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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74화 (174/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74화

“일단 물고기를 잡으려면 강으로 가야겠죠.”

테르서박은 이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별하기 어렵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맵은 무언가 신비로운 것이 숨겨져 있는 특별한 곳으로 유명했는데, 막상 와보니 그 환상이 와장창 깨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물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

차진혁에게 공유받은 작전은 사실 작전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조악했다.

길잡이, 스트리머, 테이머로 구성된 세 명의 팀(?)이 오리맨을 타고 한강을 돌아다니며 ‘삼키는 민어’를 불러내는 것이었다.

‘한국에는 보다 철저한 작전과 축적된 노하우, 그들만의 뛰어난 계책 등이 있을 줄 알았는데.’

설마설마했다.

정말로 그게 작전의 전부인지.

플레이상 어떤 기밀이 있어서 자신에게는 밝히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건지.

그는 오리맨에 올라타는 그 순간까지도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두둥실-

오리맨은 천천히 유영하기 시작했다.

“김철수, 당신이 삼키는 민어에게 삼켜지겠다는 작전은 일부 이해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과연 그렇게 순조로울까?”

“무슨 소리야?”

“보통 위험한 마물을 길들이는 데에는 많은 정성과 시간과 사랑이 필요해. 거기에 필요한 물자나 인원도 상당하지.”

차진혁은 전혀 모르는 분야의 얘기였다.

어차피 물에 떠다니는 것은 오리맨과 두더지맨의 역할이었으니 테르서박과 차분히 인터뷰를 이어갔다.

“필요한 물자나 인원이라면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거지?”

“마물과 교감을 나눌 수 있으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 적의가 없음도 보여야 하고. 그러려면 상당한 시간 동안 마물의 공격을 버텨줄 탱커가 필요하다. 그리고 마물의 특성이나 성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줄 길잡이와 군주 등, 특별한 눈을 가진 플레이어가 필요하고. 혹시 마물이 난동을 피울 것을 대비하여 구속 계열의 플레이어나 결계술사 등이 있으면 더욱 좋겠지.”

“흐음.”

차진혁의 반응에 테르서박은 약간의 희망을 보았다.

두더지맨은 뭐가 그리 불만인지 ‘아 쟤랑 플레이하다가 랭킹 떨어지겠어’라면서 초조해했지만 말이다.

“테이밍에는 그에 적법한 절차와 왕도가 있는 법이다. 지금 우리의 이 플레이는 정상의 범주를 지나치게 벗어났다. 1차적으로 삼키는 민어의 공격을 받아내 줄 탱커도 없다. 당신 말대로, 당신이 삼키는 민어에게 삼켜진다고 치자. 그럼 그 다음은?”

차진혁은 아주 잠깐이지만 당황했다.

사실 차진혁도 그 다음은 생각 안 했다.

두더지맨처럼 유능한 길잡이가 있으니까 그럭저럭 알아서 하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삼켜지는 것 외에 다른 건 아예 생각을 안 했다.

원래 플레이란 각자의 역할에서 각자가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뭐, 뇌룡을 길들였을 정도인 당신이 후의 일을 생각하지 않았을 리는 없겠지.”

“…….”

“플레이 기밀이라면 말해주지 않아도 좋다.”

“…….”

“그런데 삼키는 민어가 당신이 아니라 나나 두더지맨을 삼킨다면?”

그제야 차진혁은 씨익 웃었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되니까.

“그럴 일은 없어. 나는 탱킹도 제법 잘하거든.”

두더지맨이 버럭! 소리 질렀다.

차진혁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그는, 차진혁도 지금 굉장히 불쾌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오, 진짜 말 많네. 그냥 개쫄았다고 말을 해라 차라리. 못 들어주겠다. 김철수, 이런 쫄보랑 같이 플레이해야 하는 것이 맞는 거냐, 두지?”

“테르서박의 말이 이론적으로는 대부분 맞는 말인데 왜 그렇게 열을 내?”

“……두지?”

“맞는 말 하면 듣고 수용할 줄도 알아야지.”

“……기준이 좀 오락가락하지 않아, 두지?”

만약 자신이 테르서박과 똑같이 행동했더라면 김철수에게 크게 혼이 났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확실히 나를 야단쳤을 거다.’

그런데 테르서박이 말하니까 많이 봐주는 느낌이 있었다.

“기준에 일관성이 없다, 두지!”

“그게 상관인데?”

“……두지?”

거기서 두더지맨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도 김철수는 내게 가르침을 내려주고 있는 것이구나! 결국 모든 것은 실력으로 증명하라는 얘기야. 그러면 기준이 좀 오락가락하고 일관성이 없는 것쯤은 아주 사소한 문제지! 저렇게 오락가락해도 비공식 세계 랭킹 1위니까.’

가르침을 얻은 그는 꽤 기뻤다.

‘그래. 나도 그때그때 내 마음대로, 일관성 없이 플레이해야겠다.’

훌륭한 가르침을 얻었다.

* * *

테르서박과 함께 한강을 돌아다녔으나 큰 수확은 없었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네요.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테르서박이라면 결국 삼키는 민어를 불러낼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테르서박은 묘한 감동을 느꼈다.

비록 사소한 말이지만 김철수에게 인정을 받은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삼키는 민어를 찾아낸다, 반드시.’

두더지맨과 김철수를 만난 테르서박은 조금 변했다.

본래는 삼키는 민어라는 새로운 종과 만나 특별한 교감을 쌓고 싶은 것이 우선이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교감을 나눈 뒤, 가능하다면 길들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은 조금 옅어지고 삼키는 민어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얘 진짜 실력 있는 거 맞아, 두지?”

두더지맨은 오늘도 약간 불만인 듯했다.

“심지어 얘는 이제 랭킹 2위로 떨어졌다, 두지. 랭킹 2위 같은 주옥밥 하고는 같이 일 안 하는데, 두지.”

“이봐 두더지맨, 시끄러워 죽겠군. 집중 좀 하자.”

“랭킹 2위 주제에 어디 랭킹 1위한테 까불어?”

두더지맨과 테르서박이 티격태격하던 그때, 테르서박이 눈을 크게 떴다.

“쉿.”

테르서박은 준비해온 떡밥을 강물에 뿌렸다.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어떤 언어들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테르서박의 손끝에 희미한 은빛 실이 일렁거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마력실이었다.

햇빛과 부딪쳐 반짝거렸다.

낚싯줄 같기도 했고 거미줄 같기도 했다.

차진혁도 중계자의 시야로 한강 밑을 살펴보았다.

‘온다.’

무엇인가가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차진혁은 오리맨의 등을 박차고 멀리 뛰었다.

“오!”

물속에서 무언가 커다란 것이 입을 쩍- 벌리고 모습을 드러냈다.

공중에 뜬 차진혁을 향해 물 밖으로 뛰어올랐다.

차진혁은 약간 흥분했다.

“저를 삼키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1인칭 시점의 장점이었다.

자신을 삼키려 드는 거대한 입을 정확히 관찰할 수 있었다.

“이빨이 엄청나게 크고 단단해 보입니다. 과연 다리를 물어뜯어 무너뜨릴 정도로 살벌…… 응?”

그런데 차진혁은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제가…….”

이건 실수였다.

“너무 높이 뛰었나 봐요.”

삼키는 민어가 물 밖으로 튀어 오르기는 했으나 차진혁에게까지 닿지는 못했다.

차진혁은 순간 허탈해져서 아무 말 도 못할 뻔했으나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방송을 이어갔다.

“일단 저도 입수해서 찾아보겠습니다.”

삼키는 민어의 위용을 보여주는 데에는 성공했다.

굳이 또 멋진 시각적 연출을 할 필요는 없고 삼켜지기만 하면 된다.

“제가 물에 빠지면 더 열렬히 달려들지 않을까요?”

슬슬 수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조금 흥분해서 너무 높이 뛴 것 같기도 했다.

“입수합니다.”

첨벙!

차진혁의 몸이 한강 물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으브브.”

물 속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차진혁은 거기서 꽤 크게 실망했다.

‘치열하지 못했구나.’

물속에서도 중계를 할 수 있도록 이런저런 준비를 해야 했는데.

삼키는 민어의 배 속에 들어갈 생각만 했지, 물 안에서도 말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었다.

‘한세린이 봤으면 엄청 혼냈겠는데.’

왕유미나 봉미나(봉킹, 강미나)에게도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것 같아 창피했다.

차진혁은 헤엄쳐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큰 덩치를 가진 놈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요.”

* * *

테르서박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제대로 디딜 수 있는 곳도 아닌데.’

이곳은 오리맨 위.

제대로 중심을 잡고 서 있기도 쉽지 않은 곳이다.

여기서 저렇게 높이 뛸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몸이 날래기로 유명한 궁수난 도적도 저렇게는 못 할 것 같았다.

‘나는…… 나의 일을 하자.’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삼키는 민어를 똑똑히 눈에 담았다.

손가락 끝으로 이어진 마력실을 통해 삼키는 민어와 접촉했고, 민어의 마음과 심리를 일부 읽어낼 수 있었다.

“점프력이 그렇게 하찮을 줄은 나도 몰랐네.”

“……당신이 지나치게 높이 뛰었다고는 생각 안 해?”

“이 정도는 다들 뛰어.”

참고로 여기서 차진혁의 기준은 천사소녀 송하영이었다.

‘어쩌면 송하영은 나보다 더 높이 뛰었을지도?’

테르서박은 차진혁의 괴이한 기준에 더 이상 놀라지 않기로 작정한 뒤 말을 이었다.

“삼키는 민어는 겁이 많고 소심한 개체야. 마력실을 통해 민어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어. 어린아이같이 순수하고 맑아.”

“그건 그렇다 치고.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질 수가 있는 거지? 그 정도 덩치면 육안으로라도 보여야 할 텐데.”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수줍은 소년이야. 주린 배를 채울 때를 제외하고는 아주 작고 귀여운 물고기로 살아가는 것 같아.”

차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느니, 수줍은 소년이라느니.

수많은 사람을 잡아먹은 마물을 보며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역시 제정신이 아니었다.

‘역시 미친놈이네.’

“그러니까 크기를 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놈이라고?”

“그렇게 이해하는 게 편하겠지.”

그래서 그렇게 찾으려고 노력을 해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테르서박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래도 내 마력흔을 묻혀놨어. 이제 일이 좀 수월해질 거야. 하지만 확실히 약속을 지켜주면 좋겠군.”

“뭐였지?”

“민어를 너무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그러면 나는 내일이라도 민어를 불러낼 수 있을 것 같군.”

“…….”

얘는 회귀 전이나 후나 하는 말이 똑같네.

“최대한 노력은 해보지.”

“……그래.”

그리고 하루 뒤.

테르서박은 정말로 하루 만에 삼키는 민어를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차진혁은 테르서박이 미리 건네준 액체를 온몸에 바른 뒤 한강에 풍덩! 뛰어들었다.

‘오, 온다!’

자신을 먹이로 인식한 삼키는 민어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옵니다.”

[LV124(+20)/삼키는 민어/스킬]

“물 속이라서 +20 판정을 받네요.”

확실히 공중에 떴을 때보다는 몸놀림이 훨씬 좋았다.

큰 입을 벌리며 다가왔다.

“이빨에 씹히는 것만 조심해서 먹혀보겠습니다.”

차진혁은 몸을 웅크린 뒤 민어의 입속으로 뛰어들었다.

무려 시나리오상에 등장하는 개체라서 그런지 몸속 자체가 새로운 필드로 인식되었다.

[필드, ‘삼키는 민어의 몸속 세상’에 입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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