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51화 (151/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51화

차진혁은 잠시 생각했다.

‘이걸 원했다고?’

이게 뭐지?

예전에도 한세린은 선문답 같은 형식의 말을 많이 했었다.

그 안에는 길잡이로서의 깊은 깨달음이 내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차진혁에게 상당한 영감을 주곤 했었다.

‘아. 알겠다!’

차진혁은 나뭇가지에 가볍게 착지했다.

저만치 아래, 꼬리혹 도마뱀이 나무를 박박 긁어대며 올라오려 했지만 번번이 미끄러져 실패했다.

‘이거 엄청 미끄러운 나무였구나.’

꼬리혹 도마뱀이 쫓아올 수 없을 정도로 미끈거리는 나무.

자세히 보니 외부 생명체를 감지한 나무가 스스로 미끌거리는 진액을 잔뜩 뿜어내고 있었다.

그건 차진혁의 발밑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지금 나는 얘를 안고 있는데?’

심지어 지금은 사람을 한 명 안은 상태이건만 중심 잡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한세린이라면 지금 이 상황을 읽었을 것이 분명했다.

‘역시 한세린이다.’

도마뱀의 공격루트. 그에 따른 차진혁의 회피루트.

그것을 철저하게 계산해서 지금의 상황을 예측했을 거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 얼마나 잘 서 있는지 확인해 본 거야. 길잡이로서 팀원의 능력과 한계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으니까.’

이건 일종의 시험 같은 거였고, 그 시험에 꽤 잘 통과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차진혁의 품에 안긴 한세린이 물었다.

“왜 웃는데?”

“좋아서.”

“조, 좋다고?”

“어. 좋지.”

어쩐 일인지 한세린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지만 차진혁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도마뱀을 따돌린 다음 안전한 곳에서 내려주자.’

몇몇 나무를 더 건너뛰어 이동했다.

한세린을 안고서도, 이 정도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이제 슬슬 내려줘야겠…… 응?’

한세린을 내려주려 했으나 실패했다.

한세린이 차진혁의 몸통을 꼭 끌어안았기 때문이었다.

‘뭐지?’

왜 안 내려가지?

또 뭘 확인하고 싶은 거지?

“계속 안아.”

“왜?”

“……이, 이게 효율적인 움직임인 걸 아직도 모르겠어?”

“아!”

지금의 한세린은 이제 고작 레벨 110대인데, 자꾸 내 기준은 레벨 200 이상의 한세린에 맞춰져 있다.

‘당연히 내가 안고 이동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빠른데 내가 그 점을 간과했네.’

역시 눈썰미가 예리했다.

“미안. 내가 생각이 짧았네.”

“응.”

차진혁은 한세린을 다시 안아 들었다.

“여기서 11시 방향, 아니, 조금 더 틀어.”

한세린은 차진혁의 옷깃을 마치 핸들이라도 된 것처럼 미묘하게 끌어당기며 방향을 잡아주었다.

한세린과 이런 협업은 처음이라 굉장히 낯설었지만 효율 자체는 무척 좋았다.

‘역시 한세린.’

한참을 달리자 커다란 목책에 둘러싸여 있는 한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야.”

차진혁과 한세린이 목책 앞으로 이동했다.

한세린의 얼굴이 묘하게 붉어져 있어서 차진혁은 기분이 좋았다.

‘얘도 이런 식의 빠르고 효율적인 협업은 처음이겠지.’

이제 그는 단순한 검술가가 아니었다.

스트리머로서, 수많은 직업의 플레이어에게 이입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머리로만 상상했던 계획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저 쾌감. 결국 최단 루트를 안전하게 뚫어냈을 때, 길잡이로서의 저 쾌감은 어마어마하겠지.’

그런데 약간 이상하기는 했다.

1차 목적지에 도착했는데도 한세린이 차진혁의 옷자락 끝을 살짝 잡고 있었다.

약간 아쉬운 것 같은 모양새였다.

‘내 옷자락을 운전대 삼아 조종하던 그 짜릿한 감각이 못내 아쉬운 건가.’

차진혁이 빙그레 웃었다.

“다음에 또 안자.”

“…….”

한세린의 볼이 조금 더 붉게 물들었고 차진혁은 그런 한세린을 완전히 이해했다.

역시 설레하고 있었다.

차진혁은 뿌듯한 마음을 숨기고서 목책을 향해 걸어갔다.

“목책의 전사는 들어라! 존경받는 노인, 알리하룸을 만나러 왔다!”

그 순간,

차진혁의 이마를 향해 화살이 쏘아졌다.

‘여기서부터는 회귀자의 공략이다.’

보여주기로 했다.

에건 폴의 주작방송 -주작이라 밝혀진 건 없지만 어쩐 일인지 차진혁은 주작이라 확신했다-과 차원이 다른, 뛰어난 퀄리티의 방송을.

* * *

“이 방향인가?”

각성명 오수정크리스탈.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딘가를 향해 달렸다.

‘여기. 흔적이다.’

그러던 중 큰 위협을 마주했다.

‘꼬리혹 도마뱀?’

굉장히 성난 꼬리혹 도마뱀이었다.

쫓던 사냥감(차진혁, 한세린)을 놓치게 되어 굉장히 화가 난 상태였다.

키엑!

오수정크리스탈은 중계결계를 사용하여 꼬리혹 도마뱀의 공격을 막아냈다.

꼬리혹 도마뱀의 레벨은 77.

“방해하지 마.”

오수정크리스탈보다는 레벨이 훨씬 낮았으나 스트리머인 오수정크리스탈은 꽤 고전했다.

몇 차례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다가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는 김철수를 쫓아야 한단 말이야.”

[신비, ‘광적인 집착’이 사용됩니다.]

그녀의 눈과 손톱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오수정크리스탈의 입가에서 뜨거운 김이 새어 나왔다.

이윽고, 오수정크리스탈의 눈동자와 손톱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방해하지 말라고 했잖아.”

오수정크리스탈은 퉤! 하고 꼬리혹 도마뱀의 살점을 뱉어냈다.

그녀의 옆에는 처참하게 물어뜯긴 꼬리혹 도마뱀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오수정크리스탈의 눈이 전구가 깜빡이듯 붉어졌다 검어지기를 반복했다.

“먹고…… 싶어.”

엄청난 허기가 밀려들었다.

그녀는 꼬리혹 도마뱀의 옆구리에 머리를 박아넣고 와구와구 내장을 씹어먹기 시작했다.

무아지경에 빠진 그녀가 진심을 내뱉었다.

“먹고 싶어. 김철수를.”

문득 고개를 번쩍 든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뭘 하고 있었더…… 아. 맞아. 김철수 님 쫓아가야지.”

제정신을 되찾은 그녀는 다시금 김철수를 쫓기 시작했다.

* * *

화살이 날아들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차진혁은 중계결계로 손을 보호하면서 화살을 낚아챘다.

“활을 쏜 놈이 누구냐?”

차진혁은 신경질적으로 목책을 향해 화살을 집어 던졌다.

탁!

소리와 함께 목책에 화살이 박혔다.

“전사라면 전사답게, 활이 아닌 칼과 창으로 나와 맞서라. 너희는 전사의 명예도 모르는 것이냐!”

크게 외치던 차진혁은 스스로에게 깜짝 놀랐다.

‘내 목청이 이렇게 컸어?’

마치 마이크를 댄 것처럼 쩌렁쩌렁 울렸다.

이 정도면 목책 안쪽의 전사들에게도 전부 들릴 정도였다.

“나와라. 전사답게 결투를 치르자.”

차진혁은 대도 라칸을 꺼내 들고서 목책 위를 올려다보았다.

다시금 쏘아질 수도 있는 화살의 위협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 있으면 나한테 화살을 쏜 놈이 나타나겠지.’

그때까지 약간의 시간이 있었고, 차진혁은 오디오를 풍성하게 채워 넣었다.

그는 이현성과 최강벽이 자신의 대사들에 크게 감명받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자신의 멋들어진 대사에 꽤 큰 자부심을 느끼는 상태였다.

“내 오른손에 깃든 흑염검은, 전투에 목마르다.”

불사조의 심장을 먹은 덕분에 차진혁은 불을 다스리는 능력이 일취월장했다.

게다가 정령왕의 딸 엘리네스와 계약에 성공한 덕택에 불에 대한 친화도가 더욱 높아졌다.

‘정령왕의 묵화를 떠올리자.’

불을 이용한 공격까지는 애매해도, 불꽃 효과를 일으킬 정도는 되었다.

라칸의 검신에 검은색 불꽃을 피워올렸다.

‘어? 되네?’

실용성은 없어도 퍼포먼스적으로는 꽤 훌륭했다.

그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검은 불꽃에 매우 흡족해졌다.

이내, 목책의 문이 열리고 덩치 큰 전사 한 명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붉은 수염을 길게 기르고 한 손에는 도끼를, 또 다른 한 손에는 나무방패를 들고 있는 전사였다.

“이봐. 네놈의 이름은 무엇이냐?”

“전사가 아닌 놈과는 대화하지 않겠다.”

“뭐?”

차진혁은 대검을 늘어뜨리고서 싸울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방패 따위를 들고 오는 놈이 무슨 전사라고.”

“…….”

전사는 부끄러운 듯 몸을 한 차례 떨더니 방패를 집어 던졌다.

“꽤 전사다운 놈이었군.”

전사는 깊게 심호흡하며 도끼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보여다오, 네 오른손에 깃든 흑염검을.”

전사가 땅을 박차고 뛰었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접근했고, 차진혁 또한 두 발에 단단히 힘을 주고서 앞을 주시했다.

‘정면으로 받아낸다.’

생각만 했다가 얼른 정신을 차린 차진혁이 육성으로 말했다.

“정면으로 받아내보겠습니다.”

먼치킨 특성을 획득한 이후 제대로 검을 휘두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때문인지 차진혁 또한 심장이 쿵쾅거렸다.

‘온다.’

전사의 공격은 단순한 직선이었다.

코뿔소처럼 달려와 강맹하게 휘두르는 것.

그게 목책의 전사 알방방의 공격이었다.

“스킬 사용 없이, 순수 힘으로 받아내보려 합니다.”

저런 공격을 무식하게 받아내는 건 사실 차진혁의 취향은 아니었다.

검술가 차진혁이라면 절대 정면에서 받아내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차진혁은 스트리머였다.

까앙-!

도끼날과 검날이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목책의 전사 알방방의 목과 이마에 굵은 핏대가 섰다.

“크하아아압!”

힘과 힘의 싸움이 이어졌다.

체구는 알방방이 훨씬 컸으나 밀려나는 것은 오히려 알방방이었다.

차진혁은 힘으로 알방방의 도끼를 밀어내며 타이밍을 읽었다.

‘그리고 지금.’

신체의 밸런스가 미묘하게 무너지는 지금 이 타이밍.

수많은 경험을 토대로 발현시킨 감각이 알려주는 이 절묘한 순간을, 차진혁은 놓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스트리머로서 대사까지 읊었다.

“베어주마. 전사의 긍지를.”

후웅-!

커다란 파공성과 함께 대검 라칸이 검은 궤적을 그렸다.

이내, 라칸의 검날이 알방방의 어깨에 닿았고 알방방이 짧은 비명성을 토해냈다.

“큭!”

턱.

도끼를 쥐고 있던 알방방의 오른팔이 땅에 떨어졌다.

오히려 황당한 사람은 차진혁이었다.

‘이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어깨에 깊은 상처를 내려고는 했지만 팔을 절단할 생각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먼치킨 특성에 적응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뭐,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쩔 수 없지.’

차진혁은 당황한 것을 내색하지 않고 라칸을 알방방의 목젖에 대었다.

“전사가 무기를 몸에서 놓았다.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냐. 너는 긍지를 잃었다.”

“…….”

알방방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팔을 잃은 건 괜찮았지만 전투 중에 무기를 놓쳤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부끄러운 줄 안다면 존경받는 노인, 알리하룸에게 안내해.”

* * *

알방방과 차진혁의 전투를 지켜보면서 가장 놀랐던 사람은 한세린이었다.

‘더 강해졌다고?’

전투형 스트리머는 보통 레벨 100 언저리에서 도태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런데 차진혁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강해지고 있었다.

오른팔을 잃은 알방방이 어깨를 부여잡고 앞서 걸으며 말했다.

“안내하겠다, 따라와라.”

“그러지.”

차진혁은 라칸을 인벤토리에 넣은 채 알방방을 따라 걸었다.

한세린도 그 뒤를 따라 걸었는데 차진혁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역시…… 아름다워.’

한세린이 보아왔던 그 어떤 검술계열 플레이어도 지금처럼 아름다운 플레이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심지어 한국의 검술계열 랭킹 1위라는 항문검 이현성도 저런 모습은 보여줄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정말 아름다워.’

할짝.

저도 모르게 입술을 핥으며 입맛을 다셨다.

정확히 구체화하기 어려운 소유욕이 꿈틀거렸다.

꼴깍.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차진혁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아까 차진혁의 품에 안겼던 순간들이 아른아른 스쳐 지나갔다.

‘갖고 싶어.’

이윽고 알림이 들려왔다.

[필드, ‘알리쿰 부족 마을’에 진입합니다.]

0