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57화
‘경이로운 목록’에 등재되는 것은 모든 플레이어들의 꿈이고 이상향이었다.
대업적이 ‘경이로운 목록’에 헌정되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었다.
회귀 전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기준이 뭐 이따위야?’
참고로 한국 검술계열 플레이어들 중 ‘경이로운 목록’에 대업적을 올린 사람은 이현성이 유일했다.
그때 내가 얼마나 열받았는지 모른다.
다방면에 걸쳐서 내가 이현성보다 더 뛰어났는데, 나는 달성 못한 ‘경이로운 목록’을 이현성이 달성했었으니까.
아무튼 지구 서버 전체를 통틀어서도 ‘경이로운 목록’에 헌정된 대업적은 그리 많지 않았고, 당연히 선정 기준이 쓰레기 같다고 확신하고 있던 차였다.
‘사실은 기준이 꽤 옳은가 보다.’
받고 보니 이제 납득이 된다.
기준은 잘못되지 않은 거 같다.
[‘경이로운 목록’ 달성자에게 ‘경이로운 초대권’이 도착합니다.]
인벤토리에 초대권 하나가 도착했다.
이것은 1년에 한 번, 오로지 ‘경이로운 목록’을 달성한 플레이어들만 참여할 수 있는 축제. 통칭, ‘글로리 소사이어티’에 참석할 수 있는 초대권이었다.
‘내가 드디어 이걸 해냈다고!’
이현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글로리 소사이어티에 참석한 전력이 있다, 차진혁.”
이현성은 자기가 불리해질 때면 꼭 글로리 소사이어티에 참석했다며 유세를 부리곤 했었다.
이제는 그 더러운 꼴 안 봐도 될 것 같네.
[대업적, ‘뇌룡계약’에 특별한 혜택이 부여됩니다.]
뇌룡, 아탄나가 엄숙히 입을 열었다.
[“운이 좋구나, 광인이여.”]
“뭐가?”
[“강대한 힘을 지닌 자의 책무는 매우 무겁다.”]
아탄나가 설명을 시작했는데 그리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서버 간 이동이 매우 불편하다, 그런 뜻이잖아. 원래는 스칸노르비아 서버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경이로운 목록에 헌정된 특혜로 인하여 금제가 사라졌다는 뜻이네.”
[“그렇다. 그러나 다소간의 제약은 여전히 존재한다.”]
아탄나는 후후- 웃으며 말을 이었다.
[“몹시 개탄스럽겠지만 나의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좋네.”
[“아쉬워도 어쩔…… 무어라?”]
쟤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타 서버에서는 나의 힘을 온전히 끌어낼 수 없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 전능한 뇌룡의 힘을.”]
전능하기는 개뿔.
오염되어가는 자기 아들 한 명 못 구하는 초보 주제에 뭐가 전능하다는 건지 모르겠네.
[“나의 힘을 전투에는 활용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대의 전투를 도울 수 없다는 얘기지. 그대에게는 가혹할 이 제약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다. 아마도 그대의 성장과 관련이 있겠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무슨 테이머로 보여?”
나는 시청자들에게 이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했다.
“저는 테이머가 아닌데 뇌룡이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계약하고 나면 제가 무슨 대단한 일에 뇌룡을 불러낼 줄 알았나 보네요.”
나는 테르서박처럼 뇌룡의 힘을 극대화하여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뇌룡의 힘을 사용하는 것은 테르서박처럼 유능한 테이머에게도 큰 부담이 되는 일이다.
나 같은 스트리머가 뇌룡의 힘을 온전히 사용하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광인, 그대 또한 나와의 계약을 염원했다. 나는 용안으로 그 광적인 마음을 읽어냈지. 그런데도 부인할 셈이냐?”]
“계약을 염원한 건 맞아.”
당연하다.
나는 살면서 뇌룡처럼 폼나는 탈 것을 본 적이 없다.
뇌운을 일으키고 하늘을 가르는 뇌룡.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의 압도적인 위압감을 가진 위대한 탈 것.
이것은 페라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탈것이다.
“너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탈 것이지.”
* * *
뇌룡, 아탄나는 한동안 혼란에 휩싸였다.
지난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아탄나와 계약을 맺으려는 인간들은 많았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뇌룡의 힘을 얻어서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려는 야욕.
그중 운 좋은 몇몇은 아탄나가 도와줘서 당대 최강의 영웅으로 발돋움하기도 했었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탈 것?’
아탄나는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자신을 탈 것 취급하는 미친 인간을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탈 것’의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결국 그녀는 차진혁의 말을 이해하고 말았다.
[“탈 것? 탈 것이 필요했던 것인가, 광인이여.”]
“어.”
[“이 나를? 탈 것으로 쓰겠다?”]
“당연하지.”
[“이유는?”]
“폼 나잖아.”
아탄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차진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힘을 전투에 활용하지 못하는 것에 전혀 불만이 없다?”]
“난 간지가 필요할 뿐이야.”
사실 계약자가 원한다면 금제를 어느 정도는 풀어낼 수 있었다.
아들을 구해준 은인이니 그 정도는 해주려고 했다.
금제를 풀어 달라, 힘을 허락해 달라, 간절하게 빌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저런 말을 한다니.’
아탄나는 여전히 차진혁의 속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수천 년간 쌓여왔던 그녀의 생각이 한순간에 송두리째 무너지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대신 아탄나는 아탄나의 방식과 눈으로 차진혁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혹시 나를 배려하고 있는 것인가?’
차진혁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가며 아톤을 구해줬다.
혹시라도 치료(?)에 방해될까 봐서, 가만히 있으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그래. 저자는 따뜻한 광인일지도 모른다. 아룡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걸 정도로.’
생각해 보았다.
뇌룡의 힘을 전투에 쓰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는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어미인 나를 배려하고 있는 게야.’
아룡은 여러모로 취약하다.
오염된 신비에도 쉽게 중독되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아룡 곁에는 어미가 항상 있어야 한다.
‘애초에 저자는 나를 활용할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이겠지.’
육아에 힘쓰고 있는 초보 엄마를 배려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자가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뇌룡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그리 아쉽지도 않은 것이겠지!
아탄나는 꽤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 강렬한 마음은 차진혁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음?’
계약을 해서인지 아탄나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정확히 느꼈다.
‘오?’
그래서 한 마디를 해줬다.
계약 대상의 호감을 사기 위한 시늉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으니까.
“넌 엄마잖아.”
[“…….”]
“난 아기를 키우는 엄마를 전투에 끌어들이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
[“역시, 그랬던 것이었나. 그대는 배려 있게 미친놈이었군.”]
아탄나의 호감도가 증폭되는 것이 느껴진 차진혁은 씨익 웃었다.
‘어차피 하차감을 위한 탈 것인데.’
뇌룡의 힘을 온전히 사용하기 어렵다는 객관적인 사실과는 별개로, 어차피 그 힘을 활용할 생각은 없었다.
뇌룡의 힘을 완벽하게 사용한다는 건 곧 플레이에 치트키를 사용한다는 뜻이니까.
‘치트키 쓰면 재미없잖아.’
그건 차진혁이 추구하는 플레이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마침 칸이 정신을 차리고 있네요. 가서 대화를 해보겠습니다.”
차진혁은 으으- 신음성을 내고 있는 칸의 뺨을 때렸다.
* * *
김잘알TV의 채팅창은 여전히 핫했다.
-감정 실린 거 같눜ㅋㅋㅋㅋㅋ
-위대한 지도자 싸대기 맞은 썰 푼닼ㅋㅋㅋ
-와, 레벨 차이 50 넘게 나는데 싸대기 때리는 거 실화냨ㅋㅋㅋㅋㅋ 배짱 미쳤눜ㅋㅋㅋㅋ
이윽고 칸은 정신을 차렸고 눈을 부라렸다.
“네 이놈!”
칸은 곧장 몸을 일으켜 차진혁을 발로 차려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죽고 싶은가.”]
스칸노르비아의 진정한 지배자 아탄나가 스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저, 저는……!”
차진혁이 씨익 웃으며 또다시 뺨을 때렸다.
“정신 차려, 칸!”
찰싹! 찰싹!
왼쪽, 오른쪽, 번갈아 가면서 때렸다.
-??? 정신 차렸잖음? 뭔 솔임???
-ㅋㅋㅋ아직도 김철수를 모르냨ㅋㅋㅋ
몇몇 헤비 유저들이 과거 김철수의 영상을 친히 찾아 주었다.
-죽었는데 찌르고 또 찌름.
-명분은 확인사살을 위한 거라고 함.
-근데 이미 사냥했다는 알림 떴음 ㅋㅋㅋㅋ
-그냥 계속 찌르고 싶어서 찔렀다는 게 학계의 정설.
그러니까 지금 김철수는 때리고 싶어서 때리는 것이었다.
라이트 유저들과 뉴비들은 깨달음을 얻었다.
“정신 차리라고, 칸!”
찰싹!
찰싹!
여러 차례 뺨을 때리고 나서야 김철수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오, 정신 차렸구나.”
“너…….”
칸은 분노했으나 아탄나가 두려워 그것을 티 내지는 못했다.
“자. 스칸노르비아의 위대한 지도자 칸과 인터뷰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인터뷰에 좀 응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정체가 무엇이냐?”
“김철수.”
“김철수? 김평범의 둘도 없는 친구, 김철수 말이냐?”
칸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장 그 쓰레기 같은 놈을 내놓아라, 이 비겁한 놈들아!”
그러자 지진이 일었다.
아탄나가 몹시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내 계약자이자 내 아들의 은인을 다시 한번 모욕했다가는 꼬치구이가 될 줄 알거라!”]
쾅!
뇌전이 내리꽂혔다.
번쩍!
시야가 밝아졌고 그제야 칸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숲이…… 사라졌다?’
스칸노르비아에서 가장 거대한 숲인 중앙 숲이 사라져 있었다.
눈에 보이는 건 광활한 평야뿐.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일 정도였다.
‘숲이 소멸했어.’
그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게 바로 뇌룡이 가진 힘이었다.
칸은 곧바로 공손한 태도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뇌룡의 계약자시여. 인터뷰에 응하겠습니다.”
“주작방송. 했냐, 안 했냐?”
“……예?”
“에건 폴, 험프리 밀런, 몰라?”
차진혁은 실시간 시청자 숫자를 확인했다.
무려 20만 명에 이르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늘었어?’
정확한 계산식은 알 수 없었으나 레벨이 오르면서 시청자 정원 제한이 급격히 풀리고 있는 듯했다.
‘스트리밍의 정의를 바로잡아 주마.’
절대 내 1등 자리를 노려서 화가 난 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차진혁이 다시 물었다.
“몰라?”
칸은 한참 동안 고민했다.
그러나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뇌룡은 거짓을 금방 간파할 수 있으니까.
“……압니다.”
“걔네가 주작방송 요구했지?”
“주작방송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미국의 힘으로 너네를 궤멸시켰다는 거 말이야. 그거 조작이지?”
“…….”
칸은 잠시 입을 다물었으나 결국 차진혁의(뇌룡의) 압박에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칸이 간곡히 부탁했다.
“방송을 잠시만 멈춰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왜?”
“말씀드리기 곤란한 것이 조금 있습니다.”
차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상태에서 방송을 끊는다?
이건 쌍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는 연출이었다.
칸이 제법 불쌍한 표정으로 애걸복걸하고 있었지만 그게 차진혁 사정은 아니었다.
“그 곤란한 걸 말하라는 건데?”
“…….”
“왜? 에건 폴 놈이랑 비밀약속이라도 했나 봐? 식량이나 의료품 같은 거 지원받기로 했지?”
“…….”
“너네는 땅이 척박해서 늘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으니까 놈들의 제안에 구미가 당길 법도 해.”
차진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그렇다고 그러면 쓰냐? 세상에 상도라는 게 있고 법도라는 게 있는데. 그런 식으로 방송하면 개나 소나 다 스트리머 하지. 안 그래?”
칸은 묘하게 핀트가 어긋나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구 서버를 침략하고 인간들을 수탈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게 아닌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