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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73화 (173/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73화

“테이머는 처음이다, 두지.”

“당신이 한국 랭킹 1위의 길잡이, 두더지맨?”

“으하하핫! 맞다, 두지. 어제부로 1위를 탈환했다, 두지. 마침 테르서박이 나랑 함께하게 되었으니 1위의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겠어, 두지.”

테르서박은 두더지맨의 안내를 받아 한강에 도착했다.

‘강이 넓군.’

상당한 너비의 강이었다.

‘그토록 강력한 마물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고.’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원래 테이밍이라는 것은 수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그때, 운이 좋았다.

“어? 김철수가 방송을 켰다, 두지.”

“어떻게 알았지?”

“구독, 좋아요, 알람 설정은 필수지, 두지.”

두더지맨이 씨익 웃었다.

늘 그렇듯 김철수의 방송은 1인칭 시점이었는데, 김철수가 한강 어딘가에 도착해 있었다.

“김철수를 찾아서 합류하자, 두지. 미국의 유명 테이머가 함께하고 있다면 김철수도 거부할 이유가 없다, 두지.”

“한강은 길이가 무려 494㎞나 되는 기다란 강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만나겠다는 거지?”

그 흔한 한강 다리도 보이지 않았다.

서울은 아닌 듯했다.

자연풍광도 그다지 특이한 점이 없어서 지금의 1인칭 영상만으로 한강의 어디라고 특정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과연 랭킹 1위의 길잡이는 다른가.’

길잡이에게는 길잡이의 방식이 있을 테니까.

아주 사소한 단서만으로도 김철수를 찾아낼 수 있는 건가.

그는 기대 가득한 눈으로 두더지맨을 관찰했다.

과연 한국 랭킹 1위의 두더지맨은 어떻게 김철수를 찾아낼까.

어쩌면 그는 지금 자신의 능력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지금 테르서박과 함께 있다. 합류를 제안한다, 두지. 오케이. 어디로 가면 되지? 주소 알려줘라, 두지.”

통화를 끝낸 두더지맨이 핸드폰을 내려놨다.

테르서박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두더지맨을 바라보았는데, 두더지맨은 한강 쪽을 향해 걸어갔다.

“뭐해? 안 올 거야, 두지?”

어느새 한강에는 커다란 오리 모양의 탈것이 소환되어 있었다.

두더지맨의 탈 것인 ‘오리맨’이었다.

두더지맨은 능숙한 모양새로 오리맨 위에 올라탔다.

“안 타?”

“당신 입으로 분명, 한강에는 위험한 마물이 살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유람선을 한입에 삼킨다고.”

혹시 저 ‘오리맨’에는 특수한 결계 같은 것이 있어서 삼키는 민어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건가.

신비로운 맵인 한국맵 랭킹 1위는 과연 뭐가 달라도 다른 것인가.

“뭔 소리야?”

만족스러운 플레이 중에는 항상 끝에 ‘두지’를 붙이는 두더지맨이 이제는 ‘두지’를 붙이지 않았다.

그건 지금 그가 몹시 불쾌하다는 의미였지만 테르서박은 그런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세상에 안 위험한 플레이가 어디 있지?”

두더지맨은 한국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차진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아니, 한강에 분명 삼키는 민어가 나타난다고…….”

“그러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냐니까?”

두더지맨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거 이거 괜히 허접 데려가는 거 아냐, 두지?”

“…….”

“3초 안에 안 타면 두고 간다.”

테르서박은 혼란스러웠다.

미국맵의 플레이 방식과는 너무 달랐다.

한강에 버젓이 ‘삼키는 민어’가 돌아다니고 있는데, 심지어 그게 한 마리인지 여러 마리인지 파악조차 안 된 상태에서 저 오리를 타고 한강을 이동하겠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놈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는 김철수를 만나야 한다.’

결국 그 또한 오리배에 올라탔다.

* * *

나는 테르서박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렸다.

‘여러모로 나랑 안 맞는 부분이 많았는데.’

테르서박은 마물에게 특히 관대한 플레이어였다.

마물을 사랑하고 교감하는 특이한 녀석.

뭐, 그런 미친놈들이 세상에 없지는 않았는데 대부분은 마물에게 잡아먹히거나 살해당한다.

원래 마물은 인간을 적대하도록 되어 있고, 그건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 같은 거였으니까.

근데 그 섭리를 거스른 미친놈이 가끔 등장했는데 그게 바로 테르서박 같은 별종이었다.

나처럼 정상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은 테르서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신이 김철수?”

내 기억 속 테르서박보다는 많이 어렸다.

두더지맨이 오리맨에서 폴짝 뛰어내려 내게 인사했다.

“테르서박을 데려오기는 했는데 영 찝찝하다, 두지.”

“뭐가?”

“아무래도 겁쟁이 기질이 다분하다, 두지.”

테르서박이 겁쟁이라고?

그럴 리가.

회귀 전에는 무려 뇌룡을 길들였던 녀석이다.

‘어, 가만?’

근데 지금은 내가 뇌룡을 길들였으니까 -사실 길들였다기보다는 계약관계에 가까웠지만- 내가 더 잘난 건가.

한 분야의 일인자를 꺾었다는 건 그 나름대로 꽤 즐거운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 테이머에도 나름 재능이 있는 거 아닐까.

“그나저나 한국은 무슨 일이지? 나는 왜 찾았고?”

“네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뭔데?”

“그러나 아직은 내 자격이 충분치 않아. 너와 함께 [삼키는 민어] 시나리오를 클리어한 다음 묻겠다.”

얘가 나한테 물을 것은 뻔했다.

어떻게 뇌룡을 길들일 수 있었느냐고 묻겠지.

“뭘 그렇게 돌아가? 뇌룡을 어떻게 길들였냐고 묻고 싶은 거 아냐?”

“……어떻게 알았지?”

“세 살짜리 어린애도 알겠다.”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사실대로 말해주기로 했다.

“그냥 운이 좋았어.”

“운이 좋았다고?”

테르서박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내 말에 웃긴 부분이 어디가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어쩔 수 없이 중계자의 시야를 사용해 봤다.

[……#영업기밀인가 #하긴_나같아도 #그러나_나는 포기하지 않아 #알고싶어_교감의 비밀을]

아니, 그냥 운이 좋았다는데 왜 또 저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얘도 내 말 못 믿는 병에 걸렸나.

테르서박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뇌룡은 원래 나의 것이었다.”

예리하네.

회귀 전에는 원래 얘가 테이밍해서 데리고 다니던 개체였으니, 엄밀히 따지면 내가 빼앗은 것 같은 모양새가 되기는 했다.

“근데?”

“……뭐?”

내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테르서박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화내지 않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는데 #어째서?]

“빼앗긴 게 자랑이냐?”

“…….”

[……#야단맞는 포인트가 #영_이상하군]

“그게 뭐 자랑이라고 원래 내 것이었다 같은 소리를 하고 앉았어?”

“……미안하군. 부러움에 잠시 정신줄을 놓은 모양이다.”

근데 얘는 나한테 엄청난 영업기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세한 얘기는 [삼키는 민어] 시나리오가 끝나면 듣도록 하지. 너도 알다시피 나는 미국맵의 랭킹 1위 테이머다. 내가 도울 일이 있을 것 같군.”

* * *

차진혁은 방송을 위해 한 톤을 높여 말을 시작했다.

“저는 [삼키는]이라는 단어에 집중해 보았습니다.”

회귀 전, 테르서박은 ‘삼키는 민어’를 인위적으로 불러내는 데 성공했었다.

이후 국정원 팀을 포함하여 상당수의 랭커들이 삼키는 민어를 협공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테르서박은 민어를 평화적으로 다스리려고 했었고, 국정원 팀과도 그렇게 얘기가 되어 있었던 상태였다.

그러나 몇몇 랭커들이 삼키는 민어를 사냥하고자 선공을 가하게 되었고 상황은 엉망진창이 됐었다.

‘그때 테르서박이 엄청 화내면서 길길이 날뛰었지. 약속이 다르지 않냐고.’

차진혁은 당시 테르서박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심정 자체는 공감했다.

원하는 플레이를 못 하게 되었을 때의 울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뭐 테르서박이 열받은 건 사소한 일이고.’

정말 중요한 건 그 다음이었다.

이현성을 비롯한 몇 명이 잡아먹히는 불상사가 발생했었다.

‘우리와의 전투로 큰 부상을 입었던 [삼키는 민어]는 애들을 삼킨 채 도망쳤고.’

이현성을 비롯한 랭커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진이 시작되었을 무렵.

잡아먹혔던 랭커들이 뚝섬에 모습을 드러냈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도 이현성은 항문검이었네?’

랭커들은 민어의 배 속에서 생존하여 항문을 뚫고 나왔다.

며칠 후, 고래처럼 커다란 민어가 두둥실 떠오르며 ‘삼키는 민어’ 시나리오는 마무리가 됐었다.

당시 이현성은 차진혁과 랭킹 1위와 2위를 다투던 검술가였었는데, 삼키는 민어 시나리오 이후로 약 2주 동안 이현성이 랭킹 1위를 유지하게 된다.

솔직히 진짜 열받았었다.

“결국 이 시나리오를 위해서는 삼켜져야 할 거 같거든요.”

차진혁이 테르서박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침 미국맵의 랭킹 1위 테이머도 도움을 주겠다고 달려왔습니다. 테르서박. 당신의 능력이라면 삼키는 민어를 불러낼 수 있겠죠?”

“…….”

테르서박은 여러모로 정신이 없었다.

일단 차진혁의 사고방식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시나리오의 이름이 삼키는 민어니까 삼켜져 보겠다고?”

“방송 중이니까 어지간하면 존대합시다. 신문명의 번역기는 생각보다 성능이 대단해서 반말과 존댓말까지도 구분해서 전달합니다, 테르서박.”

물론 김잘알TV의 예리한 시청자들은 ‘응? 평소에는 반말 잘만 하면서?’ ‘차진솔: ???’ 등의 날카로운 지적을 쏟아내기는 했지만 ‘질서좌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등의 여론에 묻히게 되었다.

[우민들아, 너네들의 짧은 식견으로 질서좌를 속단하지 마라. 이번 숭고한 폭행사건에서도 보지 않았느냐? 김철수느님은 늘 옳으시니!]

[-글 작성자: 김철수는신이시다]

[그냥 지 맘대로 오락가락하는 건데 제발 그 같잖은 포장 좀 하지 말아주라. 역겹지도 않누? 지구인 새기들, 지구뽕거리면서 김철수빠는 거 역겨워 죽겠누.]

[-글 작성자: 과대포장사절]

늘 그렇듯 한마갤의 두 네임드가 크게 싸웠고 사람들은 대부분 ‘김철수는신이시다’편을 들었다.

과대포장사절.

그러니까 왕유미의 조력자인 죠셉은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혐오적인 단어를 사용하면서 오히려 김철수의 팬들을 응축시키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어쨌든 차진혁의 방송은 계속 이어졌다.

“왜? 못 해요? 그냥 민어를 부르기만 하면 되는데요.”

“왜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테르서박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을 줄 알았죠.”

차진혁은 조금 실망하고 말았다.

물론 회귀 전보다 ‘삼키는 민어’ 시나리오가 몇 달 더 빨리 발생한 것은 맞았다.

그러나 그의 회귀 이후, 그 주변의 플레이어들은 회귀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훨씬 강해져 있을 줄 알았는데.’

시기적으로 몇 달 정도 차이가 있기는 해도, 테르서박이라면 삼키는 민어를 성공적으로 불러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건 실수인 듯했다.

“……설마 못해요?”

“…….”

테르서박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실망을 넘어서서 거의 배신감을 느낄 지경이었다.

이러면 테르서박을 뛰어넘었다는 건 의미가 전혀 없어지지 않은가.

도태된 테르서박보다 잘해서 어디다 쓰냔 말이다.

“차라리 킹국현이 낫겠어.”

“킹국현?”

“한국 맵, 랭킹 1위 테이머. 설마 킹국현도 몰라?”

어느새 차진혁의 말은 반말이 되어 있었다.

죠셉의 말대로 그의 기준은 약간 오락가락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니, 동종업계 경쟁자에 대한 공부도 안 한단 말이야? 그러고도 네가 랭커의 자격이 있는 거냐?”

“나는 랭킹에 연연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사랑스러운 마물들과의 교감이 좋았고, 교감을 하다 보니 랭킹 1위가 되어 있었을 뿐.”

이것은 테르서박의 플레이 지론이기도 했다.

그는 경쟁하는 플레이를 딱히 원하지 않았다.

랭킹 1위가 되려고 노력한 적도 없었다.

그냥 좋아하는 걸 하다 보니 랭킹 1위가 되었을 뿐이었다.

‘아무리 김철수라고 해도, 내 플레이 지론에 간섭하고 욕할 권리는 없어!’

그가 도끼눈을 떴을 무렵.

차진혁이 말했다.

“그따위 마음으로 뇌룡을 테이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진심으로?”

“…….”

“비슷한 경지의 플레이어들을 철저히 분석하고, 내게 모자란 것을 더 채워넣고 발전할 생각을 해도 뇌룡을 테이밍할까 말까인데.”

“…….”

순수하고 열정 가득한 테이머, 테르서박이 오염되는 순간이었다.

“됐어. 킹국현 불러야겠다.”

“잠깐.”

테르서박이 입술을 깨물었다.

“해보겠다. 네가 말한 것.”

[삼키는 민어] 시나리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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