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72화 (172/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72화

배덕수는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이 끔찍한 매질이 끝날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 그러면 다는 아니고 조금만 말하겠습니다.”

“아직 정신 못 차렸네.”

퍽! 퍽!

“다 말하겠습니다.”

“다 말할 줄 어떻게 알고.”

“크아아악! 지, 진짜 다 말하겠습니다!”

“아직도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다고?”

“제, 제발!!!”

무자비한 구타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힐러가 쓰러졌고 혈사제인 차진솔마저 숨을 헐떡였다.

“오빠. 나도 이제 한계야.”

“그래?”

어느새 차진혁도 온몸에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제야 쓰러진 힐러들이 눈에 들어왔다.

차진혁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고 고통 방망이는 내구도가 다해 바스라졌다.

“제 방송은 치열한 것이 컨셉입니다. 다들 아시죠?”

이건 화나서 팬 게 아니다.

과거의 기억 때문에 그런 게 절대 아니다.

“때리는 것도 치열했을 뿐입니다.”

-역시 치열좤ㅋㅋㅋㅋ

-착한 치쪽이는 분노하지 않긔 ㅋㅋ

-화나서 때린 거 아님. 아무튼 아님ㅋㅋㅋㅋㅋ

“우리 배덕수 씨는 치열한 콘텐츠에 함께 했으니 이제 치열하게 대화를 나눠볼까요?”

“물론입니다. 다 말할게요, 으허어엉.”

뭘 딱히 말하라고 한 적은 없는데 알아서 비밀을 말한단다.

왕유미의 예측과 일치했다.

왕유미는 어디까지 내다본 걸까.

“저, 저희는 원래 보상 같은 걸 바라지 않았습니다. 진짜입니다. 우리를 부추긴 놈들이 있습니다.”

오!

어쩐지 갑자기 많은 세력이 한꺼번에 집단행동을 하더라.

“자, 자신을 블랙의 3등 군주라고 밝힌 자입니다.”

3등 군주라는 단어에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삼키는 민어’ 시나리오가 진행될 때 즈음, 한국에서 설쳤던 군주가 있었다.

“헤일릭?”

“……알고 계셨…… 습니까?”

물론 몰랐다.

“뒷배가 헤일릭이었군.”

차진혁의 과도한 폭행에 정당성이 부여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외세(블랙)의 개입이 있었고, 평화의 수호자 차진혁은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 물리력을 사용했다는, 무척 정의로운 정당성이.

스칸노르비아의 침공과 연희함락전을 경험한 지구인들은 침략자들을 무척이나 경계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왕유미도 깜짝 놀랐다.

‘뒷배가 있을 거라고는 짐작했어. 숭고하고 아름다운 폭력을 통해, 자연스레 알아내는 김철수의 모습을 담아내려고 했지.’

왕유미가 보기에 차진혁은 연기에 능통하지 못했다.

그래서 연기를 주문해서 어색하게 연출을 잡느니, 아예 자연스럽게 알아내는 과정을 담아가려고 했었다.

고귀한 폭력은 모든 것을 알게 하니까.

‘근데 이미 알고 있다고?’

어떻게 알았는지는 사실 왕유미도 알 수 없었지만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멋있어. 최고야. 섹시해. 치열한 자가 간절하니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로다!”

치열좌가 간절했으니 저런 것쯤은 아는 게 당연하지.

그녀에게 논리나 개연성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츄릅.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아냈다.

* * *

블랙의 3등 군주 헤일릭이라는 이름이 등장함과 동시에 나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좋아졌다.

-저렇게 주먹을 휘두르면 되냐던 선비충 어디갔누?ㅋㅋ

-그럼 그렇지. 겸손의 질서좌가 걍 열받는다고 사람을 치열하게 팰 리 없지.

-김철수의 폭력은 늘 옳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행동이 옳았다고 칭송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그래도 저런 사적 복수나 제재는 나쁘다고 의견을 게시했으나 이내 수많은 ‘싫어요’와 댓글의 포격 앞에 글을 삭제하고 사라졌다.

방송을 끝낸 차진혁은 한마갤에 접속하여 여론을 살폈다.

‘속 시원하네.’

공무원 시절일 때에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이런 거였다.

다짜고짜 손해배상 청구하는 애들을 두들겨 패는 거.

그 뭐였더라, 내가 어떤 할머니 구해줬는데 구출 과정에서 할머니가 부상을 입었다고 그 아들인지 딸인지가 나를 고소하기도 했었다.

어떤 가게 생성된 강력한 마물을 처리하느라 가게가 무너진 적도 있었는데 앞에서는 우리한테 살려줘서 고맙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우리한테 복구비용을 청구하더라.

‘왕유미가 그럴듯한 서사를 붙여서 나에 대한 여론이 좋아지게 작업하고 있고.’

흑막의 존재를 일찌감치 깨달은 내가 직접 나서서 마음 아픈 형벌을 내렸다나 뭐라나.

솔직히 말이 안 되기는 하는데 이상하게 저런 방법이 잘 먹혔다.

-사람 패는 질서좌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나네여 흐규흐규 ㅠㅠ

-치열느님은 자신의 치열함을 이런 데다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정의를 위하여, 치얼스 ☆

아무튼 어쩌고 시민연대와 저쩌고 연합들은 내게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약조했다.

MK재단의 마리아가 나서서 ‘재해복구 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공표했다.

노원구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MK재단에서 구호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나를 칭송했다.

-치열맨은 자비롭다.

-나 같으면 저런 은혜도 모르는 새끼들 다 죽여 버렸을 텐데 ㅋㅋㅋ

-와, 이 정도면 사기캐 아니냐?

잠깐 방송을 켜서 내가 시킨 거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또 안 믿네?’

이거 약간 데자뷰 같다.

예전에도 ‘저는 그냥 플레이가 재밌어서 하는 건데요’라는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었지.

집에 도착해 보니 송하영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3등 군주 헤일릭. 어떻게 알아요? 나보다 어떻게 빨리 알았지?”

“흑장미 연합의 연합장이 그것도 모르냐?”

“…….”

“나 같으면 쪽팔려서 어떻게 알았냐고 안 물어볼 텐데.”

송하영은 자존심이 상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블랙의 목표가 뭐라고 생각하는데? 아는 거 있지?”

“왜 엄한 스트리머 붙잡고 심문하고 난리냐? 그런 건 네 친구랑 상의해 봐.”

“내 친구?”

“그런 거 파악하는 건 한세린 전문이잖아.”

“패스파인더는 스칸노르비아 현장 나가 있어서 바빠.”

반말과 존대를 섞어 하던 송하영은 이제 완전히 말을 놨다.

플레이에 딱히 중요한 요소는 아니어서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나는 치열좌의 생각이 듣고 싶어. 3등 군주 헤일릭의 존재를 가장 빨리 알아차린 사람이니까.”

“음, 글쎄. 네 생각은 어떤데?”

“일단 첫째로 생각나는 건 험프리 밀런에 대한 복수?”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진짜 몰라도 아무것도 모르네.

블랙쯤 되는 범우주적 연합이 겨우 험프리 밀런 같은 애들 때문에 복수를 한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왜 비웃어? 생각을 말하라며?”

“생각이 말 같지도 않으니까 그렇지.”

“…….”

송하영은 또 입술을 깨물었다.

“나한테만 유독 싸가지 없이 구는 거 알지?”

“아닌데.”

“아, 그래. 나랑 이현성한테만. 도대체 왜 그래? 전생에 원수라도 졌어? 왜 우리한테만 이렇게 각박하게 굴어?”

“……제법 예리하네?”

“아, 장난치지 말고!”

이거 봐.

나는 꼭 사실을 말해도 아무도 안 믿더라.

“잘하면 내가 그러냐?”

“…….”

“이번에 봉킹하고 강미나 칭찬한 영상 봤지?”

“……봤지.”

“나도 잘하면 칭찬해 주는 타입이야.”

“이번에 내가 항문검한테서 방망이 훔쳐 왔잖아.”

“그런 나약한 애한테서 물건 훔치는 게 뭐 자랑이라고.”

“…….”

송하영은 말을 멈췄다.

혹시 불손한 생각을 하면 긴고주를 외울 생각으로 속마음을 살펴봤다.

[……#멈춰_팩트 폭행 #나는_아직_부족해 #칭찬_받고시프다]

안타깝게도 송하영은 꽤 바람직한 마음으로 경건하게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아쉽게도 긴고주는 못 외우게 됐다.

“그럼 넌 블랙이 노리는 게 뭐라고 생각하는데?”

“글쎄. 하는 짓이 딱 어그로 끌려고 하는 거 같기도 하고.”

“어그로를 끌어?”

“사람들을 움직여서 나한테 한 게 고작 피해보상 요구였어. 블랙 입장에서 그걸 해봐야 뭘 얻을 수 있겠냐? 기껏해야 내가 기분 나쁜 게 끝인데.”

“…….”

“그렇다면 뭔가 노리는 다른 게 있지 않겠냐?”

“그게 뭐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알아내는 게 네 역할 아니냐? 뭐 어디까지 떠먹여줘야 돼?”

블랙이 여기저기서 시선을 끌고 있는 이유.

그건 바로 종이술사 매켄드라의 준동 때문이었다.

종이술사 매켄드라를 지구 서버에 몰래 잠입시키고, 종이술사의 군대를 일으켜 미국맵의 일부를 먹어치울 것이다.

회귀 전과 똑같다면 말이다.

지금 수준의 지구에 종이술사 매켄드라와 그 군대를 잠입시키려면 꽤 많은 눈속임이 필요할 것이고, 그래서 상당히 많은 맵에 3등 군주들이 파견되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한국에 파견된 헤일릭이었고.

[……#그치_내역할이지 #자꾸_의지하고_시프네 #너란_남자☆ #까칠하지만_멋있어 #나도_노오력을 해야지.]

다른 건 좀 이상했지만 노력하겠다는 다짐은 바람직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데 다짐만 바람직하면 괜찮은 거겠지.

* * *

‘삼키는 민어’를 사냥하기 위한 원정대가 여러 차례 꾸려졌으나 삼키는 민어를 제대로 공략한 팀은 하나도 없었다.

-뚜렷한 대책은 없는 가운데 시민들은 불안에 떨며 다리를 이용하고…….

-현재까지 사망 92명, 실종 120여 명에 이르는 가운데…….

삼키는 민어의 피해는 점점 커져 갔고 유람선 및 레저활동은 모조리 금지됐다.

안전을 위해서는 한강 다리의 출입도 통제해야 했으나 현실적으로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어서, 수많은 시민들이 두려워하며 한강 다리들을 이용해야 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한국 땅을 밟았다.

“이곳이 퍼펙트 테이머의 고향, 한국인가.”

그의 이름은 테르서박.

4대 위에 한국인의 피가 섞여 있기는 했지만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잘 몰랐다.

타 맵에 비해 상당히 빠른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건 테르서박의 관심 분야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최근 그는 한국맵에 큰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김철수가 뇌룡 테이밍에 성공하면서부터였다.

‘사람들이 한국맵에 무언가 특별한 힘이 있다고 할 때, 나는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얘기는 달라졌다.

한국맵에 무엇이 있길래 김철수와 같은 자가 나타날 수 있었는가.

어떻게 스트리머가 뇌룡 같은 신수를 테이밍할 수 있었는가.

‘얼마나 교감에 진심이길래!’

그는 김철수를 만나서 대화를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어떻게 하면 김철수를 만날 수 있지?’

그는 김철수와 대등한 입장에서, 대등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무시는 당하지 않을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미국맵, 테이머 계열 랭킹 1위라는 것은 충분한 자격이 되지 못했다.

미국맵의 도술가 계열 랭킹 1위 올리베른과 스트리머 계열 랭킹 1위 에건 폴조차도 김철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삼키는 민어]라는 것이 한국맵의 주요 이슈라.’

한국의 수많은 원정대가 삼키는 민어를 사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류의 재앙이라면 자신 있는 편이었다.

그 또한 마물에 의한 피해를 많이 막아냈다.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을 정도였다.

‘물고기 형태의 마물은 보통 지능이 낮기 때문에 더 쉬운 부분도 있어.’

삼키는 민어 시나리오를 잘 해결하고 나면 김철수와 독대하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격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래. [삼키는 민어] 시나리오에 참여한다.’

테르서박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