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71화
키하엘은 내게 몇 가지 정보들을 전해주었다.
‘삼키는 민어’ 시나리오는 한국맵 자력으로는 클리어하지 못했던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
당시 우리 국정원팀도 동원되었으나 실패했었다.
‘결국 테르서박이 도착하고 나서야 해결됐었지.’
미국 서버 테이머 계열 랭킹 1위, 뇌룡의 원래 주인인 테르서박이 한국에 오게 되면서 ‘삼키는 민어’ 시나리오는 클리어됐었다.
‘이건 무조건 해야지.’
과거의 나는 해내지 못했던 걸, 지금의 내가 해낸다는 건 큰 의미가 있으니까.
그런 기회가 주어져서 설레기 시작했다.
“너 왜 이렇게 히죽거리냐?”
“재미있을 거 같아서.”
“미친놈이.”
키하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같이 비교적 평범한 사람을 보고 미친놈이라고 하는 걸 보면, 진짜 미친놈을 별로 못 만나본 모양이다.
“보상을 듣지도 않고도 그렇게 좋아한다고?”
“좋은 거 나오겠지.”
사실 보상이 뭐가 나오는지도 알고 있다.
생각해 보니 지금 이 시점에서 내게 꼭 필요한 보상이기는 했으나 일단 보상에는 포커스를 맞추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이제 스트리머고 보상은 좋은 방송에 대한 결과물이지 목표물이 아니니까.
그리고 며칠 뒤.
뉴스 속보가 전해졌다.
-한강 유람선, 정체불명의 마물에게 집어삼켜져.
한강에 정체불명의 물고기가 나타났다.
물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그것의 입은 기이할 정도로 크게 벌어져, 한입에 유람선을 꿀꺽 삼켜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수호수의 위대한 권능도 물까지는 닿지 않아.
또 몇몇은 나를 욕하기도 했다.
수호수의 권역을 일부러 줄여서 한강을 안전하지 못한 곳으로 만들었다나 뭐라나.
공무원인 시절부터 하도 많은 음해와 공격을 받았던지라 꽤 익숙했다.
-갑자기 사라진 ‘삼키는 민어’.
-그 거대한 물고기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현재 기술로는 탐지 자체가 불가능했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삼키는 민어’는 더욱 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새벽,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삼키는 민어가 청담대교의 기둥 몇 개를 물어뜯어 청담대교 일부를 붕괴시켰다.
거기서도 꽤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교통은 마비되었고 뉴스에서는 연일 ‘삼키는 민어’에 대해 떠들었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삼키는 민어’를 찾아내려 했으나 삼키는 민어는 한강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여전히 몇몇은 헛소리를 해댔다.
-김철수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돈 되는 콘텐츠가 아니면 하지 않는 비겁한 스트리머.
나는 이제 공무원이 아닌데 왜 저렇게 나를 물어뜯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저렇게 어그로를 끌어주면 또 그만큼 내 팬도 많이 생기니까 긍정적인 영향도 꽤 있었다.
-김철수한테 돈 줬음?
-김철수한테 평화 맡겨놓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더니 딱 그 짝이누 ㅉㅉㅉ
구독자 수는 이제 3억 6천만에 달한다.
3억 5천만에서 잠깐 정체되나 싶었는데 나를 욕하는 애들이 많아지면서 천만이나 훅 올랐다.
어지간한 헛소리는 오히려 나한테 유리한 거 같다.
노이즈 마케팅 같은 건가.
‘근데 이건 좀 선 넘었지?’
나한테 내용증명이 하나 도착했다.
노원구와 일대 건물주들로부터 전달된 내용증명이었다.
연희함락전 당시, 내가 타 서버의 플레이어들과 막아내면서 노원구 일대를 파괴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이었다.
‘아, 개빡치네.’
뭐랄까 이건 일종의 PTSD였다.
이런 종류의 공격은 공무원이었던 나를 정말 극심하게 괴롭혔던 것이었다.
‘또 나한테 물어내라고?’
이런 종류의 민원이 들어오면 우린 죄인처럼 가만히 있어야 했다.
돈을 물어주네 마네, 좀 더 현장에서 조심스레 행동하라느니 어쨌다느니.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열불이 터진다.
물에서 구해주면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애들이 별로 없을 거 같지만 의외로 굉장히 많다.
‘이 와중에도 엘튜브각을 뽑아낼 수 있어야 진짜 스트리머라고 할 수 있는데…….’
회귀 전, 이런 일이 종종 있었는데 대부분 왕유미와 안지원 씨가 도맡아서 처리해 줬었다.
‘나 혼자 해결하려니 짜증 나네.’
역시 이런 일은 그들과 상의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았다.
* * *
왕유미는 빨대로 초코우유를 쪽쪽 빨아 마시고서는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싹 쓸어버리면 좋겠어요. 감히 왕의 권위에 도전을 해?”
왕유미와 함께 자리한 안지원 씨는 별다른 말을 보태지 않았다.
짧은 스포츠 머리에 안경을 쓴 그는 과묵하게 무언가를 필기하기만 했다.
회귀 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과묵해진 거 같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그 시부렁 탱탱 녀석들은 영국이 겪었던 치욕적인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나 봐요.”
스칸노르비아 전사들의 침공 당시, 영국 서버는 무력하게 무너졌었다.
수많은 영국인들이 노예로 전락했고 비인륜적이고 끔찍한 일들이 많이도 벌어졌었다.
“그렇지만 모두를 작살 내는 건 스트리머 김철수에게는 별로 좋지 않겠죠.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이럴 때는 머리를 쳐야 한다고 봐요.”
“머리를?”
“분명히 주동자들이 있을 거예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흑흑연합을 동원하면 금방 찾아낼 수 있겠죠? 그들에게 단호하고 엄격한 형벌을 내려야 할 것 같아요. 왕에게 도전한 대가를 확실히 받아내야죠. 그와 관련한 연출이나 서사는 저! 이야기꾼 왕유미한테 맡겨주시고용!”
와 개든든하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고 있는 다른 것들이 조금 있는데 그건 말씀드리지 않을게요. 김철수 님도 몰라야 방송각이 잘 살 거 같거든요.”
나보다 방송에 더 치열한 왕유미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는 천사소녀 송하영에게 부탁했다.
“고통 방망이요? 그거 요즘 열리는 경매 가면 구할 수 있을 텐데? 아니면 네르버에 아이템 장터 같은 데서 봐도 되고. 그렇게까지 희귀템은 아니잖아요.”
“최근에 이현성이 먹었잖아.”
나약한 항문검 이현성.
최근 스칸노르비아 서버에서 약간이지만 활약하면서 ‘고통 방망이’를 획득했다.
“……아무튼 이현성 괴롭히는 거 좋아한다니까.”
요즘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면서 은근히 말을 놓는데 그냥 그러려니 했다.
일만 잘하면 되니까.
결국 송하영은 이현성으로부터 고통 방망이를 훔쳐 왔다.
“와, 걸릴까 봐 조마조마했네. 근데 생각보다 쉽네요?”
“메롱 표식은 남겼지?”
“당연하지.”
역시 이현성은 나약했다.
송하영이 이렇게까지 쉽게 아이템을 훔쳐 올 줄이야.
그리고 1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현성에게 연락이 왔다.
-“네가 시킨 거냐? 천사소녀의 표식이 있던데.”
-“고통 방망이?”
-“그래. 고통 방망이! 그걸 왜 훔쳐 가!”
회귀 전에도 그랬지만 이현성은 사람이 조금 더 히스테릭해진 것 같다.
-“네가 왜 성질을 내?”
-“뭐?”
-“도둑 플레이어로부터 자기 것을 지키지도 못한 한심하고 나약한 플레이어 주제에.”
-“…….”
이현성은 한 번씩 팩트로 때려줘야 제맛이다.
안 그러면 자꾸 자기가 제일 강한 줄 아니까.
물론 회귀 후에 그런 모습은 못 봤지만, 아무튼 본성이 그런 놈이다.
-“오죽하면 나약한 항문검이라 불리겠냐?”
-“그건 웬 미친놈이 돈지랄……!”
-“미친놈? 돈지랄?”
-“후우, 아니다. 됐다.”
역시 성질이 나빠졌다.
자기가 ‘나약한 항문검’이란 이명을 얻었으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성찰하고 스스로를 단련해야 할 텐데.
저렇게 히스테리만 부려대니 발전이 없고 약하지.
내가 아무리 큰돈을 뿌려대도 사람들이 항문검을 강하다고 생각하면 ‘나약한’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거다.
수많은 이들이 ‘나약한 항문검’이라 부르는 걸 보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나약아.”
-“…….”
-“네 것은 네가 지켜야지. 네가 빼앗긴 게 검이었어도 그렇게 한가하게 전화나 하고 있을래?”
-“그, 그건……!”
-“도둑 플레이어가 정정당당하게 훔친 걸 왜 이렇게 열을 내? 그러니까 나약하단 소리나 듣지.”
어느새 전화가 끊어져 있었다.
그러게 회귀 전에 나한테 왜 까불었냐?
이게 다 네 녀석의 업보다.
아, 오늘 참 청량한 날이네.
* * *
밤 11시.
차진혁과 대화를 나눈 뒤, 방으로 돌아온 차진솔은 헤실거리며 웃었다.
침대에 누운 그녀는 이불로 얼굴을 가리고 즐거워했다.
“오빠가 나한테도 부탁을 했어.”
차진혁은 너무 독보적인 플레이어였다.
그의 방송에 출연하고 싶어 하는 플레이어들은 이미 부지기수였다.
지금의 차진혁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위치이지, 도움을 받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차진혁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도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자유의 성녀가 이끄는 힐러들을 규합해서 콘텐츠 진행을 도와달라는 얘기였다.
차진혁의 방송에 노출되고 싶은 힐러들은 널리고 널렸다.
그녀는 추리고 추린 힐러들 30여 명을 데리고 차진혁과 합류했다.
그리고 이내, 김잘알TV와 한마갤이 불타올랐다.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폭행 개찰지눜ㅋㅋㅋㅋㅋ
-이거 19금 걸어야 하는 거 아니냨ㅋㅋㅋ
-어우, 너무 잔인해서 감사합니다.
영상 속 차진혁이 말했다.
“망치를 휘두르다 보니 깨달았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고통 방망이’로 한 남자의 머리를 때렸다.
고통 방망이는 데미지는 최소화하면서 고통은 최대화하는 형태의 기형적인 아이템이었다.
“저는 이런 둔기의 손맛도 제법 좋아했네요.”
퍽! 퍽!
차진솔이 이끄는 힐러군단은 힐을 주기 바빴다.
‘무, 무슨 딜량이……!’
‘죽겠다. 빨리 힐 넣어.’
-???: 룰 브레이커를 망치라 부르는 미친놈이 존재한다?
-근데 저거 고통 방망이 맞긴 함?ㅋㅋㅋ딜 미쳤눜ㅋㅋ
-와 보기만 해도 아프닼ㅋㅋ
-근데 놀라운 사실은 딜러 한 명에 힐러 30명임ㅋㅋㅋㅋ 근데 힐러들이 먼저 지침.
김철수에게 당하고 있던 몇몇은 악을 써댔다.
“차라리 죽여라!”
“이 악마 같은 놈아!”
차진혁은 딱히 동요하지 않고 담담히 말을 이었다.
“저렇게 대들 수 있는 건 왜일까요? 폭력에 굴복하지 않아서일까요? 아닙니다. 폭력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힐러들이 모두 녹초가 되었을 무렵.
김철수의 말은 결국 사실이 되었다.
“사, 살려만 주세요.”
“죄, 죄송합니다. 욕심에 눈이 멀어서 그만, 흑흑흑.”
차진혁은 또 말했다.
“저렇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아직 덜 맞았다는 뜻이겠죠?”
으아아악!
차진혁에게 폭행당한 사람의 숫자는 약 10여 명.
00시민연대의 대표와 노원구 건물주 연합의 대표와 부대표 등이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힐러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을 무렵.
노원 건물주 연합의 연합장 배덕수가 두 손을 싹싹 빌었다.
‘말하면 안 돼. 말하면 더 맞을 거야.’
생전 처음 느껴보는 거대한 공포가 배덕수의 뇌를 잠식했다.
“야, 말 안 하냐?”
크아아아아아악!
배덕수는 몇 번이나 실신했다가 다시 깨어났다.
그리고 또 빌었다.
“다, 다 말하겠습니다.”
그 말에 차진혁은 휘두르던 몽둥이를 멈췄다.
‘어?’
왕유미가 얘기했었다.
분이 풀릴 때까지 때려서, 자비롭지 못한 왕의 모습을 보여주라고.
그렇지만 뭔가를 다 말하겠다고 싹싹 빌면 봐주라고 했다.
“네가 다 말할 줄 어떻게 알고.”
조금만 더 패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