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75화
‘이빨 날카로운 거 보소.’
황급히 몸을 뒤틀어 이빨을 피해냈다.
“허리가 두 동강 날 뻔했네요.”
옷이 조금 찢어지기는 했으나 별다른 부상은 없었다.
이 과정 가운데 차진혁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래야 살아 있는 느낌이 난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이런 플레이를 하면 즐겁고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걸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회귀 직후에는 부정했었는데.’
나는 이제 미친놈이 아니니까 이런 걸로 설레하면 안 돼-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이렇게 즐거우면 시청자들도 쫄깃하겠지.’
차진혁의 영상은 1인칭 시점으로 전송되고 있다.
‘내가 신나면 신날수록 시청자들은 더 생생한 방송을 즐길 수 있는 거야.’
그가 스트리머로 각성한 이상, 이제 이런 건 미친 행동이 아니었다.
차진혁은 미친 것이 아니라 스트리머로서의 본분을 지키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약간 들뜬 목소리로 방송을 이어갔다.
“저기가 목구멍인 것 같습니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삼키는 민어가 알아서 차진혁을 삼켜주었다.
“식도를 지나고 있습니다. 미끄럼틀을 타는 기분입니다.”
좀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메스꺼운 악취도 나긴 했는데 이런 사소한 건 언급하지도 않았다.
‘오랜만이네.’
회귀 전, 차진혁은 마물들에게 잡아먹히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해봤다.
그러고 보니 회귀 이후에 이렇게까지 대놓고 잡아먹힌 적은 처음인 것 같았다.
‘확실히 나태해졌구나.’
예전에는 정말 많이 잡아먹혔었는데.
사실 마물에게 잡아먹힌 다음, 내부에서부터 뚫고 나오는 것은 꽤 훌륭한 사냥법이었다.
특이한 형태의 몇몇 마물을 제외하면 장기는 무척 약한 편이었고, 신체 내부에서 조심할 만한 것은 보통 소화액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컹한 땅바닥 같은 곳에 도착했습니다.”
바닥이 꾸물거리고 있는 형태의 커다란 공간이었다.
“사람의 뼈 같은 것이 널브러져 있고요.”
삼키는 민어는 대부분의 것들을 소화해 낸 듯했다.
“유람선을 삼켰다고 했는데 유람선의 형체는 찾아보기 어렵네요. 완전히 소화가 되어버린 모양입니다.”
중계자의 시야로 여기저기 살펴보았는데 특이한 것이 하나 보였다.
──────────
[정체 모를 섬유질]
──────────
물에 잔뜩 젖은 종이 같아 보이기는 했는데 저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정체 모를 섬유질이라는 게 여기저기 꽤 많이 널려 있네요.”
순간,
공간 내에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신 냄새가 느껴졌다.
“음. 소화액을 분비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신 냄새가 나는 걸로 봐서 아마도 강한 산성액일 거 같은데요.”
차진혁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깐만.’
이현성이 살아 나왔어서 그다지 위험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위험할 것 같았다.
저만치 높은 벽에서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있는 녹색 액체가 무척 위험하게 느껴졌다.
“저 소화액이 하나의 마물처럼 인식됩니다.”
[삼키는 민어의 소화액/LV124(+99)]
“원래 레벨은 삼키는 민어의 레벨과 같습니다만, 놈의 몸속에서 작용할 땐 무려 +99 판정이네요. 레벨 200 이상의 마물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건 아주 흔한 일이었다.
하다못해 연약하디 연약한 사람의 위액도 PH2 이하의 강산성이니까.
“까딱하면 죽겠는데요?”
차진혁은 깨달을 수 있었다.
회귀 전, 이현성이 살아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소화액이 분비되기 전 이곳을 빠르게 지나쳤기 때문이었다.
사실 어쩔 수 없이 마물의 몸 속에 들어가면 일단 위는 어떻게든 피하는 게 정석이기는 했다.
차진혁은 히죽 웃었다.
‘이래야 플레이지!’
* * *
나는 일단 중계결계로 저항해 봤다.
소화액이 내 중계결계에 닿자 치익- 하고서 열기와 연기가 함께 피어올랐다.
“중계결계를 뚫고 들어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화액은 듬성듬성 떨어져 내리고 있어서 피할 공간이 제법 많았다.
[스킬, ‘시간배율 촬영’을 사용합니다.]
소화액의 속도를 늦추니 그럭저럭 피할 만했다.
“점점 소화액이 많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가랑비로 시작한 소화액은 점점 장대비가 되기 시작했다.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피하고는 있으나 이렇게 피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음, 그럼 결국 위벽을 뚫어야 하는데.’
마물의 몸속에 들어왔을 때는 소화액과 조우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겠지만 일단 조우하게 되면 하루빨리 위에서 탈출해야 했다.
마물의 내장은 산이나 독에는 강한 편이지만 물리적 충격에는 약한 경우가 많았으니까.
‘근데 이게 최선인가?’
여기서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벽을 잘라내는 게 맞기는 했다.
그런데 그게 최선인지는 알 수 없었다.
‘테르서박과의 약속도 약속이고.’
나는 ‘삼키는 민어’를 최대한 살살 다뤄주기로 약속했다.
물론 그런 약속은 안 지켜도 그만이지만 이건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다.
‘나약한 항문검과 비슷한 수준을 보여줄 수는 없는데.’
과거의 항문검은 결국 생존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삼키는 민어도 살리지 못했다.
죽이는 것보다 제압하는 게 수십 배는 더 어렵다.
내가 항문검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내 스스로 확실히 증명하려면 최대한 민어를 살려야 했다.
‘근데 방법이…….’
영 보이지 않았다.
결국 위액은 내 발목까지 차올랐고 중계결계와 내 방어력으로 버티는 게 거의 한계에 다다랐을 무렵,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위벽을 뚫고 탈출해야 할 것 같…….”
그런데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치사한 배신자야!”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동료의 목소리였다.
“패스파인더?”
한세린이 천장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떨어지는 모양새가 영 심상치 않아서 일단 한세린을 받아내 주었다.
“왜 머리부터 떨어지는 거냐?”
떨어졌으면 즉사했을 것 같다.
내 품에서 벗어난 한세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여기 들어오느라고 너무 무리하는 바람에 잠깐 정신 잃었거든. 아무튼, 이 배신의 대가는 나중에 철저히 받아주겠어.”
도대체 내가 무슨 배신을 했다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한세린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위액이 발목까지 찰랑거리고 있는데 운신이 꽤 자유로웠다.
“강산성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신발을 신고 있네요. 역시 일류 길잡이라 준비성이 철저한 모양입니다.”
두더지맨도 내 방송 보고 있겠지?
“아까까지 저와 함께했던 두더지맨은 제게 저런 아이템을 미리 준비하라 일러주지 않았었는데요. 준비성은 패스파인더가 더 뛰어나군요.”
한세린은 어딘가로 뛰어가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었다.
아까 봤던 ‘정체 모를 섬유질’을 긁어모아 어떤 스킬을 사용했다.
“저건 무슨 스킬일까요?”
중계자의 시야로 사용해 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 동료의 비밀이니까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한 전력을 노출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녹색의 마력선이 모여드는가 싶더니 번쩍! 하고 녹색빛이 터져나왔다.
“자. 이거 입어.”
한세린이 아이템 하나를 건넸다.
──────────
[종이병정의 방호복]
──────────
“처음 보는 아이템입니다. 중계상점에서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인데요. 길잡이의 말대로 한 번 착용해 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전신을 덮는 방어구형 아이템 착용은 처음인 것 같았다.
“방독면을 쓴 것 같은데요.”
이 아이템에 시야를 방해하는 부작용이 있는 건지 시야가 좀 흐려졌고 숨 쉬기가 조금 불편해졌다.
그렇지만 내 살갗을 녹이려 들던 위액은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발목 부근이 좀 시큰거리는 것 빼고는 멀쩡합니다. 이 방호복의 성능이 제법 대단한데요?”
잘은 모르겠지만 위액에 오랫동안 닿아 있던 발 부근의 피부가 많이 녹은 것 같았다.
그래도 걷는 데는 지장이 없어서 한세린에게 가까이 다가가 인터뷰를 땄다.
“패스파인더님. 지금 저한테 아주 뛰어난 성능의 방호복을 주었는데요. 이걸 어떻게 만들었죠?”
“봤잖아. [뽀송뽀송 물 먹는 코끼리] 아이템을 사용해서 습기를 쫙 제거해서 제작 재료로 변환시킨 다음 제작스킬 사용한 거. 재료도 있고 제작스킬도 있으니까 뚝딱뚝딱해서 만들었지.”
“그러니까 묻는 것입니다. 패스파인더님은 길잡이 클래스 아닌가요?”
훗날 군주로 전직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한세린의 직업은 분명…… 어라?
한세린의 직업은 원래 ‘비밀 개척가’였다.
그런데 비밀 개척가가 ‘비밀 파괴자’가 되어 있었다.
웬 파괴자?
한 번의 전직을 거친 모양인데 나는 모르는 내용이었다.
플레이 스타일이 과격해진 건가?
“길잡이 클래스가 제작하는 게 이상해?”
“보편적이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그럴 리가.”
한세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저래진짜 #나는_제법_평범한 편인데 #방송 때문에 저러나?]
“스트리머가 외부 세력의 고레벨 침략자들을 상대로 솔로잉을 진행하고 시나리오급 규모의 플레이조차도 혼자 플레이하는 세상이잖아.”
“…….”
“길잡이가 플레이에 유용한 제작 정도는 할 수 있는 게 보통이지 않아?”
“아, 하긴.”
나는 쉽게 납득했다.
* * *
한세린도 방호복을 입기는 했으나 기본적인 방어력 자체가 약한 편이어서 내가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살갗이 닿는 것이 그리 달갑지는 않지만.’
한세린은 나의 전우이자 형제였다.
그렇다 보니 스킨십이 좀 어색하고 민망하기는 했다.
‘그래도 방어력이 워냑 약하니까 어쩔 수 없지.’
나는 한세린을 안아 들고서 적절히 중계결계를 사용했다.
몸이 떨어진 상태로 중계결계를 펼치는 것보다 이게 훨씬 더 효율적이었으니까.
방호복과 중계결계를 함께 운용하니 위액 소나기로부터 생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슬슬 끝난 모양이다.”
“…….”
“뭐해?”
한세린은 한참 동안이나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게 안겨 있었다.
내가 다시 한번 말했다.
“뭐하냐니까?”
“어?”
한세린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내게서 떨어졌다.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무척 붉어져 있었다.
“패스파인더님. 얼굴이 엄청 빨갛다?”
“반말을 할 거면 반말을 하고, 존대를 할 거면 존대를 해.”
“그게 중요한가요?”
“헷갈려 죽겠어.”
“헷갈릴 게 뭐 있어? 난 원래 오락가락해.”
나는 얘가 왜 이렇게 흥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까 그 제작 스킬 사용한 거 처음이었나 봐요, 패스파인더 씨?”
“……뭐?”
“첫 제작을 시나리오급 플레이에서 성공시키다니. 무척 기쁜가 봅니다.”
나도 저 마음 잘 안다.
내가 하고자 했던 플레이를 성공적으로 진행했을 때의 저 희열감과 성취감은 마치 마약과도 같은 법이다.
“그렇지만 길잡이로서의 본분을 잊으면 안 되죠. 저기 출구가 열리는 것 같은데, 저기로 가면 되나요?”
“…….”
한세린은 자기 속마음을 들킨 것이 부끄러운지 빠른 걸음으로 앞장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꽤 뿌듯했다.
‘한세린도 많이 성장했네.’
과거의 한세린에게 제작기술은 없었던 것 같은데.
우연한 기회로 제작기술까지 접하고 수련을 한 모양이다.
그 짧은 시간에 뽀송뽀송 어쩌고를 미리 준비해 온 걸 보면 눈썰미와 감각도 뛰어난 편인 거 같고.
한세린이 휙!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렇게 실실 웃는데?”
“좋아서.”
적당히 긴장감 있는 연출도 성공한 것도 좋고 옛동료의 성장도 눈으로 확인한 것도 좋았다.
한세린도 분명 즐거워하고 있겠지.
“출구가 맞아.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출구라고 보이기보다는 블랙홀처럼 보였다.
어디로 연결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아마도 내장 속 필드 어딘가로 이동할 것 같았다.
한세린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각기 다른 공간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손을 잡고 이동하자.”
내 손을 잡은 한세린의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많이 설레나 보다.
히죽, 나도 설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