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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52화 (152/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52화

필드에 진입한 한세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여기는 문명이 덜 발달했네.’

목책 안쪽에서 꽤 많은 수의 어린 전사들이 투지를 불태우며 차진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흔한 스마트폰 하나도 들고 있지 않았다.

‘정령도 스마트폰을 쓰는 세상에. 이런 문명이 존재한다니. 조선시대인 줄.’

스마트폰 대신 목검과 돌팔매 등을 들고 있었다.

알방방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자는 정당한 방법으로 나를 꺾은 전사다. 다들 물러서.”

알방방의 말에 차진혁을 둘러싸기 시작했던 전사들이 길을 내주었다.

나무로 만든 오두막들을 지나쳐 광장 쪽으로 향했다.

광장 부근에는 불타고 있는 작은 제단이 보였다.

“저기. 제단 너머의 저 오두막이, 알리하룸 님의 거처다.”

차진혁과 한세린은 계속 걸음을 옮겼다.

[필드, ‘알리하룸의 오두막’에 진입하였습니다.]

이는 차진혁이 정확한 루트대로 착실히 진행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조건들을 만족하지 않고 그냥 입장하게 되면 ‘필드, 알리하룸의 오두막’이라는 알림이 들려오지 않는다.

오두막 안은 꽤 단출했다.

낡은 침대와 의자가 살림살이의 전부인 듯했다.

침대에는 노인 한 명이 누워 있었다.

“스칸노르비아의 전사들에게는 전통이 있다 들었습니다.”

아직 지구 서버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고, 전 우주적으로도 유명한 사실은 아니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수준의 정보였다.

“대전사 의식을 치르고 싶습니다.”

차진혁은 회귀 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대전사 의식을 치렀었다.

당시에 대전사 의식을 치렀던 이유는 두 개였다.

1. 대전사 의식을 통과했을때 획득할 수 있는 특성, ‘전사의 의지’을 얻기 위해.

2. 상위레벨 전사인 칸과 싸워보고 싶어서.

사실 2의 이유가 훨씬 강했으나 1도 없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 의식을 치르며 진행하다 보면 결국 위대한 지도자 칸과 만나게 되어 있다.

‘이 새끼, 에건 폴이랑 짜고 쳤다는 걸 밝혀내 주마. 감히 그런 주작을 해?’

이건 스트리머 전체의 명예와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에건 폴에게 밀리지 않았을 때에는, 스트리머의 명예 같은 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보다 스트리머의 명예와 방송의 진실성을 추구하는 사역자가 되어 있었다.

이내 알리하룸이 이불을 걷고서 천천히 일어섰다.

하얗고 긴 눈썹이 눈을 가득 덮고 있는 노인이었다.

“외부인이? 어째서?”

“대전사의 명예에 도전하는 것에 이유가 필요합니까?”

하얀 눈썹이 꿈틀거렸다.

[스킬, ‘간파하는 눈’을 사용하였습니다.]

[중계자의 시야가 ‘간파하는 눈’을 차단합니다.]

“속을 알 수 없는 젊은이군.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물론입니다. 위대한 지도자 칸과 자웅을 겨뤄보고 싶기도 합니다. 대전사가 되면 칸과 만날 수 있다 들었습니다.”

알리하룸은 몸을 돌아앉으며 앙상하게 마른 다리를 움직여 땅에 내렸다.

“내 비록 그대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으나, 눈빛에 서린 진심은 읽을 수 있겠어. 전사의 눈을 가지고 있군. 허나, 대전사 의식에 도전하려면 전사의 깊은 인정이 필요하네. 인정을 받기 위해 많은 시련이 필요하지. 그대는 감당할 수 있는가?”

차진혁이 씨익 웃었다.

사실 이건 K-공략법 중 하나였다.

한국발 공략을 보통 ‘K-공략법’이라 표현하는데, 플레이의 수많은 요소들은 배제하고 효율성과 보상의 극대화에만 초점을 둔 극한의 공략법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인정은 이미 받았습니다. 목책의 전사 알방방에게.”

이게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공략이었다.

목책의 전사 알방방은 무릎을 꿇고 알리하룸의 발등에 입을 맞추었다.

“저는 이자를 완전히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가 K-공략이었다.

이후, ‘대전사 의식’이라는 퀘스트가 주어지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런데 정석 흐름이 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자는 그 누구보다 전사다운 전사였습니다. 목책의 전사 알방방은 위대한 지도자 칸을 만났을 때보다 더욱 벅찼음을 고백합니다, 알리하룸이시여.”

그는 인벤토리를 열어 자신의 잘려 나갔던 오른팔을 내밀었다.

“제 오른팔을 전사의 징표로 바칠 테니, 이자에게 명예로운 자격을 허락하여 주시길 간청합니다.”

차진혁도 처음 보는 진행이었다.

* * *

[퀘스트, ‘위대한 대전사 의식’이 생성되었습니다.]

──────────

[위대한 대전사 의식]

가라, 가서 위대한 대전사의 심장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하고 대전사로서 인정받으라.

오로지 위대한 지도자만이 그대를 위대한 지도자를 임명할 수 있으리라.

──────────

퀘스트가 활성화됨과 동시에 알리하룸은 내게 지도 한 장과 작은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었다.

[퀘스트 아이템, ‘수도로 향하는 지도’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리고 회귀 전에는 몰랐던 아이템도 하나 받았다.

[퀘스트 아이템, ‘알리하룸의 가죽 주머니’를 획득하였습니다.]

알리하룸이 말을 시작했다.

“사실 나는 옛 위대한 전사였네. 지금은 보잘것없는 초야의 늙은이지만 말이야.”

나는 다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재미없었지만 그래도 시청자들을 위해 최대한 흥미로운 척했다.

꽤 오랜 시간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영감님이 칸의 스승님이었고 이 주머니 안에는 영감님이 칸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뜻이죠?”

“그렇지. 그 지도가 있으면 칸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고, 내가 전하는 주머니가 있으니 칸을 만날 수 있을 것이야.”

“고맙습니다. 영감님의 뜻을 받들어 훌륭한 대전사로 거듭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다시 강조하지만 칸을 만날때까지, 절대로 그 주머니를 열어서는 안 되네.”

회귀 전에 이런 내용은 없었기에 오히려 더 설렜다.

남들이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걸 경험하는 중이니까.

“이제 조금 쉬고 싶군. 나가주게.”

나는 알리하룸의 오두막에서 벗어난 뒤, 알방방의 안내를 받아 다시금 목책으로 이동했다.

어느덧 어깨의 피는 멈춰 있었다.

“내게 전사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어 고맙군.”

“고맙긴.”

나는 녀석의 왼쪽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앞으로 방패 같은 건 들지 말고.”

“명심하지.”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을을 떠났다.

지도는 한세린에게 넘겨주었는데 한세린은 무척 신이 나서 ‘수도로 향하는 지도’를 살펴보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좋냐?”

“이거 봐. 실시간으로 화살표가 움직여. 무슨 네비게이션처럼.”

칸이 다스리는 대도시 ‘새벽의 도시’는 오로지 이런 류의 지도가 있어야만 찾아갈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길잡이여도 이게 없으면 수도로 못 가나 봐. 어디 보자, 수도의 이름은 새벽의 도시. 지구 플레이어들 중 처음인 거 같은데?”

“그러게.”

“두더지맨은 구경도 못했겠지?”

일부러 나를 쳐다보고 말하는 게 느껴졌다.

한 번 말한 게 아니라 두 번 말했다.

방송을 통해 두더지맨을 도발하는 것이 분명했다.

“두더지맨은 전혀 못봤을 거야. 호호호.”

한세린은 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를 안내했다.

마을을 벗어나 한참을 걷자, 훨씬 울창한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풀이 너무 우거져서 안쪽이 굉장히 어둡습니다.”

[필드, ‘스칸노르비아 중앙숲’에 진입합니다.]

마치 거대한 열대우림 같았다.

안쪽으로 걸어갈수록 점점 습해졌고, 점차 길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인위적으로 다듬어진 길은 없어졌고…… 표지판이 하나 보이네요.”

[위험. 돌아가시오.]

이곳은 엄청나게 거대한 숲이었다.

길잡이와 탐험가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한반도 면적의 수백 배에 달하는 곳이었다.

한세린이 약간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숲을 뚫고 가야 할 거 같은데.”

“가능하겠어?”

“꽤 많은 준비가 필요할 거 같아. 하늘을 나는 탈 것이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역시 한세린의 눈썰미는 예리했다.

사실 ‘스칸노르비아 중앙숲’은 걸어서 통과하는 지역이 아니었다.

노련한 길잡이와 탐험가들도 걸어서 통과하는 건 포기했다.

이곳은 날아서 통과해야 하는 곳이었다.

“탈 것을 구해야겠네?”

안 그래도 슬슬 탈 것을 구할 때가 되기는 한 것 같다.

보통 탈 것은 레벨 150대 부근에 구하게 되긴 하지만 시기가 조금 더 빨라진다고 문제될 건 없엇다.

“탈 것을 구할 수 있어?”

아직까지 지구 서버의 플레이어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지구 플레이어들 중에서 탈 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몇 안 되었고, 그나마도 대부분은 테이머계열의 플레이어들이었다.

다시 말해, 테이머가 아닌 플레이어들 중 탈 것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중앙숲 어딘가에 커다란 절벽이 있고 거기에 소형 와이번이 서식한다고 해. 그놈을 길들이면 되지 않을까?”

고지능, 고출력의 탈것들은 사실 테이머의 도움이 있어야만 길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소형 와이번 정도는 충분히 길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게 가능해?”

“타 서버 플레이어들 보니까 그 정도는 하더라고.”

“그럼 해볼까?”

한세린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소형 와이번 정도에 저렇게 설레 하는 걸 보니 약간 낯설기도 하다.

지금의 한세린은 꽤 순수하구나 싶다.

“좋아. 소형 와이번의 서식처를 찾아볼게. 탐색은 혼자 하는 게 편하니까 일단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한세린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어딘가를 향해 움직였다.

나는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지구 최강의 테이머, 긴고아를 이용해 뇌룡을 길들였던 ‘테르서 박’이 스칸노르비아 서버에서 뇌룡을 길들였다는 소문이 있었다.

‘나도 뇌룡을 길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 말도 안 된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상상은 자유니까.

로또 당첨되지 않을 걸 알아도 로또에 당첨되는 상상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서 진짜 뇌룡을 만난다면?’

크으, 뇌룡이라니.

나도 모르게 전율이 흘렀다.

‘뇌룡. 진짜 멋있었는데.’

내가 경험했던 모든 마물과 영물을 통틀어서 가장 빛나는 존재였다.

온몸에 고압의 뇌전이 흐르는 영수.

뇌룡과 눈이 마주쳤을 때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었다.

‘진짜 무서운 건 신비를 먹어 치운다는 거지.’

뇌룡을 길들일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물론 성체의 뇌룡을 만나면 즉사하겠지만 어린 뇌룡을 만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그렇게 강한 정령왕의 딸도 시작은 레벨 80 부근이었다.

뇌룡도 어린 개체는 약하지 않을까? 그러면 어느 정도 길들일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쓸데없는 상상은 그만하기로 했다.

잠시나마 행복했다.

* * *

각성명, 오수정크리스탈의 마음이 급해졌다.

“어느 쪽으로 갔죠?”

“저쪽.”

알방방은 오수정크리스탈이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는 모양새였으나 공격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스스로 먼저 ‘스트리머’라고 밝혔기 때문이었다.

비전투 계열의 플레이어인 스트리머를 공격하는 것은 전사로서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고마워요.”

오수정크리스탈 또한 숲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방송을 통해, 지도가 없으면 중앙 숲을 통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깊숙히 들어가기 전에 찾아야 해.’

어떻게든 김철수와 합류해야 했다.

[필드, ‘스칸노르비아 중앙숲’에 진입합니다.]

수목이 우거져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열대우림.

그 안에 들어서자 그녀는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여기가 어디지?’

방송을 통해 확인해 봐도 도무지 길을 알 수 없었다.

한참을 헤맨 끝에 그녀는 낯익은 표지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위험. 돌아가시오.]

‘김철수 님이 봤던 표지판과 같은 표지판이야.’

그녀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김철수님은 이 필드에 진입하고서 몇 분 안 돼서 저 표지판을 발견했는데. 시간 차이가 너무 많이 나.’

곧 있으면 패스파인더가 소형 와이번의 서식처를 알아올 것 같았다.

지금 어딘가에서 대기하고 있는 김철수가 훌쩍 떠나버릴 것 같았다.

[신비, ‘광적인 집착’이 사용됩니다.]

그녀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코를 벌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김철수를…… 만나야 해.”

그녀는 네발짐승처럼 기며 뛰기 시작했다.

“먹어야 해. 김철수, 김철수, 김철수, 김철수, 김철수.”

그녀의 입가에서는 끈적한 침이 질질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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