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79화
이게 뭐냐는 송하영의 반응에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어딘지 몰라?”
“…….”
송하영은 이 그림(?)이 어딘가를 가리키는 지도 비스름한 무엇인가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삐죽삐죽한 건 지붕이고 요 네모난 건 창문이고.”
집이라 짐작되는 추상화 같은 것이 꽤 여러 개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개울인지 개천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결 모양의 무언가가 그려져 있었다.
“아. 그리고 저거 나뭇잎같이 생긴 건 나룻배.”
차진혁은 친히 펜을 들어 ‘나뭇잎’이라고 썼다가 찍찍 긋고서 ‘나뭇잎’ 나룻배라고 다시 써넣었다.
송하영은 기가 찬 듯 다시 물었다.
“그리고 여기 떠다니는 건 구름이고? 그러니까 이건 어딘가의 풍경을 그렸다는 거네?”
“그래.”
송하영은 차진혁과 눈을 마주쳤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주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왜 당당한 건데?’
저 당당함은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왜 이걸 보고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 그림으로 어디인지를 유추하라는 거지?”
“어.”
“……나를 도대체 뭘로 생각하는 거야?”
“유능한 도적이자 정보상인?”
그 말에 송하영은 움찔했다.
차진혁의 칭찬이 그녀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나를 그렇게 봐주는 건 고맙지만 이걸로는 몰라. 근데 진짜 진심인 거야?”
“…….”
아무리 봐도 진심이었다.
“……진심이네. 내가 이 그림만으로 이 위치를 특정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네?”
뭐야, 그 당연하지! 하는 표정은?
송하영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는데 오히려 차진혁은 약간 실망스러운 기색이었다.
“아무튼, 못한다는 거지?”
차진혁은 약간 실망스러운 기색으로 혀를 찼다.
신뢰를 잃어버린 듯한 그 모습에 송하영이야말로 기가 찼다.
‘이게 실망할 일이라고?’
이쯤 되니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줘봐. 이를테면 이 지붕들이 무슨 색이라든가.”
“어, 대충 빨간색에 가까웠던 것 같아.”
“이 풍경을 어디서 봤는데?”
“TV인지 엘튜브인지 아무튼 스쳐 지나가면서 잠깐 봤어. 누가 인터뷰하는데 배경으로 살짝 나오더라고.”
그럼 그렇지!
송하영은 희망을 보았다.
“그럼 그 영상 링크 좀 줘봐.”
“지금은 없어.”
“왜?”
“삭제됐더라고.”
“…….”
차진혁이 봤던 영상은 회귀 전에 봤던 영상이었다.
종이술사 매켄드라가 짧게 인터뷰를 진행하던 영상.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풍경이 슬쩍 비친 적이 있었다.
매켄드라는 그 근방에서 ‘피카소의 붓’을 획득했었고.
그리고 며칠 뒤, 차진혁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래! 여기 맞는 거 같다. 거봐. 하면 할 수 있잖아.”
“……다크써클이 턱 밑까지 내려온 거 보여?”
송하영의 눈 밑이 퀭했다.
사실 송하영도 이걸 어떻게 찾아냈는지 스스로도 신기할 지경이었다.
차진혁은 송하영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치열하게 하니까 되지?”
“…….”
“넌 송하영이잖아. 결국 해낼 줄 알았다.”
그 말에 송하영은 다시금 움찔했다.
‘저 말에 기분이 좋아지면 안 돼.’
차진혁의 말은 마치 마약과도 같았다.
저걸로 좋아하면 안 되는데, 자꾸만 좋아하게 된다.
이 지구상에 ‘질서의 치열느님’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사람은 몇 없으니까.
“넌 송하영이니까.”
그 말에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좋아지면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당연하지. 미안, 내가 좀 덜 치열했나 봐.”
……돼, 돼, 돼.
“다음에도 부탁할 거 있으면 말하고. 나, 송하영이니까.”
* * *
송하영을 통해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피카소의 붓’이 잠들어 있는 곳은 네덜란드의 히트호른이라는 소도시였다.
나는 몰랐는데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관광지라나 뭐라나.
동화 속 마을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도시였고 마을을 따라 수로인지 개천이 도로망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요트나 나룻배 같은 것을 타고 이동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이번에 나와 함께하게 된 작은 서둥이(서지수)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와…… 진짜 동화 속 마을 같다. 하늘도 엄청 파랗고 예뻐. 그치? 언니는 어때?”
작은 서둥이 옆에 큰 서둥이(서지아)는 그저 멀뚱멀뚱 서 있었다.
약간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솔직히 나도 얘 마음을 전혀 모르겠어서 어쩔 수 없이 중계자의 시야를 사용해서 확인해 봤다.
[#존예 #아름다워 #>_<♡]
……도저히 나는 큰 서둥이(서지아)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누가 봐도 화가 난 모양새였는데 말이다.
서지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내게 물었다.
“궁금한 거. 있어요.”
“뭔데?”
한세린에게 말했듯 서둥이들은 뭔가 챙겨주고 싶은 느낌이 강하다.
9성들 틈바구니에 낀 8성이라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타고난 재능은 부족하지만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최상위 랭커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장해서 그런 거 같기도 했다.
아마 시간이 많이 흐르면 결국 최상위의 자리를 유지하지는 못할 거라는 걸 알기에 더 마음이 쓰이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큰 서둥이는 과묵한 편이라서 일단 말을 하면 더 기특한 느낌이었다.
“방송은요?”
“아, 이번에 방송은 안 하기로 했어.”
남몰래 여기서 찾을 것이 있어서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괜히 말이 새어 나가서 좋을 건 없으니까.
“녹방(녹화방송)이 또 녹방 나름대로 재미가 있더라고. 반응도 엄청 좋았고.”
왕유미는 아주 유능한 편집자인 강철(김철수는신이시다)을 고용하여, 차진혁의 생방송 내용을 적절히 잘라 재미있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했다.
시나리오, ‘삼키는 민어’를 마무리까지 생방으로 진행했다면 마무리가 많이 루즈했을 것이다.
오히려 편집본으로 내보내니 반응이 훨씬 뜨거웠다.
구독자 숫자도 많이 늘었고.
생방보다 후원은 좀 적게 들어와도 조회수 자체는 훨씬 높아서 일장일단이 있었다.
“생방으로 하면 어쩔 수 없이 지루한 구간이 생기잖아. 그런 부분을 다 자르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과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걸 적당히 버무려서 재밌게 연출할 수 있더라. 물론 유능한 편집자와 PD가 있기는 해야겠지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언제 가까이 왔는지 서지수가 내 옆에 딱 붙어서서 어깨를 콕콕 찔렀다.
“근데 왜 우리야?”
“뭐가?”
“왜 하필이면 우리랑 네덜란드까지 왔냐 이 말이지.”
“암살자가 필요할 거 같아서?”
“그런 거라면 곽도형 연합장도 있고 검은 팬, 아니, 검은 나비 케일린도 있잖아.”
회귀 전, 매켄드라의 영상을 보면 암살자라 짐작되는 두 명의 플레이어가 매켄드라를 호위하고 있었다.
어쩌면 ‘피카소의 붓’을 얻는 데에 암살자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데려왔다.
“너희들이랑 합 안 맞춘 지 좀 됐잖아. 우리는 팀인데 팀웍 녹슬지 않게 관리해야지.”
“우리가…… 팀이야?”
“무슨 소리야?”
큰 서둥이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우리, 팀?”
“너네 왜 이렇게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작은 서둥이가 또 물었다.
“진짜, 진짜, 오빠는 우리를 팀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몇 번을 말하냐?”
작은 서둥이는 몸을 부르르 떨다가 갑자기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는 우리가 오빠한테 필요 없는 줄 알았어.”
그러더니 내 품 안에 안긴 채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순간이지만, 뾰족한 가시가 심장을 콕콕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종 암살 기법인가?’
그걸 나한테 시험해 보는 건가 싶어서 -케일린이나 곽도형도 새로운 기술을 익히면 꼭 나한테 시험해 본다-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기로 했다.
‘서지아도?’
서지수처럼 본격적으로 안긴 건 아니었으나 가까이 다가온 서지아가 내 옷자락을 살짝 부여잡고 있었다.
‘이상하네. 암살시도로 보이지는 않는데.’
근데 왜 심장이 통증이 있는 거지?
* * *
서지아와 서지수는 마음속으로 늘 이별을 준비했다.
“우리의 직업이 그렇게 특출나지 않는다는 거. 언니도 알지?”
서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매는 자신들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협력을 통한 시너지로 어찌어찌 최상위 랭커 자리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이 자리를 빼앗기는 건 시간문제였다.
서지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세상이니까. 진혁 오빠의 팀원 자리는…… 결국 벅차게 될 거야.”
“……슬퍼?”
“응. 슬퍼. 우리 엄청 노력하고 있잖아. 김철수의 1차 연합원으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근데 언제까지 우리가 버틸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
“…….”
“어쩌면 우리는 이미 멀어지고 있는 걸지도 몰라. 이제 진혁 오빠 곁에는 검은가시 연합장 곽도형도 있고 검은나비 케일린도 있으니까.”
서지아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최선을 다하면 돼. 치열하게.”
“응. 그럴 거야. 근데 그래도 슬프기는 해. 이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1차 연합원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왜 우리는 9성 직업이 아닐까?”
“그냥 사람들이 정한 직업이야. 표본도 별로 없어. 우리 한계를 단정 짓지 말자.”
“아냐. 솔직히 언니도 느끼고 있잖아. 인정할 건 빨리 인정하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해.”
“…….”
물로 ‘성(星)’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임의로 구분한 것에 가까웠지만, 서지아와 서지수는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이미 우리의 성장 속도와 9성 플레이어들의 성장 속도는 조금씩 차이나기 시작했어.”
노력으로 메꿀 수 없는 작은 간극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간극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커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언젠가는 차진혁에게 버려지게 될 것이었고 그가 직접 버리지 않더라도, 그녀들 스스로가 1차 연합원의 자리에 버틸 수 없을 거란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서지수는 차진혁의 말을 들었다.
-“우리는 팀인데 팀웍 녹슬지 않게 관리해야지.”
팀이라는 저 말이 오늘따라 깊은 위로가 되었다.
‘언젠가…… 우리가 오빠 팀원으로서 자격이 없어진다면, 우리 발로 떠날게.’
그렇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차진혁의 ‘팀’이라는 그 한마디가 서지수와 서지아를 감동시켰다.
다만 차진혁은 이들이 왜 이러는지 도무지 알기 어려웠고, 애초에 이들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한 상태여서 딱히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근데 말이야.”
그렇지만 너무 궁금한 것이 있었다.
“도대체 습격은 언제 할 거냐?”
나, 기다리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