은 찾았나?”

“글쎄. 내일 정도면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일단은 휴식을 취하기로 한 뒤, 차진혁과 서둥이들은 루시아의 술집에서 늦은 저녁밥을 먹기 시작했다.

서지수가 물었다.

“오빠. 근데 뭔가 마음에 안 들어?”

“그렇다기보다는…….”

골룸의 플레이 방식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던전을 두 개나 클리어했는데 히든피스가 하나도 안 나와서.”

“그러고 보니 히든피스가 하나도 없었네?”

보통 던전을 클리어하면 히든피스 하나 정도는 나와야 하고, 제대로 잘 클리어하면 업적 하나 정도는 달성하는 게 보통이었다.

루시아가 차진혁에게 와인 한 잔을 따라주었다.

“던전을 두 개 클리어하는 동안 히든피스가 하나도 안 나오는 건 지극히 정상 아닌가요?”

“그게 어떻게 정상이야?”

루시아는 차진혁이 진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건 허세나 농담이 아니었다.

“올 클리어야 엄청난 행운이 뒤따라줘야 하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히든피스가 하나도 안 나오지?”

재미있는 건 그 옆의 서지아와 서지수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루시아는 조금 황당했다.

‘한국맵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거야?’

최근 범우주적으로 지구 서버와 한국맵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루시아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저들의 태도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한국맵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던전을 클리어하면 거의 무조건 히든피스 하나씩은 찾아내나 보죠?”

“그게 보통이긴 하지.”

물론 보통이 아니었다.

괜히 히든피스에 ‘히든’이 붙은 게 아니었다.

차진혁의 기준이 이상한 것이지만 루시아도 한국맵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다음 날, 차진혁 일행은 골룸과 다시 만나 히트호른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골룸은 조금 민망한 듯 중얼거렸다.

“고뇌의 다리라는 이름을 가진 던전을 찾기가 쉽지 않군.”

“이쯤되면 내 의견을 하나 말해도 될까?”

길잡이를 최대한 존중하려고 말을 아끼고 있던 중이었다.

벌써 플레이를 시작한 지 4시간이나 지난 시점이어서, 차진혁에게도 명분이 생겼다.

“저기 저 다리.”

골룸이 시선을 옮겼다.

보트가 지나 다닐 때, 위로 열리는 구조의 다리였다.

“저 다리가 왜?”

“정령이 유독 많이 모여드는데 이상하지 않아?”

“너, 정령을 느끼냐?”

“그럼 정령을 못 느껴?”

차진혁은 오히려 황당하다는 듯 골룸을 바라보았다.

골룸은 헛기침을 하고서 말을 얼버무렸다.

“이거 부캐라서.”

“그게 왜?”

“레벨이 138밖에 안 돼.”

“근데?”

골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직 정령을 느끼는 스킬을 못 익혔다.”

“나도 그런 스킬 없는데?”

“…….”

“스킬이 없으면 정령을 못 느낀다고?”

나를 모욕하려는 건가 싶어 골룸은 차진혁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차진혁에게 나쁜 의도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저자는 진심이다. 진심으로 의아해하고 있어.’

그게 더 굴욕적이었다.

돈보다 더 귀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그는 선언하고야 말았다.

“오늘치 일당은 안 받겠다.”

……개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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