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66화
오수정크리스탈, 본명 오수정.
그는 오염된 신비 ‘광적인 집착’에 홀려 차진혁을 공격했던 날 이후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서지 못했다.
‘차라리 죽고 싶어.’
괴물처럼 변해서 차진혁을 먹고 싶다느니 어쨌다느니 중얼거리던 기억들이 생생했다.
아무리 오염된 신비에 잠식되었다지만 그녀는 도저히 얼굴을 들고 나다닐 수가 없었다.
‘사과라도 해야 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김철수가 진심을 다해 에건 폴을 일깨우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게 되었다.
[“방송이 왜 이렇게 허접하냐고? 이런 콘텐츠로 이거밖에 못 해? 네가 그러고도 미국 1위야? 텐션은 왜 그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방송을 진행하는 거야? 미쳤어?”]
[“이러고도 네가 미국맵 1등이냐?”]
오수정은 나지막이 “아……” 하고 감탄성을 내뱉었다.
김철수의 목소리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결국 김철수는 에건 폴을 살려주었다.
‘에건 폴은 독에 당했었구나. 그래서 용서받은 거고.’
거기서 오수정은 깨달았다.
오염된 신비에 잠식되었거나 독에 당하는 등, 참작해 줄 만한 어떤 사유가 있다면 김철수는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이구나.
에건 폴을 훈계하는 김철수의 목소리가 자신에게 향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김철수는 진심으로 에건 폴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는 거야. 그래서 저렇게 단호하게 혼을 내는 거겠지.’
자신이 혼난 게 아닌데도 자신이 혼난 것만 같았다.
‘정신 차려야 해. 왜 나를 굳이 살려줬겠어?’
김철수의 능력이라면 자신을 죽이고도 남았을 텐데 굳이 살려줬다.
분명 김철수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살라고.
보란 듯이 멋지게 살아내라는 교훈을 던져주는 것만 같았다.
‘일어서자.’
맞서자, 세상에.
‘나를 살려준 것이 헛되지 않도록 무언가를 해내자.’
김철수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았다.
아주 오랜 시간, 그녀 안의 소우주를 탐색하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했다.
무엇인가가 손에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보일 듯, 보이지 않을 듯,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본능에 맡겼다.
‘나는 무언가를 찾아야 해.’
이 기분은 예전에도 느낀 적이 있었다.
신비 ‘광적인 집착’을 얻었을 때 이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내게는 이렇다 할 재주가 없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신비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신비가 자신을 부르는 느낌이었고, 신비를 잘 찾아낼 수 있다는 기묘한 자신감 같은 것을 느꼈었다.
‘신비를 찾듯, 내 안의 무언가를 찾는 거야.’
소우주 안, 반짝이는 무언가에 손을 대었을 때.
그녀에게 각성룸의 각성 NPC가 모습을 드러냈다.
“특별한 조건들을 만족하였습니다.”
네미시스 함포 신유리와 마찬가지로 오수정에게도 이레귤러 각성이 진행되었다.
“당신은 특별한 직업, ‘신비사냥꾼’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부디 당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를.”
* * *
차진혁은 귀를 의심했다.
“신비사냥꾼으로 각성했다고?”
“네. 맞아요. 김철수 님이 제게 깨달음을 주셨어요.”
신비사냥꾼은 9성으로 분류되는 특별한 직업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길잡이 계열의 플레이어였는데, 사실 워낙 희귀해서 랭킹보드에 따로 분류란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였다.
신비를 획득하는 데에는 이만한 직업이 없었다.
“저도 몰랐는데 저한테는 원래 신비를 찾을 수 있는 재능이 내재되어 있었나 봐요. 명상을 했고, 어떻게 하다 보니 신비사냥꾼이 되었어요.”
“음 어쩐지. 그 실력에 신비를 가지고 있더라.”
회귀 전에도, 빌런치고 너무 약해서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오수정은 차진혁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정말 죄송해요.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뭐, 괜찮아. 조회수 잘 나왔거든.”
그 말에, 비교적 상식적인 사람인 오수정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를 그렇게 위협적으로 공격했지만 조회수가 잘 나왔으니 괜찮다?
‘겨우 그런 게 중요할 리가 없지. 내 마음 편하게 해주려는 것이 틀림없어.’
확실히 마음의 그릇 자체가 다른 사람이었다.
어쨌든 진심을 담아 사과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고서 고개를 들어 차진혁을 보았는데, 그녀는 한동안 멍하니 차진혁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진짜 잘생겼다.’
정령왕의 딸인 엘리네스가 차진혁의 얼굴을 보자마자 안겼던 것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사건이었다.
“왜?”
“아…… 죄송해요. 너무 잘생기셔서 저도 모르게.”
차진혁은 오수정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실제로 그는 자기가 그렇게까지 잘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니까.
그의 기준은 늘 그렇듯 미왕 강은우에 맞춰져 있었다.
“은혜를 갚고 싶어요.”
“그래?”
내가 뭐 그렇게 큰 은혜를 입힌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차진혁은 사실 오수정과의 사건에 그렇게 큰 의의를 두지는 않았다.
그냥 회귀 전에 빌런인 줄 알고 냅다 죽였던 것이 신경 쓰여서 안 죽였을 뿐인데 그게 이렇게 호재가 되어 돌아올 줄 몰랐을 뿐.
“강미나랑 봉킹 알지?”
“물론이죠.”
“내가 소개해 줄 테니까 거기 합류해.”
“네?”
“싫어?”
“아, 아뇨! 그냥 좀 당황스러워서요. 그분들은 스트리머 계열 랭킹 2위랑 3위시잖아요.”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 랭킹이 한 계단씩 하락했나?
랭킹보드를 확인해 보니 강미나가 1위, 봉킹이 2위였다.
‘아무래도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이군.’
어차피 본인 랭킹도 아니고 딱히 중요한 건 아니어서 굳이 잘못을 짚지 않았다.
“혼자서는 한계가 있어. 원래 플레이는 혼자 못해. 그러니까 가서 도움 주고, 도움받아. 걔네가 지금 신비 찾는다고 혈안이 되어 있거든.”
플레이는…… 혼자 못한다구요?
방금 전에 봤던 영상이 개박살, 솔로잉 콘텐츠였는데.
오수정은 그 말을 겨우 참았다.
순간, 오수정은 꺄아아악! 비명을 질렀다.
천장에서 귀신같은 것이 쑥 튀어나와 김철수를 찔렀기 때문이었다.
“아, 찌른 줄 알았는데.”
“마지막이라서 찔려준 척했어.”
검은나비 케일린이었다.
칠종칠금의 계약을 맺은 그녀는 마지막 7번째 암살을 시도했고, 결국 실패했다.
케일린의 단도를 손바닥으로 잡아낸 차진혁의 손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케일린이 단도를 갈무리하고서 말했다.
“그래도 설레고 즐거웠다. 어벤저스 사단에 사표 내고 왔어. 이제 네 부하가 될게.”
오수정 입장에서는 너무 황당한 상황이었으나 차진혁과 케일린은 평온했다.
차진혁은 티슈를 몇 장 뽑아서 손바닥의 피를 닦아냈다.
“난 군주가 아닌데 무슨 부하냐? 나 말고 검은가시 연합의 곽도형 알지?”
“살모사?”
“그래. 걔 밑에서 일해. 내가 호출하면 바로바로 달려오고.”
“끄응.”
케일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어벤저스 사단에서는 도태되어 이름이 사라졌을 케일린이 검은가시 연합에 합류하게 된 순간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오수정이 차진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 괜찮으신 거죠?”
“야, 뭐하냐?”
케일린이 오수정의 뒷덜미를 휙! 낚아챘다.
오수정은 종이인형처럼 뒤로 날아 벽에 부딪쳤다.
차진혁이 인상을 찡그렸다.
“비전투 계열 플레이어야. 조심히 다뤄.”
“미안, 너도 비전투다 보니까 자꾸 전투계열과 비전투계열의 경계가 없어지네.”
케일린은 오수정에게 가까이 다가가 일으켜주었다.
“극독 바른 단검이었어. 저 피가 당신한테 튀면 당신은 3초 안에 죽을 거야. 그래서 잡아당긴 거고. 악감정은 없었으니 오해는 하지 말아줬으면 해.”
“……네.”
자세히 보니 피가 떨어진 테이블에 숭숭 구멍이 나 있었다.
‘저걸로 사람을 찔러? 그리고 일부러 그걸 찔려줘? 찔린 사람은 태연해?’
오수정은 왠지 모르게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한 달이 흘렀다.
* * *
-“고맙군.”
뇌룡은 내게 무척 고마워했다.
신비사냥꾼인 오식욕의 활약이 꽤 대단한 것 같았다.
오식욕은 강미나, 봉킹과 함께 팀을 꾸려서 꽤 많은 신비를 찾아냈는데 플레이어에게 딱히 유용하지 않은 신비들은 오식욕이 챙겨서 뇌룡에게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아룡인 아론에게 질 좋은 먹이가 되었고, 뇌룡은 차진혁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길들인 대상과의 우호도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길들인 대상의 제약이 일부 해제됩니다.]
나는 약간 인상을 찡그렸다.
‘먼저 공격한 대상에 한하여 뇌룡이 반격을 가할 수 있다고?’
이건 별로 기쁘지 않았다.
지금 시점 지구 기준으로는 거의 치트키에 가까운 반격일 테니까.
뭐 거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제일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얘가 나보다 좀 더 멋있던데.’
마음을 여유롭게 먹고는 있다지만 그래도 경계할 건 경계해야 했다.
내 방송의 주인공은 나여야 하고, 역시 제일 멋있는 건 내가 해야 한다.
그런데 등장만으로도 최고시청률을 달성한 뇌룡이 심지어 반격까지 한다?
이건 선 넘은 거지.
“서로 도움이 되면 좋은 거지. 아론은 잘 크고 있지?”
-“여러모로 신경 써준 덕분에.”
정신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뇌룡의 고마움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탈 것으로 이용하는데 훨씬 편해질 것 같다.
‘운이 좋았네.’
수호수가 자꾸 암컷한테 범해졌다며 징징대는 것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것 말고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나는 이제 레벨 150을 달성했다.
한마갤에서도 이제는 정말로 내 한계에 봉착했다느니, 스트리머로서는 더 이상 강해질 수 없다느니 하는 말들이 나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확실히 체감하고 있었다.
‘아직 은퇴 안 해도 돼.’
나는 앞으로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
막상 레벨 150이 되니 그것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다만…… 이제부터는 슬슬 각성자 사냥꾼들도 나를 눈독 들이기 시작하겠지.’
스트리머 보호조약에 의해서 보호받기는 하겠지만, 그게 만능은 아니다.
‘어쩔 수 없다.’
솔직히 나도 이제 확실하게 말은 못 하겠는데, 그래도 은퇴 레벨을 조금 더 높였다.
레벨 200까지만 즐겨보기로 했다.
‘그러려면 더 강해져야겠다. 진짜 이건 어쩔 수가 없네.’
은퇴 레벨을 200으로 상향조정 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게다가 수호수가 있으니 내 가족들도 지구에서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지 않은가.
아, 참고로 수호수는 그날 이후로 쑥쑥 자라는 중이다.
뭐랄까, 빨리 성장해야겠다는 욕구가 느껴졌다.
역시 사람은(?) 위기를 겪어야 강해지는 법인 것 같다.
‘다음 콘텐츠는 뭐로 할까.’
당장 떠오르는 것들이 많기는 한데 무엇을 해야 시청자들이 가장 열광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언제 들어왔는지 차진솔이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오빠. 오늘 주말인데 김평범으로 플레이 안 해?”
“안 해.”
“왜!”
“그냥.”
그리고 요즘 부캐인 김평범으로 플레이하는 게 별로 재미가 없다.
이제는 검술가로서의 내 인생보다 스트리머로서의 내 인생이 훨씬 즐거워진 거 같다.
사람은 변한다더니 그 말이 정말이네.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레벨 150 되면 은퇴하기로 했거든.”
오, 그래. 김평범이 은퇴하면 되겠다.
김평범도 나니까 은퇴한 걸로 치면 되겠지.
자꾸 나와의 약속을 못 지켜서 조금 민망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겠네.
“김평범으로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되냐? 은퇴 기념 마지막 플레이하면 되잖아.”
“음.”
마지막 플레이도 나쁘지 않을 거 같고.
“뭔데 그래?”
“일단 이거부터 봐봐.”
차진솔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태평양 건너, 미국 서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광전사 올리베른?’
미국 도술가 계열 랭킹 1위, 광전사 올리베른과 연관된 내용이었다.
‘어, 잠깐만.’
나는 화면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