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65화
검은 나비 케일린은 의아했다.
‘왜 안 죽이지?’
케일린이 파악하고 있는 김철수라면 지금 당장 험프리 밀런을 죽이고도 남았다.
‘에이린도 죽였으면서.’
사실 에이린은 검은 나비 케일린의 암살대상 중 하나였다.
어벤저스 사단 차원에서 암살 명령이 떨어진 건 아니었고, 개인적인 이유였다.
HARD 운동의 계승자라면서 김철수의 잘못을 떠들고 다니는 걸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었다.
HARD 운동을 외칠 거면, 적어도 그렇게 플레이하지 않고 인류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대책은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케일린이 보기에 에이린은 말로만 떠들어대는 이상주의자였고, 장기적으로 본다면 지구의 해악이었다.
결국 그녀는 에이린을 쫓아 노원구로 이동했는데 이미 에이린은 사망한 상태였다.
옷조각 일부를 제외하면 에이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케일린은 확신했다.
‘거의 증발했어.’
케일린은 김철수에 대해 약간 오해했다.
‘인류 평화를 위해서 죽인 거야.’
케일린이 보는 김철수는 실제 김철수보다 조금 더 정의로웠고 인류를 위해 이바지하는 플레이어였다.
개미여왕과 맞서 싸웠던 것이 그랬고, 워프포탈의 이용제한을 없애버린 것이 그랬고, MK재단이 그랬다.
‘철저히 방송각을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인류를 위한 일을 하고 있지.’
그렇다면 지구의 평화를 크게 위협한 험프리 밀런은 죽이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왜 죽이지 않고 한가하게 인터뷰나 따고 있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뒷배에 대해 말을 한다면 목숨은 살려드리겠습니다, 험프리 밀런 씨.”
“…….”
험프리 밀런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몸담은 조직인 ‘블랙’이 비밀 음모 단체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여기서 블랙에 대해 말을 하는 건 영 모양새가 좋지 못했으니까.
“아, 어? 이런? 방송 송출 상태가 별로 안 좋군요?”
차진혁의 방송에 늘 집중하고 있는 이야기꾼 왕유미는 차진혁의 의도를 금방 깨달았다.
왕유미는 이야기꾼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진실의 방으로(독점)’를 사용합니다.]
스킬, ‘진실의 방으로’를 사용하면 이야기꾼은 이야기의 원 제공자(차진혁) 주변에 방해 전파를 송출할 수 있었다.
차진혁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비밀로 하고 싶을 때, 어떤 진실을 감춰야만 할 때, 이야기상 흐름을 끊어줘야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이야기꾼 전용 스킬이었다.
왕유미는 화면을 검은색으로 조정한 뒤 말했다.
“저도 방송 송출 상태가 별로 안 좋네용? 얼른 복구할게요, 쪼꼼만 기다려 주세여!”
그리고 비밀 메시지를 보냈다.
[“증거 안 남아요. 진실의 방, 해금해도 돼요!”]
* * *
차진혁의 방송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 험프리 밀런의 얼굴은 모자이크처리가 되어 있었다.
“지구의 평화를 위협한 반동분자이지만 그래도 초상권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한마갤 유저들은 의문을 표했다.
-갑자기?ㅋㅋㅋㅋ
-근데 왜 케첩을 모자이크한 거 같누?
-치열좌의 평화로운 인터뷰에는 따뜻한 피가 흐른다.
김잘알TV의 채팅창에 ‘ㅋㅋㅋ’가 넘쳐났다.
-ㅋㅋㅋㅋㅋㅋ초상권 핑계 지렸눜ㅋㅋㅋㅋㅋ
-그치, 말 안 들으면 패야지.
-치열좌의 주먹은 진실을 파헤친다.
처음에는 주먹으로 진실을 파헤쳤다는 여론이 대세였으나 어느덧 방송에 접속한 ‘돈벼락’의 채팅이 큰 화제가 되었다.
-돈벼락: 치열맨의 주먹은 가소롭다.
좀처럼 채팅을 잘 치지 않는 돈벼락의 등장에 시청자들이 열광했다.
[<고정댓글> 돈벼락 : 치열맨의 주먹은 가소롭다.]
┗돈벼락 up!
┗우와 벼락형이다!
┗벼락형 ㅎㅇㅎㅇ
-돈벼락: 그러나 망치는 가소롭지 않지.
[<고정댓글> 돈벼락 : 그러나 망치는 가소롭지 않지.]
┗ㅇㅇ? 망치요?
┗왘ㅋㅋㅋ 룰브레이커 말하는 듯ㅋㅋㅋ
┗그러네 ㅋㅋㅋ 치열좌의 주 무기는 주먹 아니고 망치였닼ㅋㅋㅋㅋ
┗평화로운 인터뷰에는 망치가 제격 >_<
과연 김철수가 주먹을 사용했는지 망치를 사용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으나 어쨌든 험프리 밀런에게는 뒷배가 있다는 사실까지는 알아냈다.
그리고 김철수는 약속대로 험프리 밀런을 놓아주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차진혁이 방송을 종료했다.
그제야 검은 나비 케일린이 물었다.
“김철수.”
“왜? 지금 찌르게?”
“아니!”
“그럼?”
마치 너와 내 사이에는 공격과 방어밖에 없지 않느냐고 묻는 듯한 차진혁의 눈빛에 케일린은 왠지 모를 섭섭함을 느꼈다.
“왜 안 죽인 건지 물어봐도 될까?”
지구 평화를 위한 어떤 원대한 계획이 있는 건가.
분명히 정의로운 어떤 의도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걔 뒤에 블랙이 있다는 거 못 들었어?”
“들었지. 근데 방송으로는 블랙이라는 이름 언급은 안 했잖아. 그리고 그거랑 안 죽이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차진혁은 ‘블랙’을 정확히 언급하지는 않았고 모종의 단체라고만 얘기했다.
“콘텐츠는 하나씩 까야 제맛이지. 이야기에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풀어버리면 재미없다고.”
“…….”
“이렇게 놔두면 블랙이 험프리 밀런과 접촉하지 않겠냐? 그 반대일 수도 있고.”
차진혁이 흐흐 웃었다.
그러면 그것만으로도 또 엘튜브각이 잡힐 거다.
“아니면 조금 더 강한 악역이 되어 나타날 수도 있겠지.”
“정의로운 의도가 있는 거 아니었어?”
“뭔 소리야?”
차진혁이 인상을 찡그렸다.
“스트리머가 엘튜브각 잡아야지 무슨 정의로운 의도를 생각해?”
“…….”
케일린은 입을 다물었다.
‘아니. 분명 정의로운 의도가 있겠지.’
생각해 보면 차진혁은 자기 입으로 정의롭고 옳은 일을 한다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생각보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인 것 같아.’
힐끗, 차진혁을 훔쳐보았다.
‘그런 걸 보면 좀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 * *
강미나와 봉킹은 테이블 사이에 마주 보고 앉았다.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
“그.”
봉킹이 손을 내밀었다.
“먼저 말해.”
“아니, 네가 먼저 말해.”
둘은 어색하게 서로 타이밍을 재다가 동시에 말했다.
“반성했지?”
“반성했지?”
둘은 결연한 모양새로 고개를 끄덕였다.
의견이 하나 된 둘의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다.
강미나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무척 기뻤어. 너도 그랬지?”
“당연하지. 무려 김철수의 칭찬이었으니까.”
그 대단하다는 에건 폴이 뺨을 맞았는데 강미나와 봉킹은 칭찬을 받았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화제가 되어 짤들이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강미나와 봉킹, 스스로도 무척 감격했었고.
그러나 이후 차진혁의 말에 강미나와 봉킹은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강미나. 너…… 혹시 육체적 수련, 했냐?”
“했겠냐?”
선제각성 스트리머에게는 ‘중계결계’라는 특별한 결계가 주어진다.
어지간한 위험은 막아낼 수 있기에, 보통 육체단련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지. 너도 안 했겠지.”
“봉킹. 너도 안 했지?”
“그래. 그건 생각도 못 했다.”
그러나 차진혁이 한 마디가 두 스트리머의 심금을 울렸다.
[“너 육체수련은 안하냐?”]
그랬다.
스트리머에게는 육체수련이 필수였던 것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봉킹이 말을 이었다.
“에건 폴은 험프리 밀런의 정신계 공격에 당했어. 그러나 김철수는 당하지 않았지. 그건 단순히 육체수련으로 된 것이 아냐.”
“그래. 나도 알아. 내가 알기로 김철수에게는 정신을 보호하는 능력이 있어. 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내가 듣기로 정신방벽을 형성해 주는 신비가 있다고 해.”
“찾을 수 있겠어?”
“그렇게 찾기 쉬우면 그게 신비겠냐? 나도 인맥 총동원해서 알아봐야 해.”
“…….”
둘은 눈을 마주쳤다.
둘은 늘 서로를 의식하며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이번만큼은 힘을 합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신비를 찾을 때까지, 서로 협력할까?”
“안 그래도 같은 제안을 하려고 했어. 그때까지는 함께 협력하면 좋겠군.”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했다.
서로 더 뛰어난 스트리머가 되기 위하여, 더 좋은 라이벌이 되기 위하여 잠시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
둘에게는 상당히 의미깊은 날이었다.
* * *
나는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이래저래 피곤하네.’
역시 대형 콘텐츠를 진행하다 보면 심신이 빨리 지친다.
시청자 수의 증감을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하고, 그 와중에 같은 재료로 더 맛있는 영상을 뽑아내기 위해서 노력하느라 모든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검술가 시절보다 훨씬 더 빨리 지치고 힘들다.
그만큼 더 재미도 있고.
그런데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돌아가도 되겠는가, 계약자여.”
“아직 안 갔어?”
뇌룡이 소환된 채 계속 수호수 근처에 있었나 보다.
뇌룡이 워낙 강한 힘을 내뿜고 있어서 서울시 일대에 통화나 인터넷이 먹통이 됐다나 뭐라나.
“아, 근데 하나만 물어보자.”
-“무엇이냐?”
“왜 그렇게 멋에 목숨을 걸었어? 의도가 뭐야?”
뇌룡이 등장했을 때 솔직히 나도 감탄했다.
물론 나도 ‘아이언 파우더’ 같이, 사내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모습을 연출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뇌룡이 피워올린 수퍼셀에 비하면 좀 약한 감이 있었다.
뇌룡의 수퍼셀은 마치 지구 종말을 예언하는 재앙과도 같은 포스가 있었으니까.
근데 내가 알고 있는 뇌룡의 등장은 이렇게까지 요란하지 않았다.
-“나도 그것이 의문이군.”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일부러 멋있게 등장한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나보다 더 멋있고 싶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일부러 그럴 리가. 나는 서버 간 이동에 많은 제약을 지닌다. 이동만으로도 체력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느끼지. 그러한 상황에서 그토록 거대한 뇌운을 피워올리는 건 불필요하고 매우 비합리적인 행동이었다.”
근데 왜 그랬지?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나는 계약자의 영혼에 영향을 받는다.”
“……뭐?”
-“그러나 나와 계약한 이가 그토록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리는 없겠지. 그러니 의아한 것이다.”
“…….”
가끔은 멋을 위해서 효율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트랜스포머 등의 변신 로봇들이 괜히 요란하게 변신하는 게 아니다.
-“어쩌면 지구를 보호하는 프로토콜이 걸려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내 힘과 체력을 조금이라도 더 소모시켜서 지구에 끼치는 영향을 줄이려는 것일지도.”
“…….”
-“계약자가 원한다면 이런 비합리적인 요소를 줄일 수 있도록 내 나름대로 고심해 보겠다.”
“아냐. 됐어. 육아에 바쁜데 굳이 그렇게까지 정성을 쏟을 필요는 없지.”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뇌룡은 내 탈 것이고, 뇌룡이 멋있으면 결국 나한테도 좋은 거 아니겠는가.
화려한 슈퍼카를 타고 다니면 많은 시선을 받듯, 뛰어난 탈 것을 타고 다니면 결국 주인인 내가 주목받는 거 아니겠는가.
‘하마터면 탈 것을 질투할 뻔했네.’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그대의 아량에 감사를 표하지.”
“뭐, 육아에 힘든 건 없고?”
-“스칸노르비아는 척박하다. 아룡의 먹이로 쓸 만한 좋은 신비를 구하기 어렵지. 그 외에는 힘들 것은 없다.”
뇌룡은 스칸노르비아로 돌아갔고 그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수호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서 못 해. 저 뇌룡.”
“뭐가?”
-“나 시집 어떻게 가? 나는 범해졌어.”
정신적인 충격이 컸는지 사극톤의 말투는 완전히 버려버린 모양이었다.
-“내 온몸을 칭칭 둘러싸고 꽉 껴안았단 말이야. 그것도 암컷한테!”
수호수는 한참 동안이나 흐아아앙! 하고 울어댔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평범한 인간의 상식으로는 수호수의 생각이나 사상을 이해하기 어려워서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근데 주인아. 주인을 꼭 만나야겠다고 자꾸 나한테 종알거리는 인간이 있는데?”
“그런 인간이 한둘이냐? 무시해.”
-“근데 이번에는 만나야 할 거 같으시도다. 엣헴, 이 여자는 아주 중요한 인물일 거 같다는 직감이 드는도다. 수호수느님의 훌륭한 직감이시니 믿어도 좋겠도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한테 내재되어 있는 신비, ‘행운 그 자체’가 격렬히 반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