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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81화 (181/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81화

서지수는 속으로 좀 놀랐다.

‘에게? 저게 엄청 유명한 길잡이?’

키가 아주 작고 허리가 구부정했다.

골룸이라는 이름이 저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아무리 부캐라지만 너무 볼품없는데?’

애초에 이곳에 올 때부터 골룸이라는 길잡이를 수소문하려고 했다.

이렇게 쉽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저렇게 볼품없는 사람일 줄은 몰랐다.

“네가 날 찾았다고?”

골룸은 몇 가닥 없는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 넘기며 차진혁을 쳐다보았다.

차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은 몇이냐?”

“150대. 170대까지 올릴 수도 있기는 하고.”

“아, 네가 그 신화급 카드를 가진 플레이어로군. 이름이 김철수였던가.”

차진혁으로서는 의외였다.

“나를 알아?”

“알지. 지구에서 제일 유명한 플레이어니까.”

차진혁의 기분이 좋아졌다.

골럼베룸 정도 되는, 전 우주적 차원의 랭커는 루키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말년병장이 이병들에게 딱히 관심이 없는 것과 비슷했다.

“그렇다면 말이 쉽겠군. 나는 이곳에서 플레이하는 동안 네 안내를 받으려고 한다.”

“내 몸값은 비싸.”

골룸은 흥, 코웃음을 치며 루시아 쪽을 바라보았다.

“루시아, 최근에 나한테 까인 놈들이 몇이나 되지?”

“한 30명쯤?”

골룸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진혁에게 시선을 옮겼다.

“제시해 봐. 나를 얼마에 쓸 건데?”

“5억 다이아.”

골룸은 풉, 웃음을 터뜨렸다.

“겨우 5억으로 날 고용하겠다고? 이거 미친놈이군.”

루시아도 옆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저럴 줄 알았다.

‘사실 5억도 작은 돈은 아닌데…….’

예전에 누군가가 7억 다이아를 제시했을 때에는 골럼베룸은 코웃음을 쳤었다.

골럼베룸은 ‘날 뭘로 보는 거냐!’ 라면서 루시아에게 호통을 쳤었고 루시아는 진땀을 뺐었다.

‘분명 랭커의 부캐일 거야.’

지구 차원에 와서 본캐로 놀 수는 없으니 부캐를 키우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우주 단위급 최상위 랭커였다.

더 이상 성장할 곳이 없는 수준의 랭커가 놀이터라 할 수 있는 약소 서버에 놀러와서 부캐를 즐기는 건 일종의 유흥 문화였다.

골룸의 레벨 자체는 130대로 비교적 낮은 편(?)에 속했으나, 루시아의 유혹 스킬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아마도 정신계 공격에 저항하는 온갖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에휴, 자꾸 이러면 내 신용에도 문제가 생기는데.’

차진혁이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말했잖아. 내 몸값은 비싸다고. 겨우 5억 정도로 날 어떻게 부려?”

“시급 5억이면 괜찮지 않나?”

“……뭐?”

차진혁은 진심을 담아 물었다.

“5억으로 너쯤 되는 길잡이를 어떻게 부려?”

그 말 자체가 골룸을 감동시켰다.

* * *

골룸은 약간 붉어진 얼굴로 크하핫! 웃었다.

나와의 거래가 무척 마음에 드는 듯했다.

“루시아, 진작 이런 귀인을 좀 소개해 주지 그랬나?”

오늘따라 맥주가 참 시원하고 좋네.

술자리 분위기가 꽤 괜찮았다.

루시아도 소개료를 단단히 챙길 생각에 상당히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잘 해결됐다.’

어떤 사람들은 골룸을 일컬어 ‘돈을 초월해 버린 랭커’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나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실 돈에 무척이나 굶주린 녀석이지.’

최상위 랭커라고 해서 다 부자는 아니다.

진짜 부자인 애들은 보통 상인이나 스트리머들이다.

그런 특수직군을 제외하고서, 진짜배기 랭커들은 오히려 심적 가난함에 찌들어 사는 경우가 대다수다.

‘던전 한 번 도는데 수백억이 들어가니까.’

특히 방어력이 약한 길잡이들은 돈이 더 많이 들어가는 편이었다.

최상위 던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돈을 바르고 바르고 또 발라야 했으니까.

많은 돈을 버는 건 맞는데, 그만큼 또 많은 돈을 쓴다.

100만 원 벌어서 80만 원 쓰면 20만 원 남지만, 10억 벌어서 11억 쓰면 1억이 마이너스다.

그래서 우주 단위의 최상위 랭커들은 대부분 가난하다.

평범한 사람들이 들으면 미친놈 소리를 하겠지만 진짜다.

오히려 적당히 상위 랭커들이 부자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길잡이들은 돈의 노예지.’

한세린이 길잡이를 때려치우고 군주로 전향한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

어느덧 밤이 깊어 갔고, 골룸은 술에 잔뜩 취했다.

“구독자가 3억 5천만 정도 된다고?”

“3억 7천만.”

“지구치고 상당한 성적이군. 스트리머는 그 정도만 되어도 먹고살 만하지?”

“그럭저럭.”

“이야 그건 부럽군.”

쿵!

골룸은 이마를 탁자에 박고서 잠에 빠져들었다.

루시아의 술집에는 이제 손님이 몇 명 남지 않았다.

“슬슬 일어나야겠어.”

내가 말하자 다른 테이블에서 손님을 응대하던 루시아가 뛰어왔다.

“벌써 가게?”

“가야지.”

루시아는 조금 아쉬운 듯했다.

나는 하루 만에 이 술집의 VIP가 되었다.

공무원 시절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었는데, 이런 건 참 편하고 좋다.

“잘 가. 또 이용해 줘. 그리고 내 동생 되게 괜찮은 애니까 한 번 만나봐.”

나는 술집을 빠져나와 거리를 걸었다.

낮에는 사람이 꽤 많았었는데, 밤이 되자 굉장히 조용하고 고요했다.

한동안 걷다가 멈춰 섰다.

“왜 자꾸 따라와?”

술집에서부터 나를 따라오던 놈이 있었다.

놈의 각성명은 ‘케인’이었다.

레벨은 180대 검술가였다.

“돈이 제법 많더구나, 애송아.”

루시아의 술집에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나는 그곳에 케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케인은 훗날 꽤 유명한 빌런으로 성장한다.

그 실력이 엄청났다기보다는 아르비스 행성 출신의 빌런으로 유명했다.

아르비스 행성은 명실공히 우주 최강의 서버였고, 그들은 그것에 꽤 자부심이 있었다.

우주경찰을 자부했으며 그 나름대로 정의로움을 추구했다.

그런 행성 출신의 플레이어가 비교적 약한 서버인 지구에서 빌런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은 꽤 이목을 끄는 일이었다.

“근데?”

“지금 가진 것을 다 내놓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회귀 전, 케인은 ‘가진 것을 다 내놓을 테니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라고 내게 목숨을 구걸했었는데.

짜식이 많이 컸다.

‘지금 기준으로는 나보다 셀지도 모르지.’

레벨 자체는 나보다 높았다.

게다가 검술을 주력으로 하는 녀석이라 솔직히 제대로 싸워보고 싶은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나 스트리머인데, 공격하게? 스트리머 보호조약 몰라?”

“설마 그런 허울뿐인 조약에 의존하는 멍청이였나?”

“아니, 뭐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케인은 검을 뽑아 들고서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일단은 가볍게 왼팔부터 가져가 보실까.”

“…….”

내 앞에서 검을 휘둘렀는데 조금 어이없기는 했다.

‘날 얼마나 같잖게 보는 거야?’

저렇게 대놓고 휘두르는데 맞아주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케인의 검을 피해냈다.

“…….”

“…….”

우리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너 뭐냐?”

“설마 그거에 맞으리라 생각한 건 아니지?”

“…….”

내가 그래도 꽤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줬는데 쟤는 내 방송을 하나도 안 본 모양이다.

이후 녀석은 조금 더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간간이 페인팅도 섞고 보법을 운용하면서 내게서 빈틈을 만들어냈다.

‘중계결계.’

중계결계로 녀석의 공격을 막아냈다.

“중계결계 운영을 상당히 잘하는 놈이군. 전투계열 직업을 지녔다면 훨씬 대성했을 것이다.”

순간, 나는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저 말이 왠지 모르게 ‘넌 스트리머에 안 어울려’라고 욕하는 것 같았다.

“진짜 내 방송 안 봤나 보네. 나 방송 실력 많이 늘었는데.”

아무튼 나는 방어에 주력했고 놈은 공격 일변도로 나를 밀어붙였다.

“언제까지 그렇게 겁쟁이처럼 방어만 해댈 것이냐?”

“…….”

솔직히 녀석의 공격이 날카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내 몸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늘어가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나마 내가 얘와 싸워본 적이 있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더 큰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확실히 아르비스 출신답네.’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애들도 타 서버 가면 랭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서버다.

비록 레벨은 180에 불과(?)하기는 해도 물레벨은 결코 아니었다.

‘방어만 해도 쉽지는 않네.’

보통 공격보다는 방어가 더 수월한 편이다.

대놓고 방어하면 자신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자와도 그럭저럭 상대할 수는 있는 법이었다.

어느덧 나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등이 벽에 닿았을 때, 내가 손을 내밀었다.

“잠깐. 5억을 주겠다. 지금은 가진 게 이것뿐이야.”

나는 인벤토리에서 다이아가 가득 담긴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데.”

“5억 다이아다. 나를 살려준다면 여기에 5억을 더해 10억 다이아를 주지.”

“50억.”

“…….”

“길잡이 고용에 시급 5억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부자 아니신가.”

케인은 킥킥 웃어댔다.

“너같이 아무것도 아닌 놈이 그렇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이상한 일 아니냐?”

“…….”

나는 순순히 가죽 주머니를 땅바닥에 내려놓은 뒤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놈이 히죽거리며 다가와 허리를 숙인 그 순간, 반투명한 은사가 놈의 팔목을 묶었다.

‘좋은 타이밍.’

큰 서둥이였다.

암살자들은 정면 승부는 약하지만 급습에는 그 누구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작은 서둥이.’

작은 서둥이가 독을 풀었다.

나를 깨물었을 때보다 훨씬 더 농축된 독액을 기체화시켜 뿌렸다.

그러나 케인은 생각보다 침착했다.

“가소로운 짓들을 벌이는군.”

큰 서둥이의 결박기술을 놈은 어렵지 않게 풀어냈고, 독무가 몸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몸 전체에 얇은 마력장을 형성했다.

이내 마력을 끌어올려 검풍을 일으키려 할 때.

언제든 출검할 준비를 하고 있던 내가 검을 휘둘렀다.

“셋업은 이렇게 하는 거야.”

한 번에 속는 경우는 잘 없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연거푸 페인팅을 섞고 교란을 시켜야 내가 원하는 공격을 해낼 수 있다.

검기를 덧씌워 한껏 날카로워진 라칸의 검날은 순식간에 케인의 목을 댕강 잘라냈다.

‘생각보다 쉽네.’

내가 여태까지 얘를 계속 떠봤던 건 얘가 내 방송을 정말 모르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내 방송을 조금이라도 봤더라면 치명상을 반사시키는 ‘베라클라프의 목걸이’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베라클라프의 목걸이를 사용할 각을 잴 필요도 없었네.’

바닥에 나뒹군 케인의 눈이 깜빡거렸다.

작은 서둥이가 깜짝 놀라 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 얘 아르비스 출신이라서 그래. 얘네 몸은 튼튼해서 절단돼도 잘 안 죽거든.”

역시 아르비스 출신다웠다.

“……어떻게 알았나? 나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거냐?”

나는 놈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놈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안 알랴줌.”

케인이 눈을 부릅떴다.

굉장히 화가 났는지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아르비스 출신의 플레이어를 만나면, 확인사살까지 확실히 끝마쳐야 해.”

나는 라칸을 들어 올려 놈의 심장을 수 차례 찔렀다.

절대 손맛 느끼고 싶어서 찌른 건 아니다, 절대로.

그런데 그때 짝! 짝!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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