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62화
에건 폴의 시야는 온전하지 못했다.
안개가 잔뜩 낀 망망대해를 홀로 표류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안개가 가득한 시커먼 바다가 그에게 속삭였다.
-김철수만 없으면 돼.
-김철수만 없으면 네가 1등이야.
-김철수만 없으면.
1위에 대한 갈망이야말로 지금의 에건 폴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그는 반쯤 반사적으로 방송을 열고서 방송 제목을 작성했다.
[수호수 옮겨심기 콘텐츠, 시작해 보겠습니다.]
에건 폴의 방송에 수많은 시청자들이 접속했다.
-수호수를 옮겨심는다고?
-어? 저거 우리 서버 네임드 벌목꾼인데?
-벌목꾼에 네임드가 있음?
-당연하지. 네가 모를 뿐 모든 분야에는 달인이 있는 법이다, 애송아.
-어느 정도 네임드임?
-초네임드는 아니고 루키 정도 됨 ㅋㅋ 근데 진짜 수호수 벌목에 성공하면 진짜 네임드로 등극할 듯
몇몇 시청자들은 시나리오 벌목꾼인 럼볼의 모습을 알아보았다.
-와 오늘 레전드 찍겠눜ㅋㅋㅋㅋ
-지금 수호수는 남동쪽에 힘 다 쏟고 있어서 능력이 많이 약화됐을 텐뎈ㅋㅋㅋㅋ
-작전 지렸다. 침략자들은 그냥 연막이었던 거네.
에건 폴은 지금의 상황을 꽤 침착하게 전달했다.
한국과 김철수가 독점하고 있는 이 보물을 위대한 미국으로 옮겨가겠다고.
“더 많은 이들이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이것을 연구하여 더 많이 퍼뜨리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에건 폴의 방송에 접속한 시청자들은 그의 말에 열광했다.
그러나 에건 폴은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
여전히 그는 안개 낀 바다를 떠돌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니, 나는 그냥 자극적이고 좋은 콘텐츠를 뽑아내고 싶은 것뿐이야.’
이렇게 말해야 사람들이 열광한다는 것도 알지만, 이것은 그 스스로 연출한 창작물이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의 정신에 개입하여 자신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자각이 생겼다.
‘그동안 수호수는 서울을 잘 지켜왔어.’
덕분에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손꼽혔고, 서울의 땅값은 뉴욕보다 훨씬 더 비싸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안심하고 뛰놀 수 있는 도시가 바로 서울이었다.
그 수호수를 잘라내서 옮겨 심는다?
‘솔직히 가능한지도 모르겠어.’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가?
이 콘텐츠가 옳은 콘텐츠인가?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김철수를 뛰어넘어야지.
-김철수를 이겨야지.
-영원히 2인자로 살고 싶은 거냐?
에건 폴도 알고 있었다.
1등이 아니면 의미 없다.
이 스트리밍의 세계가 제로섬 게임은 아니지만,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구조인 것은 틀림없었다.
그는 2등으로 전락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건 옳은 방송이 아니야.’
저번 조작방송에 피해자는 없었다.
미국도, 에건 폴도, 스칸노르비아의 전사들도 모두가 만족하는 거래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천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쓸데없는 생각.
-방송만을 생각해.
-지금 봐. 시청자들이 열광하고 있잖아.
이런저런 생각들과 의식이 서로 부딪치며 에건 폴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당연히 에건 폴의 텐션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고, 평소보다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다.
한편, 럼볼이 수호수에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이렇게 접근하는데도 날 밀어내지 못하다니. 영 싱거운걸.”
수호 앞에 다가선 럼볼이 도끼를 높이 들어 올렸다.
“베어내 주마. 영광으로 알아라. 나의 이름은 럼볼, 장차 수호수 벌목꾼이라 불릴 사내이다.”
그때,
서울 하늘 곳곳에서 뇌전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직! 콰지직!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고, 서울 상공에서는 그동안 한 번도 관측하지 못했던 종류의 거대 구름이 형성되었다.
수많은 기상학자들이 그 광경을 보고서 경탄했다.
“슈, 슈퍼셀!”
각종 매체에서 슈퍼셀에 대한 정보를 쏟아냈다.
-슈퍼셀은 뇌우의 한 형태이자 대류운의 일종으로서…….
-매우 거대한 형태의 뇌우로서…….
-개개의 독립적인 뇌우보다 현저히 큰 대류계로…….
서울에 재앙이 내린 것만 같았다.
높이 1만 미터.
폭 10만 미터에 달하는 그 자체로 흉포한 구름 괴물.
보랏빛 뇌전과 폭발적인 상승기류를 일으키는 구름은 서울 상공에 지옥을 강림시킨 것 같았다.
-주변에 강력한 토네이도가 발생하는 것이 보편적이나, 토네이도는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슈퍼셀의 특징 중 하나인 폭발적인 강수 현상도 관측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민하TV의 강미나가 소리쳤다.
“……라고 전문가들이 말하고 있어요. 민하상 여러분들도 보이시죠? 세상에, 김철수 영상으로 이미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니 더 어마어마하군요.”
근처에 봉킹도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아니 형님들, 저기 보십시오. 뇌전을 품은 거대한 용이 하늘로부터 승천하고 있습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게 승천이짘ㅋㅋㅋ 땅으로 내려오는 게 왜 승천이눜ㅋㅋㅋ
-대충 말만 통하면 되지 뭘 짚고 앉았냐?
소통 중심의 봉킹은 일부러 단어를 틀리게 사용하며 시청자들의 집중도를 높였고, 서사 및 스토리 중심의 강미나는 뇌룡이 연출하는 초자연적 장관에 더욱 집중하여 상황을 전달했다.
강미나가 말했다.
“거대한 뇌룡이 수호수를 감쌌어요. 마치 뱀이 먹잇감을 옥죄는 것만 같은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강미나는 압도적인 뇌룡의 자태에 시선과 정신을 온통 빼앗겼다.
“……아름다워요.”
강미나는 해당 상황을 클로즈업하여 럼볼의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럼볼도 크게 당황한 듯 보였다.
어딘가로 황급히 전화를 걸려고 했으나,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강력한 뇌전 때문에 전파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젠장! 이런 얘기는 없었잖아!”
강미나는 화면과 음성을 극도로 확대하여 럼볼의 일거수일투족을 읽어냈다.
“뇌룡은 관여하지 못할 거라며! 험프리 밀런 이 개자식이.”
그 내용은 강미나의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었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 험프리 밀런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꼴이었다.
뇌룡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관여하지 않는다, 인간. 그저 이 자리에 있을 뿐. 그대는 그대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라.”]
* * *
럼볼은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다.’
뇌룡이 직접 말했다.
인간의 일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고.
결국 그는 쌍도끼를 꺼내 들었다.
‘내 일생일대의 목표였어.’
수호수를 베어낸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구라는 특별한 환경이 아니었더라면, 어쩌면 평생 손에 닿지 않을 이상향이었다.
기회는 이번 한 번뿐이었다.
‘벤다.’
가까이 다가가 심호흡을 했다.
‘아무리 뇌룡이 갑옷처럼 감싸고 있다지만, 틈은 있어.’
그 틈을 잘 노려서 공략하면 이 수호수를 베어낼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정신을 집중하며 틈을 찾아냈고, 결국 찾을 수 있었다.
‘아직 아니야.’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그 사이, 수호수는 비명을 토해냈다.
-따끔따끔해! 제발 이 뇌룡 좀 꺼지라고 해줘! 턱수염으로 날 문대는 것 같다고!
어느덧 아이 같은 말투로 돌아온 수호수는 차진혁에게 사정했다.
괴로워 죽겠다고 열변을 토했다.
‘어쩔 수 없어. 좀만 참아. 내가 곧 갈 테니까.’
-게다가 이 뇌룡, 여성체잖아? 난 암컷 싫어! 수컷이 좋단 말이야!
‘이 상황에서 성별을 왜 따져? 그럼 그냥 도끼질 당할래?’
-뇌룡이 있어봤자 어차피 저놈은 날 팰 거야! 저 무지막지한 도끼로 나를 마구마구 찍어댈 거라고! 오, 온다! 오, 온다도다!
‘알고 있어.’
차진혁도 이미 실시간으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에건 폴의 방송, 강미나의 방송, 봉킹의 방송.
무언가에 한껏 집중하던 럼볼이 눈을 번쩍! 뜨더니 도끼를 들어 올렸다.
럼볼의 눈에 보랏빛 기류가 일렁거렸고 도끼날이 번쩍번쩍 빛나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좀 해봐, 주인!
이내 럼볼이 도끼를 휘둘렀다.
후웅-!
강한 파공성이 들렸다.
민하TV의 강미나가 럼볼의 모습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그 짧은 사이에 잠깐이지만 슬로우 모션을 걸어서 럼볼의 모습을 생생하게 중계했다.
쿵!
뇌룡이 감싼 수호수의 틈.
럼볼은 그곳을 정확하게 공략했다.
-아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쿵!
쿵!
도끼질이 계속되었다.
그럴수록 럼볼의 눈에 깃든 보랏빛 기류는 점차 강해졌고, 럼볼은 자신만만해졌다.
‘할 수 있다.’
그의 도끼질은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한, 점점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쉼 없이 이어갈수록 훨씬 더 뛰어난 나무꾼이 된다.
‘나는 수호수를 벌목한 남자로 기록될 것이다.’
그가 있는 힘껏 도끼를 휘둘렀다.
순간, 콰지직-!
무엇인가가 몸을 관통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
시야가 갑자기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 뭐…….’
럼볼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산 채로 사망했다.
* * *
먼저 용기를 낸 사람은 다름 아닌 봉킹이었다.
‘민하TV에 밀릴 수 없어.’
오늘은 강미나의 날이었다.
이렇게 콘텐츠가 가지는 힘이 압도적인 날에는, 소통 중심보다는 전달 중심의 스트리머가 더 유리하니까.
그래서 그는 용기를 내야 했다.
봉킹은 곧바로 뇌룡에게 다가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뇌룡 씨?”
[“지구의 인간들은 신기하군. 내가 두렵지 않은가?”]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뇌룡 씨.”
그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한편, 럼볼을 톡톡 건드려보았다.
“이봐요, 괜찮…… 억!”
봉킹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럼볼의 몸에 남아 있는 잔류가 봉킹의 몸을 마비시켜 버렸다.
‘정신을 잃으면 안 돼.’
그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김철수는 기절해도 방송을 안 끊는다고!’
김철수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는 이미 천외천의 스트리머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철수의 발끝이라도 따라가야 했다.
그것이 한국 랭킹 1위 스트리머의 자존심이었다.
‘아니, 저건 또 왜 왔어?’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랭킹 2위 강미나가 도착했다.
강미나는 봉킹을 제치고 뇌룡과의 인터뷰에 성공했다.
“직접적인 전투 상황에 관여는 안 하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관여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몸을 수호수에 감고 휴식을 취했을 뿐.”]
“하지만 나무꾼이 죽었는데요.”
[“반탄력 때문이겠지. 나는 아무것도 한 적이 없다. 혼자 흥분하다가 내 마력장의 반탄력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얼마 후, 차진혁이 수호수에 도착했다.
차진혁이 도착하자 뇌룡이 말했다.
[“나는 이제 돌아가도 되겠는가, 계약자여.”]
“고마워. 육아로 바쁠 텐데 불러서 미안하다.”
[“나중에 보지.”]
럼볼이 사망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차진혁은 봉킹을 지나치면서 작게 말했다.
“훌륭했다, 봉킹.”
그 말을 듣자 봉킹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선 채로 기절했으나 그의 입가에는 가느다란 미소가 걸려 있었고, 방송 또한 끊어지지 않았다.
-기절한 거 맞지?
-기절했는데 방송 안 끊기는 거 실화냨ㅋㅋㅋㅋ
-김철수만 가능한 줄 알았더니 봉킹도 가능한 거였누?
봉킹도 차진혁의 기준에 물들어갔다.
차진혁은 천천히 걸어 강미나도 스쳐 지나갔다.
“강미나. 너도 좋았어.”
이곳으로 오면서 강미나와 봉킹의 방송을 유심히 살펴봤다.
둘은 각자의 특색을 가지고 같은 콘텐츠를 개성 있게 잘 연출해 주었다.
같은 재료로 다른 요리를 해낸 훌륭한 요리사들이었다.
뇌룡이라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굴하지 않고 나서서 인터뷰를 따낸 것도 아주 좋았다.
둘이 서로를 이기기 위해 아름다운 경쟁을 펼치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어이.”
차진혁이 에건 폴 앞에 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에건 폴과 럼볼이 한패라고 생각했고, 차진혁에 그에 걸맞은 응징을 가할 것이라 생각했다.
럼볼이 사망한 시점에서 에건 폴도 자신이 같은 운명임을 직감했다.
‘나도 죽겠지.’
‘연희 함락전’은 실패로 끝났다.
시나리오가 실패했다는 알림이 들려왔고, 에건 폴은 자신의 최후를 준비했다.
‘멋있게 죽자. 그러면 적어도 이 순간은 1위로 기억될 수 있어.’
잠깐이라도 김철수를 넘어선 스트리머로 기억되고 싶었다.
차진혁이 손을 들어 올렸다.
짝!
그의 손바닥이 에건 폴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야.”
차진혁은 무척 분노한 것 같았다.
‘당연하지. 그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인 수호수를 잘라내려 했으니.’
짝!
다시 한번 뺨을 맞았다.
차진혁이 씩씩대며 말했다.
“네가 그러고도 랭킹 1위 스트리머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무엇에 화를 내고 있는 건가, 이자는.
“방송이 왜 이렇게 허접하냐고? 이런 콘텐츠로 이거밖에 못 해? 네가 그러고도 미국 1위야? 텐션은 왜 그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방송을 진행하는 거야? 미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