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67화
나는 인상을 찡그린 채 화면을 살펴보았다.
‘김두환?’
태권V 김두환.
그는 양 팔목이 쇠사슬에 결박된 채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뭔데 이건? 뭐 영화 찍어?”
“영화 아니고 찐이야.”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종의 퍼포먼스겠지.”
“아니라니까!”
김두환은 일전에 내게 크게 깨지고나서 깨달음을 얻었는지 퍼포먼스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갈고닦고 있었다.
나는 그게 무척 흡족했었다.
김두환은 회귀 전부터 내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퍼포먼스형 플레이어였으니까.
태권도와 플레이를 접목하여 화려하고 아름다운 기술을 만들어 선보여준, 나와는 다른 길의 정점에 서 있던 내 동경의 대상.
잿빛 벚꽃의 화랑이라는 제법 멋들어진 이명을 가진 플레이어였다.
“퍼포먼스가 아니면 이게 뭔데?”
김두환뿐만 아니라 그 동료들이 만신창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잠깐만 재생지점이 어디지, 아, 여기다. 봐봐.”
화면 속에서 붉은 턱수염의 올리베른이 킬킬대며 말하고 있었다.
-“보아라. 이게 가짜 무술의 진짜 모습이다. 이런 놈들이야말로 HARD 운동을 지지하는 머저리들보다 더 질이 나쁜 쓰레기들이지.”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HARD 운동이랑 퍼포먼스형 플레이를 비교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이 쓰레기들의 화형식은 내일 오후 12시다.”
전투형 플레이어가 퍼포먼스형 플레이어를 처형한다고?
무슨 권리로?
“태권V는 검은가시 연합이랑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거 알지?”
“알아. 곽도형이랑 둘도 없는 친구잖아.”
“그리고 검은가시 연합은 우리랑도 아주 밀접하고. 오빠 휘하의 군단이니까.”
“내 휘하의 군단?”
난 그런 걸 만든 적이 없는데?
“응. K-군단 말이야. 오빠는 만들지 않았지만 아무튼 다들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우리들 말이야.”
차진솔은 딱히 날 이해시킬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냥 K-군단이 설립되었으니 잠자코 수장 자리를 받아들이라는 것 같았다.
나는 군주도 아니고, 군주로서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데 저러니까 좀 민망하네.
나중에 한세린 꼬셔서 대장 자리에 앉히든지 해야 할 거 같다.
“그래서 우리는 태권V를 구하러 갈 거야.”
“근데?”
“오빠가 도와주면 좋겠다는 거지.”
“그러니까 왜 김평범으로 도와달라는 건데?”
“그, 그건 주말이니까. 오빠는 주말에는 김평범으로만 플레이하잖아. 그쪽을 더 좋아하기도 하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가 날 모르네.”
사실 나도 최근에 깨달은 거니까 얘가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김평범은 은퇴했어.”
“은퇴를 했다고? 김평범이?”
“어. 김평범은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거든.”
* * *
차진솔은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
내가 비전투형 플레이어를 구하러가는 것을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짓이라고 여길 줄 알았다나 뭐라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태권V인데.’
뭇 사내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궈주는 플레이어인데.
내가 할 수 없는 화려함을 선보이는 훌륭한 재목인데 여기서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올리베른 이 새끼, 잘 걸렸다.’
올리베른은 회귀 전에도 빌런과 영웅 그 사이 즈음 어딘가에 위치한 놈이었다.
대놓고 빌런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데, 또 영웅이라 하기에는 또라이같은 짓을 너무 많이 한다.
그래서 광전사라 불린다.
모든 전투계열 플레이어가 그렇긴 하지만 얘는 유독 강함에 집착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강한 플레이어와 결투를 즐기는 것이 취미였다.
‘상대를 박살 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놈.’
마치 원한이 있는 것처럼 상대를 완전히 부숴버리는 놈이었다.
‘나랑도 몇 번 싸울 뻔했었는데.’
나도 사실 올리베른과 싸우고 싶었는데 상부에서 못하게 막았다.
그때마다 올리베른은 나를 비웃었었다.
-“한국의 검왕은 겁쟁이에 애송이로군.”
아 그때만 생각하면 개빡치네.
그때는 내가 공무원이었어서 내 마음대로 걔랑 싸울 수 없었다.
-“나는 언제든 준비되어 있다. 이 왕좌에서 네 가소로운 검을 기다리마, 차진혁.”
올리베른은 여러 차례 나를 도발했고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무서워서 꼬리를 말고 도망친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네르버 등의 시스템 커뮤니티에서도 미국의 광전사를 한국의 검왕보다 더 높이 치기 시작했다.
내가 어지간하면 커뮤니티 반응 기억을 잘 못하는데 그때의 반응들은 생생히 기억이 난다.
-차진혁쯤 되는 최상위급 플레이어가 결투 하나 자기 마음대로 못하겠냐?
맞다, 못한다.
나는 더욱 강해지기 위해 국가 차원의 지원이 절실했었고 결국 국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그냥 차진혁이 무서워서 침묵하는 거짘ㅋㅋㅋ
-검왕 쫄?ㅋㅋ
그때의 회포를 이제는 풀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비전투형 플레이어잖아?”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비전투형 플레이어인 내가, 전투형 플레이어인 광전사를 이기면?”
그러면 전투형 플레이어인 과거의 나는 당연히 광전사보다 강하다는 뜻 아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논리에 구멍이 하나도 없는 완벽한 명제였다.
* * *
태평양, 괌에 위치한 엔더슨 공군기지.
미 우주군 우주 작전사령부에 일대 소란이 일었다.
“무언가 빠르게 접근 중입니다.”
미국의 최신 레이더 기술로도 정확히 알아낼 수 없는 미지의 비행물체였다.
레이더에 무언가가 잡히는가 싶더니, 이내 모든 레이더 장비가 먹통이 되었다.
“무슨 일이냐!”
기지 전체에 비상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정확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았으나 EMP 공격의 일종이라 짐작되었다.
미 공군은 비상경보를 발령하고 즉각 전투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보는 허무하리만치 어이없게 풀리고 말았다.
사령관 레오폴드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러니까, 김철수가 날아간 거라고? 스텔스 전투기가 아니라?”
“……예, 그렇습니다.”
“우리 전략자산으로는 파악이 불가능했고, 결국 김철수의 방송으로 공개된 거라고? 그냥 날아서 태평양 상공을 통과했다고?”
“그냥 난 것은 아니고, 뇌룡이라는 신비로운 탈 것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아무튼 우리 군이 지키고 있는 상공을 날아서 통과했다는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미쳐 버리겠군.”
하늘을 수호하여야만 하는 책임이 있는 레오폴드 입장에서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한편, 본의 아니게 앤더슨 공군기지를 혼란에 빠뜨린 김철수는 미국 본토에 발을 들였다.
“비행기보다 훨씬 빠르고 안락하지?”
“우웨에에엑!”
목재현은 해변가에 내려 우웨에엑! 하고 토를 하고 말았다.
차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연약해서 KSM 연합을 어떻게 이끌래?”
목재현은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 동안이나 속을 게워냈다.
“차진솔, 넌 괜찮지?”
“괜찮지는 않은데…… 버틸 만해.”
차진솔은 상태가 좀 나았는데 마음은 상당히 불편했다.
‘멀미도 치유할 수 있어야 진정한 힐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만약 오빠였다면?
오빠의 기준이라면 멀미도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구나.’
그녀는 멀미를 치료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에 반성하며 다시금 뇌룡에 올라탔다.
그 사이, 차진혁은 방송을 진행했다.
“올리베른.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하냐?”
이제야 속이 시원해졌다.
“네가 그렇게 강하다면 비전투 플레이어인 나와 한 번 자웅을 겨뤄보자.”
차진혁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얼마나 인간이 찌질하면 퍼포먼스형 플레이어를 데려다가 그런 짓을 하고 있냐? 전투계열 플레이어로서 부끄럽지도 않냐?”
방송이 송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건 폴이 방송을 시작했다.
광전사 올리베른과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었다.
-“김철수, 네 저급한 도발은 잘 보았다.”
올리베른은 한참 동안 껄껄대며 웃었다.
-“비전투 플레이어가 자신의 본분을 잊고 나대다가 우연찮게 주목을 받은 놈이라지?”
에건 폴의 방송에 등장한 올리베른은 꽤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런 해괴망측한 플레이로 감히 나를 기만해?”
그는 스트리머의 플레이들은 대부분 연출된 것이라고 주장했고 자신은 그런 가짜에 속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 같은 진짜배기는 가짜를 혐오한다고도 말했다.
-“운 좋게 얻은 수호수 덕택에 비교적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는 가짜가 날 도발한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올리베른은 김철수를 일컬어 거품이라 표현했다.
서울에서는 수호수의 도움을 받고 있고, 서버 이동 시에는 서버 이전 특전을 받아서 강해지는 거라고 조롱했다.
-“행운은 지속되지 않는다, 애송이.”
You are a bubble.
그것은 순식간에 하나의 밈이 되었다.
-“나는 그 거품을 걷어낼 왕이지.”
* * *
혹시 몰라서 차진솔이랑 목재현을 데려오기는 했는데 일이 잘 풀렸다.
광전사 올리베른은 나와 일대일 결투를 하겠다고 말했고, 우리는 미국 서버, 텍사스 주의 인적이 거의 없는 평야에서 만남을 갖기로 했다.
“오빠. 근데 일대일 전투가 진짜 괜찮겠어?”
얘 봐라?
내 자존심을 긁네?
“너도 내가 수호수빨 받은 거품 플레이어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 아니! 그럴 리가 있겠어? 그냥 나는, 오빠가 걱정되니까 그렇지.”
그나마 목재현이 날 좀 더 잘 파악했다.
“누나. 걱정할 사람이 따로 있지. 설마 진혁이 형을 걱정하는 거야?”
“플레이어 김철수는 하나도 걱정 안 해.”
“그럼?”
“오빠 놈 차진혁은 걱정이 된단 말이야.”
얘가 낯간지러운 말이 좀 늘었네.
나는 콧등을 슥슥 매만졌다.
좀 민망하기는 한데 저 말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아무튼 나는 올리베른이 말한 장소로 향했다.
‘흐흐흐.’
어느새 구독자 숫자는 3억 5천만이 되었다.
기하급수적으로 구독자 숫자가 늘고 있었고, 실시간 시청자 숫자는 무려 100만 명에 달했다.
생각보다 이 콘텐츠가 꽤 관심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얼마 후, 하늘에 와이번 떼가 나타났다.
마치 독수리와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날아오고 있었는데 모두 사람에게 길들여진 와이번들이었다.
내가 다급히 말했다.
“아탄나. 이제 육아에 전념하도록 해. 고마웠어.”
아, 뇌룡이랑 같이 있어야 좀 더 멋있는 그림이 나올 것 같았는데 저 멍청이들은 왜 와이번을 타고 온단 말인가.
와이번은 뇌룡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는 개체들이고, 뇌룡 앞에서는 날개도 제대로 못 펴는 놈들이다.
내가 뇌룡을 역소환시키지 않았더라면 쟤네는 아마 하늘에서 떨어졌겠지.
‘저런 허접한 모습은 송출하지 말아야겠다.’
방송 송출을 일시적으로 멈췄다.
적이 강해야 긴장감도 높아지는 것 아니겠는가.
저런 허술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올리베른은 내 의도를 오해한 모양이었다.
-“네가 자랑하는 그 뇌룡도 사십의 강철 와이번 부대 앞에서는 빛을 잃는 모양이군. 공격할 수 없는 탈 것은 반쪽짜리에 불과하지.”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와이번 40마리가 아니라 4억 마리가 와도 뇌룡 앞에서는 깨갱대며 찌그러질 텐데.
이내 와이번 부대가 땅에 내려섰다.
‘테르서 박?’
어쩐지 저렇게 많은 와이번들을 한 번에 통솔할 수 있는 놈이 누가 있나했더니, 테르서박이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어벤저스사단에 속해 있다나 뭐라나.
아무튼 가장 덩치가 큰 와이번에서 광전사 올리베른이 뛰어내렸다.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올리베른이 착지했다.
오랜만에 보는 놈인데 여전히 덩치가 컸고, 내 기억 속의 올리베른보다는 훨씬 젊었다.
놈이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너의 왕께서 강림하였다.”
사실 찌를 틈이 많이 보였는데 일부러 안 찔렀다.
이 과정에는, 내 검술가로서의 본능을 억누를 초인적인 인내심이 필요했다.
기껏 미국까지 날아왔는데 최소한의 분량은 뽑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근데 얘가 이렇게까지 허점이 많은 애였나?’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생각해 보니 좀 석연치 않은 것들이 몇 개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